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하게 세속적인 삶
복거일 지음 / KD Books(케이디북스) / 2006년 12월
품절


당연히, 우파 지식인들 사이의 논쟁들을 건전하게 만드는 일은 시급하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는 몇 가지 점들을 지켜야 할 것이다.
먼저, 우리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싸움에서 한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때로 논쟁의 상대방에게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짜증이 일더라도, 그들이 같은 편이고 그들과 심각하게 다투는 것은 진정한 적을 돕는 일임을 자신에게 일러야 한다.
다음엔, 우리는 모두 사회적 믿음과 정책적 견해에서 아주 동질적이라는 점을 잊지말아야 한다. 때로 차이가 부각되더라도, 그것이 크지도 중요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자신에게 일러서 지엽적 문제가 근본을 흔드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셋째, 우리는 논쟁을 믿음과 견해라는 비인격적 차원에서 진행해야 한다. 논쟁이 개인들의 행적이라는 인격적 차원에서 진행되면, 어쩔 수 없이 논쟁이 거칠어지고 당사자들 사이의 감정적 골은 깊어진다.
중요한 것은 믿음과 견해지 과거의 행적과 현재의 정치적 입지가 아니다. 이 점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깨우침을 줄 수 있는 것은 당의 고승 위산 스님의 말씀이다. 그의 제자 앙산 스님이 행실에 대해 묻자, 위산은 "자네 눈 바른 것만 귀하게 여길 따름, 자네 행실은 보려하지 않네"라고 대답했다. 믿음과 견해가 올바르다면, 행적과 입지에서의 사소한 차이들은 큰 장애가 될 수 없고 거기서 나오는 의견의 편차는 우호적 분위기 속에서 논의를 통해 좁혀질 수 있을 터이다.
넷째, 논쟁에선 되도록 표현을 부드럽게 하려고 애써야 한다. 논쟁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은 흔히 내용보다 표현이다. 체스터필드 백작이 말한대로 "상처는 모욕보다 훨씬 빨리 잊혀진다." 화가 났을 때 나오는 대로 쏘아붙이는 대신 화를 삭이고 나서 보다 부드러운 표현을 쓰는 일은 일반적으로 인식된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40-41쪽

세계성의 시대에선 민족주의적 편향이 든 역사 해석은 특히 큰 문제들을 부른다. 해외에 나갔을 때, 자신이 받은 민족주의적 교육과 세계 현실이 너무 달라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하는 시민들이 많다. 우리가 크게는 외교에서 작게는 외국인들과의 교류에서 서툰 까닭은 민족주의적 편향이 든 역사 해석도 큰 몫을 했다.
유난히 씁쓸한 반어는 우리 사회를 뒤덮은 민족주의적 태도가 실은 우리의 전통이 아니라 유럽의 전통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우리 선조들은 민족에 그리 집착하지 않았고 우리보다 훨씬 세계적이었다. 지금 우리가 받아들인 민족주의는 원래 근대 유럽에서 비롯했다. 유럽 문명이 다른 문명권들로 수출한 것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들은 기독교, 과학, 그리고 민족주의라 할 수 있는데, 그 셋 가운데 민족주의가 가장 성공적 수출품이었다.
우리 가운데 누구도 민족주의적 편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외세에 대한 저항"이 역사 해석의 중심적 가치가 된 역사 교육을 오래 받아왔으므로, 우리는 모두 알게 모르게 그런 기준에 따라 우리 역사를 바라보고 현실에 접근한다. 그런 편향된 판단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우리에게 이로울 수 없다. -50쪽

그래서 우리는 나름으로 삶의 설명서들을 열심히 찾는다. 그런 설명서로 쓸모가 큰 것이 문학이다. 특히 소설이 그렇다. 사람들의 삶에서 본질적인 부분들을 이야기로 꾸며 들려주므로, 소설은 삶의 본질과 살아가는 길에 대해서 성찰할 기회를 독자들에게 준다.
소설 작품들은 그럴 듯한 이야기들이다. 삶에 별다른 연관성이 없는 특수한 사실들을 버리고 삶의 본질에 연관된 것들만을 뽑아냈으므로, 소설 작품들은 일반적으로 인식된 것보다는 훨씬 큰 보편성을 지닌다. 신문 사회면에 나오는 현실이 소설 속의 현실보다 훨씬 특수하고 기괴하다. 사람들의 삶에 관해서 '보편적 진실'이라 불릴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이 많이 담긴 곳이 바로 소설이다.
사정이 그러하므로, 소설을 거짓말과 같은 뜻으로 쓰는 우리 사회의 관행은 참으로 불행하다. "소설을 쓴다"는 표현에 "거짓말을 지어낸다"는 뜻을 처음 담은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길 없지만, 그 말을 쓰는 사람들의 무지를 드러내고 우리 사회의 비속함을 상징한다. 근대 이후에서 가장 중요했던 예술 형식을 거짓말과 동의어로 만든 사회가 어떻게 건강하고 세련될 수 있겠는가?-52-53쪽

"자연은 우리에게 장점들을 주고, 우연은 그것들이 일하도록 한다"
"혼자서 현명해지려는 것은 크게 어리석은 일이다"
(라 로쉬푸코)

"그럴 수만 있다면 다른 사람들보다 현명해져라. 그러나 그들에게 그것을 말하지는 말아라."
(필립 체스터필드) -60-61쪽

"첫째, 신과 사람에 대해 너의 의무를 해야하니, 그것 없인은, 다른 모든 것들이 뜻이 없다; 둘째, 많은 지식을 얻어야 하니, 그것 없이는 비록 네가 매우 정직한 사람일지라도 매우 경멸 받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매우 좋은 태도를 지녀야 하니, 그것 없이는 비록 네가 정직하고 박식한 사람일지라도 매우 마음에 맞지 않고 불쾌한 사람이 될 것이다.'
(필립 체스터필드) -62쪽

