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릴적부터 무언가를 수집하는 것에 집착하곤 했었다. 과자안에 들어있는 판박이나 스티커 혹은 딱지 같은 것들을 수집하기도 했고, 책갈피를 수집하기도 했다. 언젠가부터는 레스토랑이나 커피숍에 갈 때면 나올 때 항상 그 가게의 성냥갑을 하나씩 들고 나오곤 했는데, 성냥을 수집한다기보다 성냥갑을 수집한다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성냥갑을 수집하는 것은 내가 이곳에 왔었다는 어떤 증표를 남기고 싶었기 때문인데,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성냥갑이라고 다 똑같은 성냥갑이 아니다. 냇물가의 자갈들이 모두 똑같은 돌덩이가 아니듯 성냥갑도 모두 똑같은 성냥갑이 아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인고 하니, 수많은 돌덩이 중에 유난히 나의 눈에 들어오는 이쁜 돌덩이가 있을 수 있듯, 성냥갑 중에서도 모양새와 빛깔이 매우 고와 꼭 가지고 싶은 성냥갑이 있다는 말이다.
영화관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부터는 난 영화표를 모으기 시작했다. 나중에 모은 이 영화표들을 꺼내보며 나는 그때를 회상할 수 있을 것이다. 아 이때 이 영화를 누구랑 봤는데 어땠다 라든가, 이 영화가 그 당시 한창 화제를 불러일으켰었지 라는 식으로 개인적 경험이나 당시의 문화적 풍토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대학에 들어와 나는 씨디와 책을 본격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했고, 더불어 시사주간지도 수집하기 시작했다. 또 나는 대학 4년간 수업시간에 사용되었던 발제지(혹은 발표지라고도 한다)와 교수님께서 나눠주신 핸드아웃을 각 분야별로 모아서 서류봉투에 따로 보관하고 있다. 그 외에도 나는 얼마 안되는 양이지만 영화포스터나 음반포스터를 수집하고, 악보를 수집했다.
이런 식으로 따지자면 나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 내가 경험하는 모든 것을 '수집하고 있다'고 표현해도 무방할 것이다. 일전에 나는 다른 글에서 나의 주변의 모든 것과 경험하는 모든 것들을 '문자화'시킨다고 말한 바 있다. 나는 모든 것들을 문자화 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수집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나의 수집경험에 비추어 수집에 대한 나의 몇가지 생각들을 말하고자 한다.
첫번째로 말하고 싶은 것은 수집하는 사람에 대한 오해이다.
수집벽이 있는 사람은 낭비벽이 심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왜 그런고 하니, 주위의 모든 경험하는 것들을 수집하는 사람은 돈을 들여 그것을 사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본래 나의 것이 아닌 길거리에 널려 우리 모두의 것이었던 그것을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돈'이 개입하게 된다. 수집을 하자면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고 어쩔 수 없이 돈을 들여 사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책을 수집해도, 음반을 수집해도 돈이 들어간다. 어떤 사람은 책갈피나 성냥갑은 돈이 안들어가지 않느냐 라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좀더 생각해보면 책갈피를 얻기위해서는 책을 사야하고, 성냥갑을 얻기 위해서는 레스토랑이나 커피숍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레스토랑이나 커피숍에서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지 않더라도 성냥갑을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성냥갑을 수집하는 본래의 의미를 사라져버리게 한다. 내가 성냥갑을 수집하는 것은 내가 방문했던 장소들을 기억하기 위함인데 그러한 '경험'이 배제된 채 얻어낸 성냥갑은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하게 된다. 결국 이래저래 돈은 들어가기 마련이고 수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돈을 헤프게쓰는 사람쯤으로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두번째로 말하고 싶은 것은 수집의 즐거움이다.
수집은 수집하는 사람에게 일종의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수집을 하면서 겪게되는 어려움은 나중에 내가 수집한 물품들을 볼 때 흐뭇함을 느끼게 해준다. 쉽게 수집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만큼 가치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무엇이든 어렵게 얻어낸 것이 값진 것이다. 희귀한 음반을 하나 구하고자 할 때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동원한다. 내가 자주 찾던 동네 단골 레코드점부터 시작해서 수입 레코드점, 중고 레코드점 심지어는 인터넷의 외국 쇼핑몰까지도 뒤진다. 이렇게 해서 얻어낸 음반은 내가 소장하고 있는 음반들의 격을 한껏 높여주게 된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지 않은 오직 나만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음반이기 때문이다. 나의 씨디 진열장에 구하기 힘든 음반이 하나 들어옴으로써 전체적인 위상이 한껏 높아지는 것이다.
수집의 즐거움은 또 있다. 오랜 세월 한가지 물품만을 수집하다보면 쌓이고 쌓여 음반의 경우 소규모 레코드점을 차린 것 같은 수준에 이르기도 하고, 책의 경우 작은 헌책방을 하나 차린 듯한 수준에 이르기도 한다. 나만의 작은 레코드점이자 헌책방인 것이다. 푸근한 쇼파에 비스듬히 앉아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내가 수집한 책들 중 하나를 끄집어내 책장을 넘긴다. 귓가엔 감미로운 재즈선율이 흐른다. 과히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귀한 물품을 수집하며 겪는 어려움을 수집 과정의 즐거움이라 한다면, 오랜 세월의 수집으로 내가 원하는 무엇이든 언제나 끄집어내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수집의 마지막 즐거움일 것이다. '경험의 문자화'와 함께 '경험의 수집화'는 나의 생애가 다하는 날까지 계속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