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계속해서 신문에 '교사이야기' 나오는 바람에 자칭 예비교사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다. 교사가 답안지를 대필해주고, 체계적인 내신관리를 해주질 않나, 동료교사의 자녀 성적을 관리해 명문 사립대에 합격시키질 않나, 자신의 자녀를 위장전입시켜 자기학교로 오게해서 시험지를 유출하질 않나. 참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또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얘기다. 그동안 말이 없어서 그랬지 다 예상할 수 있는 바이기 때문이다.

 오늘 신문에도 성북구의 A학교에서 교사가 자녀를 위장전입시켰다는 기사가 실렸다. 그래 위장전입이 그렇게 크게 문제가 될 건 아니다. 일반 학부모(교사 학부모가 아니라) 입장에서는 자기 자녀가 좀더 나은 교육환경에서 공부하길 바라는건 당연한 일이고, 상황이 여의치 못해 이사갈 수는 없어 희망학교 부근의 주소로 자녀만 옮겨놓을 수는 있는 일이다. 이는 충분히 이해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 학부모가 교사라면 문제가 된다.

 교사가 자신의 자녀를 재직중인 학교로 불러들이는 것은 확실히 문제가 된다. 동료 교사를 통해 성적조작이 가능하고, 동료 교사들의 협조(?)가 없더라도 자신의 과목만큼은 시험지를 유출할 수 있으며, 교무실에서 다른 교사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 대충 다른 과목의 시험유형이나 내용에 대해서도 정보를 얻을 수가 있다.

 물론 그 교사가 학부모 입장에서 자신의 자녀가 눈에 보이는 내 학교에 다닌다면 신경쓸 일이 없어 좋겠지만 순수한 의미에서 이렇다 하더라도 이는 남들로부터 오해 살 일을 한 것이다. 참외밭에서 신발끈 고쳐매지말고, 배나무에서는 갓도 고쳐쓰지말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순수한 학부모의 의도에서 그랬다 하더라도 이는 충분히 오해 살 짓이었다.

 교사는 스승과 동의어이다. 물론 의미는 조금 다르다. 교사는 교육을 하는 사람이라는 말이고, 스승은 제자라는 단어와 연관되어 생각해볼 때 피교육자의 입장에서 교사를 존중해쓰는 단어이다. 하지만 교사가 스승인 것은 확실하다. 단지 관점의 차이일 뿐.

 서양에서나 동양에서나 스승은 위대하다. 그 자신이 대단한 무엇을 이루지 않더라도 그는 미래의 재목들을 키워내는 사람이다. 그에게 많은 학생들이 가르침을 받고 사회로 나아가 활동하게 되는 것이다. 스승이 잘못된 생각을 하면 그 스승의 아래에서 배우는 학생 또한 잘못된 길을 가기 쉽다. 스승은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그 스스로가 군자가 될 필요까지는 없지만 적어도 최소한의 규칙은 지키면서 살아야한다.

 그런 점에서 교사의 자녀 위장전입사건은 대단한 범죄라고 볼 수는 없지만 윤리성을 상실했다는 면에서 교사라는 직업의 존중도를 심하게 깎아내린 셈이 되었다. 비록 일부 교사의 일이라 할지라도 일부 교사를 통해 전체 교사의 명예가 실추된 셈이다.

 교사가 교단에서 권위가 서지 않는다면 학생들을 볼 낯도 없고, 학생들이 그를 따르지도 않는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학생들은 일방적으로 따르는 관계는 아니지만, 학생들의 교사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 교사-학생간의 관계는 회복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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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새 세상이 왜 이런가 싶다. 교사들이 비도덕적 행위로 연일 신문에 오르내리는가 싶더니 진짜 의사가 이젠 석, 박사학위를 돈으로 사서 자기 병원에 걸어놓는다고 한다.