만일 당신이 그런 행운을 누리지 못했다면, 착한 사람인 척 하는 것이 긴요하다. 세상은 위선을 좋게 여기지 않는다. 찬찬히 생각해보면, 위선이야 말로 칭찬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드러난다. 사람은 천사도 악마도 아니다. 누구도 천성이 온전히 착할 수는 없고,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빼놓으면, 천성이 온전히 악할 수 없다. 그래서 모두 크든 작든 위선적 행동을 통해서 사회 환경에 적응한다. 위선은 사람이 자신의 비열한 천성을 극복하려는 안타까운 노력이다. 자연히, 가장 인간적이고, 그런 뜻에서, 타고난 선보다 오히려 위대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착한 천성에서든 위선을 통해서든 착한 행동을 하게 되면, 사람의 마음이 실제로 조금씩 착해진다는 사실이다. 사람의 마음은 태어날 때 고착된 것이 아니라 학습을 통해서 다듬어지도록 되었다.-63쪽

"현명하게 세속적이어라, 세속적으로 현명하지 말고"
(콸스)-64쪽

상업활동을 통해서 사람은 돈을 많이 벌어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높일 수 있다. 아울러 물질적 가치를 창출해서 사회에 공헌한다. 이 점에서 상업활동은 본질적으로 위치재를 놓고 다투는 정치활동과 다르다. 모두 돈을 많이 벌면, 사회적 위치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도, 물질적 풍요의 절대적 수준은 높아지므로, 가치는 창출된다.
현대 사회가 빠르게 발전하고 그런 발전에서 기업가들이 그리도 큰 역할을 한 것은 상업 활동이 직접 위치재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물질적 가치를 창출하고 사회적 지위는 간접적으로 얻어진닫는 사실 때문이다. 반면에, 위치재를 직접 겨냥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얻는 과정에서 가치를 비교적 적게 창출한다. 번영한 사회에서 기업가들이 두드러진 역할을 하고 높은 사회적 지위를 누린다는 점은 우리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훌륭한 기업가들은 "현명하게 세속적"인 사람의 전형이다. 젊은이들이 기업가보다는 관료나 정치가를 선망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것은 모두가 깊이 새겨야 할 화두다. -66-67쪽

주목을 덜 받지만 정작 중요한 점은 외국의 기업가들은 자신들의 재산으로 자선을 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대주주로 지배하고 경영하는 기업들의 자산으로 자선을 하지 않는다. 이점에서 외국의 자선가들과 우리 자선가들이 뚜렷이 대비된다.
아무도, 지배적 주주들도 최고경영자들도, 기업의 자산을 자선에 쓸 도덕적 권위를 지닐 수 없다. 기업의 목적은 주주들을 위해서 이윤을 되도록, 즉 법과 도덕에 어긋나지 않는 방식으로, 많이 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윤은 주주들에게 배당이나 청산을 통해서 돌아가야 한다. 자선은 그렇게 투자에 대한 보상을 받은 주주들이 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자선만이 정당할 뿐 아니라 원래 자선의 뜻에 맞는다. 남의 돈으로 하는 자선은 어쩔 수 없이 자선의 뜻을 덜어낸다. 기업은 법인이다. 원래 인격을 갖춘 무엇이 아니지만, 인격을 지닌 것처럼 여기는 것이 사회적으로 좋으므로, 그렇게 법적으로 인격을 부여한 것이다. 따라서 법인은 마음이나 양심이 있을 수 없다. 마음도 양심도 없는 존재를 통해서 그리고 본질적으로 자신의 소유도 아닌 재산으로 이루어지는 자선이 과연 얼마나 깊은 뜻을 지닐 수 있겠는가? 자선은 남의 돈이 아니라 자신의 재산으로 해야 하는 점은 강조되어야 한다. -70쪽

그(프리드먼)는 자본주의 사회들에서만 자선이 나올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중앙 권력이 충분한 정보를 지니고 처리해서 사회의 움직임들을 다 통제하는 사회주의 사회들에선 개인들의 판단에 의한 자선은 들어설 틈이 원천적으로 없다. 만일 자선이나온다면, 그것은 계획이 틀려서 자원이 남는 개인들과 모자란 개인들이 나왔다는 사실을 뜻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사회들에선 자선이란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과 자본주의를 가장 충실히 따르는 미국에서 자선이 가장 왕성하다는 사실은 맥락이 통한다. 자선에 바쳐진 자원에서 가장 큰 성과를 얻기 위해서 현대 기업의 기법들과 기업가 정신을 결합하는 '자선자본주의'가 미국에서 출현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자선은 인간의 본성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고 사회와 문명을 발전시킨 원동력인 '상호적 이타주의'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그것을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포장하는 일은 더할 나위 없이 해롭다. -72쪽

좋은 참고서들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늘 지적 즐거움을 준다. 그리고 그것들을 잘 쓸 줄 아는 사람들에겐 뜻밖의 선물들도 준다. 그런 선물들 가운데 하나는 '스스로 좋은 물음을 던질 줄 아는 능력'이다.
입시 위주의 교육을 받은 터라, 우리 학생들은 모두 주어진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이 가장 중요한 지적 활동이라는 생각을 지녔다. 창조적 노력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주어진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능력이 아니라 스스로 물음을 던지는 능력이다. 풍요로운 결과를 약속하는 주제를 고르는 일에서부터 새로운 각도에서 문제를 살피는 일에 이르기까지, 창조적 노력의 모든 단계들을 떠받치는 것은 스스로 물음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이다. 자료들이 체계적으로 집적된 참고서들은 그런 물음들을 찾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107쪽

