꽃들에게 희망을 하서명작선 28
트리나 폴러스 지음, 김미정 옮김 / (주)하서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모 출판사의 어린이 또는 청소년을 위한 문학시리즈를 쭉 훑어나가다 보니 몇몇 생소한 작품명과 작가명이 눈에 띈다. 그렇게 문득 호기심이 발동하여 급히 구해본 게 이 책이다. 알고보니 동화쪽에서는 거의 고전급으로 인정받는 것 같다. 작가 트리나 폴러스는 전업 작가는 아니고 여성 운동과 환경 운동에 매진하면서 거기에서 얻은 체험을 바탕으로 이 글을 쓴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달랑 이 책 하나만 출판되어 있어 다소 아쉽다.

 

표제와는 달리 애벌레 두 마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그들이 벌이는 일종의 모험담과 경험담을 소개한다. 물론 애벌레가 나중에 나비로 탈바꿈하게 되므로 꽃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다. 다만 표제를 보고 꽃들과 관련된 작품으로 오해하지는 말아야겠다.

 

이 책은 비판적 독자에게 이중적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어린이의 계몽을 대상으로 삼은 측면에서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단순하고 직접적이며 충분히 감동적이다. 반면 성인 독자의 눈으로 보면 주제의식이 너무 앞서있고 교훈의 제시가 직설적이어서 세련되지 못한 인상을 받게 된다. 조금만 더 문학적으로 포장하여 다듬었으면 더욱 멋진 작품이었을 텐데.

 

현대 사회는 정글과도 같은 경쟁사회라는 점, 그래서 남을 앞서기 위해서는 밟고, 넘어서기 위해서는 인정사정 볼 것 없이 경쟁자들을 제쳐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우리는 모두 직간접적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다. 때로는 무엇을 위한 경쟁인가 근원적 의구심을 품기도 하지만, 그런 나약한 감정일랑 일치감치 던져버리는 게 보다 유익하다는 사실도 충분히 인식한다.

 

성공하지 못하는 건 다 자기 탓인 거야!”

인생은 험난한 가시밭길이라구. 마음을 단단히 먹는 수밖에 없단 말이야.” (P.108)

 

줄무늬 애벌레는 노랑 애벌레와 행복하게 지내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경쟁의 미래를 포기하지 못한다. 치열한 분투 끝에 애벌레 탑의 꼭대기에 도달하지만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저 남들보다 위에 서있을 뿐. 독자는 줄무늬 애벌레가 피도 눈물도 없는, 성공 신화에 사로잡힌 무자비한 개체가 아님을 안다. 그와 경쟁하는 수많은 애벌레들도 마찬가지로 하나하나가 독자적인 개성을 지닌 독립된 생명체다. 하지만 경쟁의 도상에서 고유성과 존엄성을 즉시 매몰되면 맹목적 일부로 전락할 뿐이다.

 

노랑 애벌레는 맹목적 경쟁이 아닌 다른 길을 모색한다. 그저 바닥을 기어 다니는 미천한 존재가 아니라 창공을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눈부시고 고귀한 존재, 나비가 될 수 있는 길을. 개체의 내적 완성을 통한 도약과 비상으로의 변모. 그것은 불확실하고 고치 속에서 오랜 시간을 갇혀 지내며 애벌레의 존재성을 포기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길이다. 미지의 길을, 다수와 떨어져서 홀로 걸어가야 하는 두려움과 외로움, 그것은 진정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이런 건 예전에 생각지도 못한 건데. 내가 바른 길을 갈 수 있는 건 바로 용기 때문이다. 만약 내 몸 안에서 실을 뽑아낼 수 있다면 나도 나비가 될 수 있을 거야.” (P.100)

 

이 동화의 끝 장면은 시사적이다. 나비가 된 줄무늬 애벌레. 두 마리의 애벌레는 나비가 되어 정겹게 다듬이를 쓰다듬는다. 이윽고 초원을 팔랑이며 날아간다. 여기에는 오직 이미지만 있을 뿐 일체의 글자는 배제하고 있는데, 말로는 표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일 것이다.

 

아니, 이제부터 다른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P.175)

 

그것은 작가의 간절한 염원 자체이기도 하다. 모든 애벌레들이 땅바닥을 기는데 만족하지 않고, 이웃들을 적으로 삼고 오로지 높은 곳을 오르고자 하지 않는 것. 애벌레들이 나비가 되지 않는다면 초원은 더 이상 아름다운 꽃들로 넘쳐나지 않는 삭막하기 이를 데 없는 곳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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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ㄴㅇㄹ 2018-07-23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경쟁의 도상에서 고유성과 존엄성을 즉시 매몰되면 맹목적 일부로 전락할 뿐이다-> 문법에도 맞지 않고 일부로 어렵게 쓴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