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릴적부터 무언가를 수집하는 것에 집착하곤 했었다. 과자안에 들어있는 판박이나 스티커 혹은 딱지 같은 것들을 수집하기도 했고, 책갈피를 수집하기도 했다. 언젠가부터는 레스토랑이나 커피숍에 갈 때면 나올 때 항상 그 가게의 성냥갑을 하나씩 들고 나오곤 했는데, 성냥을 수집한다기보다 성냥갑을 수집한다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성냥갑을 수집하는 것은 내가 이곳에 왔었다는 어떤 증표를 남기고 싶었기 때문인데,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성냥갑이라고 다 똑같은 성냥갑이 아니다. 냇물가의 자갈들이 모두 똑같은 돌덩이가 아니듯 성냥갑도 모두 똑같은 성냥갑이 아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수많은 돌덩이 중에 유난히 나의 눈에 들어오는 이쁜 돌덩이가 있을 수 있듯, 성냥갑 중에서도 모양새와 빛깔이 매우 고와 꼭 가지고 싶은 성냥갑이 있다는 말이다.

영화관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부터는 난 영화표를 모으기 시작했다. 나중에 모은 이 영화표들을 꺼내보며 나는 그때를 회상할 수 있을 것이다. 아 이때 이 영화를 누구랑 봤는데 어땠다 라든가, 이 영화가 그 당시 한창 화제를 불러일으켰었지 라는 식으로 개인적 경험이나 당시의 문화적 풍토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대학에 들어와 나는 씨디와 책을 본격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했고, 더불어 시사주간지도 수집하기 시작했다. 또 나는 대학 4년간 수업시간에 사용되었던 발제지(혹은 발표지라고도 한다)와 교수님께서 나눠주신 핸드아웃을 각 분야별로 모아서 서류봉투에 따로 보관하고 있다. 그 외에도 나는 얼마 안되는 양이지만 영화포스터나 음반포스터를 수집하고, 악보를 수집했다.

이런 식으로 따지자면 나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 내가 경험하는 모든 것을 '수집하고 있다'고 표현해도 무방할 것이다. 일전에 나는 다른 글에서 나의 주변의 모든 것과 경험하는 모든 것들을 '문자화'시킨다고 말한 바 있다. 나는 모든 것들을 문자화 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수집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나의 수집경험에 비추어 수집에 대한 나의 몇가지 생각들을 말하고자 한다.

첫번째로 말하고 싶은 것은 수집하는 사람에 대한 오해이다.
수집벽이 있는 사람은 낭비벽이 심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왜 그런고 하니, 주위의 모든 경험하는 것들을 수집하는 사람은 돈을 들여 그것을 사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본래 나의 것이 아닌 길거리에 널려 우리 모두의 것이었던 그것을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돈'이 개입하게 된다. 수집을 하자면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고 어쩔 수 없이 돈을 들여 사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책을 수집해도, 음반을 수집해도 돈이 들어간다. 어떤 사람은 책갈피나 성냥갑은 돈이 안들어가지 않느냐 라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좀더 생각해보면 책갈피를 얻기위해서는 책을 사야하고, 성냥갑을 얻기 위해서는 레스토랑이나 커피숍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레스토랑이나 커피숍에서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지 않더라도 성냥갑을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성냥갑을 수집하는 본래의 의미를 사라져버리게 한다. 내가 성냥갑을 수집하는 것은 내가 방문했던 장소들을 기억하기 위함인데 그러한 '경험'이 배제된 채 얻어낸 성냥갑은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하게 된다. 결국 이래저래 돈은 들어가기 마련이고 수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돈을 헤프게쓰는 사람쯤으로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두번째로 말하고 싶은 것은 수집의 즐거움이다.
수집은 수집하는 사람에게 일종의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수집을 하면서 겪게되는 어려움은 나중에 내가 수집한 물품들을 볼 때 흐뭇함을 느끼게 해준다. 쉽게 수집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만큼 가치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무엇이든 어렵게 얻어낸 것이 값진 것이다. 희귀한 음반을 하나 구하고자 할 때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동원한다. 내가 자주 찾던 동네 단골 레코드점부터 시작해서 수입 레코드점, 중고 레코드점 심지어는 인터넷의 외국 쇼핑몰까지도 뒤진다. 이렇게 해서 얻어낸 음반은 내가 소장하고 있는 음반들의 격을 한껏 높여주게 된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지 않은 오직 나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음반이기 때문이다. 나의 씨디 진열장에 구하기 힘든 음반이 하나 들어옴으로써 전체적인 위상이 한껏 높아지는 것이다.

