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 - 자유교육의 선구자 프란시스코 페레 평전 프로그래시브 에듀케이션 클래식 2
박홍규 지음 / 우물이있는집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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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는 자유교육의 선구자라고 불리우는 프란시스코 페레에 관한 평전이다. 먼저 책과 그에 관해 언급하기 전에 개인적으로 '박홍규'라는 인물에 대해 먼저 말하고 싶다.

영남대 법학과 교수인 박홍규는 우리사회의 주류와는 거리가 먼 지방 사립대인 영남대를 나온데다 그곳에서 석사까지 마치고, 일본으로 가서 법학 박사를 얻었다. 비록 이후에 하버드나 노팅엄,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연구교수를 했다고는 하지만, 우리사회의 주류가 학사학위를 받아내는 '대학'에서 이미 결정된다는 점에서 그는 주류와는 멀다.

내가 그를 주목하게 된 것은 그의 이러한 경력이 아니었다. 그는 법학자이면서 인문, 사회, 예술분야에 걸쳐서도 다방면으로 발을 깊숙히 들여놓고 있으며 책을 굉장히 많이 내는 사람 중 한명이다. 법과 관련 없는 분야에서만 <윌리엄 모리스의 생애와 사상>, <내 친구 빈센트>, <오노레 도미에>, <조지 오웰> 등을 냈고, 번역서로도 <인권론>, <감시와 처벌>, <오리엔탈리즘>, <현대사상과 인권>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저 다방면으로 관심을 갖는 것조차도 쉬운 일은 아닐진대 관심을 넘어 책을 낼 정도로 여러분야에 해박하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그는 최근 위에 언급한 책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예술가, 사상가, 작가들의 평전을 내는데에 취미를 붙인 듯 하다.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 또한 프란시스코 페레라는 교육자의 생애를 담아낸 평전이다.

사상가, 철학자, 지식인에 주된 관심을 갖고 있는 나는 사실 교육자인 페레는 알지 못했다. 그가 교육자 중 얼마나 영향력있고 유명한 인물인지 이 책을 읽은 뒤에도 아직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굉장히 진보적이고 실험적이며 자유로운 사람이었던 것만은 알 것 같다. 그가 살았던 시대가 1800년대에서 1900년대로 넘어가는 시점이라는 점에서 오늘날 이제와서야 간디학교니 하는 이름으로 자유학교가 세워진 이 땅에서 그의 실험은 100년 이상 앞선 것이었다.

그는 자유학교의 설립취지를 "소년 소녀들이 잘 배우고, 진실하며, 정의롭고, 편견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고 말하며, 그 목적을 위해 "낡은 교조적 가르침을 자연과학의 합리적 방법으로 대체하고", "아동의 자연적 능력을 자극하고, 발달시키고, 지도하여 가치를 지닌 쓸모 있는 사회구성원이 되게 할 뿐만 아니라, 전체 공동체의 발전에 헌신"하게 했다.

그의 모던스쿨은 1901년에 문을 열었다. 그는 학교운영에 있어 기존의 교재를 버리고 새로 교제를 제작했으며, 폭력적이고 부도덕적인 반종교적인 내용은 담지 않았다. 그는 또한 학교내에서의 교육에서 그치지 않고 공장과 작업장, 실험실 등의 현장교육도 병행했다. 또한 이례적으로 남녀공학을 실시하였고, 남녀의 평등성을 강조하곤 했다. 또한 당시의 계급적 차별을 무시하고 계급간의 평등성 아래서 교육을 실시하기도 했으며, 상벌과 시험은 교사와 부모들의 이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있는 것이라하며 이를 부정하고, 상벌, 시험을 폐지했다.

