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몇학번이세요? 무슨과세요?"
"네 98학번이고, 철학과입니다."
"철학과요? 철학과에서 뭐 배워요? 왜 철학과 가셨어요?"

미팅나갔을때 혹은 생전처음 보는 사람과 대면할때 가장 흔하게 시작하는 평범한 대화이다. '철학과'라는 타이틀을 짊어지고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철학과에서 뭐 배워요?" 이고 이에 못지 않게 들었던 말은 "왜 철학과 가셨어요?" 이다.

내가 1학년에 '국제경제통상학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을 때 나는 위의 저런 질문에 답해야할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내게 그런 질문을 해오지 않았으니까.
그저 잘나가는 학과려니 하고 생각했겠지.

그러나 내가 철학을 택한 이후 나는 위의 저런 질문에 시달려야했다. 따라서 그에 못지 않게 생각도 많이하게 되었고, 위의 질문에 답할 대답도 준비해뒀다.

처음 내가 경제국제통상학부에서 철학과로 전과를 할 때 나는 '철학'이라는 타이틀이 가지고 싶었다. 전과하겠다는 문서를 철학과 사무실에 내러갔을때 조교 선배들은 의아하게 쳐다봤으며 자리에 앉아있던 000 선배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철학에 관심있었으면 1학년때 교양과목으로 철학강좌를 듣지 그랬어요?" 또 다른 사람들은 복수전공이나 부전공으로 택해도 될텐데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갖고 싶었던 것은 '철학과'라는, 내 이름앞에 붙을 간판이었다. "숭실대 철학과 ooo입니다"라고 떳떳히 말할 수 있는 '철학과'라는 이름. 그때 난 그것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것은 어떤 이끌림이었다. 또 고등학교 때 익히 철학책을 사다보며 뜻을 알수없는 문자들을 읽어나가야했던 나는 철학이라는 것이 단순히 다른 것을 전공하며 군것질거리로 조금씩 뜯어먹을만한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경제국제통상, 경제학이나 무역학을 전공할 것이었다면 난 처음부터 철학에 일체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찍쩝거리는 것으로는 철학을 공부할 수 없다. 오직 철학에 전념해야 철학에 빠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한가지 더 들자면 당시 나는 경제학, 무역학, 경영학에 별 관심이 없었다. 수업을 빼먹고 놀러다니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심각하게 놀기만 한것은 아니었지만 수업에 들어가서도 맨뒷자리에서 친구와 음악이야기나 하는 것이 더 즐거웠다.

이쯤되면 내가 철학을 택한 피상적인 이유는 될 것이다. 그러나 본질은 말하지 않았다. 위에 내가 말한 것은 '철학을 택한 이유'라기보다는 '철학과에 오게된 동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철학을 택한 이유. 본래 내성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던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보단 무엇이든 혼자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몰두했다. 초등학교 시절엔 레고라는 블록장난감을 가지고 놀았고, 중학교 시절엔 컴퓨터 게임에 몰두했으며, 고등학교 시절엔 록음악에 빠져있었다. 운동은 물론이거니와 친구들과 만나 어디인가를 놀러가는 것 자체가 싫었다. 이런 성격은 내가 철학에 빠지게 된 어느 정도의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둘째, 학창시절(대학이전) 나의 우상은 신해철이었다. 그가 철학과여서라기보다는 그의 음악이, 그의 가사가 맘에 들었다. 가사를 찬찬히 뜯어보고 있노라면 그냥 단순한 문자의 나열이 아니었다. 그만의 깊은 고민과 사색을 거쳐 완성된 하나의 작품이었다. 그 당시부터 현재까지도 그에 필적할만한 작사가는 없다고 생각한다. 당시 그의 메세지는 내 머리속 깊이 파고들었고, '이런 문장들을 내뱉을 수 있는 그의 정신, 그의 머리는 어디서부터 기원한 것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된 그의 프로필. 서강대 철학과 중퇴! 신해철을 좋아한 초창기에는 그가 철학과 출신이라는 것을 몰랐다. 후에 이를 알고는 아! 바로 철학이다. 그렇게 나는 철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 두 가지가 내가 철학을 택하게된, 철학에 이끌린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억압된 통제속의 학창시절에 진저리를 느끼고, 감옥으로부터 탈출하고픈 욕구에 쇠사슬을 풀어줄 무엇인가를 갈망했고, 그때 읽던 철학책을 통해 다소나마 나를 풀어줄 실마리를 얻은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때 그것은 단지 느낌이었고, 구체적인 결론이나 확신은 없었다. 그러나 후에 내가 철학을 택함에 있어 이 모든 것들이 어느 정도의 영향은 미쳤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철학을 택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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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학교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는데 내 또래의 한 남자가 다가오더니 뭔가를 말하려는 듯 했다. 손을 보니 성경책과 어떤 쪽지가 있었다. 나는 이내 '아! 전도하려는구나' 하고 눈치를 챘다. 나는 모든 종교를 수용한다. 신자는 아니지만 종교에는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종교를 강요하는 자는 용납하지 못한다.

