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6시 주 3일 가는 영어학원을 갔더랬다. 들어가기전 가판대에서 유일한 석간신문인 문화일보를 샀더랬다. 강의실에 도착, 수업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난 끝내 분을 참지 못하고 수업도중 강사분께는 참으로 죄송스럽지만(개인적으로 조금전 메일을 보내 나의 무례함에 대한 변명(?)을 했다.) 강의실을 뛰쳐나왔다. 지금 이 상황에서 공부를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 한 시간을 '땡땡이'침으로써 볼 피해는 적지만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 피해쯤은 감수하겠노라 생각했다. 나의 장래와 연관되는 더 큰 피해라 할지라도 차라리 시민운동으로 직업을 바꾸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그 상황에 영어문장을 붙들고 해석이나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성균관대에서 공부를 하던 친구도 분을 이기지 못해 학교를 벗어났고, 난 그와 합류하여 여의도로 향했다. 나 혼자였다면 아마 시위에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친구가 '가자'는 말에 그들과 동참할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여의도에 도착한 시간이 대략 저녁 7시쯤이다. 이미 전경들이 쫙 깔려있었고, 지하철 공사를 한답시고 여기저기 큰 구멍(?)을 파놓은 까닭에 시위 장소는 그다지 넓지 않았다. 하지만 넓지는 않되 길었다. 우리는 무대라 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한 트럭 앞쪽으로 이동해 비교적 시위의 중심이 되는 앞부분에 위치했다.



자원봉사자들이 나누어주는 촛불을 들고서 불을 밝히고 트럭 위에서 발언을 하는 목수아저씨, 학생, 음악인 등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에 호응도 하고 노래도 하며 그들과 함께 했다. 아직 학생신분이지만, 대학 4년(마지막 다니지 않은 한 학기를 포함하여)동안 난 운동권도 아니었고, 시위에 참석해본 경험이라곤 ''총장물러나라'고 하며 학교를 점거한 때 그 때가 유일했다. 그리고서 오늘이 두번째다. 사실 첫번째 시위참석에 대해서는 그다지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우리 내부에서도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텔레비젼을 통해 탄핵안이 가결되는 장면을 본 시민들은 누가 오라고 한 것도 아닌데 퇴근시간에 맞춰 속속 여의도로 몰려들었고, 텔리비젼으로 생방송되는 이 장면을 보고 또 몰려들고, 이정열씨, 신기남 의원, 김희선 의원, 명계남씨, 김종환씨, 권해효씨 등이 이에 합류해 공식적으로 주체자가 없는 이 시위에 '정리자'의 개념으로써 참석했다. 오늘의 이 시위는 모든 사람이 자발적으로 모여든 것이기에 주인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 그중 나이가 많은 명계남씨가 정리자가 되어 시위를 진행했고, 그는 달변가답게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다. 단순히 '민주당 죽어라, 한나라당 죽어라'라는 구호가 아닌, 그들이 어떻게 잘못을 저질러왔고, 무엇이 잘못됐는지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성토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촛불행렬의 꼬리가 보이지 않았고, 도대체 몇 명이나 이 자리에 모인 것인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웠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같은 마음으로 이 자리에 참석했다.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를 불러일으킨 16대 국회의 장례식을 치르고자, 노무현 대통령을 살리고자,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민련을 몰아내고자 이 자리에 모였다. 사람들은 이미 엄청난 규모를 형성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서로를 존중하며 질서를 지켰다. 이것이 바로 민주적인 시민의 모습이다. 국회는 탄핵안을 가결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죽였지만, 이 자리에 모인 시민들은 죽은 민주주의를 되살렸다. 전경 또한 시위규모에 맞게 대거 배치되었지만 굳이 있을 필요는 없어보였다. 우리가 특별히 시설물을 부수거나 불을 지르거나 줄을 지어 국회를 향해 행렬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집회중 명계남씨가 한 말이 생각난다. 힘이 들어 뒤에서 잠시 쉬고 있자니 전경들이 이런 말을 하더란다.

'우리의 최고상관이 대통령 아닌가? 그런데 대통령을 몰아낸 사람들을 잡으러 가야지, 우리가 왜 대통령 살리자고 여기에 있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는건가?'

이 말은 다른 어떤 말보다도 지금의 사태를 확실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박정희 정권을 거쳐, 전두환, 노태우 정권때조자도 침묵을 지키던 의원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몰아냈다. 왜? 힘이 없으니까. 힘이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힘이 약한 자에게는 강한 그들이 아니던가? 어쩌면 오늘 탄핵안이 가결돼 노무현 대통령이 힘을 잃게 된 것은 그들에게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에게 당연한 것이 우리 모두에게 당연하게 여겨지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는 이렇게 시위를 한다. '당연함'을 '당연하지 않음'으로 바꾸기 위해서. 민주주의를 살리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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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고등학교의 선생님이 기말고사 출제범위를 학생들에게 알려주면서, 이런 말을 했다.

'지금까지 나눠줬던 프린트에서 거의 다 출제될거고, 그 외에서 출제되는 부분은 1/10이 넘지 않을거야. 만약에 넘으면 나 교사안해'

기말고사가 끝난 뒤, 학생들은 선생님에게 항의했다.

'에이 선생님! 30문제 중에 프린트에 있지 않은 문제가 4문제나 되는데요!'

'이런게 어딨어! 약속대로 교사 때려쳐요.' '물러나라! 물러나라!'

그리고는 교장선생님께 해당 선생님을 교단에서 물러나게 할 것을 촉구했다. 선생님은 미안하다고 했지만 학생들은 막무가내였다. 결국 선생님은 교단에서 떠났다.