이 책을 읽으며 그의 모던스쿨의 정신을 알아가면서 때로는 그의 생각이 오늘날에 와서도 너무나 급진적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시 그가 아나키스트라는 이유로 민중을 선동하고 아나키스트들의 우두머리 행세를 하며 악의 기운을 퍼뜨렸다는 죄목으로 사형을 당한 것은 그가 너무나 진보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를 보면 난 소크라테스를 떠올린다. 소크라테스는 그리스 아테네의 청년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무지를 자각하게 해주었는데 이것이 신과 국가를 부정하고 청년들에게 해가 된다는 이유로 사형을 당했다. 페레의 죽음과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너무나도 비슷하다.

다른 것은 다 제치고라도 페레의 상벌제와 시험 폐지에 관한 주장은 오늘날 누군가가 다시 그런 주장을 펼친다면 여기저기 욕을 먹으며 매장당할 것이 뻔해보인다. 오늘날의 교육학 책에서조차 상벌과 시험을 적절히 활용하라고 하는데 페레는 그것의 폐지를 주장했으니 말이다. 상벌과 시험 폐지는 학생들에게는 환영받을 일일지 모르지만 현실에서는 내게도 너무나 이상주의적인 주장같이 보인다. 그러나 현실을 떠난 그의 이상주의는 옳다. 상벌제와 시험이 어른들의 이기심을 만족시키고 서열을 나누기 위한 제도임은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나는 페레를 통해 교육자로서의 애정과 관심, 열정을 느낀다. 후에 내가 그의 생각에 따라 현실교단에서 그것의 일부라도 실천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난 노력하겠다 라는 답변으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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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후사 2004-07-25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리뷰가 올라왔네요. ^^
박홍규 선생 글은 참 좋죠. 요 한동안은 인물평전에 힘을 쏟으시는 것 같던데...
혹 『에드워드 사이드 읽기』라는 책은 읽어보셨나요? 이 책의 보론에서 박 선생이 조동일 선생을 비판하는데요. 탁석산 씨와는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더군요. 한 번 읽어보시는 것도 괜찮을 듯 싶네요.


이잘코군 2004-07-26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게을러서 계속 집구석에서 영화만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평은 자주 올라오죠? 책도 많이 봐야하는데 요새 집중이 안되네요. 아직 <에드워드 사이드 읽기>는 보지 못했어요. 봐야지 봐야지 하면서 다른 책들에 또 관심이 가다 보니까 지나치게 되더군요. 박홍규 선생님은 참 성공하기 어려운 비주류(지역면에서, 학부대학면에서)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위치에 오르게 된 것이 대단해보입니다. 조동일을 비판했다니 관심이 가는걸요. ^^; 조만간 찾아 읽겠습니다.

노부후사 2004-07-26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홍규 선생이 지역적으로 비주류라는 말씀은 좀 동의하기 어렵네요. 한국의 지역주의 역학구도로 살필 때, 영남은 전통적으로 패권을 유지해온 지역입니다. 결코 비주류 지역은 아니지요. 따라서 적어도 영남 태생이라는 점에서 박 선생은 어느정도 이점을 선점하고 있는 셈입니다. 뭐... 아나키스트인 박 선생이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지고 계실리 만무하지만요.

이잘코군 2004-07-27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핫..저는 '대학'을 기준으로 봤을 때 말씀드린 거랍니다. ^^; 서울소재 일류대학이 아닌 지방대 사립대학을 나오신 분으로서는 철저하게 처음부터 소외됐다고 봐야하니까요. 대부분의 교수나 지식인층을 서울소재의 소위 말하는 일류대학들이 좌지우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영남대 출신이 거기에 한몫하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사실이지요. 역사적 지역구도면에서는 님의 의견에 동감이니다.