 사실 의사되기 어렵다. 로또 수능에서 아무리 운이 좋다하더라도 의사가 되기 위한 점수를 맞기는 힘든 일이며, 좋은 점수 받아서 몇년 동안 공부만 해대야된다. 그냥 일반 다른 대학생들과는 다르다. 물론 개중에는 노는 의사지망생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의사지망생들은 공부를 죽어라 해대면서 수업을 따라가기 바쁠터다. 그렇게 해서 인턴이네 뭐네 거쳐서 정식의사가 된다.

 그런데 그 어려운 과정 다 거쳐서 의사된 이들이 학위가 아쉬워 대학에 돈주고 수업도 안나가고 시험도 안보고, 그냥 돈으로, 학위를 산다고 한다. 석사도 사고, 박사고 사고... 대학은 그저 좋다고 돈먹고.

 의사는 생명을 다루는 자들이다. 이비인후과나 안과, 성형외과, 치과가 된다고 하더라도 이들은 비록 생명에 지장을 주지는 않더라도 사람의 몸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위험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의사는 윤리적이어야 한다. 비윤리적인 의사는 사람의 몸을 놓고 사기를 치거나 흥정하는 꼴이 된다. 의사는 당연히 윤리의식이 투철해야하고 의사윤리강령(이런게 있다는건 알겠는데 명칭이 이러한지는 모르겠다)에 따라서 행동해야한다.

 의사라는 직업이 사회의 상당한 지위층에 있다는 의미에서도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을 적용해 윤리성을 강조해도 좋겠지만, 이 점을 떠나더라도 의사는 인간의 몸을 다루기 때문에 좀더 조심해야하고 윤리적이어야 한다. 환자는 의사를 믿고 자신의 몸을 맡기는 것이다. 의사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환자는 자신의 몸을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맡길 필요는 없을 것이다. 환자의 의사에 대한 신뢰가 전제되어 있다면, 의사는 당연히 윤리성이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의사가 석사, 박사 학위를 제대로 된 과정을 거치지 않고 돈주고 사서 자신의 병원 벽에 액자에 끼워 전시(?)해 놓는다면 이는 명백한 사기다. 환자는 이를 보고 더욱 의사를 신뢰하려 들 터이다. 그런데 의사는 환자에게 사기를 치고 있다. 학벌컴플렉스가 있고 권위를 세우고 싶다면 정식절차를 밟아서 석사, 박사학위를 따내라. 환자로부터 신뢰를 잃고, 윤리성이 전제되지 않은 의사는 더이상 의사가 아니다. 그냥 기술자다.

 사기치는 의사는 의사자격을 박탈해야한다. 간단한 눈속임으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의사에게는 좀더 강력한 윤리적 잣대가 적용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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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1-29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 손댈대가 한두군데여야죠 ㅠ.ㅠ

이잘코군 2005-01-29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배운 놈들이 더 하죠. 못 배운 사람들은 그렇게 할 거라도 없지.
 

 

 

 

 

 강철중이 돌아왔다. 그런데 강력계 꼴통 형사가 아니라 강력계 꼴통 검사로 업그레이드(?) 되어 돌아왔다. 여전히 그가 꼴통인건 사실이지만 예전과 같이 마냥 계획없는 꼴통이 아니라 너무나 정직하고 순수하고 정의감에 넘쳐서 '원칙'만을 고수하는 꼴통이다. 검사도 너무 원칙주의자면 주위 사람이 피곤하다.

 <공공의 적 2>를 보고난 감상은 전편만큼의 톡쏘는 듯한 유머감각은 없고 범죄단위는 더 커지고 대범해졌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적에게 분노를 느낄 수 있는 만큼은 아니었다. 죄목만으로 치자면야 정준호가 이성재보다 훨씬 심하지만, 이성재만큼의 악독한 면은 없었다는 말이다. 어쩌면 정준호라는 배우자체가 지금껏 너무나 순수하고 착하고 다정한 역할만을 해왔기에 그리고 그의 외모에서 풍겨지는 푸근함이 악독한 범죄자가 되기에는 부적합했는지도 모른다.