  그 사람은 나에게 전도를 하기 전에 친근감을 돋우려는건지 자기도 영문과 98학번이라면서 나에게 무슨과냐고 물었고, 나는 철학과라고 했다. 그 사람은 내 대답을 듣고는, 철학과는 졸업 후에 뭐하는지 참 궁금하다고 말했다. 철학도로써 이 질문 또한 지겹게 듣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을 만나든, 나를 처음보고, 내가 철학도라는 것을 안 사람들은 여지없이 내게 저런 질문들을 던지곤 한다. 저런 질문들이 싫지는 않다. 그것은 그만큼 철학에 대한 신비감과 동경 비슷한 감정을 갖고 있기에 나오는 질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철학을 지나치게 신비롭게 생각하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니지만 철학을 깔보는 지금의 풍토에서는 차라리 이게 낫다 싶다.

  말이 잠시 딴 데로 샜다. 나는 그의 질문에 학교 선생님이나 기자로 나가기도 하고, 출판 분야로도, 교수로 학계로도 진출한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실제 철학과를 졸업한 사람들이 어떤 분야로 많이 나가는지는 난 잘 알지 못한다. 위에 내가 말한 직업들은 사실 잘 풀린 경우에 해당된다. 잘 풀리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고 소수이기 마련이다. 나머지 많은 철학도들은 실제 어떤지 난 알지 못한다. 나는 그에게 철학과 나와도 밥 굶지 않는다, 사회에서 꽤 잘 나간다는 것을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고 그래서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의 직업을 언급한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적어도 거짓은 없다. 내가 실제 본 경우, 내가 알고 있는대로 말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껍데기에만 치중하고 있다. 알맹이가 없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흔히 말하는 문사철(국문학, 역사, 철학) 등의 인문학들은 사회의 알맹이를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하여 껍데기에만 치중한다. 나 하나 잘 살면 되지 하면서 좋은 학벌, 좋은 직장에 높은 위치에 있으면서도 비도덕적, 비양심적인 경우가 많다. 알맹이 없는 껍데기는 얼마가지 못한다. 정신, 영혼없는 육체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식물 인간을 떠올려보라. 겉으로 살아있다는 것은 아무 의미없는 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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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엔그것이있다 2009-12-26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철학과에 관심있는 학생입니다. 제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어떤학과를 나오던지 그 학과에 열정을 갖고 있다면 '성공'할수 있다고 봅니다. 제가 보는 성공은 재력,권력,의 획득이 아니라. '자아성취감'이라 생각합니다. 자신의 일에 만족을 갖고 인생을 살아가는것 그것보다 더 큰 '성공'이 있을까요?? 인생은 한번뿐 이니 즐기며 가는게 옳은 길이죠. -끝

마늘빵 2009-12-27 17:52   좋아요 0 | URL
어이쿠. 굉장히 오래전에 끄적인 글 - 잘 기억도 나지 않는 - 에 댓글이 달려서 깜짝 놀랐습니다. ^^ 네, 그런 의미에서의 성공이 가장 큰 행복이겠죠. 동의합니다.
 