marine 2004-11-15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대 아니면 비주류로 봐야 맞지 않을까요? 우리나라의 서울대 지상주의는 워낙 심각해서리... 그 역시 서울대 지상주의에 굉장히 반감을 품고 있는 것 같던데...어쨌든 저도 박홍규를 아주 좋아합니다 비주류가 가야 할 길을 제대로 아는 것 같아요 정치권 대신 인문 교양 쪽으로 나가기^^ 그는 아주 독특한 글쓰기를 하고 있죠 "박홍규의 에드워드 사이드 읽기" 를 보면 교수들더러 정치권에 기웃거릴 시간에 번역이나 제대로 하라고 쏘아 붙이죠 우리나라 교수들이 이런 가벼운 교양서들을 많이 내면 좋겠어요 읽기도 편하고 어느 정도 수준도 있고^^ 그런데 박홍규의 주장에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 편입니다 읽어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까뮈를 위한 변명" 에서 까뮈를 완전히 제국주의자로 몰면서 사상이 불순하니까 고전에서 제외시켜야 한다고까지 주장하는데 이 사람, 너무 외곬수 아닌가 싶기도 하고 좀 황당하더군요 그렇지만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하면서 왜 그 원류인 서양 제국주의는 떠받드냐는 비판은 공감하는 바입니다

페레 평전도 재밌게 읽긴 했는데 그가 주창한 모던 스쿨이 주류로 받아들여지려면 정부 자체가 없어져야 할 것 같아요 모던 스쿨에서 교육받으면 현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던지, 혁명가가 되지 않을까요^^

이잘코군 2004-11-15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박홍규 교수의 작품을 많이 보셨네요. 전 관심만 가지고 아직 많이 접해보진 않았습니다. 박홍규 교수는 예전에 일간지 칼럼란에서 처음 접했던거 같은데 그가 펼치는 논리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멍청한 백인들
마이클 무어 지음, 김현후 옮김 / 나무와숲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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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우리영화 '올드보이'를 제치고 '황금종려상'으로 당당히 1위를 차지한 '화씨 911'의 감독인 마이클 무어의 저서이다. 최근 무어는 영화 '화씨 911'의 토대가 된 저서 <이봐, 내 나라를 돌려줘!>를 출간했는데, <멍청한 백인들>은 이 책의 1부라고 보면 좋을 듯 싶다.

 영화 '화씨 911'로 일약 스타가 된 무어이지만 그에게는 이미 영화와 책을 비롯한 전작들이 다수 숨어있었다. 영화감독으로써 그는 '로저와 나', '더 빅원', '캐나디언 베이컨'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다운사이즈 디스>, <TV네이션에서의 모험> 과 지금 소개하는 이 책 <멍청한 백인들>이 있다.

 책을 통해 바라본 무어는 철저한 아웃사이더이자 비주류이다. 우리가 흔히 바라보는 미국사회에 딴지를 거는 인물이라고 할까. 그를 보고 있으면 '딴지일보'의 김어준이 떠오른다. 나이가 많지는 않은 그는 자신의 일생의 경험을 통해 미국비판, 정확히는 부시와 그 일당들에게 똥침을 가하고 있다. 이유없는 테러전, 세계화 정책, 약소국과 약자에 대한 가혹행위 등을 예로 들며 부시죽이기에 앞장선다. 무어는 여기서 또 부시때리기를 하다 쉬어갈 겸 백인때리기(그 자신도 백인이다)도 겸하기도 한다.

 무어의 글은 'LA타임즈'의 평처럼 "윤리적이지도 않고, 섬세한 지적인 논리성도 없으며, 미사여구도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이 책을 읽고 있으면 그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도 그 표현력이 과격하고 산만해 읽기가 거북스럽기까지 하다. 그의 생각은 동조하지만 글발은 영 아니라 정독을 하며 읽어내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나는 이 책을 정독하지 않았다. 정독하기에는 너무도 어지러워 읽고 난 뒤에도 나의 머리 속에 남아있는 내용은 그다지 없을 것 같았고, 그래서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발췌해 읽었다. 그렇다고 어느 한 부분을 왕창 뛰어넘어 읽은 것은 아니고, '통독(通讀)'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한편 나의 생각의 편린들은 무어로 하여금 '강준만'과 '진중권'을 떠올리게도 한다. 무어는 우리사회의 강준만과도 같은 영향력을 지니고 있으면서, 그가 주장하는 것들이 신선함을 던져주고 대부분 공감할 만한 것들이다. 마치 그의 주장대로 한다면 정말로 사회가 바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그는 강준만과 닮아있다. 단지 다른 것은 강준만은 대학교수라는 인정받는 사회적 위치와 안정감을 갖춘데 반하여, 무어는 철저히 고립되어있다는 것이다. 또한, 무어를 통해 진중권을 떠올리는 것은, 무어의 글이 굉장히 풍자적이라는 것이다. 비록 진중권과 같은 논리성은 지니고 있지 못하지만 그는 다양한 주제를 대상으로 풍자적인 글쓰기를 전개하고 있다. 전투적 글쓰기 못지 않게 풍자적 글쓰기에도 소질을 보이는 진중권을 떠올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시 진중권이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한다는데 반해 무어는 어눌하고 어설퍼 보이는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

