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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경고
아 정말 포스터 야하다. 누가 다 벗고 나온 것도 아니지만 세 자매가 한 남자를 두고 하나는 뒤에서 껴안고 하나는 풀어헤친 가슴 사이로 손 집어넣고 또 하나는 그의 아래에서 관능적인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 누구나 비밀은 있다. 나도 비밀이 있다. 그러나 비밀은 비밀일 때에만 의미가 있다. 나의 입을 통해 누군가의 귀로 전달된 비밀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비밀은 나만이 알고 있다.

- 재즈바에서 노래를 부르는 재즈보컬리스트 미영은 자유연애주의자이다. 그녀는 매달리는 남자 싫고, 돈 많고 부티도 좀 나고 잘생기고 튕기는 남자를 좋아한다. 오늘도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며 어디 잘 생기고 뽀대 좀 나는 남자 없나 물색하고 있다. 에이 오늘은 영 꽝인데. 어 가만가만 지금 들어오는 저 남자 좋은데? 저 주문하시겠어요? 남자가 이럴 때 데낄라 한잔 딱 주문해야지. 저 데낄라 주세요. 네? 좋아 감이 좋아. 제 전화번호에요. 오빤 내 남자야.

"사랑은 원래 벼락처럼 다가와 안개처럼 사라지는 것"
- 나는 대학원생이다. 국문학을 전공하는. 책이 좋아 책 속에 파묻혀 사는 삶이 좋으며, 시를 읽고 시를 논하는 그럼 남자를 만나고 싶다. 잘생겼으면서 지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런 남자라면 오케이다. 그런데 내 주변엔 그런 남자가 없다. 그런 남자가 언니 주변에 왜 있어. 좀 남자를 찾으려면 돌아다녀야지 집구석에서 책만 보고 있는데 남자가 어디서 나타나?! 아니야 사랑은 벼락처럼 도둑처럼 갑자기 찾아오는거야. 그런게 바로 사랑이야. 나에게 벼락처럼 사랑이 다가왔어요. 동생의 그 남자가. 근데... 섹스는 어떻게 하는거죠? 막내동생 방에서 몰래 비디오를 가져와서 봐야겠어요. 책도 보면서 연구도 좀 하고요.

"세상에 사랑하고 좋아하는 두 가지 감정 뿐이라고 생각하세요?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단걸 몰라요?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지요. 지금 내 마음이 어떤가가 더 중요한거 아닌가요. 나중에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아닌."
- 아휴 배만 잔뜩 뿔룩 튀어나와가지구는 쇼파에 드러누워 킁킁 코를 골고 씻지도 않아 냄새나고 입에는 먹다남은 안주거리 묻혀놓고 자는 저 남자 내 남편입니다. 내 남편은 나보고 가족끼리 섹스를 어떻게 하느냐고 그럽니다. 그래 너같은 남자랑은 섹스하고픈 마음도 안생긴다. 저러고 있는데 어떻게 섹스할 생각이 드니. 뭐 결혼이 다 그런거죠. 그렇게 그렇게 살고 그러다 늙고 가는거죠. 결혼이 별건가요. 나는 나보다 내 남편과 내 아이를 지키고 보살피는 것이 좋습니다. 여기에 만족하렵니다. 그런데 귀엽다 이 남자. 나보고 이쁘댄다.

- 이제부터 저는 그들의 마음 속에 잊지 못할 비밀 한 가지씩을 만들어줄거에요. 미영이? 좋아해요. 사랑스럽고 이쁘고 귀엽잖아요. 애교도 많고 몸매도 이쁘고. 하지만 미영이 언니 선영이도 매력적이에요. 아무 것도 모르는 처녀인데다가 한번 당겨주면 그냥 다가올거 같아요. 이런 여자 쉽죠. 하지만 순수한 매력이 있어요. 아 미영이의 결혼한 첫째 언니 진영씨요? 진영씨 이쁘죠. 사랑받고 싶어하는 여자에요. 사랑에 굶주렸어요. 남편과 아이에게 시달리며 자신의 사랑을 잊어버린거죠. 이런 여자요 쉬워요. 몇마디 칭찬과 위로면 충분히 넘어오거든요. 거봐요. 벌써 제 위에 올라와있잖아요.
<누구나 비밀은 있다>는 비밀에 관한 영화다. 사랑에 관한 영화다. 사랑의 비밀에 관한 영화다. 내 친구의 애인을 좋아해본 적이 있나요. 애인이 있는 줄 알면서 접근해본 적 있나요. 짝사랑하는데 말도 못하고 혼자 마음 졸이며 삭히고 있지는 않나요. 결혼한 여자인데 나의 첫사랑인데 왜 아직도 포기못하고 마음 속에 간직하는걸까요? 사랑에 관해선 무수히 많은 비밀들이 가능하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어쩌면 드러내지 않은 자기만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불륜이건 사랑이건 아니면 하룻밤의 쾌락이었건 어떤 식으로 이름붙이건간에 모두 비밀이다. 쉿.
<누구나 비밀이 있다>는 자유롭고, 도발적이고, 권태감을 느끼는 각각의 세 여자들이 '이상적인 너무나 이상적인' 한 남자와 느끼는 사랑(?)의 감정에 대해 말한다. 영화는 사람들이 지겨운 일상생활로부터 벗어나고픈 욕망을 대리만족시켜주는 리얼리티 티비 프로그램과 같다. 머리 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그런 생각들을, 때로는 섹시한 여자, 때로는 지적인 여자, 때로는 누군가의 소유물이 된 것만 같은 여자를 골고루 사귀어보고픈 남자들의 욕망을 자극한다. 또 여자들 역시 마음에 들지만 내 동생 혹은 내 친구의 애인인 그를 내 남자로 만들고 싶은데 도리상 그리 할 수는 없고 감추어진 속마음을 영화를 통해 투영하고 바라보며 대리만족한다. 그러나 영화가 끝난 뒤 영화 속 수영에 의한 세 여자와의 치정극은 더 이상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인걸 알기에 그만 우리의 꿈으로부터 '깨몽'한다.
누구나 비밀을 안고 살고, 그것이 사랑에 관한 것이라면 더더욱 사람들은 마음 속에 겹겹이 꼭꼭 싸매고 감추려든다. 그 비밀을 말하는 순간 나는 누군가로부터 머리 쥐어 뜯길 수도 있으며, 유치장에 들어갈수도 있으며, 직장에서 쫓겨날 수도 있으며, 친구와 절교를 해야할 수도 있으며, 또다른 차원에서 사랑하는 이들을 버리고 떠나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밀이 나중에라도 발각될 우려가 있다면, 그것이 두렵다면, 비밀이 더 이상 비밀이 아닐 때의 사태가 무섭다면, 어쩌면 비밀을 살짝 내놓아도 되지 않을까 싶다. 비밀이 더 이상 비밀이 아닐 때 일어날 사태를 내가 감당하지 못한다면 말이다. 비밀을 간직할 자신이 없다면 솔직한 것도 한 가지 방법일 수 있다. 다만 이 또한 비밀을 털어놓았을 때 상대방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의 것이어야 한다. 때로는 비밀보다는 솔직함이 상대방에게 한 발 더 다가서는 계기가 되기도 하니까. (영화 속에서와 같은 비밀은 털어놓으면 복구불능의 사태를 불러오긴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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