수집의 즐거움은 또 있다. 오랜 세월 한가지 물품만을 수집하다보면 쌓이고 쌓여 음반의 경우 소규모 레코드점을 차린 것 같은 수준에 이르기도 하고, 책의 경우 작은 헌책방을 하나 차린 듯한 수준에 이르기도 한다. 나만의 작은 레코드점이자 헌책방인 것이다. 푸근한 쇼파에 비스듬히 앉아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내가 수집한 책들 중 하나를 끄집어내 책장을 넘긴다. 귓가엔 감미로운 재즈선율이 흐른다. 과히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귀한 물품을 수집하며 겪는 어려움을 수집 과정의 즐거움이라 한다면, 오랜 세월의 수집으로 내가 원하는 무엇이든 언제나 끄집어내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수집의 마지막 즐거움일 것이다. '경험의 문자화'와 함께 '경험의 수집화'는 나의 생애가 다하는 날까지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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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이지만 가장 미국을 혐오하는 언어학자이자 철학자인 노암 촘스키. 이미 우리에게 '실패한 교육과 거짓말'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불량국가'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숙명의 트라이앵글' 등의 책으로 알려져있는 노암 촘스키는 반세계화 운동과 신자유주의 비판, 미제국주의의 비판의 선두에 서서 가장 진보적이고 치열한 사고를 하는 대표적인 지식인이다.

 노암 촘스키는 어느 글에선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지식인은 정부의 거짓말을 세상에 알려야하며, 정부의 명분과 동기 이면에 감춰진 의도들을 파악하고 비판해야 한다"

 나는 촘스키의 이 말이 매우 마음에 든다.  촘스키의 이 말대로 지식인이 정부의 거짓말과 명분, 동기 이면의 감춰진 의도들을 파악하고 비판하기 위해서는 지식인은 주류의 입장을 대변하기 보다는 소수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줄 알아야하며, 항상 사회의 억압받는 이들에 대해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다.

 지식인은 남들이 모두 '예스'라고 말하는 것에 '노'라고 말 할 수 있어야 하고, 남들이 모두 '노'라고 말하는 것에 '예스'라고 말 할 수 있어야 한다. 지식인은 또한 해야할 말을 하지 않아서는 안된다.  지식인은 또한 소수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 뿐 아니라 '소수의 삶'을 행동으로써 보여줘야 할 것이다.

 나는 지식인인가? 나는 지식인의 삶을 지향하는 사람이다. 햇병아리 지식인이라고 보면 될 듯 하다. 이미 지식인의 삶을 걷기로 한 이상 나는 지식인의 영역에 발을 내딘 셈이다. 이제 이곳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나는 내가 한 말을 행동에 옮기는 것만이 남아있다. 말을 행동으로 옮김으로써 나는 지식인의 영역에 비로소 정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행동의 첫번째는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되는 길이다. 나의 양심, 나의 신념에 비추어 분명 전쟁은 악이다. 인류는 전쟁을 막을 수도 있었다. 우리는 전쟁을 하지 않고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인류는 끊임없이 전쟁을 해왔고 그 끝을 모르고 있다. 전쟁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과 힘없는 노인들, 여자들을 무차별 살육한다. 또한 수많은 군인들이 전쟁으로 목숨을 잃는다. 그들은 왜 싸워야하는가. 나는 반전평화주의를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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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재산? 아직 돈도 벌지 못하는 내가 무슨 재산이 있을리 만무하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말하는 재산은 '물질적 가치'가 아닌 '정신적 가치'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정신적 가치로서의 재산은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책들과 씨디들이다. 물질적 가치를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나 물질적 가치의 측면에서보더라도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값 나가는 것들은 책과 씨디들이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음반을 사기 시작해, 고등학교 때 조금씩 씨디를 사모았고, 대학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음악을 찾아들으며 좋은 음악들을 보존하고자 씨디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씨디가 어느새 226장에 이르렀다.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그다지 많지 않은 숫자이며,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다소 많은 숫자이다. 씨디 한장에 만원씩만 쳐도, 이백만원이 넘는다. 사실 씨디 한장에 만원일리는 없다. 보통 만삼천원 정도 하고 수입씨디는 이만원 가까이 이르는 것도 있음을 볼 때, 실재 물질적 재산가치는 이백오십만원 정도에 이를 것이다. 내게 있어 물질적으로도 가장 큰 가치를 지닌 이 씨디들은 정신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동안 모은 이 음악들은 내가 밴드생활을 하면서, 드럼을 연주하면서, 또 글을 쓰면서 나의 정신적 자양분이 된 물건들이다. 내가 음악을 하면서 음악적 취향을 만들어준 씨디들도 있으며, 드러밍의 스타일을 만들어준 씨디도 있고, 내가 글을 쓰는데 있어 감상적 혹은 이성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주는데 일조한 씨디들도 있다. 나는 우울할 때, 슬플 때, 기쁠 때 등 음악을 통해 나를 달랜다. 음악은 내게 있어 삶을 지탱해주는 원천인 것이다.