 굳이 구입해가면서까지 사서 볼 만한 책은 아니고, 인근 도서관에서 빌려봄이 적당할 듯 싶다. 돈주고 사볼만큼의 가치는 없다는 말이다. 그저 만화책 보듯 그냥 즐기고 끝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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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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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후 한겨레 신문에 '강준만을 기다리며'라는 제목의 글이 실린 적이 있다. 한국사회에 안티조선운동에 바람을 넣고, 전라도 죽이기, 김대중 죽이기 등 한국사회에서의 전라도 출신의 천민대우에 대한 비판을 이끌기도 했던 그는 엄청난 저술활동을 통해 수없이 많은 안건들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그 비판의 소리들은 어느 정도 먹혔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그는 어떤 연유에서인지 한겨레 신문을 통해 연재해오던 것을 중단했다. 자성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저술활동을 스스로 잠시 중단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두식'이라는 별로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변호사이자 한동대 교수라는 사람이 '강준만을 기다리며'라는 글을 썼는데, 이때 난 그를 주목하게 되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난 예전에 또 한번 그의 이름을 접한 적이 있었다. 다만 내가 기억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칼을 쳐서 보습을>이라는 책이 소개되었을 때 분명 그의 이름을 접했던 것이다. 이 책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제로 한 것인데, 그 내용이 신선하고 글빨이 좋다는 소문이 있었다.

 어찌되었건 본격적으로 그를 접한건 <헌법의 풍경>을 통해서다. 이 책은 일반인이 접하기 어려운 법을 매우 쉽게 풀어쓴데다 재미까지 있다고 해서 구입하게 되었다. 이미 소문으로 글빨이 상당하다고 하는 저자가 쓴 작품이고,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서 나와 같은 입장을 지니고 있는 저자이기에 접하지 않아도 친숙했다.

 읽은 후의 느낌은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탁석산 선생(<한국의 정체성>, <한국의 주체성>, <한국의 민족주의를 말한다>로 저술활동을 하시는 철학자죠. 다독가로서 그동안에 접했던 책과 경험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재밌게 펼치는 분이십니다)을 접했을 때의 그 느낌이랄까. '김두식'이라는 또 한 사람을 나의 주요관심 저자리스트에 올리게 되는 순간이다. 더불어 나는 그의 또 다른 저서, <칼을 쳐서 보습을>을 꼭 읽을 것이다.

 <헌법의 풍경>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이 책이 쉽게 쓰여진 것은 저자가 들먹이는 헌법의 조항들이 저자가 살아온 그동안의 경험들이 녹아들어갔기 때문이다. 한 개인의 경험담을 통해 어려운 법조문들을 읽어나가니 쉬울 수 밖에 없다.

 저자는 특이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일반의 범주에서 확연히 벗어난 삶을 살아왔다. 사법고시에 합격했으나 어차피 변호사가 될 거라고 연수원에서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것과 변호사가 된 이후에도 삐딱선을 타며 돈벌이보다는 약자의 편에서 상담을 해주거나 하는 등의 삶을 살아왔다. 또한 그는 법조계의 각종 관행과 비리를 볼 수 없어 그 바닥에서 나왔고 미국에서 아내의 뒷바라지를 하며 전업주부로도 생활했다. 끝내 그는 결국 다시 로스쿨에 들어가 석사를 따고 한국에와 석사출신으로 이례적으로 교수로 채용되는 파격까지 맞이한다.

