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줍잖은 말이지만 지식인이란 '내가 지행하는 바'와 '실제의 나' 사이에 숙명적인 거리를 갖고 사는 '삶의 코미디언'이다. 지식인이 가질 수 있는 최선의 삶이란 그 숙명적인 거리를 어떻게든 줄이려 발악하는 것일 뿐. 그러나 나는 그런 삶을 선택했고 그런 삶의 발악이 더러는(거의 가능하지 않지만) 세상에 진짜 유익을 주는 일도 있다는 희망을 품은 채, 내 삶을 전진한다."

"사람은 누구나 좌파로 살거나 우파로 살 자유가 있지만 중요한 건 그런 선택을 일생에 걸쳐 일상 속에서 지키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한정하는 일인 것 같다. 좌파로 사는 일은 우파로 사는 일에 비할 수 없이 어려우며, 어느 시대나 좌파로 살 수 있는 인간적 소양을 가진 사람은 아주 적다. 우파는 자신의 양심을 건사하는 일만으로도 건전할 수 있지만, 좌파는 다른 이의 양심까지 지켜내야 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글은 김규항씨의 <B급 좌파>의 도입부분에 나와있는 말이다. 나는 이 글을 좋아한다. 그것은 나의 생각, 내가 꿈꾸는 삶과 어느 정도 비슷한 길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가족, 친구 등 주변인을 넘어 모든 사람들이 바른 길을 걷기를 바란다. 그러나 강요가 아닌 그들을 일깨움으로서 그것을 행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는 좌파가 되어야 한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 내가 꿈꾸는 것들이 좌파의 사상과 부합하는 지는 모르나 적어도 좌파가 걷고자 하는 길과는 일치한다. 내가 좌파건 우파건 간에, 내가 진보적이건 보수적이건 간에, 그 중간 어디쯤에 속해있을지, 그것들을 초월해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양심 또한 지켜주고 싶다.

볼테르의 '관용론'에 있는 문장이 떠오른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의 말 할 권리를 위해서는 함께 싸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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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을 앞두고 있는 지금 난 내 미래의 직업을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난 어떤 하나의 직업에 의해 규정되고 싶지 않다. 물론 내가 그동안 생각해왔던 직업이 여러가지 있으나 그중 어느 한가지만 하겠다고 생각한 적은 나이를 먹은 뒤로는 없는 듯 하다. 물론 지금의 이 시대가 평생직업을 보장하지 않는 시대이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난 한가지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머리를 정리할 겸해서 나의 직업 선택 변천사를 작성해본다. 이 글을 작성하면서 어쩌면 난 내가 원하는 것을 찾게 될런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흔히 어린 아이들에게 "니 꿈이 뭐니?"라고 묻는 시기는 아마도 초등학교 입학 후부터가 아닌가 싶다. 그때 아이들은 의사요, 경찰이요, 우체부 아저씨요, 빵집주인이요, 과학자요 라고 말하면서 엄마, 아빠가 주입시켜놓은 그들의 꿈이 아이들을 통해 투영된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난 초등학교 시절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유전공학자>

 나의 기억의 저장고에 기록된 최초의 나의 꿈은 유전공학자였다. 중학교 2학년과 3학년때까지 '유전공학자'라는 나의 꿈은 유효했다. 왜 내가 유전공학자를 꿈꿨는지는 나도 의문이다. 추측컨대 당시 내가 생물 과목을 좋아했고, 이를 토대로 유전공학자라는 꿈을 만들어낸 것 같다. 기억의 한 구석에 유전공학자 이외에도 분자생물학자 라는 지금도 뭘하는 학문인지도 모르는 그 직업을 함께 말한 것이 떠오른다. 사람들이 자신의 학창시절에 자신의 직업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는 '어떤 과목을 좋아하느냐'이다. 물리를 좋아하면 물리학자요, 국어를 좋아하면 소설가, 시인, 국문학자요, 음악을 좋아하면 성악가 등 그 시기에는 어떤 직업이 뭘 하는 것인지에 대한 지식이 전뭄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과목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 역시 생물이란 과목을 통해 유전공학자와 분자생물학자를 꿈꿨던 것이다.