우리 교과서들을 열악하게 만든 직접적 원인은 교과서의 기능과 중요성에 대한 인식의 부족이다. 실제로 교과서에 대한 편견과 경멸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학자들이 드물지 않다. 좋은 책들을 뽑아 상을 주는 일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해보면, 심사기준이 아예 '교과서는 제외한다'는 조항이 들어간 경우도 있다.
교과서는 '어떤 주제의 원칙들과 어휘를 체계적으로 기술한 책'을 뜻한다. 따라서 교과서들은 그 사회의 '공식적 지식 체계'를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바로 거기에 교과서의 근본적 중요성이 있다. 공식적 지식 체계는 한 사회에 존재하는 가장 풍부하고 체계적인 지식 체계이며 사회의 구성과 움직임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고 효과적이다. 어떤 대체적 지식 체계도 공식적 지식 체계에 비길 만큼 풍부하고 체계적이지 못하다. 자연히, 좋은 교과서들이 존재하는 사회에선 시민들이 사회의 구성과 움직임을 잘 이해하게 된다.
교과서들은 또한 재발견의 위험을 줄인다. 이미 남들이 발견해서 잘 다듬어놓은 지식을 혼자 애써서 원시적 형태로 얻는 일처럼 딱한 일도 드물다. 지식의 발전과 축적이 점점 가속되는 지금, 재발견에서 나오는 개인적, 사회적 손실은 점점 커질 수 밖에 없다. 재발견을 피하려면, 지식이 뻗어나가는 맨 앞쪽으로 가장 빨리 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 일에서 교과서는 가자 좋은 길잡이다. -113-114쪽

어쩔 수 없이 나는 복원 사업의 득실을 마음 속으로 헤아렸다. 복원에 든 비용은 작지 않을 터였다. 느닷없이 집과 생계를 잃은 가족들의 손해라는, 보이지 않는 비용은 더 클 터였다. 반면에, 얻은 것은 분명치 않았다. 실은 무엇을 얻은 것이 아니라 절터의 폐허를 그냥 잃어버린 것이었다.
폐허는 폐허 다워야 한다. 폐허마다 세월의 손길에 다듬어진 나름의 모습이 있어서 찾는 사람들에게 그 세월을 얘기해준다. 그래서 폐허다움은 폐허의 자산이다. 그것을 큰 돈을 들여 걷어내다니.
사람의 몸과는 달리, 폐허는 성형 수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젊음을 찾지만, 문화재들은 나이들었다는 점이 바로 본질적 자산이다. 지금 우리는 '문화재 복원'이란 이름 아래 이루어지는 폐허의 파괴에 너무 무심한 것은 아닌지. -134쪽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은 얼마나 하찮은가. 그러나 내가 그것들을 해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볼테르) -193쪽

사람은 천성적으로 마약을 찾게 되어 있고 아주 오래 전부터 갖가지 마약들을 써왔다. 그래서 동서고금의 거의 모든 인류 사회들은 몇가지 마약들을 허용해왔다. 그렇게 허용된 마약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물론 알코올이다. 니코틴과 카페인도 대부분의 사회들에서 허용된 마약들이다. 비록 이제 니코틴은 점점 괄시를 받지만.
일반적으로, 알코올, 니코틴, 그리고 카페인을 포함하는 술, 담배, 커피, 차 같은 것들은 마약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취급은 사회적 이유 때문이지 화학적 기준 때문은 아니다. 그런 마약들이 허용되는 것은 그것들을 사용하는 관행이 이미 사회 조직 속으로 깊이 들어가 있고 사회가 그것들의 사용에 대처하는 길을 어느 정도 알기 때문이지, 그것들의 영향이나 해독이 다른 마약들에 비해 작기 때문이 아니다. -214쪽

세상이 어지러우면, 보통 사람들의 일상도 힘든 판단들의 연속이 된다. 도덕과 규칙의 필요와 정당성을 부인할 사람은 드물 터이지만, 다른 사람들의 도덕과 규칙을 가볍게 어기는 상황에선, 혼자 그것들을 지키는 것은 짐이 되고 때로는 손해가 된다. 그래서 여느 때라면 무심히 내릴 일상적 결정들이 힘든 도덕적 판단을 거치게 된다.
여기 실린 글들 밑에 자리 잡은 전언이 있다면, 그것은 도덕과 규칙을 지키는 것이 어기는 것보다 낫다는 얘기다. 적어도, 옛 말씀에 있듯이, 도덕적 삶은 자체로 보답이다. 이 말은 부도덕한 삶에 대해선 할 수 없다.
[...] 사람은 자연선택의 효율적 손길에 의해 다듬어진 '도덕적 동물'이다.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는 대신 남을 속이는 사람들은 도덕적인 사람들보다 삶에서 얻는 것이 적었고 그래서 밀려났다. 우리는 모두 상당히 도덕적이었던 사람들의 후손이다. 자연히, 도덕적 삶은 우리에게 유리할 뿐 아니라 우리의 천성을 충족시켜서 깊은 즐거움을 준다.
비록 짧고 가벼운 글들이지만, 여기 실린 글들엔 그런 생각이 스며있다. 책 제목이 가리키는 것처럼, '세속적으로 현명한' 것보다는 '현명하게 세속적인' 것이 삶의 본질에 맞다. 지금 우리 사회는 아주 어지럽다. 그래도 나는 '현명하게 세속적인' 태도가 적응적이라고 독자들에게 얘기하고 싶다. (후기에서)
-222-2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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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7-01-28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복거일아저씨한테 꽂혔군요. ^^

이잘코군 2007-01-28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네. 아직 한 권 더 있습니다. 안읽은거. 다른건 새로 구입해야하고요. 이 책 괜찮군요. 복거일에 대해 개인적인 관심이 없어도 괜찮은 책입니다.
 



