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말'을 기반으로 할 때 더 값진 효과를 낸다.

 어머니께서 전에 TV 청문회에 나온 노무현 대통령의 대답하는 장면을 보시고는 "말 참 잘한다" 라고 하시며 감탄 비스므레(?)한 찬사를 보낸 적이 있었다. 또 내 경우, 어떤 사안에 대해서 남들과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이를 그들에게 설득시키려 할 때, 이땐 글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는 글은 소용이 없다. 오직 말이 있을 뿐이다. 보통의 경우 오프라인에서는 말을, 온라인에서는 글을 사용하는데, 우리들의 생활이라는 것은 온라인에서보다는 오프라인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글은 때로는 독자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기도, 채찍질을 가하기도 하지만 이것을 일방통행으로 그칠 경우가 많다. 결국 말의 쓰임의 범위가 글의 쓰임의 범위보다 넓은 것이다. 또 한가지 더 추가하자면, 말을 글로 표현하기는 쉬우나, 글을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말을 한다는 것은 이미 그것이 이미 자기화, 자기내면화 되어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글은 아직 나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말'을 제쳐두고 '글'만 이용한다는 것은 이렇게 그 어려움이 많은 듯하다. 말을 못한다고 마냥 제쳐둘 것이 아니라 못하면 잘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가급적 말을 많이 하도록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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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글쓰기에 있어 사용하는 필명은 실명못지 않은 나를 대표하는 단어로써 자리매김한다. 내가 처음 인터넷 글쓰기를  시작한 1998년부터 지금까지 6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인터넷 세계에서의 나의 필명 또한 많이 바뀌었다. 그 변천사를 돌이켜보며 심경의 변화를 옮겨본다.

 고등학교 졸업 후 나는 처음으로 '컴퓨터 통신'이라는 것을 해보았다. 중고등학교땐 컴퓨터를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 그저 게임뿐이었다. 졸업 후 대학에서 사용할 컴퓨터를 구입했는데 그 안에는 유니텔 무료이용권이 있었다.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등 다른 통신사들도 있었지만 무료이용권이라는 말에 한번 써본다는 것이 그 길로 계속해서 유니텔만 사용하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유니텔측의 미끼에 걸려든 것인가?

 유니텔을 사용하면서 처음에 번개(인터넷에서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실제로 만나는 것)도 하고, 동호회에 가입해 함께 이야기하기도 하고, 글도 쓰며 많은 활동을 했다. 어디 이런 세계가 다 있나 할 정도로 그동안 나는 너무도 좁디좁은 학교-집 코스만이 내 전부인줄 알았던 것이다.

< 머루, 크롬 >

 유니텔 안에서 나의 '대화명'(사실 처음에 대화명이라는 것이 뭘 의미하는지도 몰랐다. 게시판을 보면 []안에 각자 뭔가가 적혀있는 것이다.)에 대해 난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 이름을 대신할 수 있는 단어가 무엇이 있을까? 당시 대화명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나는 필통에 써있던 '머루와 다래'에서 따와 '머루'를 사용하기도, 신해철의 영국유학 후 새로운 닉네임인 '크롬'을 사용하기도, 당시 열심히 였던 드럼에서 따와 '드러머'를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들은 나라는 인간의 전체를 포섭할 수 있는 적정한 단어가 되지 못했다. 그것들이 내포하고 있는 외연은 너무도 작았다.

< 폐문 >

 이후 유니텔 아이디를 변경하면서 나는 '폐문'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것은 그동안 사용하던 다른 닉네임에 비해 나라는 인간 전체를 적절하게 표현해주는 단어같았다. 폐문! 닫힌문이다. 나의 비사교적이고 닫혀있는 성격이나 어두운 분위기를 적절하게 잘 표현해주고 있었다. 그렇다. 폐문은 곧 나였다.

< 이데아 >

 그러다가 나의 관심사가 기존에 음악:철학의 비율이 7:3 정도였던데에서, 3:7 정도로 바뀌면서 나는 철학적 측면에서 나를 표현해줄 수 있는 적절한 단어를 다시 찾기 시작했다. 물론 폐문도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지만 이것말고 다른 무엇인가를 찾았다. 결국 찾아낸 것이 '이데아'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철학적 시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있는 그대로를 관찰하는 현상학적 시각과 확고한 체계적 기준(예를 들자면 플라톤의 이데아나 헤겔의 절대이성)를 기반으로 한 유토피아적 시각이다. 그런데 나는 그 두 가지중 후자에 매력이 끌렸다. 앞서 예를 든 플라톤이나 헤겔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이기도 하다. 플라톤의 철인정치에서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고, 이후 나의 닉네임은 '이데아'가 되었다.

 세상의 유토피아, 자유, 정의, 평등 이러한 추상적 이념들이 실현되는 곳. 그곳이 바로 이데아의 세계이다. 지극히 이상적이라 비판한다면 할 말 없다. 그러나 그것을 추구하기위해, 그에 닮은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최소한의 노력을 할 수는 있다.

