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을 앞두고 있는 지금 난 내 미래의 직업을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난 어떤 하나의 직업에 의해 규정되고 싶지 않다. 물론 내가 그동안 생각해왔던 직업이 여러가지 있으나 그중 어느 한가지만 하겠다고 생각한 적은 나이를 먹은 뒤로는 없는 듯 하다. 물론 지금의 이 시대가 평생직업을 보장하지 않는 시대이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난 한가지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머리를 정리할 겸해서 나의 직업 선택 변천사를 작성해본다. 이 글을 작성하면서 어쩌면 난 내가 원하는 것을 찾게 될런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흔히 어린 아이들에게 "니 꿈이 뭐니?"라고 묻는 시기는 아마도 초등학교 입학 후부터가 아닌가 싶다. 그때 아이들은 의사요, 경찰이요, 우체부 아저씨요, 빵집주인이요, 과학자요 라고 말하면서 엄마, 아빠가 주입시켜놓은 그들의 꿈이 아이들을 통해 투영된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난 초등학교 시절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유전공학자>
나의 기억의 저장고에 기록된 최초의 나의 꿈은 유전공학자였다. 중학교 2학년과 3학년때까지 '유전공학자'라는 나의 꿈은 유효했다. 왜 내가 유전공학자를 꿈꿨는지는 나도 의문이다. 추측컨대 당시 내가 생물 과목을 좋아했고, 이를 토대로 유전공학자라는 꿈을 만들어낸 것 같다. 기억의 한 구석에 유전공학자 이외에도 분자생물학자 라는 지금도 뭘하는 학문인지도 모르는 그 직업을 함께 말한 것이 떠오른다. 사람들이 자신의 학창시절에 자신의 직업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는 '어떤 과목을 좋아하느냐'이다. 물리를 좋아하면 물리학자요, 국어를 좋아하면 소설가, 시인, 국문학자요, 음악을 좋아하면 성악가 등 그 시기에는 어떤 직업이 뭘 하는 것인지에 대한 지식이 전뭄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과목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 역시 생물이란 과목을 통해 유전공학자와 분자생물학자를 꿈꿨던 것이다.
<건축가>
이후 고등학교 입학. 나는 수학을 참 잘했다. 대개 그렇듯 수학을 잘하는 사람은 이과요, 못하는 사람은 문과라. 나는 수학을 잘 했기에 2학년 진학시 이과를 선택했다. 고등학교 2학년. 물리란 과목을 만났다. 첫 시험. 공부도 엄청나게 했고, 시험문제도 내 손으로 일일히 다 풀었건만 시험점수는 40점. 내 생애에 80점 밑의 점수는 처음 받아봤다. 너무나 충격이 컸다. 이후 물리는 포기했다. 그러나 여전히 수학에서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계기였는지 이때 '유전공학자'는 '건축가'로 변해있었다. 김석철씨가 쓴 건축에 관한 어떤 책을 사보기도 했다. 당시에 나는 연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 인가 하는 이름이 긴 학과 진학을 꿈꾸고 있었다.
<철학자>
물리과목이 나를 실망시켰던 반면, 내 관심을 사로잡는 다른 과목이 있었으니 윤리라. 도덕이나 윤리과목은 사실 배우지 않더라도 책 한번 읽으면 다 알 수 있지만, 유독 '철학'부분만은 그렇지 않았다. 사실 윤리책의 철학이 '철학'이겠느냐만 당시에 윤리의 '철학'부분은 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아 이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엇 이건 뭘 뜻하는 것일까?' 등의 의문을 가지고서 윤리책에서 충족되지 못한 나의 호기심은 철학책을 사보는 것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사실 철학이 뭔지, 무슨책을 봐야하는지 전혀 몰랐다. 그냥 서점에 가서 소크라테스니 플라톤이니, 데카르트니 하는 철학자들의 이름이 제목에 들어간 책이면 구입해서 보곤 했다. 그때 구입한 책이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철학에세이' '소크라테스에서 사르트르까지' 등 이었다. 물론 봐도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었고, 그저 책을 구입해서 보려고 시도한 것만으로 나의 호기심은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서서히 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철학자가 되고 싶었다. 이런 막연한 관심에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난 이과에서 문과로 과감히 분야를 옮겼다.
<공인회계사>
수능시험이 끝나고, 나의 점수가 바닥을 쳤을 때 난 철학과를 고집하며 부모님께 실망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점수가 낮은 것도 미안한데 과까지 이상한 과(?)로 간다고 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할 수 없이 난 누구의 강요도 아닌 나의 자발적 선택으로 경제무역학부를 들어갔다. 그리고 나의 꿈은 '공인회계사'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서점에서 공인회계사가 되는 법에 관한 책을 구입했던 기억이 난다.(그러나 읽지는 않았다.)