* 스포일러 경고

  아 정말 포스터 야하다. 누가 다 벗고 나온 것도 아니지만 세 자매가 한 남자를 두고 하나는 뒤에서 껴안고 하나는 풀어헤친 가슴 사이로 손 집어넣고 또 하나는 그의 아래에서 관능적인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 누구나 비밀은 있다. 나도 비밀이 있다. 그러나 비밀은 비밀일 때에만 의미가 있다. 나의 입을 통해 누군가의 귀로 전달된 비밀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비밀은 나만이 알고 있다.  



   - 재즈바에서 노래를 부르는 재즈보컬리스트 미영은 자유연애주의자이다. 그녀는 매달리는 남자 싫고, 돈 많고 부티도 좀 나고 잘생기고 튕기는 남자를 좋아한다. 오늘도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며 어디 잘 생기고 뽀대 좀 나는 남자 없나 물색하고 있다. 에이 오늘은 영 꽝인데. 어 가만가만 지금 들어오는 저 남자 좋은데? 저 주문하시겠어요? 남자가 이럴 때 데낄라 한잔 딱 주문해야지. 저 데낄라 주세요. 네? 좋아 감이 좋아. 제 전화번호에요. 오빤 내 남자야.

 

 "사랑은 원래 벼락처럼 다가와 안개처럼 사라지는 것"

  - 나는 대학원생이다. 국문학을 전공하는. 책이 좋아 책 속에 파묻혀 사는 삶이 좋으며, 시를 읽고 시를 논하는 그럼 남자를 만나고 싶다. 잘생겼으면서 지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런 남자라면 오케이다. 그런데 내 주변엔 그런 남자가 없다. 그런 남자가 언니 주변에 왜 있어. 좀 남자를 찾으려면 돌아다녀야지 집구석에서 책만 보고 있는데 남자가 어디서 나타나?! 아니야 사랑은 벼락처럼 도둑처럼 갑자기 찾아오는거야. 그런게 바로 사랑이야. 나에게 벼락처럼 사랑이 다가왔어요. 동생의 그 남자가.  근데... 섹스는 어떻게 하는거죠? 막내동생 방에서 몰래 비디오를 가져와서 봐야겠어요. 책도 보면서 연구도 좀 하고요.



"세상에 사랑하고 좋아하는 두 가지 감정 뿐이라고 생각하세요?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단걸 몰라요?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지요. 지금 내 마음이 어떤가가 더 중요한거 아닌가요. 나중에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아닌."

  -  아휴 배만 잔뜩 뿔룩 튀어나와가지구는 쇼파에 드러누워 킁킁 코를 골고 씻지도 않아 냄새나고 입에는 먹다남은 안주거리 묻혀놓고 자는 저 남자 내 남편입니다. 내 남편은 나보고 가족끼리 섹스를 어떻게 하느냐고 그럽니다. 그래 너같은 남자랑은 섹스하고픈 마음도 안생긴다. 저러고 있는데 어떻게 섹스할 생각이 드니. 뭐 결혼이 다 그런거죠. 그렇게 그렇게 살고 그러다 늙고 가는거죠. 결혼이 별건가요. 나는 나보다 내 남편과 내 아이를 지키고 보살피는 것이 좋습니다. 여기에 만족하렵니다. 그런데 귀엽다 이 남자. 나보고 이쁘댄다.

- 이제부터 저는 그들의 마음 속에 잊지 못할 비밀 한 가지씩을 만들어줄거에요. 미영이? 좋아해요. 사랑스럽고 이쁘고 귀엽잖아요. 애교도 많고 몸매도 이쁘고. 하지만 미영이 언니 선영이도 매력적이에요. 아무 것도 모르는 처녀인데다가 한번 당겨주면 그냥 다가올거 같아요. 이런 여자 쉽죠. 하지만 순수한 매력이 있어요. 아 미영이의 결혼한 첫째 언니 진영씨요? 진영씨 이쁘죠. 사랑받고 싶어하는 여자에요. 사랑에 굶주렸어요. 남편과 아이에게 시달리며 자신의 사랑을 잊어버린거죠. 이런 여자요 쉬워요. 몇마디 칭찬과 위로면 충분히 넘어오거든요. 거봐요. 벌써 제 위에 올라와있잖아요.

   <누구나 비밀은 있다>는 비밀에 관한 영화다. 사랑에 관한 영화다. 사랑의 비밀에 관한 영화다. 내 친구의 애인을 좋아해본 적이 있나요. 애인이 있는 줄 알면서 접근해본 적 있나요. 짝사랑하는데 말도 못하고 혼자 마음 졸이며 삭히고 있지는 않나요. 결혼한 여자인데 나의 첫사랑인데 왜 아직도 포기못하고 마음 속에 간직하는걸까요? 사랑에 관해선 무수히 많은 비밀들이 가능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어쩌면 드러내지 않은 자기만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불륜이건 사랑이건 아니면 하룻밤의 쾌락이었건 어떤 식으로 이름붙이건간에 모두 비밀이다. 쉿.  

