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몇학번이세요? 무슨과세요?"
"네 98학번이고, 철학과입니다."
"철학과요? 철학과에서 뭐 배워요? 왜 철학과 가셨어요?"
미팅나갔을때 혹은 생전처음 보는 사람과 대면할때 가장 흔하게 시작하는 평범한 대화이다. '철학과'라는 타이틀을 짊어지고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철학과에서 뭐 배워요?" 이고 이에 못지 않게 들었던 말은 "왜 철학과 가셨어요?" 이다.
내가 1학년에 '국제경제통상학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을 때 나는 위의 저런 질문에 답해야할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내게 그런 질문을 해오지 않았으니까.
그저 잘나가는 학과려니 하고 생각했겠지.
그러나 내가 철학을 택한 이후 나는 위의 저런 질문에 시달려야했다. 따라서 그에 못지 않게 생각도 많이하게 되었고, 위의 질문에 답할 대답도 준비해뒀다.
처음 내가 경제국제통상학부에서 철학과로 전과를 할 때 나는 '철학'이라는 타이틀이 가지고 싶었다. 전과하겠다는 문서를 철학과 사무실에 내러갔을때 조교 선배들은 의아하게 쳐다봤으며 자리에 앉아있던 000 선배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철학에 관심있었으면 1학년때 교양과목으로 철학강좌를 듣지 그랬어요?" 또 다른 사람들은 복수전공이나 부전공으로 택해도 될텐데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갖고 싶었던 것은 '철학과'라는, 내 이름앞에 붙을 간판이었다. "숭실대 철학과 ooo입니다"라고 떳떳히 말할 수 있는 '철학과'라는 이름. 그때 난 그것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것은 어떤 이끌림이었다. 또 고등학교 때 익히 철학책을 사다보며 뜻을 알수없는 문자들을 읽어나가야했던 나는 철학이라는 것이 단순히 다른 것을 전공하며 군것질거리로 조금씩 뜯어먹을만한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경제국제통상, 경제학이나 무역학을 전공할 것이었다면 난 처음부터 철학에 일체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찍쩝거리는 것으로는 철학을 공부할 수 없다. 오직 철학에 전념해야 철학에 빠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한가지 더 들자면 당시 나는 경제학, 무역학, 경영학에 별 관심이 없었다. 수업을 빼먹고 놀러다니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심각하게 놀기만 한것은 아니었지만 수업에 들어가서도 맨뒷자리에서 친구와 음악이야기나 하는 것이 더 즐거웠다.
이쯤되면 내가 철학을 택한 피상적인 이유는 될 것이다. 그러나 본질은 말하지 않았다. 위에 내가 말한 것은 '철학을 택한 이유'라기보다는 '철학과에 오게된 동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철학을 택한 이유. 본래 내성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던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보단 무엇이든 혼자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몰두했다. 초등학교 시절엔 레고라는 블록장난감을 가지고 놀았고, 중학교 시절엔 컴퓨터 게임에 몰두했으며, 고등학교 시절엔 록음악에 빠져있었다. 운동은 물론이거니와 친구들과 만나 어디인가를 놀러가는 것 자체가 싫었다. 이런 성격은 내가 철학에 빠지게 된 어느 정도의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둘째, 학창시절(대학이전) 나의 우상은 신해철이었다. 그가 철학과여서라기보다는 그의 음악이, 그의 가사가 맘에 들었다. 가사를 찬찬히 뜯어보고 있노라면 그냥 단순한 문자의 나열이 아니었다. 그만의 깊은 고민과 사색을 거쳐 완성된 하나의 작품이었다. 그 당시부터 현재까지도 그에 필적할만한 작사가는 없다고 생각한다. 당시 그의 메세지는 내 머리속 깊이 파고들었고, '이런 문장들을 내뱉을 수 있는 그의 정신, 그의 머리는 어디서부터 기원한 것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된 그의 프로필. 서강대 철학과 중퇴! 신해철을 좋아한 초창기에는 그가 철학과 출신이라는 것을 몰랐다. 후에 이를 알고는 아! 바로 철학이다. 그렇게 나는 철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 두 가지가 내가 철학을 택하게된, 철학에 이끌린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억압된 통제속의 학창시절에 진저리를 느끼고, 감옥으로부터 탈출하고픈 욕구에 쇠사슬을 풀어줄 무엇인가를 갈망했고, 그때 읽던 철학책을 통해 다소나마 나를 풀어줄 실마리를 얻은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때 그것은 단지 느낌이었고, 구체적인 결론이나 확신은 없었다. 그러나 후에 내가 철학을 택함에 있어 이 모든 것들이 어느 정도의 영향은 미쳤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철학을 택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