 나는 그의 삶의 이력이나 우리 사회에 대한 그의 생각들을 보았을 때 딱 내 코드다 하는 느낌을 받았고, 앞으로 그를 주목하게 될 것이다.

 일반인에게나 법을 전공하는 이들에게나,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이들 모두에게 나름대로의 커다란 의미를 줄 수 있는 책이다.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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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후사 2004-06-28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의중 90%를 책선전에 이용했던 탁석산 교수를 접했을 때의 그 느낌이랄까" 라는 구절이 있있는데 어떤 맥락인지 잘 모르겠네요. 무슨 말씀인지 가르쳐주실 수 있습니까? ^^;;

이잘코군 2004-06-28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해의 소지가 있는 대목이었군요. 쓸 땐 느끼지 못했는데...

오해를 드렸다면 죄송해요. 탁석산 선생님의 재미난 모습을 설명하기 위한 부연설명이었는데 그 맥락이 김두식 교수에게도 같은 의미로 전달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닫지 못했네요. 죄송해요. 수정하겠습니다.

 

김선일씨의 피살이 알려진 이후 네티즌들이 분노를 하고 있다. 일부는 정부의 안이한 대응에 분노하며 정부에 원망을 돌리고 있고, 일부는 김선일씨를 죽인 테러범들에 분노를 하면서 우리 해병대나 특전사를 보내 싹쓸이를 하자는 극단적인 발언 또한 나오고 있다. 또 한편에서는 이라크 전쟁의 시발점이 된 미국을 탓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하나의 사건에 대한 각기 다양한 반응들을 보면서 혼란스러운 이 광경을 정리해야할 필요성을 느낀다. 무조건적인 정부비판에 대해서는 아래 글에서 이미 한 차례 언급한 바 있으므로 생략하겠다.

무차별적인 이라크 싹쓸이론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이들은 함무라비 법전에 나오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문구를 인용해가며 우리네 민간인을 죽였으니 우리도 이라크에 가서 싹쓸이 하자는 주장을 제기한다. 김선일씨 사망사건에 대한 개인적인 충격에서 나온 발언이라면 그저 그 한 사람 감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탓으로 돌리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주장은 매우 위험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우리 국민이 희생당했으니 너희도 당해봐라, 는 식의 논리는 매우 위험하기 짝이 없다. 똑같이 보복조치를 하겠다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피가 피를 부르는 파국으로 치닫을 수 밖에 없다. 영화감독 박찬욱 씨가 택시를 탔는데 택시기사가 이런 말을 하더란다.

"특전사나 해병대를 보내서 다 쓸어버려야 한다"

아무리 화가 나고 한탄스럽더라도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다. 다 쓸어버리자는 주장은 이라크를 초토화하고 있는 미국 부시행정부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이라크 팔루자에서 죽은 미군의 시신이 훼손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부시는 팔루자에 대대적인 공격을 지시했고 그곳에서만 수천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했다. 결혼식장도 공습을 해 막 결혼식을 올리던 신혼부부와 그의 일가족, 친척들이 죽었다고도 한다. 단지 결혼식장에서 축하포를 쐈다는 이유로 말이다. 뭔가 번쩍 했으니 미군은 이를 공격으로 알고 싹쓸이 했다는 것이다.