<건축가>

 이후 고등학교 입학. 나는 수학을 참 잘했다. 대개 그렇듯 수학을 잘하는 사람은 이과요, 못하는 사람은 문과라. 나는 수학을 잘 했기에 2학년 진학시 이과를 선택했다.  고등학교 2학년. 물리란 과목을 만났다. 첫 시험. 공부도 엄청나게 했고, 시험문제도 내 손으로 일일히 다 풀었건만 시험점수는 40점. 내 생애에 80점 밑의 점수는 처음 받아봤다. 너무나 충격이 컸다. 이후 물리는 포기했다. 그러나 여전히 수학에서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계기였는지 이때 '유전공학자'는 '건축가'로 변해있었다. 김석철씨가 쓴 건축에 관한 어떤 책을 사보기도 했다. 당시에 나는 연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 인가 하는 이름이 긴 학과 진학을 꿈꾸고 있었다.

<철학자>

 물리과목이 나를 실망시켰던 반면, 내 관심을 사로잡는 다른 과목이 있었으니 윤리라. 도덕이나 윤리과목은 사실 배우지 않더라도 책 한번 읽으면 다 알 수 있지만, 유독 '철학'부분만은 그렇지 않았다. 사실 윤리책의 철학이 '철학'이겠느냐만 당시에 윤리의 '철학'부분은 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아 이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엇 이건 뭘 뜻하는 것일까?' 등의 의문을 가지고서 윤리책에서 충족되지 못한 나의 호기심은 철학책을  사보는 것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사실 철학이 뭔지, 무슨책을 봐야하는지 전혀 몰랐다. 그냥 서점에 가서 소크라테스니 플라톤이니, 데카르트니 하는 철학자들의 이름이 제목에 들어간 책이면 구입해서 보곤 했다. 그때 구입한 책이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철학에세이' '소크라테스에서 사르트르까지' 등 이었다. 물론 봐도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었고, 그저 책을 구입해서 보려고 시도한 것만으로 나의 호기심은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서서히 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철학자가 되고 싶었다. 이런 막연한 관심에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난 이과에서 문과로 과감히 분야를 옮겼다.

<공인회계사>

 수능시험이 끝나고, 나의 점수가 바닥을 쳤을 때 난 철학과를 고집하며 부모님께 실망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점수가 낮은 것도 미안한데 과까지 이상한 과(?)로 간다고 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할 수 없이 난 누구의 강요도 아닌 나의 자발적 선택으로 경제무역학부를 들어갔다. 그리고 나의 꿈은 '공인회계사'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서점에서 공인회계사가 되는 법에 관한 책을 구입했던 기억이 난다.(그러나 읽지는 않았다.)

<다시 철학자로>

 결국 경제학을 한 지 1년. 그 1년은 그다지 학업에 열중했다고 볼 수는 없었다. 수업시간 출석체크만 해놓고 친구와 함께 동아리 방에 가서 악기를 연주하며 놀았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채팅에 맛들려 소위 말하는 '번개팅'이란 것을 하기도 했다. 수업에 출석했다 하더라도 머리 속으로는 악보의 콩나물 대가리가 왔다갔다 하고 있었으니 공부를 했다고 볼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점은 3.0이 겨우 넘었고, 들리는 소식에 학점 3.0 이상이면 과를 옮기는 전과가 가능하다고 들었다. 그래서 난 하고싶었던 철학으로 과를 옮겼다. 우리학교에 철학과가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물론 부모님의 걱정과 반대가 있었지만, 난 강행했다. 이때부터 나의 꿈은 다시 '철학자'가 되었다.