  <누구나 비밀이 있다>는 자유롭고, 도발적이고, 권태감을 느끼는 각각의 세 여자들이 '이상적인 너무나 이상적인' 한 남자와 느끼는 사랑(?)의 감정에 대해 말한다. 영화는 사람들이 지겨운 일상생활로부터 벗어나고픈 욕망을 대리만족시켜주는 리얼리티 티비 프로그램과 같다. 머리 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그런 생각들을, 때로는 섹시한 여자, 때로는 지적인 여자, 때로는 누군가의 소유물이 된 것만 같은 여자를 골고루 사귀어보고픈 남자들의 욕망을 자극한다. 또 여자들 역시 마음에 들지만 내 동생 혹은 내 친구의 애인인 그를 내 남자로 만들고 싶은데 도리상 그리 할 수는 없고 감추어진 속마음을 영화를 통해 투영하고 바라보며 대리만족한다. 그러나 영화가 끝난 뒤 영화 속 수영에 의한 세 여자와의 치정극은 더 이상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인걸 알기에 그만 우리의 꿈으로부터 '깨몽'한다.

  누구나 비밀을 안고 살고, 그것이 사랑에 관한 것이라면 더더욱 사람들은 마음 속에 겹겹이 꼭꼭 싸매고 감추려든다. 그 비밀을 말하는 순간 나는 누군가로부터 머리 쥐어 뜯길 수도 있으며, 유치장에 들어갈수도 있으며, 직장에서 쫓겨날 수도 있으며, 친구와 절교를 해야할 수도 있으며, 또다른 차원에서 사랑하는 이들을 버리고 떠나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밀이 나중에라도 발각될 우려가 있다면, 그것이 두렵다면, 비밀이 더 이상 비밀이 아닐 때의 사태가 무섭다면, 어쩌면 비밀을 살짝 내놓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비밀이 더 이상 비밀이 아닐 때 일어날 사태를 내가 감당하지 못한다면 말이다. 비밀을 간직할 자신이 없다면 솔직한 것도 한 가지 방법일 수 있다. 다만 이 또한 비밀을 털어놓았을 때 상대방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의 것이어야 한다. 때로는 비밀보다는 솔직함이 상대방에게 한 발 더 다가서는 계기가 되기도 하니까. (영화 속에서와 같은 비밀은 털어놓으면 복구불능의 사태를 불러오긴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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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1-28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나름 좋아해요. 이병헌의 매력이 잘 풍겼던 영화 같아요. ^^
요즘 나온 영화에선 좀 덜하더군요.

이잘코군 2007-01-28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괜찮게 봤습니다. ^^ 각기 다른 세 여자의 연애관과 처지도 재밌고, 중간에서 그들 사이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이병헌의 매력도 돋보이고요.
 



* 스포일러 경고

  대개의 미래사회를 그린 영화들이 그렇듯 에디슨 시티 또한 범죄율 0%를 자랑하는 미국 최고의 살기 좋은 도시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는 범죄를 미리 예상하는 집단이 있었더랬고, <이퀼리브리엄>에서는 사람들에게 감정을 없애는 약을 주입함으로써 평화를 달성했고, <브이 포 벤데타>에서는 국가의 주도 하에 모든 역사와 사건이 조작되고, 이들의 공권력으로 시민들을 통제하는 모습을 보여줬더랬다. 그 외에도 미래 사회를 그린 영화들이야 수도 없이 많지만, 또 앞서 언급한 어떤 영화는 평화로운 미래사회보다는 통제받는 미래사회에 촛점이 맞추어졌다고 하지만, 대개의 미래사회를 그린 영화들은 평화롭다. 오늘날과 같은 범죄가 난무(?)하는 사회는 예상할 수 없다.  



* 영화에서 가장 무자비한 요원으로 나왔다. 인정머리라곤 조금도 없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가지쳐야 한다는  사고방식. 심리적인 불안감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그가 저지른 행위의 결과로 인해 죽음을 맞는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느니.

  범죄율 0%의 사회를 평화로운 사회라고 볼 수 있을 때 '에디슨 시티'는 매우 평화롭다.  영화 <에디슨 시티>의 범죄율 0%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F.R.A.T는 워낙 영화 속에서 순식간에 지나갔던지라 무엇의 약자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비밀경찰조직과 같은 것이다. 이들이 무엇을 하는지, 이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극비다. 그들은 범죄가 일어나는 곳이면 어디든 출동하고, 어떤 방식을 사용하여 현장을 제압하는가 하는 것은 순전히 그들에게 달려있다. 야구방망이를 쓰고 싶다면 쓰는 거고, 총을 사용하고 싶다면 총을 사용하는거고, 그냥 주먹으로 해결하고 싶다면 주먹을 사용하는거다. 사건을 어떤 식으로 어떻게 해결하는가 하는 것은 현장에 출동한 비밀경찰 프랫 각각의 개인들에게 달려있다.

  어느날 프랫이 연루된 살인사건이 재판에 회부되고, 이 지역신문 신참기자 폴락은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는 낌새를 챈다. 신문사 편집장인 애쉬에게 도움을 청해보지만 애쉬는 공권력에 다가가서는 안된다고 충고한다. 그저 추측으로 일관한 기사는 기사가 아니라 소설이라며 정말 기사다운 기사를 쓰고 싶다면 취재를 하라고 한다. 현장을 발로 뛰며. 애쉬의 조언으로 현장 취재를 하던 폴락은 슬슬 잊혀지던 사건의 진실에 다가서게 되고, 그 와중에 여자친구와 함께 길거리에서 딱 죽지 않을 만큼 폭행을 당한다. 주먹 몇 방에 이렇게 만들 수 있는건 그들 뿐이다. 여자친구는 혼수상태로, 자신은 위험을 피해 지역 검사의 버려진 시골집으로 가지만 역시 안전하지 않다.



