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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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는 실제 1997년 2월 28일 단 44분 동안 미국 LA 지역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영화로 제작한 것이다. 이 사실을 모른 채 영화를 본다면, 그저 심심풀이 시간죽이기용 화려한 액션영화에 지나지 않을테지만, 그것이 사실임을 깨우친 순간 더 이상 영화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는 실제 현장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한다. 덜 축소하지도 않고, 더 과장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고 한다.



* 범인들이 몸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놓고 총격을 가한 것은 순전히 그들의 신체를 둘러싸고 있는 두겹의 방탄복 때문이었다. 영화 속에서 이들은 아무리 총을 맞아도 끄덕도 하지 않고 버텨낼 수 있었다.

  사건이 일어나기 2년전 범인들은 불법 무기 소지되로 불심 검문 중 체포되었고, 이들이 그보다 4년전쯤 발생한 은행 강도 사건의 용의자로 떠올랐으나 별다른 증거를 찾지 못해, 그저 불법무기소지죄 6개월을 살고 풀려났다. 더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들이 변호사 선임료를 낼 돈이 없다고 하자 압수했던 무기를 돌려줘 팔도록 했다는 것이다. 무기를 팔기는커녕 그들은 무기를 고스란히 돌려받고 2년 뒤 美 LA를 지옥으로 만들었다.

  사건의 주역인 래리와 에밀은 자동화기 AK소총을 들고 은행으로 침입 곧장 총을 난사한다. 밖에서 산책하다 현장을 목격한 시민은 경찰에 신고하고, 은행 안에 있던 사람들은 언제 죽을까 몰라 벌벌떨고 있다. 근처를 순찰하던 경찰이 은행으로 모이고, 도움을 요청, 시간이 흐르며 200여명의 LA 경찰들이 몰렸다. 날씨를 생중계하고 있던 하늘위의 헬리콥터는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깨닫고 현장을  티비로 생중계하기 시작한다. 



* AK자동소총이다. 이 소총은 작은 몸체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이를 능가하는 마땅한 화기가 없다고 한다. 구 소련에서 만든 것으로, 동구유럽을 비롯 여러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널리 사용되었다고 한다. 실제로 이들은 이 화력을 배가시키기 위해 개조를 했고, 탄창도 70-100발 정도가 들어가는 둥근드럼통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래야 난사할 수 있으니까.

  수많은 경찰이 은행 주변을 둘러쌌으나 은행강도들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돈을 챙겨들고 나와 경찰들을 향해 AK를 난사한다. 고작 권총과 38구경 리볼버만을 가지고 있던 경찰은 그 숫자가 범인의 100배에 달하지만 그들을 제압하기엔 화기에서 기량이 떨어진다. 몸통은 물론이거니와 팔과 다리에까지 방탄조끼를 에워싼 범인은 - 게다가 그들은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실제 현장에선 하이바까지 걸쳤다는 이야기가 있다 -  순식간에 시민과 경찰 수십명에게 부상을 입힌다. 다행히 이날 죽은 사람은 없었지만, 엄밀히 범인 둘이 죽었다, AK자동소총을 개조하여 회전력을 높인 이들의 무기는 경찰차와 담장까지도 관통하며 화력을 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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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형식의 이 영화를 보면서, 아 이런 일도 가능하구나 싶다. 우리가 영화에서 봐왔던 그런 장면들은 더 이상 영화 속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범인은 은행에 들어갈 때도, 경찰들이 잔뜩 몰려있는 상황에서 티비로 생중계 되는 시점에서도, 절대 동요하지 않고 아주 일상적인 행동을 취했다. 흐느적흐느적 걸어나와 경찰을 향해 총을 난사하고, 다시 들어갔다 돈을 가지고 나와서 차에 싣고, 그리고 현장을 잽싸게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동네 산책하듯 걸어나갔다. 아 이게 어떻게 가능하느냐 말이다. 만약 범인들이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고 잽싸게 차에 올라타 현장을 빠져나갔다면 어땠을까. 여전히 헬리콥터가 뒤를 따르며 생중계를 할 것이고, 경찰차가 뒤를 쫓겠지만, 사건현장은 LA에서 미국의 다른 주까지 확대되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사망자가 속출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영화와 현실이 구분되지 않을 만큼의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미국에선 쉽게 총기를 소지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영화에서 경찰은 권총과 리볼버만으로 대항할 수 없게 되자, 근거 총포상에 가서 온갖 화기를 다 구입해서 가지고 온다. 덕분에 총포상은 연매출을 하루에 다 달성했겠지만 신분이 확실하다면 누구나 총기를 소지할 수 있다는 규정은 그날의 공포의 44분을 만든 주인공이다. 자신의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총기를 소지한다는 규정은 일견 설득력있지만 우발적인 사고와 계획적인 살인에 그만큼 쉽게 노출되어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말이 좋아 나와 내 가족을 보호하는 것이지, 이건 누구나 마음 먹으면 타인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칼이나 도끼를 드는 것보다 총알 한 발 발사하는 것이 더 결행하기도 쉽지 않겠는가. 내가 가까이에서 피 묻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한방이면 끝나는 건데. 한 가지 더. 이들이 불법무기를 소지한 죄로 6개월을 살고 나왔으나 변호사 선임료가 없다고 해서 압수했던 총기를 돌려주는 법원은 뭐하자는건지. 그건 '압수'이지 국가가 '빌린 것'이 아니지 않은가.

  이 사건 이후 미국은 총기소지 규정을 엄격히 하기보다는 범인들에게 대항할 수 없었던 부실한 LA경찰서의 화기를 탓하며, 이들에게도 자동소총을 소지할 수 있도록 했다지. 그렇담 이제 아무 문제 없을까. 미국도 알 것이다. LA경찰서의 무기를 몇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음에 나타날 미래의 범인들은 이제 자동소총을 넘어선 무언가를 가지고 나올테니까. 그럼 그 다음엔 어떻게 할건데. 전장에서나 쓰이는 기관총을 들고 다닐 것인가.

    실제현장에서 한참 부실한 무기로 두 명의 범인에 대항하던 200여명의 경찰은 모두 각자가 그들의 임무에 충실했다. 사건 이후 한 경관의 인터뷰대로 단 한 사람도 현장에서 도망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공포가 엄습한 순간 이를 피하지 않았고 이에 맞섰으며 그들과 싸웠다. 시민과 언론은 이 점을 높이샀으며, 지나가는 개 보듯했던 경찰들에 대한 그들의 대우는 확실히 달라졌다. 편지, 꽃, 플랜카드 등이 경찰서로 도착했고,  LA 경찰은 한 순간 영웅이 되었다. 이 영화는 아마도 일반 은행 강도 사건과 다른 범인들의 특이성도 한 몫 했겠지만, 자랑스런 LA 경찰을 보여주기 위한 또다른 애국주의 영화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경찰 홍보 영화로 지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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