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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우화전집 - 새롭게 재해석한
이솝 지음, 송경원 옮김 / 하늘연못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유치원, 초등학교 시절 필독 도서 목록에 포함되며, 지금도 성인남녀 누구나 한두 가지 이야기는 기억한다. 그만큼 이솝우화는 우리에겐 친숙하다.
하지만 우화와 동화는 틀리다. 동화는 특별히 어른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아동을 대상으로 교육의 목적을 충족시키기 위한 흥미있는 서사다. 우화는 동(식)물을 빗대어 인간세상을 비유하여 깨우침(교훈)을 주고자 한다. 따라서 여기는 전자와는 달리 독자에게 이단계의 사고를 요구한다. 우화 내용 자체에 대한 이해가 먼저이고, 이어서 이것의 인간사회에 대한 변용과 적용이다. 따라서 우화는 속성상 성인을 대상으로 한다.
이솝우화는 그래서 친숙하면서도 낯선 대상이다. 누구나 알면서도 기실 아무도 윤색되지 않은 참모습은 알지 못하는. 약 500편에 가까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각각의 우화는 매우 짧다. 게다가 건조하다. 여기서는 동화책이나 만화로 윤색된 겉치장이 없다. 날것 그대로의 느낌, 화장하지 않은 맨얼굴. <채근담>의 글귀처럼 꽃 지고 잎 떨어져 겨울바람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앙상한 나무줄기와 가지. 이것이 사물의 근본적 형태이자 본성에 가까움을 상기시킨다.
옛적 추억을 되살리려 이 책을 펼쳐든다면 단언컨대 분명히 실망만 하게 된다. 깡그리 잊어버리고 첫 장부터 전개되는 이야기를 읽어나가다 보면 이천년도 더 옛날의 이솝이 바로 옆에서 살아 숨쉬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솝이 간파한 것처럼 민족과 시대를 건너뛰어 내려오는 인간의 속성은 오늘날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것이 이솝우화가 현대에도 재해석되고 고전으로 대우받는 연유다.
인상에 남는 몇 편을 언급하자면 2편 <구두쇠와 금덩이>, 5편 <바닷가의 나그네들>, 13편 <쇠똥구리와 독수리>, 32편 <노인과 당나귀>, 60편 <두 개의 주머니>, 68편 <헤르메스신과 도끼>, 89편 <원숭이와 두 나그네>, 92편 <살인자와 나일강>, 110편 <황소와 수레>, 141편 <어미개와 강아지>, 186편 <말벌과 나비>, 188편 <소크라테스와 친구>, 205편 <기회>, 276편 <벼룩과 낙타>, 281편 <생쥐와 대장장이>, 437편 <프로메테우스와 두 길> 등이 있다.
그런데 129편 <개구리와 해>, 223편 <당나귀와 귀뚜라미>, 287편 <사자와 농부의 딸>, 335편 <뱀과 게>, 415편 <이솝과 도망친 노예> 등은 그 해석이 나와는 사뭇 달라 이채롭다. 129편은 오히려 미리 조심하자는 취지가 아닐지, 223편은 굶어죽은 당나귀는 순수한 예술혼의 구현으로 각광받아야 하지 않을까. 287편은 어떠한가. 농부의 딸을 사모하여 이빨과 발톱마저 빼버린 사자는 완전한 사랑에의 헌신 그 자체가 오히려 배반을 당하였다. 사랑에 지고지선의 가치를 부여하는 현대의 시각에서 사자는 비극의 주인공 감이다. 디즈니의 <야수와 미녀>를 볼지어다. 또 335편은 타고난 본성 상 불가능한데도 불의한 강요에 의해 최후를 맞이하는 뱀의 슬픈 삶이 안타깝다. 친구의 조언을 귀담아 들어라가 아니라 진정한 이해를 하는 친구를 만나라가 제격이 아닐는지.
마지막으로 415편을 보자. 얼핏 이솝의 조언이 타당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노예는 주인에게 복종하고 순응하여 언젠가 마음씨 좋은 주인이 자유의 몸으로 놓아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봉건주의적 사고방식의 잔재다. 만약 주인이 죽을 때까지 놓아주지 않는다면 그대로 노예로 죽어야 하는가. 독재국가에서 독재자가 언젠가는 개심하겠거니 압제에 순응해야 하는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삼척동자라도 같은 반응을 보이리라. 이것이 우화는 나날이 재해석이 필요하다는 당위성을 입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