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의 피살이 알려진 이후 네티즌들이 분노를 하고 있다. 일부는 정부의 안이한 대응에 분노하며 정부에 원망을 돌리고 있고, 일부는 김선일씨를 죽인 테러범들에 분노를 하면서 우리 해병대나 특전사를 보내 싹쓸이를 하자는 극단적인 발언 또한 나오고 있다. 또 한편에서는 이라크 전쟁의 시발점이 된 미국을 탓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하나의 사건에 대한 각기 다양한 반응들을 보면서 혼란스러운 이 광경을 정리해야할 필요성을 느낀다. 무조건적인 정부비판에 대해서는 아래 글에서 이미 한 차례 언급한 바 있으므로 생략하겠다.
무차별적인 이라크 싹쓸이론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이들은 함무라비 법전에 나오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문구를 인용해가며 우리네 민간인을 죽였으니 우리도 이라크에 가서 싹쓸이 하자는 주장을 제기한다. 김선일씨 사망사건에 대한 개인적인 충격에서 나온 발언이라면 그저 그 한 사람 감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탓으로 돌리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주장은 매우 위험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우리 국민이 희생당했으니 너희도 당해봐라, 는 식의 논리는 매우 위험하기 짝이 없다. 똑같이 보복조치를 하겠다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피가 피를 부르는 파국으로 치닫을 수 밖에 없다. 영화감독 박찬욱 씨가 택시를 탔는데 택시기사가 이런 말을 하더란다.
"특전사나 해병대를 보내서 다 쓸어버려야 한다"
아무리 화가 나고 한탄스럽더라도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다. 다 쓸어버리자는 주장은 이라크를 초토화하고 있는 미국 부시행정부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이라크 팔루자에서 죽은 미군의 시신이 훼손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부시는 팔루자에 대대적인 공격을 지시했고 그곳에서만 수천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했다. 결혼식장도 공습을 해 막 결혼식을 올리던 신혼부부와 그의 일가족, 친척들이 죽었다고도 한다. 단지 결혼식장에서 축하포를 쐈다는 이유로 말이다. 뭔가 번쩍 했으니 미군은 이를 공격으로 알고 싹쓸이 했다는 것이다.
김선일씨의 죽음에 대해 우리가 해야할 일이 이것인가? 그건 아니라고 본다. 고인에겐 미안하지만 우리국민 한명 죽을 때 그동안 이라크인은 수만명 죽었다. 너무 많이 죽어 그들 하나하나 애도하기도 힘들만큼 말이다. 국민들이 김선일씨의 죽음에 대해 분노하고 슬퍼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우리는 이라크인의 죽음 앞에서는 그저 뉴스 기사를 흘려읽는 정도의 관심조차도 쏟지 않았다. 우리 국민의 목숨이 소중하다면 이라크인의 목숨도 소중하다. 모든 목숨은 같은 것이다. 우리 것과 남의 것을 구분짓지 말자. 이 전쟁의 배경에는 우리와 남을 구분짓는 '차별의 폭력'이 숨어있다. 미국은 자기네와 다른 이라크가 못마땅했고 다른 명분하에 이라크를 쳤지만 어쨌건 까놓고 얘기하면 이라크가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정치체제, 나와 다른 종교, 나와 다른 문화를 가진 그들을 열등하게 여겼고, 나와 일치시키기 위해 그들에게 폭력을 가했다.
내가 가장 많이 읅어먹는 인용구를 또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사상가 볼테르는 <<관용론>>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이 말 할 권리를 위해서는 함께 싸우겠다."
미국은, 그리고 우리는, 이라크에 동의하지 않더라도(그것이 어떤 것이든), 이라크가 말 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해서는 함께 싸워줘야한다. 미국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라도 이라크를 위해 함께 싸워줘야한다. 이라크의 편에서 전쟁을 치르자는 말이 아니다. 자유가 억압당한다는 이유로 이라크를 쳤지만 지금 이라크에는 아예 자유를 찾아 볼 수 없다. 지금 볼 수 있는 자유는 '방종'이지 자유가 아니다. 이라크에는 자유가 상실되었다. 우리는 그 자유를 되찾아주어야한다. 이라크의 권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다면 차라리 간섭이라도 하지 말자.
관용의 정신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