<음악인>

 대학입학후부터 계속하던 드럼연주인 생활이 어느정도 무르익고 언더그라운드 클럽씬까지 나가며 정기적으로 공연을 하고 활동이 잦아지며 난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음악인'. 드럼연주에 머물지 않고 난 본격적으로 음악을 하고 싶었다. 밴드를 계속하면서 다른 악기도 배우고 프로듀싱이나 레코딩 등 음악전반에 관한 공부를 하고 싶었다. 이런 내 생각을 부모님께 정식으로 밝혔을때 완강한 반대가 있었다. 성공하더라도 먹고 살기 힘들다는 것. 너무나 완강했다. 그래 내가 실력도 안되면서 너무 큰 꿈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제 2의 직업으로 혹은 지나친 취미생활 정도로 선을 접었다. 그리고 난 다시 철학으로 돌아왔다.

<또다시 철학자로, 기자로>

 음악인이라는 직함을 취미로 접고서 난 철학으로 먹고 살리라, 철학을 계속 공부하리라 마음 먹었다. 그러던 중 홈페이지에 글쓰는 데에 재미를 붙이고, 여러 모임에서 내 글발이 괜찮다는 소리를 듣고서 한국일보 독자투고, 동아일보, 중앙일보 인터넷기자, 한겨레신문 하니리포터로 활동하며 글쓰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글발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의 꿈은 '기자'가 되었다. 그래서 기자가 되려면 어떤 능력을 갖추어야하는지 찾아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글도 눈여겨 보게 되었다.

<철학자>

 그러나  기자라는 직업이 남의 이야기만 쓰지 자신의 이야기는 쓰지 않는다는 점을 포착하게 되었고, 비록 글쓰는 직업이지만 나의 이야기를 쓰는 데에 주된 관심이 있었던 나는 이내 기자라는 직업을 다시 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하려면 공부를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또 역시 철학자로 돌아왔다.

<중고등학교 교사>

 한편 학과 공부를 하며 교직이수를 해서 고등학교로 한달간 교생실습을 나갔다. 그러나 내 적성은 교사에 맞지 않는 듯 했다. 앞에 나가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 나에겐 너무 힘든 일이었다. 유치원시절엔 나의 내성적인 성격을 고친다고 웅변학원엘 다니며 웅변대회도 나갔건만 난 단상에 나가기도 전에 긴장해서 구토를 하고 말았다. 지금까지도 앞에 나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내겐 힘들다. 그러나 교사가 안정적인 직업이고 방학이라는 시간을 이용해 연주인 생활을 할 수도 있겠다 싶어 마음이 끌리기도 했다. 나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결국 난 교사란 직업을 직업리스트 목록에 올리게 된다.

<PD, 잡지기자>

 이제 가장 최근에 염두에 두었던 PD라는 직업이다. 언론고시라고 하는 행정고시, 사법고시와도 같이 붙기 힘들다는 관문을 거쳐야 하는 직업이다. 학벌도 볼 것이고, 각종 외국어 능력과 그 외에도 다양한 능력들을 테스트하겠지. 하지만 이 꿈은 현재 나를 가장 사로잡고 있는 꿈이다. 내가 하고픈 모든 것들을 PD라는 직업을 통해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쓰는 것을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고, 뭔가를 창조하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의 성향들이 합쳐져 PD로 종합된다. 또한 잡지기자는 신문기자와 같이 권위주의적인 느낌보다는 친근하고 깊이있는 느낌이 강하다. 또한 주간지, 월간지의 경우 매일같이 여기저기 치이는 신문사보다는 한결 일하기가 수월할터. 특정 주제를 가지고 심도 있게 사색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진다. 그래서 신문기자보다는 잡지기자가 낫다.


 그외에 잠시나마 생각했던 직업으로는 출판인, 성우, 공연예술기획자 등이 있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다른 직업들보다는 순위에서 밀려있기에 그다지 큰 고려사항이 되고 있지는 않다.

 

 

p.s 지금은 다시 교사로 마음을 돌린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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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5-08-24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주간지와 월간지 기자가 특정 주제를 가지고 심도 있게 사색할 수 있는 기회가.. 과연.. ^^;; (그냥 지나가다 한마디!) 였습니다.