두번째로 책을 들 수 있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책은 최근 일년 사이에 사모은 책들이 대부분이다. 본래 책을 싫어하지는 않았으나 어떤 책을 읽어야할지 판단할 수 없는 상태에 있었고 따라서 책과는 거리를 두고 있는 나였다. 하지만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신문을 정독하면서, 스크랩을 하면서, 시사주간지를 읽으면서, 나는 책을 선택하는 데 있어 어떤 기준같은 것이 생겼고, 좋은 책을 가리는 안목을 갖추게 되었다. 이제 내 스스로 책을 선택해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이다. 내가 사모으는 책들은 대부분이 사회비평서나 학술서적들이다. 그증 철학에 관련된 책들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칼럼집이나 에세이, 소설도 조금씩 가지고 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어떤 정신적 성숙을 느낀다. 나의 사회에 대한, 국가에 대한, 세계에 대한 시야가 넓어짐을 느낀다. 또한나의 사색이 깊어짐을 느낀다. 나는 생각함, 사유함, 사색함을 즐긴다. 현재 나의 사유함에 기본적인 원천이 되는 것은 바로 책들이다. 나는 책을 읽음으로써 세계와 대화를 한다. 문장 한 줄에서 사람됨을 배우고, 작가에게서 삶의 고뇌를 배운다.

음악이 나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면, 책은 나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 책과 씨디는 정신과 마음의 총체이며, 나를 이루는 근본인 것이다. 언제든 누군가 내게 너의 재산이 무엇이냐 물으면 나는 책과 음악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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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물품 중 가장 아끼는 물건이 있을 것이다. 최인호씨의 소설 '商道'를 보면, 주인공 임상옥은 중국 연경에서 장미령을 구하기 위해 홍득주의 인삼을 팔고 난 이윤을 거의 다 써버리고 만상에서 쫓겨난 뒤 어릴적 가르침을 받았던 절인 추월암(秋月庵)으로 들어가 스님이 된다. 그러던 어느날 송상 박종일과의 만남으로 절에서 나오며 석숭스님으로부터 ‘계영배(戒盈盃)’라는 초라하고 작은 술잔을 하나 받게되는데 이것은 임상옥에게 있어서 보물과도 같은 존재였다. 임상옥은 그의 말년에 쓴 자서전 '가포집'을 통해 '계영배'에 대해 이렇게 밝히고 있다.

"나를 낳은 것은 부모지만 나를 키운 것은 이 잔이다"

상인으로서의 성공 이후 그는 말년에 위기에 처했을 때 '계영배'를 통해 위기를 벗어나게 되고, '계영배'의 비밀을 알게 되며, '계영배'가 만들어진 긴 사연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는다. 그 깨달음이 바로 '상도(商道)'인 것이다. 상인의 도. 그는 상업을 통해 불도를 이룬 것이다.

