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는 이제는 누구나 들어봤을 만한 문구가 되어버렸다. 이는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지칭하는 것으로, 본래 기원은 초기 로마 사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 로마 사회에서 사회 고위층 인사들의 봉사, 기부, 헌납 등의 행위는 의무이면서도 자신들의 명예와 동일시 되면서 이들 사이에서 경쟁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앞의 노블레스는 명예를, 뒤의 오블리제는 의무를 의미한다. 즉 명예에 걸맞는 의무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는 과거로부터 오늘날까지 이 말은 그저 공허한 외침일 뿐 현실에 적용되는 일은 드물었다. 물론 실제로 자신이 누리는 명예에 걸맞는 의무를 다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2004년의 마지막 역대 최대피해의 지진해일 피해 복구를 위해 세계 각국의 스포츠인, 영화배우들이 작은 국가들이 내놓은 것과 맞먹는 피해복구비용을 내놓았다. 물론 유명한 인물들 중 극히 일부분만이 자신의 지갑을 열었지만 이들은 누구보다 노블리지 오블리제를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사회로 눈돌려보면 배우 배용준도 일본 지진사태피해 때, 그리고 이번 인도네시아 지진해일 피해 때도 수억씩 내놓으며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했다. 물론 최근의 예 외에도 이전부터 우리사회에도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이들은 많다.

 그런데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커녕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의무조차 지려하지 않는 이들도 다수 눈에 띈다. 그것도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누리고 있는 이들이 말이다.

 1월 5일자 일간 신문에는 '사기전공 변호사'라는 제목의 커다란 박스기사가 하나 실렸다. 내용은 이러하다. 사법고시를 패스해 변호사가 된 A씨가 구속자 석방을 미끼로 사건 의뢰인으로부터 거액을 받아 가로채고, 부동산개발 수익을 내세워 투자자를 모집 이들로부터 돈을 챙겨 달아났으며, 도피생활 와중에도 이를 숨기고 김모씨와 재혼을 해 새로운 사기대상을 찾아왔다. K대 법대를 졸업했다고 알려진 그는 변호사라는 자신의 사회적 신분을 이용해 온갖 사기행각을 해온 것이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누리고 있는 직업임에 틀림없다. 또한 단지 '높은 지위'라는 면 이외에도 변호사는 의당 법을 다루는 자이기 때문에 몸소 법을 실천해야함은 당연하다. 그런데 법을 실천해야할 그가 되려 법을 위반하는 각종 사기행각을 펼쳐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도덕성마저도 저버린 한갖 사기범으로 변신했다. 이는 애초 도덕성을 겸비하지 못한 채 머리만 좋은 그가 법조문 달달 외워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라는 간판을 얻어낸 것부터가 문제가 있다.

 사법고시뿐 아니라 다른 여타 온갖 자격을 주는 시험들이 개인의 인간성과 인격, 성품을 볼 수 없다는 점에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고, 좁은 관문을 통과한 이들 중 소수의 문제있는 자들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온갖 짓을 다 하고 다니고 있다. 시험을 통해 개인의 성품과 인격을 검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짧은 면접을 통해서도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2박 3일, 10박 11일 등의 기간을 두며 장기간에 걸쳐 관찰을 한다는 것도 힘들고, 이 과정에서조차도 이들의 인격과 성품을 검증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럼 이들을 어떻게 걸러내야하는가?

 처음부터 인격, 성품을 다듬는 교육을 시켜야한다. 개인의 인격과 성품이란 단기적으로 스파트라식으로 주입하고 가르친다고 해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시험에 임하는 공부와는 다르다. 인간이 태어난 직후부터 계속해서 끊임없이 스스로가 사유하고 공부함으로써 올바른 마음 자세를 가지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따라서 국가자격시험에서 이를 시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누릴만한 이들을 미리 내정해서 이들을 교육하고 인격함양에 수양토록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해결책은 이외로 쉬운 데 있다.