플라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이다. 소크라테스의 죽음 이후 그는 그리스 아테네의 민주정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자신의 국가론의 핵심인 '철인정치' 개념을 수립한다. 또한 생전 책 하나 쓰지 않은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에우튀프론', '소크라테스의 변명', '파이돈', '크리톤', '향연' 등의'대화편'을 통해 재생시킨다.

 사람들은 내가 플라톤을 존경하는 인물 중의 한 사람으로 꼽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하필 왜 플라톤인가? 플라톤은 엘리트주의를 주창하지 않았나요? 등등...

 한번은 '사회철학' 수업 중 플라톤의 정치철학에 대해 토론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플라톤의 정치철학은 플라톤의 저술 '국가론'에 집약되어있다고 볼 수 있다. '국가론'에서는 국가를 경영하는데 있어서의 지도자들의 자격을 다루고 있는데,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어릴 적부터 음악, 미술, 체육 등의 예체능 교육을 통해 마음을 교육시키고, 자란 뒤에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직업을 부여해야한다고 말한다. 나무를 잘 다루면 목수를, 바느질을 잘하면 재단사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즉 각자의 능력에 맞는 일을 직업으로써 부여해야 국가가 잘 운영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과 달리 학문에 재능을 보이는 자들에게는 계속해서 국가를 경영하는 철학을 가르쳐야한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남는 한 사람 그에게 왕의 지위를 부여해야한다고 한다. 한 마디로 말하면 그의 교육론, 국가론이라는 것은 엘리트주의다. 엘리트만이 높은 지위에 올라 더 막중한 역할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내가 이런 플라톤을 존경하는데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플라톤의 엘리트주의를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해석한다. 내가 플라톤을 존경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플라톤의 국가론에서 엿보이는 '엘리트주의'를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엘리트주의'로 해석하고 있다. 즉 그들의 엘리트주의란 소위 공부 잘하고 명문대 나온 사람, 혹은 뒷배경이 빵빵한 사람, 돈 많은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일진대, 나는 이들을 엘리트로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엘리트 개념은 '정신'적인 것이다. '정신의 단계' 중 높은 단계에 오른 사람들을 엘리트로 받아들인다.

 '정신의 단계'라는 것은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게 말 할 수 있다. 나는 쾌락을 중요시하고 감각적인 것을 찾는 사람들, 사물의 겉모습만을 보고 판단하는 사람들, 비도덕이고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사람들을 정신의 가장 낮은 단계에 배치하고, 책을 읽고 토론을 즐기며 그 안에서 자기 자신과 끊임없는 대화를 시도하는 사람을 정신의 높은 단계에 배치한다. 그리고 이 보다 더 높은 단계는 학문의 탐구, 사물의 분석을 넘어서 자기성찰, 자기내면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낮은 단계 하나, 높은 단계 두 가지로 말했지만 최저와 최고의 사이에는 정신의 여러 단계들이 존재할 수 있다. 나는 다만 그 단계들 중 윤곽이 확실히 드러나는 정신의 단계를 언급한 것 뿐이다. 이른바 이런 '정신의 단계' 따라 나는 높은 단계를 지향하는 사람일수록 사회의 엘리트로 취급한다. 그것은 현재 그가 가지고 있는 돈이나 권력, 명예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길거리 청소부도 구두닦이도 모두 엘리트가 될 수 있다. 반면 국회의원도, 대통령도, 재벌기업회장도 정신의 가장 낮은 단계에 있을 수도 있다.

 나는 플라톤의 엘리트주의를 이런 식으로 받아들인다. 자기 능력에 따라 직업을 부여해야한다는 것에는 반대하지만 난 그의 '철인왕'개념에는 동의한다. '철인왕'이라는 것이 '철학자'의 다른 말이지만, 여기서의 '철학자'는 직업 철학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내가 위에서 말한 정신의 높은 단계에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나는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일수록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람이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그가 지닌 권력이나 명예를 함부로 남용하지 않고 정말 옳은 일을 위해서만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플라톤의 이러한 '철인왕' 개념을 소중히 생각해 그를 존경하는 것이다. 그가 외치는 '철인왕'은 우리가 외치는 '도덕적 정치인'에 다름아닌 개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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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21 14: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21 19: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줍잖은 말이지만 지식인이란 '내가 지행하는 바'와 '실제의 나' 사이에 숙명적인 거리를 갖고 사는 '삶의 코미디언'이다. 지식인이 가질 수 있는 최선의 삶이란 그 숙명적인 거리를 어떻게든 줄이려 발악하는 것일 뿐. 그러나 나는 그런 삶을 선택했고 그런 삶의 발악이 더러는(거의 가능하지 않지만) 세상에 진짜 유익을 주는 일도 있다는 희망을 품은 채, 내 삶을 전진한다."

