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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권보드래 지음 / 돌베개 / 2019년 3월
평점 :
3.1 운동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국문학과 교수다. 흠, 뭔가 이상하다. 역사학자 또는 사회과학자도 아닌 인문학자가 3.1 운동을 다룬 책을 쓰다니. 3.1 운동을 문학사적으로 조망하려는 책인가 싶은데 책소개나 서평을 읽어보면 그렇지도 않다.
누구나 3.1 운동을 알지만 정작 3.1 운동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무엇이 떠오르는가, 민족 대표 33인, 유관순 열사, 전 국민의 만세운동.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태어나는 계기가 되었음을 아는 사람은 역사에 비교적 지식이 있는 경우다. 하지만 정작 3.1 운동 자체에 대해서는 머릿속에 확 다가오지 않는다. 태극기와 만세운동, 비폭력 저항운동이라는 추상적 이미지뿐.
저자가 3.1 운동 백 주년에 맞추어 이 책을 쓴 까닭은 분명하다. 역사 속의 한 장면, 박제된 이미지가 된 3.1 운동을 학술적 차원이 아니라 인간적 온기를 품고 자세히 알아보고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것임을. 3.1 운동이 단지 지나간 역사적 한 사건에 그치지 않고 우리 근현대 역사와 문화에 깊은 족적을 남기고 이른바 판을 뒤흔들어 놓은 세기적 사건이었음을. 나아가 오늘날 우리는 3.1 운동의 지대한 영향 아래 살고 있으면서도 정작 3.1 운동의 본질과 계승에는 여전히 소극적임을 저자는 말하고자 한다.
주석, 출전 및 찾아보기를 제외하고도 560면에 이르는 두툼한 책의 내용을 쉽사리 이해하기는 어렵다. 저자는 1부에서 3.1 운동의 전체적 맥락을, 2부에서는 시대적 흐름을, 3부는 실제 인물과 운동 각론을, 4부는 문학적 연계를 고찰한다. 역사와 대중적으로 유명한 민족 대표 33인과 유관순 열사는 거의 다루지 않는데, 민족 대표의 의미와 비중이 절대적으로 낮다는 점과 유관순으로 전형화된 인물 이면에 가려진 민초들의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다.
3월 1일의 밤을 기술하는 저자의 필치는 세심하며 건조한 객관성에 함몰되지 않는다. 온기를 품은 채 흥분을 배제하면서 최대한 온화하고 담담하게 3.1 운동의 현장과 인물을 그려나간다. 그것은 후대에 비판적 평가 대상이 되는 인물과 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연유로 역사와 인문을 결합한 한 편의 문학작품을 읽은 것과 같은 깊은 여운을 갖게 됨은 전적으로 저자의 역량이라고 하겠다.
3.1 운동은 세계사적 맥락에서는 타당하지만, 국내만으로 제한하여 보면 매우 뜬금없고 갑작스러운 출현이었다. 강제 병합 이후 독립투쟁은 국지적 활동을 제외하면 사실상 휴면 상태로 접어들었고, 민족적 역량을 결집할 만한 구심체도 존재하지 않았다. 민족 대표 33인은 독립선언만 하면 그것으로 할 일을 마쳤다고 생각하는 정도였고, 대중적 인식도 독립을 위한 만세인지, 독립에 기뻐한 만세인지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기본적으로 3.1 운동은 태화관 및 탑골공원에서의 작은 해프닝으로 끝나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전국으로 계층을 불문하고 확산되어 갔다.
독립의 선언이 곧 독립의 현실을 구성한다는 믿음이야말로 3.1 운동의 비밀이다. ‘와야 할 현실’을 ‘도래한 현실’로 변형시킴으로써, 그러한 정언명령을 표현하고 전달하고 감염시킴으로써, 3.1 운동의 대중은 그 스스로 새로운 현실의 일부가 되었다. (P.52, 1부)
강화도 은세공업자 유봉진 사례는 이러한 자발적 주체를 예시한다. 저자는 3.1 운동의 거시적 의의만 천착하지 않고 보다 구체적이고 세밀한 재료에도 관심을 보이는데, 다종다기한 선언서의 변형과, 운동에서 태극기의 출현 시기와 그것의 실질적 의미, ‘만세’ 구호가 갖는 비일상적 상징성 등이 그러하다. 또 민초들에게 독립은 추상적 전망이 아닌 토지, 종교 및 기타 현세적 소망과도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음을, 그것은 일제 식민 통치가 그들에게서 빼앗아갔고 통제함으로써 당대 체제에서는 획득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재화였음도 빠뜨리지 않는다.
세계사적으로 볼 때 3.1 운동은 사회진화론이 표방한 제국주의 정당화 이데올로기를 정면으로 반박함으로써 향후 인류 보편주의가 지배적 이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이다. 약육강식이 불변의 보편적 원리라고 인정될 때 조선이 일본에 병합되는 사건은 대세 원리에 부합하므로 비난할 명분이 없다. 민족자결주의를 이해했든 곡해했든, 3.1 운동 선언서가 표방하는 인류 보편의 평화와 행복 추구권은 이후 사회진화론을 극복하는 이념적 토대가 되었다.