김선일씨의 죽음에 대해 우리가 해야할 일이 이것인가? 그건 아니라고 본다. 고인에겐 미안하지만 우리국민 한명 죽을 때 그동안 이라크인은 수만명 죽었다. 너무 많이 죽어 그들 하나하나 애도하기도 힘들만큼 말이다. 국민들이 김선일씨의 죽음에 대해 분노하고 슬퍼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라크인의 죽음 앞에서는 그저 뉴스 기사를 흘려읽는 정도의 관심조차도 쏟지 않았다. 우리 국민의 목숨이 소중하다면 이라크인의 목숨도 소중하다. 모든 목숨은 같은 것이다. 우리 것과 남의 것을 구분짓지 말자. 이 전쟁의 배경에는 우리와 남을 구분짓는 '차별의 폭력'이 숨어있다. 미국은 자기네와 다른 이라크가 못마땅했고 다른 명분하에 이라크를 쳤지만 어쨌건 까놓고 얘기하면 이라크가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정치체제, 나와 다른 종교, 나와 다른 문화를 가진 그들을 열등하게 여겼고, 나와 일치시키기 위해 그들에게 폭력을 가했다.

내가 가장 많이 읅어먹는 인용구를 또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사상가 볼테르는 <<관용론>>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이 말 할 권리를 위해서는 함께 싸우겠다."

미국은, 그리고 우리는, 이라크에 동의하지 않더라도(그것이 어떤 것이든), 이라크가 말 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해서는 함께 싸워줘야한다. 미국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라도 이라크를 위해 함께 싸워줘야한다. 이라크의 편에서 전쟁을 치르자는 말이 아니다. 자유가 억압당한다는 이유로 이라크를 쳤지만 지금 이라크에는 아예 자유를 찾아 볼 수 없다. 지금 볼 수 있는 자유는 '방종'이지 자유가 아니다. 이라크에는 자유가 상실되었다. 우리는 그 자유를 되찾아주어야한다. 이라크의 권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다면 차라리 간섭이라도 하지 말자.

관용의 정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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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일씨가 이라크에서 참수당했다는 소식이 들린 후 신문과 방송을 비롯한 언론들은 이에 대한 기사를 계속해서 내보내고 있다. 마치 노무현 대통령 탄핵 가결 이후의 언론을 보는 듯 오로지 이 사건만을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정부는 제대로 협상을 한 것인가? 김선일씨가 31일에 납치됐던 것은 아닌가? 일본은 살렸는데 우리는 왜 못살렸냐? 는 등등의 의문을 제기하며 김선일씨의 목숨을 구하지 못한 것을 정부의 탓으로 돌리는 여론의 목소리가 강해지고 있다. 나 역시 그를 구하지 못한 정부가 원망스럽다.

 정부는 나름대로 노력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어쩌면 그 노력은 애초에 불가능했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협상조건은 '한국군의 파병 철회'였고 우리가 거듭 파병을 재확인하자 그들은 바로 김선일씨를 죽였다. 그들의 조건인 파병 철회가 먹히지 않았는데 더이상의 협상이 진행될리 만무하다. 애초 협상은 불가능했다. 또한 가능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그들이 제한한 시간이 다가왔기에 시간이 촉박했을 것이다. 그런면에서 협상의 성공과 실패여부를 중심으로 삼아 정부를 탓하는 것은 지나치다. 결코 정부의 행위를 감싸려는 것은 아니다. 논의의 중심이 다른 곳으로 이동되는 것을 막고 싶을 뿐이다. "김선일씨의 죽음=정부의 잘못"의 공식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잘못은 누구에게 있는가? '노무현 정부'만이 아닌 국회의제로서 파병을 확정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까지 포함한 '그들'의 잘못이다. 일부 소수 의원들에 한해 파병철회 주장이 나오기는 했지만 그들 대부분은 파병확정에 표를 던졌다. 파병을 철회하라는 사회 곳곳의 시민단체와 민주노동당, 시민들의 의견에도 그들은 눈한번 '깜빡'하지 않았다. 김선일씨의 피랍사실이 알려진 시기에도 그들은 되풀이해 '파병 재확인'만을 했을 뿐 파병철회의 목소리는 철저히 무시했다. 김선일씨의 죽음의 근본적인 배경은 이라크 파병 확정에 있는 것인 만큼 '이라크 파병'이 중심적인 논제가 되어야 한다.