"사람은 누구나 좌파로 살거나 우파로 살 자유가 있지만 중요한 건 그런 선택을 일생에 걸쳐 일상 속에서 지키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한정하는 일인 것 같다. 좌파로 사는 일은 우파로 사는 일에 비할 수 없이 어려우며, 어느 시대나 좌파로 살 수 있는 인간적 소양을 가진 사람은 아주 적다. 우파는 자신의 양심을 건사하는 일만으로도 건전할 수 있지만, 좌파는 다른 이의 양심까지 지켜내야 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글은 김규항씨의 <B급 좌파>의 도입부분에 나와있는 말이다. 나는 이 글을 좋아한다. 그것은 나의 생각, 내가 꿈꾸는 삶과 어느 정도 비슷한 길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가족, 친구 등 주변인을 넘어 모든 사람들이 바른 길을 걷기를 바란다. 그러나 강요가 아닌 그들을 일깨움으로서 그것을 행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는 좌파가 되어야 한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 내가 꿈꾸는 것들이 좌파의 사상과 부합하는 지는 모르나 적어도 좌파가 걷고자 하는 길과는 일치한다. 내가 좌파건 우파건 간에, 내가 진보적이건 보수적이건 간에, 그 중간 어디쯤에 속해있을지, 그것들을 초월해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양심 또한 지켜주고 싶다.

볼테르의 '관용론'에 있는 문장이 떠오른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의 말 할 권리를 위해서는 함께 싸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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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을 앞두고 있는 지금 난 내 미래의 직업을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난 어떤 하나의 직업에 의해 규정되고 싶지 않다. 물론 내가 그동안 생각해왔던 직업이 여러가지 있으나 그중 어느 한가지만 하겠다고 생각한 적은 나이를 먹은 뒤로는 없는 듯 하다. 물론 지금의 이 시대가 평생직업을 보장하지 않는 시대이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난 한가지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머리를 정리할 겸해서 나의 직업 선택 변천사를 작성해본다. 이 글을 작성하면서 어쩌면 난 내가 원하는 것을 찾게 될런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흔히 어린 아이들에게 "니 꿈이 뭐니?"라고 묻는 시기는 아마도 초등학교 입학 후부터가 아닌가 싶다. 그때 아이들은 의사요, 경찰이요, 우체부 아저씨요, 빵집주인이요, 과학자요 라고 말하면서 엄마, 아빠가 주입시켜놓은 그들의 꿈이 아이들을 통해 투영된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난 초등학교 시절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유전공학자>

 나의 기억의 저장고에 기록된 최초의 나의 꿈은 유전공학자였다. 중학교 2학년과 3학년때까지 '유전공학자'라는 나의 꿈은 유효했다. 왜 내가 유전공학자를 꿈꿨는지는 나도 의문이다. 추측컨대 당시 내가 생물 과목을 좋아했고, 이를 토대로 유전공학자라는 꿈을 만들어낸 것 같다. 기억의 한 구석에 유전공학자 이외에도 분자생물학자 라는 지금도 뭘하는 학문인지도 모르는 그 직업을 함께 말한 것이 떠오른다. 사람들이 자신의 학창시절에 자신의 직업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는 '어떤 과목을 좋아하느냐'이다. 물리를 좋아하면 물리학자요, 국어를 좋아하면 소설가, 시인, 국문학자요, 음악을 좋아하면 성악가 등 그 시기에는 어떤 직업이 뭘 하는 것인지에 대한 지식이 전뭄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과목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 역시 생물이란 과목을 통해 유전공학자와 분자생물학자를 꿈꿨던 것이다.

