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찬가 - 한권의시 59
노발리스 / 태학당 / 1994년 7월
평점 :
절판


노발리스의 <푸른 꽃> 외에도 시 작품이 번역 출간된 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겨우 구해서 읽어보게 되었는데, 목차에서부터 대략 난감이었다. 노발리스의 시선집인줄 알고 있었는데, <밤의 찬가> 달랑 한 편만 수록되어 있을 줄이야, 게다가 이 시가 장시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소설을 통해 작가가 녹록치 않음을 알고 있었지만, 시는 정말 대략 난감이다. 가뜩이나 상징성이 풍부한 시인답게 종횡무진 현란한 표현을 구사하면 정서의 폭과 깊이를 넘나든다. 빛과 어둠의 대비 정도만 눈에 들어올 뿐. 할 수 없이 해설의 도움을 받고 재독해 보니 대략적이나마 시의 구조 내지 미약하나마 시인의 시적 의도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노발리스의 삶에서 한 여성 조피 폰 퀸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첫사랑이자 약혼녀인 그녀의 때이른 죽음은 어찌보면 노발리스의 요절을 예고한 것이 아닐른지. 그녀의 죽음 당시 그가 받은 정신적 충격의 크기와 깊이에 대한 일화는 이를 알려준다.

 

<밤의 찬가>는 전체 6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4찬가와 제5찬가의 분량이 상대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표제와 같이 을 찬양하고 있다. 낭만파에서 밤은 특별한 지위를 갖는 소재다. 낮의 환함, 명징성, 이성이 전시대의 고전주의와 계몽주의를 지칭한다면, 밤의 어둠과 모호함, 감성은 바로 낭만주의의 정신이다.

 

1찬가는 빛의 찬미로 시작한다. “오직 빛이 있는 곳에 풍만한 세계의 경이로운 영광이 계시된다.” 찬미는 바로 밤으로 향한다. “나는 스스로 언어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성스럽고 신비로운 밤으로 향한다.” 이제 시인은 본격적으로 밤에 대한 찬미를 아끼지 않는다. 그는 빛이 초라하고 어리석다고 하며, 낮과의 작별을 기쁘다고 표현한다.

 

2찬가는 잠을 노래한다. 밤은 잠과 불가분의 관계다.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밤의 사도인 성스러운 잠이 수행하는 역할과 그 의의를.

 

밤의 기쁨, 낙원의 졸음이 엄습하자 시인의 슬픔은 어느덧 사라져버리고 그곳에 기쁨의 눈물만이 흐른다. “그것은 유일한, 첫꿈이었지.” 이렇게 제3찬가는 잠에서 꿈으로 나아간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밤이 끝나고 아침이 되면 시인은 잠에서, 그리고 꿈에서 깨어나게 된다. 애인이 부재한 현실로, 기쁨과 즐거움을 기대할 수 없는 세상으로. 시인은 중얼거린다. “밤의 안식처인 신세계를 쳐다 본 자라면 누구나, 이 현세상에 돌아오지 않으리,” 이렇게 제4찬가는 죽음을 예언한다. 화려한 허상의 빛이 아니라 고귀하고 사랑스런 의미를 부여한그리고 어머니처럼 잉태하고 은혜를 베풀어 주는 밤의 실상으로. 영원한 밤과 어둠은 곧 죽음이 아니겠는가.

시인은 이제

난 자유로운 몸이 되어

사랑하는 이의 품에

안겨 있으리.“

 

시인은 이제

내가 죽음의 싱싱한 흐름을

느끼면

......

그리고 밤엔

성스러운 정열에 묻혀 죽으리.“

 

가장 긴 제5찬가는 역사와 종교와 철학의 혼합체에 가깝다. 에두르지만 명백하게 서양의 희랍 문명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노래한다. 시인은 예수를 통하여 개인의 죽음을 역사적 종교적 차원으로 승화시키려고 하는 듯하다.

이제 우리는 영원히 살고자

그들에게 따라가네.

 

사랑하면서 믿는 자, 이제

어느 무덤 가에서도

고통스럽게 울지는 않으리.“

 

6찬가는 유일하게 소제목이 주어져 있다. <죽음에의 동경>이라는.

밤의 영원함을 찬양하고

잠의 영원함을 찬양하는 시인이 가야할 곳은 이미 정해져 있다. 바로 아버님의 집이다. 불안한 동경과 감미로운 전율을 품고 시인은 고향으로의 여정을 시작하려고 한다.

무엇이 우리의 고향 가는 길을 막을까.

사랑스런 사람들 이미 오래 전에 인식하는데,

그녀의 무덤은 우리 생의 편력이 끝나는 곳,“

 

시의 형식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지만, 이 작품은 언뜻 보아도 자유로운 산문형식임이 두드러진다. 4찬가 후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운문체가 등장할 정도로. 즉 전반부에는 산문이 후반부에는 운문이 우세한 표현형식을 이룬다.

 

밤의 찬가는 자칫 ()의 찬가로 오독될 여지가 농후하다. 시적 내용도 결국 밤을 죽음과 연계시키고 있지 않은가. 이는 건강한 낭만이 아닌 후대의 퇴폐주의 내지 허무주의로 변질될 위험성을 태생적으로 내포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밤의 찬가>와 거의 비슷한 기간에 쓰여진 <푸른 꽃>과는 성향의 차가 크다. 아무래도 율리와 새로 시작한 사랑의 영향이 분명 없지 않을 것이다.

 

백여 면의 얄팍한 시집, 게다가 시의 원문도 수록되어 있어 실질적 분량은 그다지 많지 않다. 덕분에 삼독이 가능했다. 애석하게도 이 책은 절판되었다. 범우사에서 나온 <푸른 꽃> 번역본 에는 소설 외에 시로서 이 <밤의 찬가><성가>도 같이 수록되어 있다. 노발리스의 시 세계를 접하고자 하는 이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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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11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발리스 밤의 찬가를 읽고 싶어 책을 찾는데 정보도 별로 없고 도서도 현재 구매 가능한게 없네요~ㅠ 올리신 댓글이나마 잘 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성근대나무 2024-02-13 15:27   좋아요 0 | URL
http://aladin.kr/p/yPjbA

댓글 감사합니다. 그리고 위 링크의 책에 ‘밤의 찬가‘가 수록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