 어릴때는 누가 어떤 인물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을 아이를 찍어내서 인격훈련을 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고, 이는 교육의 형평성 면에서도 옳지 않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라면 모를까(주 : 플라톤은 <국가>라는 대화편을 통해 '철인정치' 즉 철학자의 정치를 주장했으며, 이때의 철인은 국가를 경영할 수 있는 능력은 물론이고, 마지막으로 높은 도덕성을 갖춘 인물을 뽑음으로써 최종선발된 자이다. 플라톤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능력에 맞는 일들 시키는 것이 옳다고 보고 자신이 하고픈 일과 상관없이 그저 각자의 능력에 맞게 능력이 부족한 자는 대장장이를 시키고, 능력이 되는 자는 교육자, 더 능력이 좋고 도덕적인 자는 국가를 경영하는 역할을 맡기도록 했다).

 따라서 아예 모든 이들을 대상으로 처음부터 인격수양에 정진하면 되는 것이다.  해결책은 의외로 쉬운데 있다. 모두가 도덕적이면 된다. 그렇다고 내가 말하는 도덕성이 모두가 맹자가 말하는 성인(聖人)이 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기본적인,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도덕성을 키우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자라면서 공부잘해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도달한 자들은 자신의 기본적인 도덕성을 바탕으로 더욱 인격수양에 정신하면 될터이다. 애초 기본적인 도덕성을 갖추지 못한 이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갖게 되면 그에 걸맞는 도덕성을 가지려고 노력하지 않겠지만, 기본적인 도덕성을 갖춘 자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도달하면 스스로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본다.

 결국 문제는 다시 교육이다. 교육을 함에 있어 어떤 것을 중시하느냐 하는 것이 관건인 셈이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번 언급했기 때문에 되풀이하는 것이 지겹고, 단지 오늘날의 교육은 '아니다'라는 점만 말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05년 새해를 맞이하여 노무현 대통령이 여러 장관을 새로 임명했다. 재직 중 수능부정파문사건이 있었던 안병영 교육부 장관 또한 온전하지 못했고, 대신 새로 전 서울대 총장이었던 이기준씨가 교육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런데 임명 하루전부터 심상치 않은 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각종 시민단체와 정치권에서 '이기준 교육부 총리 임명 철회'에 대한 강도높은 발언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지금 이 상황을 지켜보면서 나도 한마디 내뱉는다.

 지금 이기준 교육부 총리 임명에 대해 논란이 되는 것은 크게 세 가지 문제다. 그 첫째는 총장 재직 당시 LG그룹의 사외이사를 겸임하며 수천만원을 챙겼다는 것이고, 그 둘째는 판공비를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다는 것이고, 그 셋째는 아들의 병역문제논란이다. 1급 현역 판정을 받았으나 병무청의 허가를 받지 않고 불법으로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이기준씨가 서울대 총장이 된 뒤에 한국에 돌아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공익근무 판정을 받고 병역이 끝난 직후 한국국적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갔다는 것이다.

 이는 모두 그의 '도덕성'에 대한 시비로 모든 공직이 그렇지 않겠느냐만 우리나라에 있어서 '교육부장관'직은 다른 직보다 더욱 개인적인 도덕성을 요구한다. '교육'의 문제에 관한한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큰 관심을 가지고 있고, 이는 '교육=신분'이라는 의식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부와 권력이 없더라도 교육을 잘 받으면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진출로가 생긴다는 생각 때문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부모들은 오직 '교육'이라는 통로 하나만을 가지고 자식이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기를 바란다. 따라서 '교육'의 문제를 총괄 주관하는 교육부 장관은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깨끗한 사람이기를 바라고, 기본적인 청렴함에 토대했을 때 이로부터 나오는 각종 교육정책 또한 믿을 수 있는 '공정'한 기준이 된다고 생각한다. 곧 도덕성이 공정한 정책을 낳는 것이다.

 이기준 전 서울대 총장의 문제는 또 있다. 그의 서울대 총장 재직시 무리한 대학 운영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 그는 그런 이유로 총장직을 다 수행하지 못하고 중간에 사퇴한 경력이 있다. 내용인 즉슨 이렇다.