* 헐리우드 최고 관록의 배우와 헐리우드 초짜 배우의 만남.  정말 화려한 출연진이다. 모건 프리먼. <쇼생크 탈출>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부터 <딥 임팩트> <하이크라임> <블루스 올마이티> <드림캐쳐> <더독>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이 배우가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건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였다. 주연이라 할 수는 없지만 주연 못지 않게 비중있는 역할을 맡았더랬다. 늙은 체육관장과 나이든 여자 복서와의 매개 역할이랄까. 두 배우도 멋있었지만 나에겐 모건 프리먼이 더 멋있게 보였다.

* 오른쪽엔 2000년 빌보드 선정 최고의 그룹이라던 '엔싱크'의 리드보컬 저스틴 팀버레이크. 그는 이후 솔로활동으로 자신의 입지를 굳혔지만, 여자친구인 카메론 디아즈의 영향으로(지금도 사귀고 있는지는 나도 의문) 영화계에도 눈독들이다가 <에디슨 시티>로 화려한 신고식을 마쳤다.  영화에선 뭐 저런 별 배우같지도 않은 (헐리우드 남자배우들은 잘생겨야한다는 편견은 버려) 애가 나왔담 했는데 그가 저스틴 팀버레이크라니. 근데 정말 볼품 없게 생겼다.

  진실은 캐면 캘수록 점점 커다란 몸체를 드러내고 진실을 캐는 폴락의 목숨은 더 위험해진다. 사건의 증인이 교도소에서 살해당했으니 이제 증거라고는 없다. 하지만 비밀경찰 프랫에 몸담은 이 중 그들의 행태에 동조하지 못하고 양심의 가책을 받는 이가 있었다. 폴락은 그와 비밀스럽게 접촉을 해 프랫을 쓰러뜨릴 자료를 받게 되지만 프랫은 이를 눈치채고 두 사람 모두 사지로 몰아넣기 시작한다. 신체 180센티 이상, 90킬로그램 이상, 모두 미혼에, 사격명중율 100%를 자랑하는 이들에게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기존의 영화 속에서, 언뜻 보기엔 평화로운 미래사회는 그 안에 항상 겉으로 보이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 있었다. <에디슨 시티>의 평화는 프랫이란 비밀경찰의 무자비함 때문이었으며, 사람들은 그들이 무서워서 피했던 것이지, 각각의 사람들의 자발적인 동의와 공감을 얻어 평화가 달성된 것이 아니었다. 평화는 자발적으로 달성될 수 없는 것일까. 한 사회와 국가를 비롯한 공동체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의 자발적 동의와 공감을 얻어 달성된 평화는 유토피아일 것이다. 말 그대로 이상향일 것이다. 인간이 모두 악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일까. 아니면 인간은 원래 선하게 태어났는데 사회와 환경의 영향으로 악하게 변한 것일까. 성악설이든 성선설이든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확실한 것은, 모든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 평화가 달성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평화를 원한다고 하지만, 정말 그들은 순도 100%의 평화를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원하고 원하지 않고의 차원이 아니라 감당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원에서 본다면 말이다.

  영화 <에디슨 시티>의 그 동일 이름의 도시 또한 평화로운 사회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범죄율 0%와 동의어로 사용했을 때의 평화이지 순도 100%의 평화는 아닐 것이다. 범죄는 없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프랫이란 비밀경찰을 두려워하며 벌벌떨고 프랫은 여자와 마약과 무기와 돈을 끼고 자신들이 하고싶은 대로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범죄율 0%는 달성되었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거리의 폭력과 무자비한 살해는 남아있다. 단지 그것이 '범죄자'라 지칭된 이들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프랫'이란 국가공권력인 비밀경찰에 의해서 이루어질 뿐. 행위의 주체는 달라졌을지 모르나 행위의 현실은 변함이 없다. 이렇게 본다면 맨 처음 '범죄율 0%' 와 '평화'를 동일시 했던 명제는 깨져버린다. 진실된 의미의 평화는 사람들 개개인의 자발적 의지로부터 나와야 할테지만 이를 기대한다는 것은 너무나 막연하고 희망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외관상의 평화를 위해 국가에 의해 또다른 폭력이 자행된다면 이는 또다른 불필요한 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폭력에 의한 폭력의 방지'를 통한 평화는 더 이상 평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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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1-28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스틴이 나온다는 것 자체만으로 관심대상에서 제외된 영화였던 기억이 납니다.
아쉽죠 모건 프리먼에 거기다가 케빈스페이시 까지 나왔는데...^^
하지만 무엇보다도..저 배우들 얼굴 4명 들이댄(?) 전형적인 포스터가 가장 거슬렸어요..^^

이잘코군 2007-01-28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생각보다 괜찮은 영화입니다. 저스틴은 저도 눈에 거슬렸지만 - 그가 저스틴 이라는걸 모르고 본 동안에도 - 모건 프리먼을 보는 맛으로 즐겼습니다. 영화 스토리도 흥미롭습니다.
 