<건축가>

 이후 고등학교 입학. 나는 수학을 참 잘했다. 대개 그렇듯 수학을 잘하는 사람은 이과요, 못하는 사람은 문과라. 나는 수학을 잘 했기에 2학년 진학시 이과를 선택했다.  고등학교 2학년. 물리란 과목을 만났다. 첫 시험. 공부도 엄청나게 했고, 시험문제도 내 손으로 일일히 다 풀었건만 시험점수는 40점. 내 생애에 80점 밑의 점수는 처음 받아봤다. 너무나 충격이 컸다. 이후 물리는 포기했다. 그러나 여전히 수학에서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계기였는지 이때 '유전공학자'는 '건축가'로 변해있었다. 김석철씨가 쓴 건축에 관한 어떤 책을 사보기도 했다. 당시에 나는 연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 인가 하는 이름이 긴 학과 진학을 꿈꾸고 있었다.

<철학자>

 물리과목이 나를 실망시켰던 반면, 내 관심을 사로잡는 다른 과목이 있었으니 윤리라. 도덕이나 윤리과목은 사실 배우지 않더라도 책 한번 읽으면 다 알 수 있지만, 유독 '철학'부분만은 그렇지 않았다. 사실 윤리책의 철학이 '철학'이겠느냐만 당시에 윤리의 '철학'부분은 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아 이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엇 이건 뭘 뜻하는 것일까?' 등의 의문을 가지고서 윤리책에서 충족되지 못한 나의 호기심은 철학책을  사보는 것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사실 철학이 뭔지, 무슨책을 봐야하는지 전혀 몰랐다. 그냥 서점에 가서 소크라테스니 플라톤이니, 데카르트니 하는 철학자들의 이름이 제목에 들어간 책이면 구입해서 보곤 했다. 그때 구입한 책이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 '철학에세이' '소크라테스에서 사르트르까지' 등 이었다. 물론 봐도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었고, 그저 책을 구입해서 보려고 시도한 것만으로 나의 호기심은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서서히 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철학자가 되고 싶었다. 이런 막연한 관심에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난 이과에서 문과로 과감히 분야를 옮겼다.

<공인회계사>

 수능시험이 끝나고, 나의 점수가 바닥을 쳤을 때 난 철학과를 고집하며 부모님께 실망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점수가 낮은 것도 미안한데 과까지 이상한 과(?)로 간다고 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할 수 없이 난 누구의 강요도 아닌 나의 자발적 선택으로 경제무역학부를 들어갔다. 그리고 나의 꿈은 '공인회계사'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서점에서 공인회계사가 되는 법에 관한 책을 구입했던 기억이 난다.(그러나 읽지는 않았다.)

<다시 철학자로>

 결국 경제학을 한 지 1년. 그 1년은 그다지 학업에 열중했다고 볼 수는 없었다. 수업시간 출석체크만 해놓고 친구와 함께 동아리 방에 가서 악기를 연주하며 놀았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채팅에 맛들려 소위 말하는 '번개팅'이란 것을 하기도 했다. 수업에 출석했다 하더라도 머리 속으로는 악보의 콩나물 대가리가 왔다갔다 하고 있었으니 공부를 했다고 볼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점은 3.0이 겨우 넘었고, 들리는 소식에 학점 3.0 이상이면 과를 옮기는 전과가 가능하다고 들었다. 그래서 난 하고싶었던 철학으로 과를 옮겼다. 우리학교에 철학과가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물론 부모님의 걱정과 반대가 있었지만, 난 강행했다. 이때부터 나의 꿈은 다시 '철학자'가 되었다.

<음악인>

 대학입학후부터 계속하던 드럼연주인 생활이 어느정도 무르익고 언더그라운드 클럽씬까지 나가며 정기적으로 공연을 하고 활동이 잦아지며 난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음악인'. 드럼연주에 머물지 않고 난 본격적으로 음악을 하고 싶었다. 밴드를 계속하면서 다른 악기도 배우고 프로듀싱이나 레코딩 등 음악전반에 관한 공부를 하고 싶었다. 이런 내 생각을 부모님께 정식으로 밝혔을때 완강한 반대가 있었다. 성공하더라도 먹고 살기 힘들다는 것. 너무나 완강했다. 그래 내가 실력도 안되면서 너무 큰 꿈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제 2의 직업으로 혹은 지나친 취미생활 정도로 선을 접었다. 그리고 난 다시 철학으로 돌아왔다.

