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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테크 ㅣ 바벨의 도서관 10
윌리엄 벡퍼드 지음, 문은실 옮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기획 / 바다출판사 / 2010년 12월
평점 :
<천일야화>가 있다. 유럽인들은 오리엔트의 이국풍, 관능성과 잔혹성을 향유할 수 있다. <파우스트>가 있다. 괴테의 것이든 선배격인 크리스토퍼 말로의 것이든 본질은 대동소이하다. 절대 지식을 구하는 인물이 악마와 계약을 맺고 끝내는 파멸한다. 전자의 배경과 후자의 인물을 한데 버무려놓는다면 바로 이 책 <바테크>가 해당한다. 말미의 ‘작가 소개’에서도 이 점을 지적한다.
동양은 벡퍼드의 상상력을 자극했던 요소들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요소이다. 하지만 그것과 동시에 벡퍼드가 호흡했던 파우스트의 분위기를 간과해선 안 된다. (P.196)
파우스트를 칼리프 바테크로, 메피스토펠레스를 이단자 인도인으로 대체한다면 무리가 없다. 아 물론 바테크의 어머니인 왕비 카라티스는 특별한 인물이지만. 오히려 이단자 인도인과 왕비 카라티스를 합치면 보다 완전한 메피스토펠레스에 가깝다. 누로니하르는 그레트헨과 헬레나의 조합이다.
모르는 것으로 남겨 두어야 할 것을 알려고 하고, 제 힘을 넘어서는 것을 짊어지려고 애쓰는 경솔한 인간들, 필멸의 자들에게 비탄을 내려라. (P.34)
18세기 고딕소설의 효시 격인 이 소설은 굉장히 그로테스크하다. 작가는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 정통 신앙인 이슬람을 배신하는 칼리프의 광기와 잔인성을 극단으로 몰고 가기 위해 여러 설정을 집어넣고 있다. 공이 된 인도인을 뒤쫓는 광기에 사로잡힌 바테크와 백성들의 장면 이성을 넘어선 맹목적 열정과 광기가 해학미마저 자아낼 정도다. 성지 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사제들이 갖고 온 성스러운 빗자루에 대한 바테크의 야비한 모욕은 정통 신앙에 대한 완벽한 모독인 동시에 이슬람교에 대한 조소가 은연중 담겨 있다.
이 작품은 바테크 외에 강렬한 개성을 발휘하는 조연도 여럿 등장한다. 그중 칼리프의 모친인 왕비 카라티스의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이 왕비는 자신이 여자로서 사악해질 수 있을 만큼 사악하다는 가책은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그것은 모든 경쟁에서 우월함을 뽐내는 성(性)에게는 뜻하는 것이 적지 않았다. (P.60)
소개부터 강렬하게 등장하는 왕비는 백여 명의 백성들을 가벼운 마음으로 교살하는 것을 시작으로 살생과 악행을 서슴지 않고 자행한다. 이에 비한다면 오십 명의 아이들을 낭떠러지에서 집어 던진 바테크의 소행은 미약할 정도다. 참으로 잔인한 모자라고 하겠다. 더욱이 카라티스는 어둠의 마법을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으니 마녀라고 불릴 만할 정도다. 카라티스는 아들에 절대 영광을 부여하려는 맹목적 애정을 가지고 작품 내에서 시종일관 아들을 사악한 길로 바르게 인도하기 위해 온갖 수고를 무릅쓰며 악과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데 매진한다.
카라티스가 누구인가. 다른 사람이라면 말도 못하게 끔찍하게 여겨 두려워할 일인데도, 그녀는 무엇이 됐든지 간에 온 힘을 다해 즐기는 사람이 아니던가. (P.148)
전체적으로 어둡고 악취가 진동하는 작중 분위기에서 한 가닥 밝음과 웃음의 줄기를 던져주는 인물은 누로니하르와 바바발루크다. 우스꽝스러운 우직함을 견지하는 바바발루크에게는 동정심이 생겨날 정도다. 반면 누로니하르는 양면성을 지닌다. 전반부의 그녀는 순진하고 자유로우며 독자성을 지닌 인물로 묘사되는데, 바테크와 행동을 같이한 이후 칼리프보다도 더 적극적이다. 바테크를 구원할 여인상으로 전개될 줄 알았던 누로니하르의 타락은 더없이 극적이기에 한층 인상적이다. 어찌하겠는가, 바테크와 누로니하르의 만남과 결합은 어떤 장애도 꺾지 못할 운명인 것을.
제아무리 악인에게도 마지막 구원의 기회는 남아있다. 하지만 선량한 지니가 하는 진심 어린 충고와 경고마저 바테크는 분연히 외면한다. 이후 에블리스와 그의 저주받을 디베들이 움켜쥔 지옥의 제국(P.169)에 입장하는 두 사람. 그들 앞에 펼쳐진 무수한 보화와 가슴을 움켜쥐고 사방을 배회하는 영혼들. 동경하던 위대한 술탄 솔리만의 겁벌을 목도하며 겁에 질린 바테크와 누로니하르. 심판의 순간에 흘러나와 선고하는 목소리와 함께 바테크의 편력은 최후에 이른다. 마지막 단락의 바테크와 굴첸루즈의 비교는 고딕소설의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자그만 사족이다. 부분적 진실도 담겨 있으니 인간 본연의 순수성과 무욕을 지킨 사람의 행복한 미래다.
기획자인 보르헤스에 따르면 벡퍼드는 비록 허술하지만 후대 작가들이 창조해 낸 지옥의 화려함을 예고했다고 평한다(P.14). 우리가 고딕소설을 읽는 사유와 재미가 여기에 있다. 일상의 현실과 통상의 윤리관을 훌쩍 건너뛰고 상상과 욕망을 자극하고 확장함으로써 오히려 현재의 우리 자신을 보다 다각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역할. 그렇기에 비주류 문학으로서 꾸준히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