* 스포일러 경고

  "내 얘기를 들어줘"가 뭐냐. 너무 식상하잖아. 이 영화는 전형적인 전설의 고향 코드를 답습하고 있으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다만 조선시대 외딴 산골마을이 현대적 도시와 바닷가 갯벌 마을로 둔갑했을 뿐. 굳이 범인을 예상하지 않고 봤기 때문에 - 범인이 누군지 짚어낼라면 찾을 수도 있겠지만 영화의 재미를 떨어뜨리는 작업이니 웬만하면 하지 않는다 - 영화의 흐름에 몸을 맡겨 관람했지만 뻔히 들여다보였다.  '일반적인' 공포영화라면 어김없이 사건의 단초가 되는 '의문의 연쇄 살인 사건'(아 이런 단어만 들어도 이제 다 보여) 그리고 사라진 한 소녀. 그럼 뻔한거잖아. 한 소녀가 원한을 품었고, 그녀를 괴롭힌 남자들(왜 항상 남자가 되어야 하지, 이제 여자로 바꿀 때도 됐는데)을 찾아다니며 복수를 하는거 아니겠어.



* 솔직히 송윤아 때문에 봤다. 나오는 영화마다 족족 별로 아니었지만 배우 송윤아를 좋아하기에. 그녀가 나왔던 영화 중 제일 나은 선택은 <사랑을 놓치다>이다. 다른 영화들은 영 꽝이다. 그녀의 연기가 영 꽝이라는 것이 아니라 영화 자체가 영 꽝이다. 요새 작품활동 안하는거 같은데 뭐하고 지내나 궁금하네. 

  죽은 세명의 피해자는 확인 결과 컴퓨터로 같은 메일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그렇담 수수께끼는 메일 안에 있을 것이고, 메일을 살펴보니 웬 이쁘장한 소녀의 홈페이지가 뜨더라. 근데 확인해보니 죽었더라. 그렇담 죽은 소녀가 이들에게 복수를 하는거네. 그녀가 살았던 강원도 바닷가 마을로 떠난 소영은 그곳에서 이상한 소문을 듣고, 사건을 슬슬 풀어나간다.

  돌아온 소영은 갑자기 첫번째 희생자의 집 마당에 묻어둔 검은개의 시체를 끄집어내어 배를 쑤시고 안에서 뭔가를 찾아낸다. 그리고 이 물건은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왜 소영이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나서 죽은 개의 배를 쑤시고 물건을 빼내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의 행동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영화는 이런 식이다. 하나의 행동과 행동 사이에는 행동하기 위한 어떤 원인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다. 되는대로 가다가 사건의 중요한 증거를 잡아내는 식이다. 예상된 최종 희생자가 죽는 순간 이들이 도착한 것 하며, 이들이 왜 별 다른 이유도 없이, 그 먼 곳까지 동민을 찾아갔는지,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아무 것도 연결되지 않는다.



* 영 연기가 어설퍼. 이동욱. 그래도 2000년부터 꾸준히 한편씩 모습을 드러내고는 있는데 아직 멀었다 싶다. 벌써 7년째인데 이제 좀 나아질 때도 되지 않았을까. 아직 그에겐 작품 속 캐릭터 분석에 대한 시각이 부족한 듯 하다. 자신이 맡은 배역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고민이야 말로 좋은 연기를 펼칠 수 있는 기초가 될텐데. 이 영화에서 상당히 중요한 배역을 맡았음에도 두드러지지 못했다. 화면만 가득 채웠지 화면을 압도하는 무언가가 부족하다.

  감독은 신인이지만 이전에 단편영화나 기타 등등의 경력이 꽤 화려한 사람이던데 왜 이런 생각들을 못했을까.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보더라도 그냥 보이는 이런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문제들을 왜 해결하지 않고 영화를 그대로 내보냈을까. 함께 있는 스태프나 배우들에게 모니터링만 해봐도 보이는 이런 가벼운 문제들을. 그랬다면 뻔하디 뻔한 공포영화라 할지라도 그냥 그러려니 할텐데 하나의 완성된 영화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짜임새가 없다. 공포영화는 예상치 못한 장치가 많이 등장할수록 기발할수록 재밌어지는데 너무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들 투성이였다. 관객과의 머리싸움에서 감독은 철저히 졌다. '전설의 고향'이 그리운 사람은 이 영화를 추천한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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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랑 2007-01-26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요즘 송윤아 주말 드라마 '누나' 라는데 얼굴 나오던데요 ^^;;;

이잘코군 2007-01-26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그래요? 제가 드라마를 잘 안봐서. 요새 주몽만 보고 있는데;;; ^^
 

* 스포일러 경고

                                               - 1 - 

  이 영화는 실제 1997년 2월 28일 단 44분 동안 미국 LA 지역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영화로 제작한 것이다. 이 사실을 모른 채 영화를 본다면, 그저 심심풀이 시간죽이기용 화려한 액션영화에 지나지 않을테지만, 그것이 사실임을 깨우친 순간 더 이상 영화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는 실제 현장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한다. 덜 축소하지도 않고, 더 과장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고 한다.



* 범인들이 몸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놓고 총격을 가한 것은 순전히 그들의 신체를 둘러싸고 있는 두겹의 방탄복 때문이었다. 영화 속에서 이들은 아무리 총을 맞아도 끄덕도 하지 않고 버텨낼 수 있었다.

  사건이 일어나기 2년전 범인들은 불법 무기 소지되로 불심 검문 중 체포되었고, 이들이 그보다 4년전쯤 발생한 은행 강도 사건의 용의자로 떠올랐으나 별다른 증거를 찾지 못해, 그저 불법무기소지죄 6개월을 살고 풀려났다. 더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들이 변호사 선임료를 낼 돈이 없다고 하자 압수했던 무기를 돌려줘 팔도록 했다는 것이다. 무기를 팔기는커녕 그들은 무기를 고스란히 돌려받고 2년 뒤 美 LA를 지옥으로 만들었다.

