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월 29일자 한국일보에 실렸습니다.


 종로 3가에서 다시 그 할머니를 만난 것은 참으로 오랫만이다. 2001년 겨울 군에 입대하기 전에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본지도 횟수로 어느덧 3년. 2004년 겨울 난 제대했고 어김없이 나의 단골동네인 종로 3가를 거닐며 할머니를 조우했다. 할머니는 여전히 그 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한명 한명 붙잡고 돈을 달라고 구걸하고 있었다. 왜소한 체격에 그다지 따뜻해 보이지도 않는 옷을 입으시고 매일마다 그 거리에 나와 사람들에게 구걸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가시는 할머니.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그 길을 지나갈때마다 행동을 어찌해야할지 고민하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그냥 지나칠까? 돈을 줄까? 등등의 생각들이 교차한다.

 그날따라 사람들 앞을 서성이며 주머니에 돈을 넣어달라고 간청하는 그 모습이 너무나 가여웠다. 그리고 이번에는 반드시 돈을 주리라 마음먹고 주머니에 있는 잔돈을 탈탈 털어 모두 넣어드렸다. 비록 큰 돈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돈을 줌으로써 내 마음은 어느정도 안정될 수 있었다. 뿌듯함까지는 아니었다. 너무나 작은 보탬이었기에... 주위 상가에 가서 따뜻한 우유 하나, 커피 하나라도 사드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우유나 커피 살 돈을 차라리 더 드리는게 낫지 않을까 또 결국 고민끝에 그냥 지나갔다.

머리속이 상쾌하지만은 않다. 아쉬움을 남겨두고 또 그렇게 난 그 할머니와의 수없이 많은 만남을 뒤로한다. 불교에서는 옷 깃만 스쳐도 인연이라하던가? 그렇게 치자면야 그 거리를 지나는 모든 사람들이 할머니와 인연이 있다고 해야하겠지만, 옷깃을 스치는 모든 사람들이 할머니를 도와줄 거라 기대하는 것은 희망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나마저도 그곳에  때마다 마주치는 그 할머니와의 만남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할머니는 나로 하여금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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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의 목소리를 차단하는 사회는 발전불가능한 사회다.

휴가나 외박복귀시 병사들이 들여오는 책이나 씨디 등의 반입물품에 대해서는 '보안성 검토필'이라는 도장을 찍거나, 보안상 아무 문제가 없음을 증명하는 조그마한 딱지를 붙인다.

그런데 그 '보안성 검토필'이나 '딱지'라는 것이 참으로 기준이 모호하다. 즉 부대의 정보장교의 마음이 내키는 대로다.

우리와 다른 체제를 가지고 있고, 그 체제의 근본이 되는 맑스, 레닌주의류의 서적은 물론이고, 정치성, 이념성 짙은 소위 붉은 색을 칠해도 될만한 서적은 무조건 반입금지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물론 내가 설명을 잘해서 통과되긴 했지만, 우리나라 고등학교 졸업자라면, 수능을 한번이라도 공부했던 사람이라면 접해봤을 근대소설 '회색인'(최인훈 저)을 이념성이 짙다하여 금지를 하려했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그렇다면, 만약 여기에 '보안성 검토필'을 찍지 않았다면 군대는 우리나라의 교육방침을 무시하는 것인가? 6. 25 당시에나 적용했을 법한 지침을 아직도 반국가적이라하며 빨간색을 칠하려 한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분명 이 나라는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길을 모르는 국가는 망하게 되어있다.

최인훈의 '회색인'은 고등학생 추천, 권장 도서이다. 필수소설이기까지 한데, 이 책을 의심하다니...

또한 군대는 '한겨레'를 군대에 대한 비판을 많이한다하며 반입을 금지하고 있다. (희한한 것은 공군은 허용하고 있으며, 심지어 부대에서 판매까지 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판의 목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사회는 발전 불가능한 사회다. 비판을 경험히 받아들이고 개선의 노력을 하려고 해야지, 그것을 애초에 차단을 해서는 안된다. 군대는 외면상으로도 일반사회와 폐쇄되어있지만, 내면적으로도 폐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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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활을 한지 꽤 됐고, 처음에는 주위사람 눈치보이던 것이 이제는 익숙해진 시점. 여느때와같이 혼자 영화를 보러 종로 극장가로 향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서 힌트를 얻은 것처럼 보이는 영화 '이퀼리브리엄'을 본후 종로 3가 길거리를 걷고 있을 때였다. 저 앞에서 마이크에 대고 뭐라고 하고 있었는데 무슨 이벤트 행사를 하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보니 반전, 국방지 삭감 캠페인을 벌이고 있던 것이었다. 길다란 책상 하나를 깔아놓고 서명을 받고 있었는데 남자 한명, 여자 두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누군가 다가와 내게 서명을 하라고 한 것도 아니고 그저 그 사람들은 마이크로 어찌어찌하여 국방비를 삭감해야한다 라고 말만 했을 뿐이었지만 내 몸은 그들에게로 향했고 나는 노트의 윗부분에 나의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를 기입했다.