이잘코군 2005-08-24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지금은 겉으로나마 보고 있는 알라딘의 몇몇 분들로 인해 그런 생각 버렸습니다. 역시 꿈이었나봅니다. ㅋㅋ

이리스 2005-08-24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또, 뭐든지 그 남의 떡이 커보이는 그런게 아닐까요? ^^ 뭔들 안그렇겠습니까.
쿨럭~

2005-08-24 2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21 1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21 1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훌륭한 교사는 이렇게 가르친다
제임스 M. 배너 주니어.해럴드 C. 캐넌 지음, 이창신 옮김 / 풀빛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뒤 어떻게 하면 좋은 교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하게 된다. 이 책은 일간신문 리뷰를 보다가 발견했다. 원제목은 'The Elements of Teaching'으로 '가르침의 기초'이지만, 아마도 판매의 효율성을 위해 번역본에서 제목을 조금 변형한 듯 하다. 결국 그 상술은 내게도 통했다. ^^;

이 책의 저자인 제임스와 헤럴드는 모두 가르침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다. 제임스는 프린스턴대에서 역사를 가르쳤고, 헤럴드는 맨해튼빌대학에서 고전학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 외에도 이들의 이력이 상당한 것으로봐 나이가 지긋이 든 교수일 듯 하고, 수십년의 교직생활을 통해 느낀 점들은 고스란히 이 책의 내용으로 담겨졌다. 하지만 이 책은 대학교수의 입장에서뿐 아니라 중고등학교 선생님의 경험담도 담고 있다. 실제 경험담을 통해 훌륭한 교사의 자질을 설파하고 있기에 교사가 되려는 이들에게, 혹은 이미 교직에 몸담고 있지만 아직 신입티를 벗지 못한 이들에게는 이 책은 도우미 역할을 해주고 있다.

교사를 꿈꾸지만 아직 교사의 경험도, 가르침의 경험조차도 없는 내게 교단에 서서 한 시간짜리 수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다는 것은 두렵다. 그다지 활달한 성격도 아닌 내가 아이들과 좋은 유대관계를 맺어 잘해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실행에 앞서 잔뜩 겁부터 먹고 있는 내게 이 책은 말한다. 다양한 성격을 지닌 교사가 있고 그들 각각은 각자의 성격에 따라 훌륭한 교사가 될 수 있다. 가르침에 대한 열정과 의욕, 학구열의 문제이지 성격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훌륭한 교사가 되기 참 어렵다는 느낌만 든다. 훌륭한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 책이 요구하고 있는 것 중 하나라도 따라갈 수 있어도 내가 볼 땐 훌륭한 교사인데 그 모든 것을 다 갖추라 하니 앞길이 멀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담고 있는 훌륭한 교사의 요인을 살펴보며 마무리한다.

학습 : 맡은 과목에 능통한 교사는 학습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권위 : 교사의 권위는 정확한 자기인식과 자신감에서 비롯된다
도덕 : 교사의 도덕적 의무는 학생의 필요와 이익을 우선시하는 것이다
질서 : 교사는 수업의 체계와 분위기에 질서를 부여할 줄 알아야 한다
상상 : 상상력이 풍부한 교사는 학습 효과를 높일 자신만의 방법을 찾는다
연민 : 연민을 가진 교사는 학생의 입장에 서서 학생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인내 : 교사의 인내심은 학생의 한계를 인정하고, 약점을 헤아릴 줄 아는 마음이다
인격 : 교사는 자신의 성격과 경험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인격을 계발해야 한다
즐거움 : 교사의 기쁨은 학생이 교사에게서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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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02 2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 뒤에 숨은 글 - 스스로를 향한 단상
김병익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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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익 씨가 에세이를 냈다. 그간 알게 모르게 낸 에세이들이 많았지만, 이번 에세이와는 성격이 좀 달랐다. '글 뒤에 숨은 글'이란 그의 친한 친구이자 시인인 황동규씨의 시 구절 '산 뒤에 숨은 산'을 패러디한 것으로, 그의 자서전적 에세이다.

