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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ㅣ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1
J.M 바스콘셀로스 지음, 박동원 옮김 / 동녘 / 2003년 9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브라질 출신 작가 바스콘셀로스는 자신의 불운한 어린 시절을 바탕으로 자전적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 그 소설이 바로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예요. 오늘날까지도 이 소설이 우리에게 깊은 감명을 주는 이유는 아마 어린 소년이 감당해야 했던 삶의 무게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늘 사랑에 배고파 했고 외로웠던 소년 더불어 소년의 높은 지적 능력은 또래보다는 어른을 친구로 삼는 방편이 됩니다.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었던 소년... 소년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나 속이 깊습니다. 한창 부모에게 떼쓰고 어리광 부릴 어린아이임에는 불구하고 말이죠.
부모의 가난, 아버지의 실직,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 돌봐야 할 자식들... 그들은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살아갑니다. 크리스마스면 하늘의 아기 천사가 착한 일을 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준다고 철석같이 믿은 제제와 루이스... 하지만 그들에게만 하느님의 은총은 늘 비껴가는 듯합니다. 소년은 자신이 악마의 자식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은혜를 받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아니 하느님의 아기 천사는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소년의 깊은 절망감이 소설을 다 읽은 후에도 전해져 오는 것 같습니다.
책 첫 페이지를 보면 제제가 가장 믿고 의지했던 글로리아 누나는 24살에, 막냇동생 루이스는 20살에 스스로 삶을 포기합니다. 이처럼 인간이 한 인격체로 성장해 가는데 있어 환경이 얼마나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볼 수 있습니다.
빈부격차가 심했던 브라질의 한 조그만 마을 이곳에서 어린 제제는 조숙한 소년으로 성장합니다. 말썽꾸러기에 장난이 심하지만 이는 아무도 소년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제제는 이런 자신의 모습이 안타까운지 막냇동생 루이스를 잘 챙깁니다. 고작 6살밖에 안 된 어린아이인데 말이죠. 외로운 소년은 사물들에 이름을 붙이고 그 사물들과 놀이도 하고 마음속 이야기도 나눕니다.
'밍기뉴' 새집으로 이사 오면서 마을 뒤뜰에 볼품없이 서 있던 라임오렌지나무 그 나무의 이름입니다. 제제는 속상하거나 신나는 일이 있거나 하면 언제나 '밍기뉴'에게 제 속마음을 털어놓습니다. 이 부분이 참 마음이 아픈 부분이었어요. 가족 누구도 소년의 마음을 받아주는 이는 없었습니다. 그나마 글로리아 누나가 있었지만, 삶이 주는 무게 때문에 오롯이 제제에게 집중하기엔 그녀 역시 어린 소녀였습니다.
제제의 욕설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일까요? 가족들은 제제가 왜 그런 욕을 하는지 왜 말썽을 피우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잘못을 오직 아이 탓만 하며 모진 매질을 할 뿐입니다. 그런 소년의 주변에 따뜻한 어른들이 한 둘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제제의 가장 단짝 친구이자 멘토였던 포르투갈인 마누엘 발라다리스... 몸과 마음에 상처로만 채워진 제제의 삶에 한줄기 빛처럼 다가온 인물입니다.
모든 성장하는 것엔 고통이 수반된다.
소설은 마치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것처럼 어린 제제와 소년의 유일한 친구이자 마음의 안식처였던 발라다리스에게 가혹한 운명을 심어줍니다. 두 사람이 함께 영화 보기로 한 날 발라다리스는 기차역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어린 제제는 이 사고로 엄청난 충격을 받습니다. 소설에서는 사건 이후에 대한 제제의 독백이 많지 않습니다. 다만 어린 제제가 얼마나 충격을 받고 상심이 컸을지 병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여주죠. 그리고 그 함축적 표현들 때문에 제제의 아픔과 슬픔이 더 짙게 베어 옵니다. 이 소설은 성장 소설입니다. 시간은 늘 앞으로 나아갈 뿐 뒤로 돌아보지 않죠. 볼품없었던 밍기뉴가 꽃을 피운 날 제제는 '현재의 밍기뉴'가 '이전의 밍기뉴'가 될 수 없음을 직감합니다.
아빠가 나이가 많아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 저도 알아요. 얼마나 속상해하는지도 알고요. 엄마는 새벽에 나가요. 살림에 보태려고 영국 사람이 하는 방직공장에서 일을 해요. 엄마는 압박 붕대를 매고 다녀요. 실타래 상자를 옮기다가 허리를 삐끗했거든요. 랄라 누나는 공부도 많이 했는데 지금은 공장에 나가요. 이런 일들은 모두 가슴 아픈 일이에요. 230쪽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눈물이 많이 흘렀던 부분은 고작 다섯 혹은 여섯 살밖에 안 된 소년이 어른들의 고통을 이해하는 속 깊은 마음이었습니다. 소년은 끊임없이 부모의 사랑을 갈망했고, 왜 부모가 자신을 매질하는지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식구들은 (글로리아 누나와 또또까 형이 있었지만) 온전히 소년의 행동을 이해해주지 않죠.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의 보호를 받고 성장해야 합니다. 소설에서 보여준 제제의 가족문제가 단순히 한 가정의 문제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요? 아버지의 실직과 가난 제제의 가정 환경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던 소설이었습니다.
이 도서는 동녘 출판사에서 지원받은 도서로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