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새해를 맞이하여 노무현 대통령이 여러 장관을 새로 임명했다. 재직 중 수능부정파문사건이 있었던 안병영 교육부 장관 또한 온전하지 못했고, 대신 새로 전 서울대 총장이었던 이기준씨가 교육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런데 임명 하루전부터 심상치 않은 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각종 시민단체와 정치권에서 '이기준 교육부 총리 임명 철회'에 대한 강도높은 발언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지금 이 상황을 지켜보면서 나도 한마디 내뱉는다.
지금 이기준 교육부 총리 임명에 대해 논란이 되는 것은 크게 세 가지 문제다. 그 첫째는 총장 재직 당시 LG그룹의 사외이사를 겸임하며 수천만원을 챙겼다는 것이고, 그 둘째는 판공비를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다는 것이고, 그 셋째는 아들의 병역문제논란이다. 1급 현역 판정을 받았으나 병무청의 허가를 받지 않고 불법으로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이기준씨가 서울대 총장이 된 뒤에 한국에 돌아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공익근무 판정을 받고 병역이 끝난 직후 한국국적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갔다는 것이다.
이는 모두 그의 '도덕성'에 대한 시비로 모든 공직이 그렇지 않겠느냐만 우리나라에 있어서 '교육부장관'직은 다른 직보다 더욱 개인적인 도덕성을 요구한다. '교육'의 문제에 관한한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큰 관심을 가지고 있고, 이는 '교육=신분'이라는 의식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부와 권력이 없더라도 교육을 잘 받으면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진출로가 생긴다는 생각 때문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부모들은 오직 '교육'이라는 통로 하나만을 가지고 자식이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기를 바란다. 따라서 '교육'의 문제를 총괄 주관하는 교육부 장관은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깨끗한 사람이기를 바라고, 기본적인 청렴함에 토대했을 때 이로부터 나오는 각종 교육정책 또한 믿을 수 있는 '공정'한 기준이 된다고 생각한다. 곧 도덕성이 공정한 정책을 낳는 것이다.
이기준 전 서울대 총장의 문제는 또 있다. 그의 서울대 총장 재직시 무리한 대학 운영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 그는 그런 이유로 총장직을 다 수행하지 못하고 중간에 사퇴한 경력이 있다. 내용인 즉슨 이렇다.
그가 서울대 총장 재직시에 교육부 장관은 이해찬이었다. 이해찬씨는 당시 취임직후 대학원중심교육을 주장하며, 서울대, 연대, 고대 등 상위대학들이 따라줄 것을 요구했으나 연대와 고대를 비롯한 사립대들이 이를 따라주지 않자 서울대를 다그쳤고, 이기준 전 총장이 학부정원감축과 대학원중심교육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인문계열은 불필요한 부분으로 간주하여 인문학 정원을 감축하려다가 반발을 불렀다는 것이다.
그의 행정 스타일이 밀어붙이기식, 불도저식이라는 점도 대화와 소통을 중시하는 지금 시대에는 맞지 않을 뿐더러, 그가 인문학을 필요없는 부분으로 간주했다는 사실 또한 교육자로서 그의 생각이 의심스럽다. 무릇 교육의 근본은 인문학이다. 회사경영을 하든, 과학기술 개발을 하든, 생명을 다루는 일을 하든 간에 모든 학문의 근본에는 인문학이 깔려있어야 한다. 대학에서 1학년에 계열기초 혹은 필수교양이라 하여 철학을 가르치고 국어를 가르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심지어 이공계와 의대에도 윤리는 필수다. 각종 사건이 터질 때마다 윤리의식의 부재를 외치면서 교육정책을 실행함에 있어서는 윤리를 배제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인지 문제를 크게 만들자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만든다.
"책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여기서의 책은 '인문학'을 가르킨다고 본다. 사람을 만드는 책은 책을 읽는 사람이 그 책을 읽고서 여러가지 깊이있는 사유를 할 수 있는 책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전을 비롯한 문학, 철학, 역사, 인류학을 비롯한 인문학이다. 이런 책을 읽은 사람과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필경 성장해나가는 과정에서 차이를 드러낸다. 그 차이가 과학적으로 혹은 통계적으로 입증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해서 무시해서는 안된다. 사실적인 증거를 눈에 보여주지 않더라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를 충분히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를 느끼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인문학은 개별 개체로서의 사람의 생각을 주도하고, 그 사람의 삶의 가치관과 양식을 만든다. 인성교육이란 인문학의 교육의 다름아닌 이름이며, 이를 무시하는 사회는 점점 거칠어질 수 밖에 없다. 단기적인 눈에 보이는 경제적 가치를 위해 학문을 육성해서는 안된다. 학문이란 무릇 멀리 보고 나아가야 하는 것으로, 옛부터 '백년지대계' 라고 하였다. 학문 정책을 주관하는 교육부 장관의 자리에 저와 같이 문제있는 자를 임명해서는 안될 것임은 더이상 강조하지 않아도 확실하다.
나는 노무현 정권을 지지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그가 지시하는 개별적인 사안들마다 다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으로서 당장 눈에 보이는 뭔가를 바라는 마음은 이해하나 무릇 대통령이라면 나라의 장기적인 발전을 염두해두고 모든 일을 처리해야한다. 지금 당장 자신이 욕먹더라도 '대통령'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는 것이 낫다. 그게 대통령이 할 일이다. 한 번 결정된 사안이라고 해서 자존심 세우며 밀어붙일 필요 없다. 이미 결정했지만 여러 의견을 종합해 볼 때 아니다 싶으면 철회할 수도 있는 거다. 그게 대인의 길이다.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이기준 교육부 장관 또한 얼마 가지 못할 것임은 자명하다. 다음 임명자는 무엇보다 도덕성과 청렴함을 갖춘 인물이면서 교육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를 가진 자였으면 한다. 또 한가지 지적할 것은 매번 교육부 장관 임명때마다 대부분 서울대, 연대, 고대 총장들을 지목하는데, 이것이 마땅한 사람을 찾지 못해서 이들 학교의 총장을 지목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이들이 그 자리에 부합한 인물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인지 난 모르겠다. 하지만 좀더 넓은 마당에서 사람들을 찾아봤으면 한다. 산 속에 숨어지내는 초야의 늙은 학자라도 데려올 수 있는 것이다. 장관 임명에 있어 좀더 신중한 자세를 가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