 그가 서울대 총장 재직시에 교육부 장관은 이해찬이었다. 이해찬씨는 당시 취임직후 대학원중심교육을 주장하며, 서울대, 연대, 고대 등 상위대학들이 따라줄 것을 요구했으나 연대와 고대를 비롯한 사립대들이 이를 따라주지 않자 서울대를 다그쳤고, 이기준 전 총장이 학부정원감축과 대학원중심교육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인문계열은 불필요한 부분으로 간주하여 인문학 정원을 감축하려다가 반발을 불렀다는 것이다.

 그의 행정 스타일이 밀어붙이기식, 불도저식이라는 점도 대화와 소통을 중시하는 지금 시대에는 맞지 않을 뿐더러, 그가 인문학을 필요없는 부분으로 간주했다는 사실 또한 교육자로서 그의 생각이 의심스럽다. 무릇 교육의 근본은 인문학이다. 회사경영을 하든, 과학기술 개발을 하든, 생명을 다루는 일을 하든 간에 모든 학문의 근본에는 인문학이 깔려있어야 한다. 대학에서 1학년에 계열기초 혹은 필수교양이라 하여 철학을 가르치고 국어를 가르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심지어 이공계와 의대에도 윤리는 필수다. 각종 사건이 터질 때마다 윤리의식의 부재를 외치면서 교육정책을 실행함에 있어서는 윤리를 배제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인지 문제를 크게 만들자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만든다.

 "책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여기서의 책은 '인문학'을 가르킨다고 본다. 사람을 만드는 책은 책을 읽는 사람이 그 책을 읽고서 여러가지 깊이있는 사유를 할 수 있는 책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전을 비롯한 문학, 철학, 역사, 인류학을 비롯한 인문학이다. 이런 책을 읽은 사람과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필경 성장해나가는 과정에서 차이를 드러낸다. 그 차이가 과학적으로 혹은 통계적으로 입증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해서 무시해서는 안된다. 사실적인 증거를 눈에 보여주지 않더라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를 충분히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를 느끼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인문학은 개별 개체로서의 사람의 생각을 주도하고, 그 사람의 삶의 가치관과 양식을 만든다. 인성교육이란 인문학의 교육의 다름아닌 이름이며, 이를 무시하는 사회는 점점 거칠어질 수 밖에 없다. 단기적인 눈에 보이는 경제적 가치를 위해 학문을 육성해서는 안된다. 학문이란 무릇 멀리 보고 나아가야 하는 것으로, 옛부터 '백년지대계' 라고 하였다. 학문 정책을 주관하는 교육부 장관의 자리에 저와 같이 문제있는 자를 임명해서는 안될 것임은 더이상 강조하지 않아도 확실하다.

 나는 노무현 정권을 지지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그가 지시하는 개별적인 사안들마다 다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으로서 당장 눈에 보이는 뭔가를 바라는 마음은 이해하나 무릇 대통령이라면 나라의 장기적인 발전을 염두해두고 모든 일을 처리해야한다. 지금 당장 자신이 욕먹더라도 '대통령'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는 것이 낫다. 그게 대통령이 할 일이다. 한 번 결정된 사안이라고 해서 자존심 세우며 밀어붙일 필요 없다. 이미 결정했지만 여러 의견을 종합해 볼 때 아니다 싶으면 철회할 수도 있는 거다. 그게 대인의 길이다.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이기준 교육부 장관 또한 얼마 가지 못할 것임은 자명하다. 다음 임명자는 무엇보다 도덕성과 청렴함을 갖춘 인물이면서 교육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를 가진 자였으면 한다. 또 한가지 지적할 것은 매번 교육부 장관 임명때마다 대부분 서울대, 연대, 고대 총장들을 지목하는데, 이것이 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해서 이들 학교의 총장을 지목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이들이 그 자리에 부합한 인물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인지 난 모르겠다. 하지만 좀더 넓은 마당에서 사람들을 찾아봤으면 한다. 산 속에 숨어지내는 초야의 늙은 학자라도 데려올 수 있는 것이다. 장관 임명에 있어 좀더 신중한 자세를 가졌으면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패컬티. 영어 Faculty는 능력, 재능, 기능 이라는 의미 이외에도 교직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이 영화제목의 패컬티는 후자의 의미로 쓰인 것 같다. 이 영화는 한 고등학교의 교직원들이 외계생물체에 의해 정신을 지배받으면서 전개되기 때문이다.