 오로지 감으로 믿고 기획수사를 하는 강철중 검사와 느낌으로 수사하는 그의 수사관들은 밤낮 할 것 없이 제대로 먹고 자지도 못하면서 수사를 강행한다. 이들에겐 오로지 나쁜 놈 때려잡는 것만이 다른 욕심을 대신하는 길이다. 그것도 '그냥 나쁜 놈'은 안된다. '공공의 적'을 잡아야한다. 겉으로는 사회 저명인사이면서 항상 웃고 다정한 사람이 속으로는 그만큼 독할 수가 없다. 아버지 살해 교사, 형 살해 교사, 청소부 살해, 거래자 폭행, 현직 검사 살인 미수, 검사 대신 수사관 살해 교사, 환치기 등 그의 범죄목록은 끝이 어디인지 안보인다. 순박한 검사 강철중은 오로지 그를 잡기 위해 목숨을 건다.

 영화 <공공의 적 2>의 또다른 매력은 <공공의 적 1>에서 나왔던 인물들이 고스란히 화면 속에 보인다는 것이다. 그의 상관이었던 형사반장은 부장검사로 태어났고, 1편에서 그를 졸졸 따라다녔던 두 양아치는 영화 마지막에 '그냥 나쁜놈'으로 다시 등장한다. 1편을 봤던 사람이라면 2편을 보면서 내가 아는 이들이 다시 나오는 재미 또한 느꼈을 것이다. 2편에서 부장검사로 태어난 강신일씨는 그의 본명을 따 영화 속에서도 김신일로 불리우며 전편보다 더 비중있는 역할을 한다.
 
 또 한가지 엄정화의 동생 엄태웅이 정준호의 수행비서로 나오는 것도 볼거리다. 그다지 대사도 별로 없는 역할이었지만 이 영화를 통해 톡톡히 관객에게 얼굴도장을 찍은 셈이다. 

 이 영화는 오늘날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고 있는 악독재벌과 정치권의 결탁을 보여주고, 부패에 찌든 검사와 함께 정의가 살아있는 검사를 함께 등장시킴으로써 아직 우리에겐 약자를 위한 '법'과 '정의'라는 것이 남아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은 힘겨운 현실을 살아가는 다수의 약자들에겐 힘이다. 이 영화가 짜릿한 쾌감을 전해주는 것은 바로 정의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다음달 사법고시를 볼 나의 친한 친구 재성이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그는 검사를 꿈꾸고 있다. 바로 강철중과 같은 정의사회를 구현하는 정의로운 검사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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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는 왜 힘이셀까 - 과학의 기묘한 세계 시리즈
하늘기획 / 달리 / 199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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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주 오래전에 구입한 책이다. 지금으로부터 딱 10년전 내가 중학교 다닐 때 샀던 책인데 그땐 참 책에 대한 관심은 있으면서도 내가 뭘 읽어야할지 몰랐었다. 아마도 이 책은 당시에 여름방학에 국어선생님들이 나눠준 추천 도서 중 하나였을 것이다. 지금은 절판됐다. 책장 구석에 처박혀있길래 오랫만에 다시 읽어봤다.

 <개미는 왜 힘이 셀까>라는 책은 순전히 개미가 왜 힘이 센지에 대해서만 말하지는 않는다. 단지 '개미는 왜 힘이 셀까'라는 제목은 이 책에 담긴 여러 글중 하나에 불과하다. 따라서 순전히 개미가 왜 힘이 센지가 알고 싶은 사람들은 굳이 이 책을 구입할 필요는 없다.

 개미는 왜 힘이 센가? 대답은 개미는 실제 힘이 세진 않다. 개별 개미들은 힘이 세지 않지만 다수의 개미가 모여 힘이 센것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다. 개미들은 팀을 짜서 물체를 균형있게 잡고 서로의 다리가 엉키지 않게 질서정연하게 이동한다. 즉 물체를 이동하는 개미들은 이들이 모여 마치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볼 때 개미는 힘이 세 보이는 것이다.