<또다시 철학자로, 기자로>

 음악인이라는 직함을 취미로 접고서 난 철학으로 먹고 살리라, 철학을 계속 공부하리라 마음 먹었다. 그러던 중 홈페이지에 글쓰는 데에 재미를 붙이고, 여러 모임에서 내 글발이 괜찮다는 소리를 듣고서 한국일보 독자투고, 동아일보, 중앙일보 인터넷기자, 한겨레신문 하니리포터로 활동하며 글쓰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글발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의 꿈은 '기자'가 되었다. 그래서 기자가 되려면 어떤 능력을 갖추어야하는지 찾아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글도 눈여겨 보게 되었다.

<철학자>

 그러나  기자라는 직업이 남의 이야기만 쓰지 자신의 이야기는 쓰지 않는다는 점을 포착하게 되었고, 비록 글쓰는 직업이지만 나의 이야기를 쓰는 데에 주된 관심이 있었던 나는 이내 기자라는 직업을 다시 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하려면 공부를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또 역시 철학자로 돌아왔다.

<중고등학교 교사>

 한편 학과 공부를 하며 교직이수를 해서 고등학교로 한달간 교생실습을 나갔다. 그러나 내 적성은 교사에 맞지 않는 듯 했다. 앞에 나가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 나에겐 너무 힘든 일이었다. 유치원시절엔 나의 내성적인 성격을 고친다고 웅변학원엘 다니며 웅변대회도 나갔건만 난 단상에 나가기도 전에 긴장해서 구토를 하고 말았다. 지금까지도 앞에 나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내겐 힘들다. 그러나 교사가 안정적인 직업이고 방학이라는 시간을 이용해 연주인 생활을 할 수도 있겠다 싶어 마음이 끌리기도 했다. 나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결국 난 교사란 직업을 직업리스트 목록에 올리게 된다.

<PD, 잡지기자>

 이제 가장 최근에 염두에 두었던 PD라는 직업이다. 언론고시라고 하는 행정고시, 사법고시와도 같이 붙기 힘들다는 관문을 거쳐야 하는 직업이다. 학벌도 볼 것이고, 각종 외국어 능력과 그 외에도 다양한 능력들을 테스트하겠지. 하지만 이 꿈은 현재 나를 가장 사로잡고 있는 꿈이다. 내가 하고픈 모든 것들을 PD라는 직업을 통해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쓰는 것을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고, 뭔가를 창조하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의 성향들이 합쳐져 PD로 종합된다. 또한 잡지기자는 신문기자와 같이 권위주의적인 느낌보다는 친근하고 깊이있는 느낌이 강하다. 또한 주간지, 월간지의 경우 매일같이 여기저기 치이는 신문사보다는 한결 일하기가 수월할터. 특정 주제를 가지고 심도 있게 사색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진다. 그래서 신문기자보다는 잡지기자가 낫다.


 그외에 잠시나마 생각했던 직업으로는 출판인, 성우, 공연예술기획자 등이 있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다른 직업들보다는 순위에서 밀려있기에 그다지 큰 고려사항이 되고 있지는 않다.

 

 

p.s 지금은 다시 교사로 마음을 돌린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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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5-08-24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주간지와 월간지 기자가 특정 주제를 가지고 심도 있게 사색할 수 있는 기회가.. 과연.. ^^;; (그냥 지나가다 한마디!) 였습니다.

마늘빵 2005-08-24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지금은 겉으로나마 보고 있는 알라딘의 몇몇 분들로 인해 그런 생각 버렸습니다. 역시 꿈이었나봅니다. ㅋㅋ

이리스 2005-08-24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또, 뭐든지 그 남의 떡이 커보이는 그런게 아닐까요? ^^ 뭔들 안그렇겠습니까.
쿨럭~

2005-08-24 2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21 14: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21 1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