일찍이 석숭스님은 상옥에게 계영배를 물려주며 이것이 상옥에게 있을 커다란 세 번의 위기 중 마지막 위기를 타파해줄 물건임을 말해준바 있다. 임상옥은 홍경래의 난으로 대역죄인이 되어 죽은 그의 친구 이희저의 딸을 첩실로 삼아 관기에서 양민으로 해방시켜주었다. 나라에서는 대역죄인의 딸을 양민으로 해방시켜준 것을 알고 말년에 임상옥을 감옥살이를 시키고, 유배를 보낸다. 당시 비변사로 파견된 조상영을 대접할 때 비로소 이 ‘계영배’의 비밀이 밝혀지게 되는데, 잔에 술을 가득채워도 술잔엔 7부 정도의 술만이 남아었었고, 술 한 동이를 따라도 술잔은 계속해서 바닥을 드러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가득채우지 않고 조금 남겼더니 술이 그대로 있었다. 이 잔은 가득채움을 경계하는 잔이었던 것이다. 이 술잔에는 아주 작은 글씨로 "가득채움을 경계하고 너와 함께 죽기를 바란다(戒盈祈願 與爾同死)"라는 내용의 8자의 글자가 새겨져있었는데 그 첫번째 네 글자의 의미가 드러난 것이다. 그러면 "너와 함께 죽기를 바란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아닌 석숭스님과 연관되었던 것이다. 술잔이 자꾸만 비자 조상영은 화가나 술잔을 마당에 던져버렸고, 술잔은 깨졌고, 임상옥이 술잔을 찾았으나 술잔은 깨진 틈새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 피는 다름아닌 석숭스님의 피였던 것이다. 후에 알게되지만 석숭스님은 바로 그 잔을 만든 우명옥이라는 장인이었으며, 잔이 깨짐과 동시에 석숭스님은 목숨을 다한 것이었다.

'계영배'에 새겨진 글자 ‘계영기원 여이동사(戒盈祈願 與爾同死)’ 는 임상옥에게 장사로 돈을 벌어 부자가 되는 것이 진정한 부자가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버림으로써 부자가 되는 것임을 일깨워줬던 것이다. 석숭스님은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그 '욕망의 버림'을 넘어선 '생명의 버림'으로써 진정한 ‘도(道)’란 무엇인가를 몸소 보여줬던 것이다.  

나에게 있어 '계영배'는 어떤 물건일까? 내 나이 스물 셋. 아직 새파란 나이이지만 지금의 나를 이룬 물건을 하나 뽑으라면 아마도 '체 게바라 평전'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때 미국의 랩메틀 밴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으로 인해 미국 뿐 아니라 우리나라까지도 체 게바라 열풍에 휩싸인 적이 있었다. 당시 엄청난 체 게바라(아래 체) 열풍에 누군가에게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 라고 물으면 체를 아는 사람 중 열에 일곱 정도는 그를 존경하는 사람으로 뽑을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진정으로 존경하는 인물로 생각했다고는 생각지는 않는다. 그저 너도 나도 체 게바라를 외치니까 나도 한번 따라해보자, 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정말로 그를 존경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 중 후자로 '체 게바라 평전'을 읽고 나의 삶의 방향을 감지했다고 말 할 수 있다. 내가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가, 하는 문제를 말이다. 체는 아르헨티나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의사의 길을 걷고 있던 중 친구와 함께 떠난 중남미 여행을 통해서 가난한 이들의 삶, 핍박받는 이들의 삶을 두 눈으로 보고 그 길로 의사의 길을 버리고 혁명가의 길을 택했다. 결국 쿠바의 혁명을 승리로 이끌고 국가 고위직에 머물기도 했지만 총살을 당해 비참한 최후를 맞았던 인물이다.

임상옥에게 있어 '계영배'가 보물이고, 계영배에 씌여있던 "가득채움을 경계하며 너와 함께 죽기를 바란다"라는 말이 인생의 좌우명이었다면, 내게 있어 보물은 '체 게바라 평전'이요, 인생의 좌우명은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지니자"라는 말이 될 것이다.