 이 책은 크게 '벌레들의 생활' '우리 주변의 신비' '미크로의 세계와 마이크로의 세계' '우주여행' '사람의 몸' '사랑과 성' '시간' '이상한 동물들'이라는 단위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단위에 한페이지 내지 두페이지 정도 분량의 간략한 글들이 딸려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사소한 궁금증에 대해 풀이해준다.

 이 책의 역자들은 첫페이지에서 자신들을 일컫길 '두고두고 서가에서 손길을 받는 책을 사랑하는 전문번역집단'이라 소개하고 있지만 이 책이 이미 절판된 것으로 미루어 봤을 때 이들의 소망은 단지 소망으로 끝났다고 봐야겠다. 사실 이 책은 그저 손쉽게 읽을거리에 불과했지 책이라 하기엔 뭣한 그다지 대단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은 책이다. 오늘날 이 책의 물음들은 인터넷이 대신해주고 있다. 네이버, 엠파스 지식검색을 이용한다면 이 책에 있는 우리의 궁금증을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절판된 것일까? 굳이 돈 주고 그 정보를 얻을 필요는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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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 철학 입문 - 탈레스에서 아리스토텔레스까지
W.K.C.거스리 지음, 박종현 옮김 / 서광사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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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랍철학입문>은 내가 경제학과에서 철학과로 전과를 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구입한 책이다. 당시 막 철학을 시작하는 나는 코플스톤의 <그리스 로마 철학사>와 함께 이 책을 읽었고-읽었다는 말은 순전히 학교 수업시간에만 읽었다는 말이다. 사실 졸업을 3주앞둔 마당에도 난 둘다 제대로 읽지 않았다- 그리스철학을 접한 접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희랍철학입문>은 제목 그대로 희랍철학에 들어서는 입문서로서 적당한 책이다. 저자 또한 이 책은 원래 고전 이외의 과목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저자가 강연한 것을 토대로 해서 재집필 한 것이라고 하였다.

저자는 거스리라는 사람으로 켐브리지 대학의 고대철학 교수였다고 한다. 그의 최대 저작인 6권으로 이루어진 「A History of Greek Philosophy」의 축약본이 이 책이라고 하는데, 그만큼 이 책이 희랍철학의 중점사안들을 요약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번역자 박종현 또한 우리나라에서 철학을 시작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으로 이미 플라톤의 <국가>라는 두꺼운 책을 번역한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다.

나는 이 책을 꼼꼼히 읽지는 않았다. 이미 학부시절 그리스 로마 철학을 너무 많이 접해-제대로 알지는 못하지만- 비슷한 문장과 내용을 반복해서 보는 것에 이력이 났고, 앞으로도 봐야하는데 짜증이 더해질까봐 속독했다.

그러나 이 이 책의 앞 부분 3장인 '운동의 문제'까지는 제대로 읽었다. 왜냐하면 1장에서 3장까지에 걸쳐서 철학에 자주 등장하는 헬라어가 소개되어 있으며, 간략하게 그 단어 하나하나들을 짚고 넘어가면서 뜻풀이를 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철학을 공부했다고 하나 그러한 기본적인 헬라어마저 머리에서 가물가물 거리고 있는 내가 한심스럽기도 하지만 나중에 다시 '가물가물' 거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 부분은 짚고 넘어갔다.

이 책의 장점은 그것이다. 철학의 아주 기본적인 논쟁거리와 기본적인 개념들을 짚어주고 있다는 것. 그러나 단점은 설명이 다소 장황하고 지나치게 세부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입문자들이 읽기에는 지루한 감도 없잖아 있다. 난 입문자라고 칠 수 없음에도 지루했다. 그래서 오래끌기전에 속독해버린 것이다.

참 한가지 더 말하자면, 이 책의 마지막에 붙어있는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지도는 철학사를 공부하며 나오는 지명들을 익숙하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본다. 어느 철학책에도 이런 지도는 나와있지 않았는데 참고하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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