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마음이 잘 맞았던 동아리 후배녀석이 죽은지 3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군대에 들어가 100일 휴가를 앞두고 싸늘한 시체가 되어 바다에 떴다. 군대에서는 자살이라고 판정을 내리고 사건을 빨리 마무리 지으려했다. 그러나 결코 자살할 애가 아니란건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동의할 것이다. 얼마나 천진무구하고 낙천적인 아이였는데...
녀석의 사망소식을 접한건 집에서 인터넷을 하고 있을 때였다. 동아리의 다른 후배가 전화속에서 울고 있었다. 아니 얘가 왜 이러지? 무슨 안좋은 일이 있었던 게로구나. 그런데 후배의 첫 마디...
"정욱이가 죽었대요. 군대에서 죽었대요"
당시 난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상황에서 수화기 안에서 들리는 후배의 울음 소리를 듣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정욱이가 군대에서 자살을 하다니? 말도 안된다. 활달하고 낙천적인 성격을 가진 아이였다. 그가 군대가기 전 남긴 마지막 글에서도 한동안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기까지 했다. 그러던 그가 자살을 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이제 나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국방의 의무를 마친 대한민국 시민이 되었다. 남자는 군대를 갔다와서 국방의 의무를 마침으로써 어엿한 성인이 되고 대한민국 시민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그랬던가. 훗... 쓴웃음만이 지어진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지니자!"
정욱이가 좋아하던 쿠바 혁명가 체 게바라의 말이다. 음악적 취향면에서, 가치관면에서 그는 나와 참 비슷했다. 체 게바라 평전이 처음 나왔을 때, 정욱이는 내게 이런 말을 건냈다. "형! 체 게바라 평전 나왔대요." 짧은 말 한마디는 많은 것을 함축한다. 그는 내가 체 게바라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서로 통했음을 느꼈다.
그래... 그렇게 친한 아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아이였다. 그의 죽음 이후 난 그의 부모님을 따라 부대앞에 가서 시위를 하지도 않았고, 그저 분노에 가득차 인터넷 상에 그의 죽음을 알리는 글을 작성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에 대해 알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졌을 뿐이었다. 그게 다였다. 나는 훗날 정욱이와 같이 의문사하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사회를 바꾸겠다고 생각하며, 그때는 그 모든일들이 해결될거라고 스스로 위안하며 자기합리화를 시키곤 했다. 후배의 죽음 앞에 난 무력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후에 내가 노력하겠다는 나의 다짐은 변치 않았다. 그의 죽음을 다시 돌아봄으로써 나의 의지를 강화시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