현 직업 외관상 '군인'인 나는 그렇게 나의 직업과는 모순되어보이는 '국방비 삭감 캠페인' 서명운동에 참가했다. 군에 대한 적대적 감정이 어디 하루이틀이랴. 그것은 이미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을 수년전부터 생겼던 것이 아니었던가. 20대 중반을 달리고 있는 이 시점에 나는 '군인'이라는 이름으로 하에 그곳에 내 이름을 남겼다.

군을 반대하는 나의 생각이 행동으로써 상징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는  아마 그때부터인 듯 하다.
대학 2학년 21살이었을 것이다. 공군을 지원해 빡빡머리로 난생처음타는 비행기까지 타고서 진주로 가 입영한 후  훈련소에서 인성검사를 하는데 난 그곳을 뛰쳐나오고 싶었고 어떤 명목으로써 나의 상징적 행위를 나타낼까 하는 고민 끝에 '정신이상자'라는 썩 괜찮은 명목을 찾았고 결국 그것으로 서울로 복귀했다.
두번째는 아마도 지금 육군에 입대하기 전에 반전평화와 병역거부를 선언했던 때인 것 같다. 공군탈출(?)에 이은 나의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고 역시 반전평화와 병역거부 선언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충격을 주었다. 물론 부모님께도... 결국은 이렇게 입대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세번째는 군대 내에서 자대배치까지 받고 잘 생활하던 중 화장실 낙서판을 이용 온갖 군대에 대한 비판과 부조리를 지적하며 내 나름대로 상징적 행위를 한 때이다. 물론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리는 간부를 포함한 부대원 전체가 봤음은 물론 나의 의견에 찬성하는 지지발언자까지 나왔다. 그때의 뿌듯함이란... 물론 이것으로 낙석자 색출을 우려하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아무도 글쓴이가 누군지 찾으려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가 나란 것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네번째는 아마 이번 서명운동인 듯 하다. 앞으로도 나의 반전, 반군 행위는 누가 알아주던 알아주지 않던 간에 상관없이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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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글들은 군대에서 화장실에 갔을 때 잠깐잠깐 생각나는대로 약술해본 짧은 글이다.


03. 6. 10
 
펜은 내게 있어 일종의 삶의 활력소가 되어준다. 나는 어떤 일을 하던간에 나의 오른쪽 바지주머니에 끼어있는 볼펜을 만지작 거리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무슨 일을 함에 있어 실질적으로 두려움과 불안감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켜주는 안정제 역할을 한다.
아마도 나는 평생 펜을 놓지 않을 것이다. 또한 나의 평생의 직업도 펜과는 분리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내게 있어 생명이다.


03. 6. 17

사람이 죽었단다.
그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비록 전화상이었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은 것은 그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강렬한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나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의 죽음, 내 후배 정욱이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이후로 내게 있어 죽음에 대한 세번째 경험이었다.


03. 6. 24

편집증적 기록습관을 지닌 나는 그 무엇이든 기록하고 그에 관해 써내려가야만 그것을 경험했다는 만족을 조금이나마 느낀다. 나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은 모두 활자화되어야한다. 시각의 활자화, 청각의 활자화, 촉각의 활자화...
글자는 굉장히 매력적인 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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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의 비판에 관한 몇 차례의 강의'는 독일관념철학자 중 한명인 피히테의 '학자의 사명에 관한 몇 차례의 강의'라는 저서의 제목 형태를 빌려와 작성한 것이다.

"군대는 한마디로 나라의 힘이다. 나라가 있기에 군대가 생긴 것이고, 군대가 있기에 나라가 존재한다"

이 말은 부대 화장실 낙서판에 적혀있는 문장으로서, 대부분의 군대에 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머리 속에 존재하는 '군대에 관한 보편적 인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위 문장에서 나는 우리 사회에 널리 그리고 뿌리깊에 박혀있는, 하지만 잘 보이지 않는, 파시즘의 한 형태를 본다.

군대는 한 마디로 힘이라는 말은, 우리의 힘이 무력에서 나오는 것임을 뜻하고, 이는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이 제 3국을 침범하고 약탈하고 식민지로 삼을 때의 논리와도 상통한다. 그것은 분명 파시즘임에 틀림없다.

그 다음 문장을 보자.

"나라가 있기에 군대가 생긴 것이고, 군대가 있기에 나라가 존재한다"

나는 같은 형식으로 이런 문장을 만들어 보이겠다.

"개인이 있기에 나라가 생긴 것이고, 개인이 있기에 나라가 존재한다"

그것이 나라건, 군대건 간에 모든 것(단체, 조직)의 바탕에는 개인이 존재한다. 가장 원초적으로 소급해 들어가면 처음에는 '개인'이 있다는 말이다. 국가를 우선시함으로써 국가주의, 획일화, 강요, 강압에서 이어지는 파시즘이 발생하며, 개인을 우선시함으로써 '자유주의'가 탄생한다.

마지막으로 마무리 짓자면, 계급사회인 북한을 비판하는 이 나라가 '군대'라는 계급사회를 통해 그들만의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려하고 있으며, 이는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임에 틀림없다. 현재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바로 그러한 점에서 체제적 모순을 경험하고 있다. 그들이 표방하는 자유민주주의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것이다. 나는 이 작금의 현 실태를 보고 이런 말이 떠오른다.

"운수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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