한평생 '글'과 함께 했던 사람으로써 아직도 왕성한 지적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어서 삶을 마무리짓는 자서전이 벌써 출간되었다는 점이 조금 불만스럽기도 하지만, 김주연(숙명여대 교수, 문학평론가)의 지적처럼 "세밀한 기록을 중시하는 그의 저널리즘적 감각, 그리고 실증 또한 비평의 기본자료가 되어야한다는 그의 학구적 태도와 관련해서 존중"해주자.

문학을 하고 싶었으나 문학에 소질이 없음을 깨닫고 포기하고, 하지만 글은 포기 못한다는 심정으로 비평에 참여하면서 그는 한국의 문화사-지성사에 길이 남을 비평가가 되었다. 이는 문학에 대한, 글에 대한 그의 끈질긴 노력이 있지 않고서는 오를 수 없는 자리이리라.

그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경계에서 늘 존재해왔다. 4.19 가 일어난 시기에 친구들이 시위에 뛰어드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고 밝히고 있는 그는, 그들에게 부끄럽고, 지금도 미안함을 가지고 있지만, 시위에 참여하는 것 못지 않게 자신도 현실에 참여하며 글로써 세상과 치열하게 싸워왔음을 밝히고 있다. 어떤 이들은 그를 가르켜 이렇게 말 할지도 모르겠다. 생각은 하돼,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 하지만 난 그를 감싸주고 싶다. 그는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이 아니었다. 몸으로 뛰어드는 것만이 행동이 아니다. 몸으로 뛰어드는 것은 단지 나 자신의 하나의 몸만을 거기에 추가하는 것뿐이지만 글로써 세상과 싸우는 것은 나뿐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직접적인 행동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그 나름의 방법으로 현실에 참여해왔던 것이다. 궁색한 변명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나는 그의 방법론에 동의한다. 나 역시 현실참여의 방법으로써 그러한 형태를 취하고 있으니 말이다.

'글 뒤에 숨은 글'에는 그의 살아온 날들뿐 아니라 사회에 대한, 현실에 대한 그의 생각이 담겨있고, 애정이 담겨있다. 그의 자서전을 통해서 그의 인생을 엿봄과 동시에 바로 이런 생각들에 중점을 둬야할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자서전은 이르되, 헛되지는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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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이면 터득하는 글쓰기 기술
박승억 지음 / 소피아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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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대략 난 이런 종류의 책들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글쓰기에 관한 괜찮은 책들이 없어 이거라도 샀다. 그런데 상술이 다분히 느껴지는 책 제목과는 달리 내용은 그럭저럭 괜찮다 싶다.

이 책은 청소년과 일반인을 상대로 논리적인 글쓰기의 기본을 가르치고 있다. 고등학생들 논술준비하는데 기본이 될만한 책인듯 싶다. 어쩌면 그래서 이 책이 대형서점에 '청소년 추천도서'쪽에 분류되어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인문'분야에서 아무리 찾아봤지만 결국 나오지 않아, 매점 아가씨에게 물어봐서 찾았다. 청소년이 아닌 나는 당연히 청소년 추천도서에는 눈길을 돌리지 않았지. 뭐 거기에는 읽을 만한 책이 없다 라는 식의 생각이 아니라 애도 아니고 말이지 라는 식의 나름대로 머리가 좀 컸다 라는 자아의식때문...

각설하고, 이 책은 현상학을 전공한 철학자가 쓴 책이기에 믿을 만하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논술은 철학전공자가 가르쳐야지, 국어 전공자가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국어전공자는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등이 전공이지, 논리적인 글쓰기가 전공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분량상 그다지 많은 예문을 들고 있지는 않지만, 이론적인 면에서는 논술쓰기에 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논술을 어떻게 써야할지 막막한 이들에게 그 처음부터 끝까지 체계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기본형식과 분량은 어떻고, 주제에 대한 구상, 개요쓰기, 문장쓰기, 풀어쓰기, 그리고 연결사 활용과 사례제시, 대안제시 등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책의 내용도 쉬워 잡지 읽듯이 한번 쭉 읽어내려가면 좋을 듯 싶다. 그러나 한번만 읽지 말고 수차례 가볍게 읽어나가면 글쓰기에 대한 그림이 그려지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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