우주의 어느 행성에 살던 외계생물체는 행성에 물이 마르자 살 수가 없어 지구로 왔다. 이 생물체가 처음으로 머문 장소는 해링톤 고등학교. 재정난에 허덕이며 학생들의 뮤지컬로 올리지 못하고, 미식축구에도 넉넉한 지원을 하지 못한다. 학교 컴퓨터가 낡아 교체해야하나 이것도 그저 바램뿐이다. 그러던 어느날 윌리스 축구코치가 드레이크 교장을 살해하고, 숙주를 심었다. 이후 다른 교직원들에게도 외계생물체의 숙주가 자리잡고 이들은 학생들과 지역주민들을 지배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7명의 아웃사이더 학생들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눈치채고 따로 모여 저들에 대항할 채비를 한다.

영화의 시나리오는 단순한 면이 없지 않지만 이 정도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나름대로 긴박감 있게 사건을 진행시켜 그다지 오락영화로서의 지루함은 별로 없다. 특별히 세계적으로 알려진 스타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감독이 유명한 것도 아니다. <황혼에서 새벽까지>와 <스파이 키드>를 만든 감독인데 이 작품들도 그다지 큰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라고 본다면 말이다.

외계숙주에 대한 영화야 이제 질리도록 봤고, 이 정도의 시나리오는 영화를 보지 않아도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단지 범인이 누구냐 하는 것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이 될 뿐이다. 그럭저럭 괜찮은 영화다. 오락용으로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 김훈 世說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라는 책을 읽었다. 우선 제목이 참 길다. 하지만 매우 땡기는 제목이다. 제목만 보기에는 일종의 편가르기에 대해 다루고 있는 듯 하고,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있을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책 안에 그런 내용이 담겨 있다.

 원래 이 책의 제목은 이것이 아니었다.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가 원 제목이었는데, 출판사 측에서 책의 여러 글들을 아우르는 제목이 본 제목인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보다는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가 책의 메시지와 더 가깝다고 생각해 저자와의 협의하에 바꾼 것이라고 한다.

 사실 내가 봤을 때도 원제 <아들아... >로 했을 경우 책의 첫 몇몇 글들에는 부합할지 모르지만 이후의 다른 여러 글들을 아우르는 제목은 되지 못한다. 저자는 본래 자신의 아들이 이 글을 봐주기를 바라며 썼던 것 같지만 그것은 저자의 개인적인 생각이고, 전체적인 책의 내용과 이 책을 읽을 독자를 생각하는 출판사 입장에서는 달랐을 것이다. 책을 판매하는데 있어서도 본래의 제목보다는 나중의 제목이 훨씬 낫다. 나 또한 본래 제목을 달고 있었더라면 이 책을 구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 김훈은 본래 한국일보 기자였고, 나중에는 시사 주간지 기자를 지냈다. 그리고 나이먹은 지금에 와서 쓴 소설 <칼의 노래>가 노무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안 심사 기간 동안에 청와대에서 칩거하며 읽은 책이라 하여 전국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각종 언론에 오르내리며 엄청난 판매부수를 올리게 되었다. 물론 순전히 대통령이 읽은 책이라해서 이만큼의 판매가 됐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일단 책을 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만은 확실하다. 이 책으로 인해 김훈은 2001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뒤늦게 독자들에게 다가간 셈이다.