<다시 철학자로>
결국 경제학을 한 지 1년. 그 1년은 그다지 학업에 열중했다고 볼 수는 없었다. 수업시간 출석체크만 해놓고 친구와 함께 동아리 방에 가서 악기를 연주하며 놀았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채팅에 맛들려 소위 말하는 '번개팅'이란 것을 하기도 했다. 수업에 출석했다 하더라도 머리 속으로는 악보의 콩나물 대가리가 왔다갔다 하고 있었으니 공부를 했다고 볼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점은 3.0이 겨우 넘었고, 들리는 소식에 학점 3.0 이상이면 과를 옮기는 전과가 가능하다고 들었다. 그래서 난 하고싶었던 철학으로 과를 옮겼다. 우리학교에 철학과가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물론 부모님의 걱정과 반대가 있었지만, 난 강행했다. 이때부터 나의 꿈은 다시 '철학자'가 되었다.
<음악인>
대학입학후부터 계속하던 드럼연주인 생활이 어느정도 무르익고 언더그라운드 클럽씬까지 나가며 정기적으로 공연을 하고 활동이 잦아지며 난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음악인'. 드럼연주에 머물지 않고 난 본격적으로 음악을 하고 싶었다. 밴드를 계속하면서 다른 악기도 배우고 프로듀싱이나 레코딩 등 음악전반에 관한 공부를 하고 싶었다. 이런 내 생각을 부모님께 정식으로 밝혔을때 완강한 반대가 있었다. 성공하더라도 먹고 살기 힘들다는 것. 너무나 완강했다. 그래 내가 실력도 안되면서 너무 큰 꿈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제 2의 직업으로 혹은 지나친 취미생활 정도로 선을 접었다. 그리고 난 다시 철학으로 돌아왔다.
<또다시 철학자로, 기자로>
음악인이라는 직함을 취미로 접고서 난 철학으로 먹고 살리라, 철학을 계속 공부하리라 마음 먹었다. 그러던 중 홈페이지에 글쓰는 데에 재미를 붙이고, 여러 모임에서 내 글발이 괜찮다는 소리를 듣고서 한국일보 독자투고, 동아일보, 중앙일보 인터넷기자, 한겨레신문 하니리포터로 활동하며 글쓰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글발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의 꿈은 '기자'가 되었다. 그래서 기자가 되려면 어떤 능력을 갖추어야하는지 찾아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글도 눈여겨 보게 되었다.
<철학자>
그러나 기자라는 직업이 남의 이야기만 쓰지 자신의 이야기는 쓰지 않는다는 점을 포착하게 되었고, 비록 글쓰는 직업이지만 나의 이야기를 쓰는 데에 주된 관심이 있었던 나는 이내 기자라는 직업을 다시 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하려면 공부를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또 역시 철학자로 돌아왔다.
<중고등학교 교사>
한편 학과 공부를 하며 교직이수를 해서 고등학교로 한달간 교생실습을 나갔다. 그러나 내 적성은 교사에 맞지 않는 듯 했다. 앞에 나가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 나에겐 너무 힘든 일이었다. 유치원시절엔 나의 내성적인 성격을 고친다고 웅변학원엘 다니며 웅변대회도 나갔건만 난 단상에 나가기도 전에 긴장해서 구토를 하고 말았다. 지금까지도 앞에 나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내겐 힘들다. 그러나 교사가 안정적인 직업이고 방학이라는 시간을 이용해 연주인 생활을 할 수도 있겠다 싶어 마음이 끌리기도 했다. 나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결국 난 교사란 직업을 직업리스트 목록에 올리게 된다.
<PD, 잡지기자>
이제 가장 최근에 염두에 두었던 PD라는 직업이다. 언론고시라고 하는 행정고시, 사법고시와도 같이 붙기 힘들다는 관문을 거쳐야 하는 직업이다. 학벌도 볼 것이고, 각종 외국어 능력과 그 외에도 다양한 능력들을 테스트하겠지. 하지만 이 꿈은 현재 나를 가장 사로잡고 있는 꿈이다. 내가 하고픈 모든 것들을 PD라는 직업을 통해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쓰는 것을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고, 뭔가를 창조하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의 성향들이 합쳐져 PD로 종합된다. 또한 잡지기자는 신문기자와 같이 권위주의적인 느낌보다는 친근하고 깊이있는 느낌이 강하다. 또한 주간지, 월간지의 경우 매일같이 여기저기 치이는 신문사보다는 한결 일하기가 수월할터. 특정 주제를 가지고 심도 있게 사색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진다. 그래서 신문기자보다는 잡지기자가 낫다.
그외에 잠시나마 생각했던 직업으로는 출판인, 성우, 공연예술기획자 등이 있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다른 직업들보다는 순위에서 밀려있기에 그다지 큰 고려사항이 되고 있지는 않다.
p.s 지금은 다시 교사로 마음을 돌린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