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신화와 성서의 무대, 이슬람이 숨쉬는 땅 타산지석 4
이희철 지음 / 리수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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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오래되지는 않는다. 터키가 나를 끌어당기기 시작한 때는. 셀주크 투르크 그리고 오스만 투르크가 일정한 흥미를 주었지만. 더 눈부신 세계사의 다른 구비가 그리고 질곡과 왜곡의 한국사가 보다 절실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광풍이 몰아닥쳤다. 나는 코웃음쳤다. 차라리 기본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고만다. 완역본이 없어서 축약본을 구입해 읽었다. 나나미의 글만 접한 사람보다는 왠지모를 뿌듯함이 으쓱하게 만들었다.

얼마후 심심풀이로 그의 전쟁 삼부작을 보게 되었다. 분명히 주인공은 베네치아(내지 로마문명)라고 누구나 알 수 있다. 그의 의도는 삼부작을 통해서 로마 기독교 문명이 자기 세계를 지키려고 필사적이었으며 드디어 무슬림의 의도를 분쇄했는지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오스만에 더 큰 관심이 생겼다. 그들은 누구인가? 어느날 갑자기 등장해서 천년을 넘긴 동로마를 멸망시키고 서구를 공포에 떨게 했으며 그 자신이 천년 가까이 존속을 유지한 저력을 발휘했던 그들. 하지만 아는 것은 이게 전부였다.

터키가 궁금해졌다. 터카의 어제와 오늘. 때맞추어 여행지로서의 터키도 인기를 끌게 되었다. 역사의 도시 이스탄불, 카파도키아, 그리고 파묵칼레가 낯설지 않게 되었다. <나는 걷는다>를 통해 터키를 횡단하고, 오르한 파묵의 소설을 통해 현대 터키를 간접적이나마 접할 수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목마르다. 백문이불여일견, 만고의 진리다. 그래서 이 책을 집어들었다. 터키에 대한 개설서. 월드컵을 계기로 나온 책. 하지만 어떠랴. 무엇이든 계기가 필요한 법.

터키가 자리한 땅의 역사가 무척 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서에도 등장하는 그곳. 고대 히타이트 제국의 유적지로부터 트로이의 무대.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현장이 이 땅이라는 사실도 재발견하였다. 터키의 역사유적은 비잔티움과 오스만의 이스탄불에 그치는 게 아니었다.

케말 파샤를 떠올린다. 훗날 아타튀르크로 추앙받는 그는 기력을 쇠한 오스만의 사체를 뜯어먹으려는 열강의 탐욕을 뿌리치고 한줌의 터키 자존심을 세워준 인물이다. 그 덕분에 터키는 중세에서 갑자기 현대국가로 시간 이동을 할 수 있었다. 물론 갑작스러운 변화에 국민도 정치도 군대도 완전히 적응하지는 못하였지만. 우리의 건국자들를 대비시킨다. 미군정과 이승만은 그렇다치고 박정희는 확실히 우리나라의 아타튀르크가 될 수도 있었다. 조그만 미련을 덜 가졌더라면 비명횡사도 존경도 모두 잃지는 않았을터.

10.26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국민학교 저학년. 방과후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눈물을 흘리고 계신다. 엄마가 뭐라고 하는데 죽었다라는 말 외에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사건의 파장이 우리 역사에 이리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울 줄은 몰랐다.

월드컵을 계기로 한층 가까워진 터키. 한국전쟁 때 터키가 16개 참전국 중의 하나이며 수많은 전사자를 남긴 사실을 이 책에서 다시 보게 된다. 참전의 동기야 다 다르겠지만 어찌되었든 그들의 피가 우리 산하에 뿌려진 것은 사실이니 그 의의는 폄하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아시아의 동쪽 끝, 대한민국과 서쪽 끝, 터키. 재밌는 지정학적 동질성을 지녔다. 먼 역사의 뿌리는 아마도 유사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동으로 달렸고 그들은 줄곧 서로 전진하였다. 이제 그들과 우리 모두 땅끝에 도달해 있다. 과거의 아픔이 땅끝의 체험이라면 새로운 양국의 미래는 어떻게 변화해 나갈지 궁금하다. 그래서 코렐리라면 카르데수나 칸카르데쉬로 여기는 그들과 깊은 인간적 유대를 맺어보고 싶다는 것은 단순한 백일몽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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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9-02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8.8.11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