 나는 <칼의 노래>는 읽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후속작 <현의 노래>는 읽었다. 그의 소설 속 문장들은 확실히 개성적인 그만의 문체를 지니고 있었다. 나는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지만 소설가 중에서도 자신만의 문체를 지닌 소설가는 드물다고 본다. 그런데 김훈은 그의 첫 소설에서 그만의 색깔을 확실하게 보여줬다. 다른 여타 소설들을 잘 읽지 않는 나도 <현의 노래>를 통해서 그의 문체를 느낄 수 있었고, 이는 소설을 쓰기 전에 언론기자 생활을 하며 써두었던 칼럼모음집인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라는 책을 통해서도 그 문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문장은 굉장히 짧지만, 힘이 있고, 은유적이면서, 체계적이지는 않지만 논리적이고, 삶에 기반한 생생함을 지니고 있다. 또한, 그의 문장은 고대 중국의 고전 속 문장을 읽는 듯 이리저리 휘돌아다니며 정곡을 찌른다. 아마도 그의 이런 짧고 강한 문장은 오랜 기자생활을 하면서 익히게 된 습관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의 문장은 이성적이지만 '머리'에 기반하기보다는 '가슴'에 기반하고 있다. 이 말은 어찌보면 모순적이다. 보통 머리로 사유한다는 것은 이성적이고, 가슴으로 사유한다는 것은 감성적이라는 뜻인데, 그는 분명 '가슴'으로 사유하면서도 그의 문장에는 이성적 논리가 담겨져있다. 그의 모든 글들이 그가 발로 직접 뛰며 경험한 것들이고, 아주 사소한 것으로부터 그는 넓고 깊은 사유를 전개한다. 그래서 그의 글은 나의 가슴을 자극한다.

 그는 얼마전 한국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자신의 정치성을 굳이 말하자면 '중도 우파'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회색분자가 많아야 좋은 세상이야. 회색과 중도가 깃발을 꽂지 않으면 우리사회는 어려워져. 그 깃발 아래 기회주의적이고 실용주의적이지만 양심적인 사람들을 데리고 가야 해. 그러면 희망이 있어. 중도란 인간의 상식이지.”

 그는 또한 그들은 물적토대를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에 좌익과 좌파가 세상을 맡아선 안된다고 하며 물적토대를 건설할 수 있는 것은 우익이라는 주장을 폈다.

 '중도좌파' 혹은 '좌파자유주의자'의 입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물론 그의 이런 발언들이 못마땅하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세상을 꾸려나가는 것은 낭만주의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니까.

 이 책에는 김훈이 그 당시의 크고작은 사회적 사건들에 대해여, 혹은 살아가는데 있어서 일어나는 주변의 일들에 대하여, 분노하고 느끼고 감동받은 것들이 고스란히 기록되어있다. 때로는 욕을 하듯 강렬하게 퍼붓기도 하고, 때로는 죽은 듯 고요하게 사색을 전개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쨌든 모든 글들에서 느껴지는 바는 '생생함'이다. 그는 이제 나이를 많이 먹었지만 아직 그의 머리와 가슴은 기운이 넘치고, 그의 문장과 글은 살아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 김훈 世說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3월
구판절판


"언어의 순결은 사실에 바탕한 진술과 의견에 바탕한 진술을 구별하고 사실을 묻는 질문과 의견을 묻는 질문을 구별하는 데 있다. 언어의 순결은 민주적 의사소통의 전제조건이다." ( <말하기의 어려움> 중)-65쪽

"몸속에는 산소가 가득 들어 있어야 하고 몸은 늘 민감하고도 정확하게 반응하는 감각들로 살아 있어야 한다. 글이란 '왜 쓰는가'에 대답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다. 글을 쓰는 일은 이 생기발랄한 몸의 살아있음을 입증하는 과정이다. 이 몸이 언어를 통해서 이미지에 가 닿을 때 그의 글은 가장 빛나는 문장을 이룬다. 문체는 몸의 일부이다. 몸이 이미지에 맞는 가장 정확한 문체를 포착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몸이 술과 담배에 절어 있어서는 끝장이다. 이 몸에 포즈가 배어 있어서는 다 끝난 것이다." ( <외로운 맹수, 소설가의 생존방식> 중)-138쪽

"무릇 사람에게는 그침이 있고 행함이 있다. 그침은 집에서 이루어지고, 행함은 길에서 이루어진다. 맹자는 말하기를 인은 집안을 편안케하고 의는 길을 바르게 한다고 하였으니 집과 길은 그 중요성이 같은 것이다. 길은 원래 주인이 없고 오직 그 위를 가는 사람이 주인이다."(신경준 <도로고>)-163쪽

"길은 그 위를 가는 자에게는 통로이지만, 길을 바라보는 자에게는 풍경이다. 그 풍경은 인간과 자연의 사이를 비집어가면서 가늘게 이어진다." (<길>)-16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