  사건의 주역인 래리와 에밀은 자동화기 AK소총을 들고 은행으로 침입 곧장 총을 난사한다. 밖에서 산책하다 현장을 목격한 시민은 경찰에 신고하고, 은행 안에 있던 사람들은 언제 죽을까 몰라 벌벌떨고 있다. 근처를 순찰하던 경찰이 은행으로 모이고, 도움을 요청, 시간이 흐르며 200여명의 LA 경찰들이 몰렸다. 날씨를 생중계하고 있던 하늘위의 헬리콥터는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깨닫고 현장을  티비로 생중계하기 시작한다. 



* AK자동소총이다. 이 소총은 작은 몸체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이를 능가하는 마땅한 화기가 없다고 한다. 구 소련에서 만든 것으로, 동구유럽을 비롯 여러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널리 사용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이들은 이 화력을 배가시키기 위해 개조를 했고, 탄창도 70-100발 정도가 들어가는 둥근드럼통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래야 난사할 수 있으니까.

  수많은 경찰이 은행 주변을 둘러쌌으나 은행강도들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돈을 챙겨들고 나와 경찰들을 향해 AK를 난사한다. 고작 권총과 38구경 리볼버만을 가지고 있던 경찰은 그 숫자가 범인의 100배에 달하지만 그들을 제압하기엔 화기에서 기량이 떨어진다. 몸통은 물론이거니와 팔과 다리에까지 방탄조끼를 에워싼 범인은 - 게다가 그들은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실제 현장에선 하이바까지 걸쳤다는 이야기가 있다 -  순식간에 시민과 경찰 수십명에게 부상을 입힌다. 다행히 이날 죽은 사람은 없었지만, 엄밀히 범인 둘이 죽었다, AK자동소총을 개조하여 회전력을 높인 이들의 무기는 경찰차와 담장까지도 관통하며 화력을 과시했다. 



                                                - 2 -

 

   다큐형식의 이 영화를 보면서, 아 이런 일도 가능하구나 싶다. 우리가 영화에서 봐왔던 그런 장면들은 더 이상 영화 속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범인은 은행에 들어갈 때도, 경찰들이 잔뜩 몰려있는 상황에서 티비로 생중계 되는 시점에서도, 절대 동요하지 않고 아주 일상적인 행동을 취했다. 흐느적흐느적 걸어나와 경찰을 향해 총을 난사하고, 다시 들어갔다 돈을 가지고 나와서 차에 싣고, 그리고 현장을 잽싸게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동네 산책하듯 걸어나갔다. 아 이게 어떻게 가능하느냐 말이다. 만약 범인들이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고 잽싸게 차에 올라타 현장을 빠져나갔다면 어땠을까. 여전히 헬리콥터가 뒤를 따르며 생중계를 할 것이고, 경찰차가 뒤를 쫓겠지만, 사건현장은 LA에서 미국의 다른 주까지 확대되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사망자가 속출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영화와 현실이 구분되지 않을 만큼의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미국에선 쉽게 총기를 소지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영화에서 경찰은 권총과 리볼버만으로 대항할 수 없게 되자, 근거 총포상에 가서 온갖 화기를 다 구입해서 가지고 온다. 덕분에 총포상은 연매출을 하루에 다 달성했겠지만 신분이 확실하다면 누구나 총기를 소지할 수 있다는 규정은 그날의 공포의 44분을 만든 주인공이다. 자신의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총기를 소지한다는 규정은 일견 설득력있지만 우발적인 사고와 계획적인 살인에 그만큼 쉽게 노출되어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말이 좋아 나와 내 가족을 보호하는 것이지, 이건 누구나 마음 먹으면 타인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칼이나 도끼를 드는 것보다 총알 한 발 발사하는 것이 더 결행하기도 쉽지 않겠는가. 내가 가까이에서 피 묻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한방이면 끝나는 건데. 한 가지 더. 이들이 불법무기를 소지한 죄로 6개월을 살고 나왔으나 변호사 선임료가 없다고 해서 압수했던 총기를 돌려주는 법원은 뭐하자는건지. 그건 '압수'이지 국가가 '빌린 것'이 아니지 않은가.

  이 사건 이후 미국은 총기소지 규정을 엄격히 하기보다는 범인들에게 대항할 수 없었던 부실한 LA경찰서의 화기를 탓하며, 이들에게도 자동소총을 소지할 수 있도록 했다지. 그렇담 이제 아무 문제 없을까. 미국도 알 것이다. LA경찰서의 무기를 몇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음에 나타날 미래의 범인들은 이제 자동소총을 넘어선 무언가를 가지고 나올테니까. 그럼 그 다음엔 어떻게 할건데. 전장에서나 쓰이는 기관총을 들고 다닐 것인가.

    실제현장에서 한참 부실한 무기로 두 명의 범인에 대항하던 200여명의 경찰은 모두 각자가 그들의 임무에 충실했다. 사건 이후 한 경관의 인터뷰대로 단 한 사람도 현장에서 도망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공포가 엄습한 순간 이를 피하지 않았고 이에 맞섰으며 그들과 싸웠다. 시민과 언론은 이 점을 높이샀으며, 지나가는 개 보듯했던 경찰들에 대한 그들의 대우는 확실히 달라졌다. 편지, 꽃, 플랜카드 등이 경찰서로 도착했고,  LA 경찰은 한 순간 영웅이 되었다. 이 영화는 아마도 일반 은행 강도 사건과 다른 범인들의 특이성도 한 몫 했겠지만, 자랑스런 LA 경찰을 보여주기 위한 또다른 애국주의 영화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경찰 홍보 영화로 지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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