‘세계’와 ‘인류’의 보편주의가 학생과 지식인 사이에서의 동향을 벗어나 일반적인 기류가 된 것은 3.1 운동 이후다. 거꾸로 말하자면 인류 보편주의의 성장에 힘입어 3.1 운동의 이념은 비로소 형성될 수 있었다. (P.211, 2부)
정신적 차원뿐만 아니라 물리적 기준에서도 3.1 운동의 영향은 지대하다. 3.1 운동의 영향으로 임시정부가 탄생하였으며, 비폭력 평화주의의 한계를 실감한 이후 무장 독립투쟁으로 노선의 큰 방향 전환이 생겼다. 3.1 운동이 외형상 실패하였음은 자명하다. 다만 이것을 독립 쟁취 여부로써만 판단하는 것은 단견이며, 향후 독립운동의 시발점 역할을 하였고 민중 인식을 근대화시켰다는 점을 유념하면 절반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3.1 운동 직후 무력투쟁이 극렬해졌다는 사실은 3.1 운동기, 특히 초기의 비폭력주의가 결코 불가피한 전략이 아니었음을 알려준다. 3.1 운동의 비폭력은 체계적이거나 수미일관하지는 않았을지언정 의식적인 선택이었다. (P.332, 3부)
3.1 운동의 장소라고 하면 태화관과 탑골공원, 그리고 아우내장터가 우선 연상된다. 저자는 운동이 전국적이고 거국적이었음을 보여주기 위해 각 지역 사례를 예시한다. 통일된 중심 조직이 없는 만큼 운동의 양상은 지역별로 제각기 달랐고 전개 과정도 상이하였다. 대체로 비폭력 평화운동이었지만 평남 성천처럼 유혈 충돌이 빚어진 사례도 발생하였다. 장터 같은 번화가, 산꼭대기는 물론 다수의 군중집회, 한두 명의 격문과 태극기와 같이 규모도 천차만별이었다. 지방은 유림, 농민, 천도교도, 도시는 학생과 노동자가 만세를 불렀으며, 신분으로는 양반과 평민, 기생 같은 하층민을 포함하여 진주에서는 백정 아낙들도 참여하였다고 한다. 저자도 언급했듯이 수년 뒤 백정해방운동인 형평사 운동이 진주에서 일어난 게 전혀 의외는 아니다.
아산보통학교 교사 박경순, 서울 기생 정금죽, 개성 교회전도사 어윤희 사례는 평범한 여성들이 3.1 운동 참여를 통해 정치, 사상적으로 얼마큼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경우라고 하겠다.
국문학자인 저자로서는 3.1 운동이 문화계, 특히 문학에 끼친 영향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4부는 일제강점기 개괄적 국문학사라고 해도 무방하다. 헤이그 밀사 이위종과 몽골 어의 이태준, 김필순 일가, 홍명희의 방랑 등 3.1 운동 이전에 식민 지배에 좌절하여 탈출을 모색하던 청년층은 운동을 통해 일본인이 아닌 조선인 또는 대한인으로서 정체성을 분명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강용흘과 이미륵의 망명 문학은 3.1 운동 후 해외에서 고유성을 기억하고 알리는 역할을 하였다.
무단통치 시기 강력하게 억눌렀던 국문학이 급격하게 발전하기 시작한 계기는 일제의 문화통치 덕분이다. 3.1 운동으로 놀란 일제가 지배 방침을 변경하여 제한적이나마 우리말 교육과 출판을 허용하였기 때문이다. 역으로 말한다면 3.1 운동이 없었다면 일본의 통치 기조는 변함이 없었을 것이고 우리말은 끝내 말살되고 민족의식조차 미구에 소멸되었을 것이란 뜻이다.
3.1 운동 과정에서 민중은 일제의 유혈 진압과 핍박, 고문 등의 참상을 겪었다. 이로 인한 트라우마를 부정하지 못한다. 게다가 외형상 운동의 실패는 실망과 좌절, 패배 의식을 고취시켰다. 여기서 절망의 나락에 빠질 것인가, 어두운 현실을 명철하게 진단하고 분석함으로써 개선과 발전의 여지를 찾으려고 노력할 것인가, 현재 상태가 어둠의 밑바닥임을 깨닫고 희망의 빛을 확신할 것인가에 따라 문학적 입장은 달라진다. 저자는 김동인과 이광수, 심훈, 염상섭을 전형으로 제시한다. 운동 이전 동인지 문학에서 주도적 역량을 발휘하였던 김동인과 이광수는 오히려 3.1 운동 이후 타협의 길을 걷는다. 그들에게 3.1 운동은 민족의 독립 역량을 결집하고 표방한 긍정이 아니라 죽음 직전 마지막 비명으로 인식되었다.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이 대표적이다.
염상섭의 시각마따나 3.1 운동은 종착점보다 출발점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볼 때 적극적 의의를 갖는다. 3.1 운동은 개인적.민족적 층위에서 공히 불회귀적 사건인 동시, 실패냐 성공이냐의 질문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종류의 사건이다. (P.543-544, 4부)
저자가 4부에 걸쳐 3.1 운동을 조사하고 분석하고 해석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그것은 3.1 운동의 중대한 의의에도 불구하고 단지 역사적 사실, 현재와는 무관한 과거의 사건으로 치부하는 시각을 일신하기 위함이다. 역사성의 거대 담론에만 치우쳐 간과하는, 우리네 민중 개개인의 삶과 행동과 선택이 그 속에 어떻게 녹아들어 있는지를 드러내고자 함이다.
3.1 운동을 그 세계사적 맥락으로 되돌리고 3.1 운동에서 토의된 정치.경제.문화적 쟁점들을 오늘에 되살려 보자는 것이다. 3.1 운동은 빛나는 경험이다. 그러나 그 빛은 천상의 순일성이 아니라 지상의 악전고투로 물들어 있다. (P.555, 나가는 글)
3.1 운동을 자세히 알고 싶은 호기심과, 국문학자가 3.1 운동을 어떻게 풀어냈을까의 궁금증이 이 책을 읽게 된 동력이었다. 3.1 운동을 다층 다면적으로 이해하고, 개별 인간 차원에서 3.1 운동의 현장을 접근하고 싶다면 읽은 보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책이라고 단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