 그렇게 나를 대표하는 단어는 얼마전까지 '이데아'가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 약간의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세상을 현상학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결코 무시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무조건 이데아만 외칠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는 시각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이후 여러가지 닉네임을 섞어 썼다.

< 이데아, 폐문, 자유 >

 '이데아', '폐문' 그리고 '자유'이다.
 '자유'는 내가 꿈꾸는 최고 이념이다.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을 초월하여 모든 곳에 적용될 수 있고, 결코 비판받을 수 없는 이념이다. 세계의 역사는 자유의 역사의 다름아니다. 많은 이들이 자유를 부르짖으며 죽어갔고 아직 세상은 자유의 이념을 실현하기에 멀었다. 이에 나는 그들의 삶에 동참하기로 했다. '자유'는 평생 내가 추구해야할 이념이다.

< 내이름, 이데아 >

 위의 필명들을 사용하던 중 내가 너무 이상에 집착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가장 솔직한 필명인 내 이름으로 잠시 돌아왔다. 그러다 다시 내 마음속에서 철학적 이상이 약해지는 것을 발견한 나는 다시 '이데아'로 회귀하였고, 그 후로 오랫동안 '이데아'는 나와 동일시 되었다.

< 검정벌레 >

 하지만 역시 또 너무 추상적이고 사람들에게 다가가기에 어려운 단어라는 생각을 했다. 필명이라는 것은 나를 대표함과 동시에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어야 하는데 나는 너무나 사람들과 단절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의 외양과 내면을 표현해줌과 동시에 사람들에게도 어렵지 않은 '검정벌레'라는 것을 생각해냈다. 평소 검정색 옷차림을 즐기고, 고독과 평온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나를 설명하기게 적절한 것 같았다. 또한 친근한 단어이기도 하다.
 
 '검정벌레'를 사용한지는 얼마되지 않았지만 한동안 이 필명을 바꾸지는 않을 듯 하다. 글쎄 또 얼마나 오래 갈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썬 가장 마음에 드는 필명이다.

 

p.s 지금은 '아프락사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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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마음이 잘 맞았던 동아리 후배녀석이 죽은지 3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군대에 들어가 100일 휴가를 앞두고 싸늘한 시체가 되어 바다에 떴다. 군대에서는 자살이라고 판정을 내리고 사건을 빨리 마무리 지으려했다. 그러나 결코 자살할 애가 아니란건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동의할 것이다. 얼마나 천진무구하고 낙천적인 아이였는데...

 녀석의 사망소식을 접한건 집에서 인터넷을 하고 있을 때였다. 동아리의 다른 후배가 전화속에서 울고 있었다. 아니 얘가 왜 이러지? 무슨 안좋은 일이 있었던 게로구나. 그런데 후배의 첫 마디...

"정욱이가 죽었대요. 군대에서 죽었대요"

 당시 난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상황에서 수화기 안에서 들리는 후배의 울음 소리를 듣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정욱이가 군대에서 자살을 하다니? 말도 안된다. 활달하고 낙천적인 성격을 가진 아이였다. 그가 군대가기 전 남긴 마지막 글에서도 한동안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기까지 했다. 그러던 그가 자살을 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이제 나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국방의 의무를 마친 대한민국 시민이 되었다. 남자는 군대를 갔다와서 국방의 의무를 마침으로써 어엿한 성인이 되고 대한민국 시민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그랬던가. 훗... 쓴웃음만이 지어진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지니자!"

 정욱이가 좋아하던 쿠바 혁명가 체 게바라의 말이다. 음악적 취향면에서, 가치관면에서 그는 나와 참 비슷했다. 체 게바라 평전이 처음 나왔을 때, 정욱이는 내게 이런 말을 건냈다. "형! 체 게바라 평전 나왔대요." 짧은 말 한마디는 많은 것을 함축한다. 그는 내가 체 게바라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서로 통했음을 느꼈다.

 그래... 그렇게 친한 아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아이였다. 그의 죽음 이후 난 그의 부모님을 따라 부대앞에 가서 시위를 하지도 않았고, 그저 분노에 가득차 인터넷 상에 그의 죽음을 알리는 글을 작성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에 대해 알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졌을 뿐이었다. 그게 다였다. 나는 훗날 정욱이와 같이 의문사하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사회를 바꾸겠다고 생각하며, 그때는 그 모든일들이 해결될거라고 스스로 위안하며 자기합리화를 시키곤 했다. 후배의 죽음 앞에 난 무력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후에 내가 노력하겠다는 나의 다짐은 변치 않았다. 그의 죽음을 다시 돌아봄으로써 나의 의지를 강화시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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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르다'는 사전적 의미로

1. 둘러 막다
2. 바로 말하지 않고 둘러서 말을 하여 짐작하게 하다.

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나는 에두르며 말하기를 좋아한다. 직접적이고 공격적인 글쓰기를 좋아하는 내가 말하는 것은 왜 에두르는 것을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겠다.

