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뒤에 숨은 글 - 스스로를 향한 단상
김병익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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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익 씨가 에세이를 냈다. 그간 알게 모르게 낸 에세이들이 많았지만, 이번 에세이와는 성격이 좀 달랐다. '글 뒤에 숨은 글'이란 그의 친한 친구이자 시인인 황동규씨의 시 구절 '산 뒤에 숨은 산'을 패러디한 것으로, 그의 자서전적 에세이다.

한평생 '글'과 함께 했던 사람으로써 아직도 왕성한 지적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어서 삶을 마무리짓는 자서전이 벌써 출간되었다는 점이 조금 불만스럽기도 하지만, 김주연(숙명여대 교수, 문학평론가)의 지적처럼 "세밀한 기록을 중시하는 그의 저널리즘적 감각, 그리고 실증 또한 비평의 기본자료가 되어야한다는 그의 학구적 태도와 관련해서 존중"해주자.

문학을 하고 싶었으나 문학에 소질이 없음을 깨닫고 포기하고, 하지만 글은 포기 못한다는 심정으로 비평에 참여하면서 그는 한국의 문화사-지성사에 길이 남을 비평가가 되었다. 이는 문학에 대한, 글에 대한 그의 끈질긴 노력이 있지 않고서는 오를 수 없는 자리이리라.

그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경계에서 늘 존재해왔다. 4.19 가 일어난 시기에 친구들이 시위에 뛰어드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고 밝히고 있는 그는, 그들에게 부끄럽고, 지금도 미안함을 가지고 있지만, 시위에 참여하는 것 못지 않게 자신도 현실에 참여하며 글로써 세상과 치열하게 싸워왔음을 밝히고 있다. 어떤 이들은 그를 가르켜 이렇게 말 할지도 모르겠다. 생각은 하돼,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 하지만 난 그를 감싸주고 싶다. 그는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이 아니었다. 몸으로 뛰어드는 것만이 행동이 아니다. 몸으로 뛰어드는 것은 단지 나 자신의 하나의 몸만을 거기에 추가하는 것뿐이지만 글로써 세상과 싸우는 것은 나뿐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직접적인 행동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그 나름의 방법으로 현실에 참여해왔던 것이다. 궁색한 변명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나는 그의 방법론에 동의한다. 나 역시 현실참여의 방법으로써 그러한 형태를 취하고 있으니 말이다.

'글 뒤에 숨은 글'에는 그의 살아온 날들뿐 아니라 사회에 대한, 현실에 대한 그의 생각이 담겨있고, 애정이 담겨있다. 그의 자서전을 통해서 그의 인생을 엿봄과 동시에 바로 이런 생각들에 중점을 둬야할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자서전은 이르되, 헛되지는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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