 <이라크 파병을 철회해야 하는 첫번째 이유>

 이번에 파병하게 되면 미국과 영국에 이어 우리가 세번째 규모라고 한다. 이 정도 됐으면 미국, 영국의 제대로된 꼬봉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부시가 파병하라고 한다고 이에 대한 정당성 여부나 안정성 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부당한 전쟁'에 꼭두각시로 참가하려는 우리는 확실히 그들의 꼬봉이다. 미국이 무서운가? 만약 미국의 말을 듣지 않으면 경제적인 제제가 가해진다거나 하는 등 기타 부수적인 악영향이 있을테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자국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할 정도의 것은 아니라고 본다. 가면 모두 죽느냐? 그렇지는 않다. 가면 죽지 않을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가면 그곳에서 우리 군인이 죽을 수도 있고 죽지 않을 수도 있지만, 만약 운이 좋아 아무도 죽지 않는다고 쳐도 우리나라는 그들의 다음 테러 목표가 될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 파병된 수천명의 군인이 살아돌아온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 전체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한 채 테러의 위협에 시달려야한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실용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라크 파병 결정은 굉장한 실수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파병하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나는 파병안 결정에 찬성표를 던진 국회의원들에게 묻고 싶다. 열린우리당이여, 한나라당이여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파병안에 찬성을 하는 것인가?


<이라크 파병을 철회해야 하는 두번째 이유>

 이라크에는 핵무기는 당연히 없었고, 핵시설 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또한 911 테러를 자행한 알카에다와는 더욱 연관이 없다고 한다. 오히려 알카에다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더 큰 연관이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시는 이라크를 쳤다. 그가 '불량국가'(재밌는 것은 노암 촘스키는 그의 저서 <불량국가>를 통해 '불량국가'를 지정한 부시의 미국을 '불량국가'로 지정했다는 점이다)로 규정한 나라 중 가장 만만한 상대를 골라 무기력화 시키려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부차적으로 누구는 미국이 이라크의 석유를 노렸네 어쩌네 하는 경제적인 이유를 들지만 그것은 부차적인 전리품 정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부시는 '팍스 아메리카'를 실현하기 위해 그들에 적대적인 나라들을 하나 둘 잡아먹으려 했던 것이다. 어쨌든 그리하여 부시는 이라크 침공에 어느 정도 성과를 올렸다. 후세인을 생포했고 이라크 정부를 친미파로 채워넣었다. 주변에서 아무리 정의롭지 못한 전쟁이네 어쩌네 하면서 부시를 압박하지만 부시는 이미 자신의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성공을 거두었다. 다음번 대선에서 부시가 떨어질 것은 불보듯 확실한 일이지만 그는 자기꿈(?)을 이미 이루었다.

 부시 때리기는 이쯤하고 다시 돌아와 이야기를 마무리하자면, 정당한 이유는 커녕 아무런 이유조차 없는 일방적인 이라크 침공에 우리가 합세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가서 미국이나 영국처럼 석유를 얻어 올 것도 아니고, 기타 다른 떡고물도 떨어지지 않는데 왜 가려는지 모르겠다. '평화와 재건'이라는 모토를 내걸기는 했지만 평화와 재선은 안정된 뒤에 민간단체를 보내서 이루어라. 어설픈 천사인 척 흉내내며 군부대 보내면서 무슨 '평화와 재건'을 들먹이는가? 그들에겐 그저 이라크를 먹으러온 군부대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평화와 재건도 상대방이 요청해야지 상대가 원치도 않는데 해주겠다고 나서면 그것도 폭력이다. 다 파괴해놓고 와서 재건해주겠다는건 병주고 약주는 격이다. 병주고 약주는데 상대가 밉지 않겠는가? 원치 않으면 그냥 내비둬라. 나중에 그들이 원할 때 도와주면 된다. 굳이 '미국 시다바리'라는 소리들어가며 파병할 이유는 없지 아니한가?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제 2의 김선일씨가 나타나지 않도록 막는 길 뿐이다. 이라크 파병을 철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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