체와 더불어 나의 삶에 있어 어떤 지침을 내려준 사람으로 데카르트를 들 수 있다. 데카르트의 저서 ‘방법서설’을 읽지는 않았지만 나는 데카르트의 그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명제를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 주의할 점은 그 명제 자체보다는 데카르트가 이 명제를 이끌어내기까지의 사색의 과정을 존중한다는 점이다. 데카르트는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온갖 시도를 해봤지만 어떤 방법으로도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현재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것, 그 자체는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진리임이 확실하고 그로부터 데카르트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나는 삶을 살아가면서 모든 결정에 있어서 데카르트의 명제를 우선적으로 생각한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따져보고 그러한 사색의 흐름을 타고 비로소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내게 있어 ‘계영배’는 '체 게바라 평전'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 읽지 않은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또한 ‘계영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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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영화를 본다는 것. 그것을 실제 경험하기 전까지 나는 그것이 어떤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냥 그 전에는 혼자 어떻게 영화를 보러가지? 라는 물음을 제기하며 혼자 영화보기를 즐기는 사람들을 신기하게 바라본 것이 전부였다. 주위에 그런 형이 한명이 있는데 옆에서 보기에는 그 형은 혼자 영화를 본다는 것에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듯 어떤 특별한 '비어있음'을 느끼지는 못하는 듯 했다. 오히려 그것을 즐기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러한 '지켜봄' 속에서 나는 혼자 영화를 보러가기로 결정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내가 혼자 영화를 봤다는 것이고, 이 특별한 경험(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경험) 속에서 내가 느낀 것들이다. 일단 혼자 영화를 본다는 것은 매표소에서부터 남들과 다른 경험이 시작됨을 의미한다. 나는 "3시 30분거 한장이요~"라고 외치면서 매표소 안의 직원이 지금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고 그의 마음 속을 짐작해보기도 한다. 둘이 영화를 보러가서 표 두장을 요구할 때는 그의 생각따위는 별로 마음에 두지 않았었다. 글쎄... 아마도 그 여직원은 내가 표 한장을 요구했을 때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는 하루에도 몇번씩 혹은 수십번씩 나와 같이 한장의 표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접할 것이고, 그에게 있어 이런 나는 별 특별한 존재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는 나를 특별하게 대하지 않는데 나는 나 자신을 특별하게 생각한 것 뿐이다. 왜냐면 '혼자 영화를 본다는 것'이 나에게는 특별한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특별한 경험으로부터 타인이 나를 특별하게 생각할 것이라는 한도를 벗어난 생각의 나래를 펼쳤던 것이다.  

'혼자 영화를 본다는 것'의 두번째 경험은 극장안에 들어서 좌석에 앉으면서 시작된다. 불행히도 내가 앉은 좌석은 커플석이었다. 혼자간 내게 커플석을 주다니... 내 옆에는 막 수능시험을 친 고3이거나 대학교 1학년생쯤으로 보이는 여자가 앉아있다. 그 여자도 처음에 커플석임을 알고 잠깐 당황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내 영화가 시작되자 따로따로 각자 영화를 즐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 반대편의 커플석에는 두 연인이 뽀뽀를 하는지, 키스를 하는지 모르게 둘이 계속 몸을 뒤치덕 거리고 있었다. 포옹은 기본이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에는 공공장소에서 애정행각(?)을 벌이는 사람들을 보면 쯧쯧... 거리며 못마땅하게 생각했는데, 그들의 모습이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천박하기보다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왜인가.

'혼자 영화를 본다는 것'의 세번째 경험은 영화를 보는 중간에 일어난다. '달마야 놀자'는 참으로 웃긴 영화였다. 영화 중간중간마다 배꼽빠지게 웃기는 장면들이 자주 연출됐고 극장 안의 사람들은 각자의 배꼽을 부여잡고 웃음을 터뜨렸다. 나 역시 즐거웠으나 혼자 웃는다는 것이(극장 안에서 나는 혼자가 아니지만 혼자이기도 하다) 좀 머쓱했다. 영화에 몰두하지 못한 탓일까? 아무리 혼자여도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영화만 본다면 혼자도 충분히 웃을 수 있을텐데...

'혼자 영화를 본다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일견 그것은 넷이 영화를 보는 것, 셋이 영화를 보는 것, 둘이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이 그저 사람 숫자가 한명 줄어든 것으로밖에는 안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달랐다. 넷이서, 셋이서, 둘이서 볼때는 같이 보는 사람숫자에 상관없이 '내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존재한다. 그러나 혼자 볼 때는 '그 누군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나와 영화만이 존재한다. 그리고 내 주위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무수히 많은 관중들이 있을 뿐이다.

혼자 영화를 본다는 것은 외롭다. 쓸쓸하다. 그러나 때로는 혼자도 좋다. 그저 그것은 색다른 경험인 것으로도 충분히 겪어 볼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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