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 김훈 世說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라는 책을 읽었다. 우선 제목이 참 길다. 하지만 매우 땡기는 제목이다. 제목만 보기에는 일종의 편가르기에 대해 다루고 있는 듯 하고,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있을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책 안에 그런 내용이 담겨 있다.

 원래 이 책의 제목은 이것이 아니었다.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가 원 제목이었는데, 출판사 측에서 책의 여러 글들을 아우르는 제목이 본 제목인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보다는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가 책의 메시지와 더 가깝다고 생각해 저자와의 협의하에 바꾼 것이라고 한다.

 사실 내가 봤을 때도 원제 <아들아... >로 했을 경우 책의 첫 몇몇 글들에는 부합할지 모르지만 이후의 다른 여러 글들을 아우르는 제목은 되지 못한다. 저자는 본래 자신의 아들이 이 글을 봐주기를 바라며 썼던 것 같지만 그것은 저자의 개인적인 생각이고, 전체적인 책의 내용과 이 책을 읽을 독자를 생각하는 출판사 입장에서는 달랐을 것이다. 책을 판매하는데 있어서도 본래의 제목보다는 나중의 제목이 훨씬 낫다. 나 또한 본래 제목을 달고 있었더라면 이 책을 구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 김훈은 본래 한국일보 기자였고, 나중에는 시사 주간지 기자를 지냈다. 그리고 나이먹은 지금에 와서 쓴 소설 <칼의 노래>가 노무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안 심사 기간 동안에 청와대에서 칩거하며 읽은 책이라 하여 전국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각종 언론에 오르내리며 엄청난 판매부수를 올리게 되었다. 물론 순전히 대통령이 읽은 책이라해서 이만큼의 판매가 됐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일단 책을 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만은 확실하다. 이 책으로 인해 김훈은 2001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뒤늦게 독자들에게 다가간 셈이다.

 나는 <칼의 노래>는 읽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후속작 <현의 노래>는 읽었다. 그의 소설 속 문장들은 확실히 개성적인 그만의 문체를 지니고 있었다. 나는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지만 소설가 중에서도 자신만의 문체를 지닌 소설가는 드물다고 본다. 그런데 김훈은 그의 첫 소설에서 그만의 색깔을 확실하게 보여줬다. 다른 여타 소설들을 잘 읽지 않는 나도 <현의 노래>를 통해서 그의 문체를 느낄 수 있었고, 이는 소설을 쓰기 전에 언론기자 생활을 하며 써두었던 칼럼모음집인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라는 책을 통해서도 그 문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문장은 굉장히 짧지만, 힘이 있고, 은유적이면서, 체계적이지는 않지만 논리적이고, 삶에 기반한 생생함을 지니고 있다. 또한, 그의 문장은 고대 중국의 고전 속 문장을 읽는 듯 이리저리 휘돌아다니며 정곡을 찌른다. 아마도 그의 이런 짧고 강한 문장은 오랜 기자생활을 하면서 익히게 된 습관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의 문장은 이성적이지만 '머리'에 기반하기보다는 '가슴'에 기반하고 있다. 이 말은 어찌보면 모순적이다. 보통 머리로 사유한다는 것은 이성적이고, 가슴으로 사유한다는 것은 감성적이라는 뜻인데, 그는 분명 '가슴'으로 사유하면서도 그의 문장에는 이성적 논리가 담겨져있다. 그의 모든 글들이 그가 발로 직접 뛰며 경험한 것들이고, 아주 사소한 것으로부터 그는 넓고 깊은 사유를 전개한다. 그래서 그의 글은 나의 가슴을 자극한다.

 그는 얼마전 한국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자신의 정치성을 굳이 말하자면 '중도 우파'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회색분자가 많아야 좋은 세상이야. 회색과 중도가 깃발을 꽂지 않으면 우리사회는 어려워져. 그 깃발 아래 기회주의적이고 실용주의적이지만 양심적인 사람들을 데리고 가야 해. 그러면 희망이 있어. 중도란 인간의 상식이지.”

 그는 또한 그들은 물적토대를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에 좌익과 좌파가 세상을 맡아선 안된다고 하며 물적토대를 건설할 수 있는 것은 우익이라는 주장을 폈다.

 '중도좌파' 혹은 '좌파자유주의자'의 입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물론 그의 이런 발언들이 못마땅하지만 한편으로는 그의 말에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세상을 꾸려나가는 것은 낭만주의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니까.

 이 책에는 김훈이 그 당시의 크고작은 사회적 사건들에 대해여, 혹은 살아가는데 있어서 일어나는 주변의 일들에 대하여, 분노하고 느끼고 감동받은 것들이 고스란히 기록되어있다. 때로는 욕을 하듯 강렬하게 퍼붓기도 하고, 때로는 죽은 듯 고요하게 사색을 전개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쨌든 모든 글들에서 느껴지는 바는 '생생함'이다. 그는 이제 나이를 많이 먹었지만 아직 그의 머리와 가슴은 기운이 넘치고, 그의 문장과 글은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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