상대방에게 어떤 것에 대해 설명하거나, 혹은 나의 주장을 받아들이도록 상대방을 설득하거나, 상대방과 논쟁할 때 에둘러 말하기는 효력을 발휘한다. 어떤 사람들은 에둘러 말하기가 답답하다고 할지도 모른다. 물론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충분히 답답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듣고 나면 그만큼 시원하고 확실한 것도 없다.

나에게 있어 에둘러 말하기는 말하고자 하는 어떤 내용을 꺼내기 앞서 서론적인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본 내용을 말하고자 그것을 뒷받침 해줄 수 있는 내용을 먼저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비유법과 산파술이 그것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비유법을 사용하면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보다 시간상 더 길어질 수도 있으나 말하고자 하는 내용에 있어서는 내용상 더 풍부해지고, 그것이 설득을 필요로 하는 것일 경우에는 충분한 근거를 대줄수가 있다. 또, 산파술의 경우, 산파술이라는 것은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가 사용하던 말하기법으로 어떤 것을 말하고자 할때 먼저 상대방이 그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말하도록 하고 그것의 잘못됨을 지적한 후 상황에 맞게 결론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산파술은 에둘러 말하기는 하지만 결국 상대방을 꼼짝 못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전에 일기장의 어떤 글에서 한두 차례 내가 말을 못한다는 것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다. 정말 그렇다. 그러나 나는 차츰 내 자신이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비유법과 산파술을 나의 말하기의 무기로 사용하고자 한다. 그쪽으로 훈련을 해 언젠간 한치의 오류도 허용하지 않는 언변을 과시할 날이 오리라.


p.s 내가 이 글을 쓴지가 몇 년인데 아직 나는 나아짐을 못느낀다.
     역시 말에는 소질이 없나보다. 그래도 노력은 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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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천재는 악필이다" 라는 명제의 진리치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갖었다. 글씨 전문가를 데려다가 흔히 천재라 불리는 사람들의 글씨를 보여주고 평가하는 것이었다. 세계적인 천재 베토벤이나 아인슈타인 등의 친필을 보여주었고, 그들 중 일부는 악필이었으나 일부는 그렇지 않았다.
 
 또 우리나라에서 아이큐 150이상이라는 멘사단체에 가서 같은 실험을 하였고, 역시 위와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다음으로 조수미나 김병지, 최용수, 조성모 등의 사인을 받아와 이를 확인하는 절차를 갖었고 역시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여담이지만 이들을 누가 천재라 했는지 궁금하다. 이들이 선발됐다는 것은 곧 이들이 천재임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인데 말이다.)

 그런데 글씨 전문가가 악필과 그렇지 않은 글씨를 구분하는데 있어 사용하는 기준이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라 다른 전문가가 봤다면 결과는 조금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 문제를 따질 사안이 아니고,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든 생각은 나의 글씨는 어떠한가? 라는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때였을 것이다. 학교에서 경필대회를 했는데, 무슨 글씨를 썼었는지 기억이 안나지만 난 그때 동상인가를 받았다. 물론 이 심사가 객관적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것을 떠나서 내 글씨가 동상을 받을 만큼 잘 쓴 글씨였다는 것에 굉장히 기뻤었다. 다음 학년에 올라서는 이 사건 때문인지 나는 아이들에게서 자신의 글씨를 봐달라는 요구를 많이 받았다.(이 시기의 아이들은 글씨체를 가지고 우열을 가리곤 했다. 특히 여자아이들은)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두 여자아이가 서로 자신의 글씨가 더 낫다면서 나에게 심사를 의뢰한 것이었다. 그때 나는 마치 내가 뭔가 된 것인양 두 글씨를 평가해줬고, 어느 한쪽을 편든것 같지는 않았다. 둘 다 만족스럽게 평을 내렸던 듯...

 한편 중학교에 진학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이가 들수록 나의 글씨는 아주 이상하게 변해갔다. 그것은 초등학교때는 수업시간에 필기를 많이 하지 않는데 비해, 중고등학교에서는 매 시간마다 엄청난 필기량을 소화해내야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빨리 쓸 수 밖에 없었고 여기서 내 글씨체가 엉망이 되어버린듯하다. 지금도 나는 정성껏 쓸래야 쓸 수가 없다. 그냥 쓰나 정성껏 쓰나 그 글씨가 그 글씨다. 그래서 나는 내 손으로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컴퓨터 키보드로 글을 쓰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속도도 더 빠르고, 나의 손이 나의 생각의 속도를 따라갈 수가 있다. 그러나 글씨를 직접 쓸 때는 씌여지는 글씨체도 짜증나고, 내 손이 내 생각의  속도를 쫓아가지 못해 속상할 때가 많다.

 미국 사람들은 주로 컴퓨터 키보드로 글씨를 쓰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악필이라고 한다. 그들은 키보드를 사용해서 악필이 된 것이지만 나의 경우는 악필이기때문에 키보드를 사용한다고 봐도 될 듯하다. 종이에 써도 될 것을 키보드로 쓰니 말이다.

 글씨를 잘 쓰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사람들에게 메모 한 장을 남길 때도, 소중한 친구에게 좋은 글을 써서 줄때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쓸 때도, 악필은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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