지금의 상황을 빗대어 표현해봤다. 물론 교실안에서의 선생님의 발언과 국가차원에서의 대통령의 발언은 그 효과와 파장의 범위가 다르다. 하지만 위의 이야기에서 학생들이 선생님을 쫓아내는 형국과 지금의 '탄핵상황'의 모습은 너무나 흡사하다.



민주당 조순형 대표의 입에서 맴돌던 '탄핵'이라는 단어가 현실로 다가왔다. 무슨 일만 있으면 '탄핵을 해야되는데...' 라며 '탄핵'이라는 말을 밥먹듯이 하던 그가 '말보다는 행동' 이라는, 시민운동을 하는 이들이라면 어디선가 많이 들어봤을 법한 구호를 내세워 실제 행동에 나섰다. 그를 중심으로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가세하고, 이어 민주당, 한나라당 두 정당은 그들의 말에 따라 '거짓말쟁이' 대통령 노무현을 탄핵했다. 여당이라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이를 막았다고는 하나, 숫적 열세를 보이고 있는 그들을, 민주당과 한나라당 두 세명의 의원이 둘러싸 끌고 나오면 그 뿐인 '허술한 방어'였다.



수많은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보이듯 우리 국민의 대략 70%는 대통령 탄핵에 반대했다. 그러나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국민'의 이름으로 대통령을 탄핵했다. 누구를 위한 탄핵인가? 대통령을 탄핵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국민의 입장에서 지금의 '탄핵'은 '이로움'보다는 '해로움'이 더 커 보인다. 텔레비젼에서 흘러나오는 시민들의 인터뷰를 보더라도 그들은 침체국면에서 헤어나오질 못하는 경제상황을 걱정하고, 탄핵가결이 되던 장면을 보면서 탄핵에 찬성한 국회의원들을 비난하는 목소리만을 낼 뿐, '아 참 잘됐다'라며 지금의 상황을 반기는 국민은 하나도 없었다.



순전히 경제적인 면에서만 보더라도 이렇듯 '탄핵'은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인데, '정당성' 차원에서 사태를 바라본다면 어떻겠는가? 대통령이 애초 '1/10 발언'을 한 것은, 최근의 '한겨레21'과의 단독 인터뷰에서도 밝혔듯이, 검찰 조사결과 한나라당과 민주당(대선 당시의 민주당)의 정치자금이 '700억 대 0'이라는 웃지못할 결과가 나온 상황에서, '대통령이 검찰에 압력을 가해 조사를 못하게하고 있다'는 여론이 나왔고, 이런 엉뚱한 반응에서 벗어나기 위해 '1/10 발언'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중간집계결과(지금의 상황이 아주 웃긴 것은 이 결과가 최종결과도 아니라는 것이다. 즉 정말 대선이후에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들이 받은 돈까지 포함한다고 하더라도-순수한 의미에서 이 자금은 빠져야하지만- 최종결과가 정말 1/10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약속했던 1/10이 넘었다고 하여, '10'이라는 수치의 자신들의 잘못은 바라보지 못하고, '1'의 잘못을 가지고 물고 늘어지는 꼴이란 개그콘서트 저리가라하는 코미디다. 우리 속담중에 여기에 딱 맞는 문장이 있다. '똥 묻은 개 겨 묻은 개 나무란다'

제 똥은 보지 못하고 남의 겨만 보고 계속 겨 털어내라고 왈왈 짖어댄다. '너희중에 죄없는 자 이 소녀에게 돌 던지라' 는 영화 '사마리아'의 포스터 문구처럼 노무현 대통령에게 뭐라하기 전에 자기자신부터 제대로 단속하라고 하고 싶다.



이제 사건은 벌어졌고, 헌법재판소(이후 '헌재')의 판결만이 남아있다. 9명의 재판관이 모여 헌법에 비추어 심의를 하고 결정을 내리기까지 최대 180일이 소요될 것이라 한다. 물론 지금의 혼란한 정국을 수습하기 위해 헌재는 가급적 빠른 결론을 도출하겠지만, 시일이 얼마나 걸린다는 장담은 하지 못한다. 게다가 '헌재는 정치적 입장을 떠나 헌법을 토대로 다른 결론을 내릴 것으로 기대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에 따라 결론도 따라간다는 보장은 못한다. 헌재의 재판관들을 의심하는 바는 아니지만, 헌재의 9명의 재판관 중 열린우리당의 추천을 받거나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지명한 판관은 하나도 없다. 9명 중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명한 법관이 2명, 한나라당, 민주당이 추천한 법관이 2명, 대법원장이 지명한 법관이 3명이라 하니, 만약 법관들이 조금이라도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판결에 임한다면 결과는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다.



4.15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선거결과가 여론을 말할 것이다. '여론'이라는 거짓이름을 씌우고, 탄핵안을 가결한 그들의 '여론'이 과연 국민의 의견이었는지는 그때되면 알 게 되리라. 이제 남은 것은 우리의 선택이다.




p.s



텔레비젼을 통해 탄핵안 가결 장면을 보면서 눈물이 다 난다. 우리당 의원만 남은 아수라장이 된 국회에서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땅을 치며 울고 있는 정동영 의장과 동료 의원의 슬픔을 가슴으로 받아주던 김근태 의원. 그리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우리당 의원들을 보면서 참 비참함을 느낀다. '슬프다'는 표현은 부족하다. 마음같아서는 과거 한명회가 수양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려고 반역을 꿰하던 밤, 살생부에 적힌 순서대로 죽일 자들을 불러내어 단칼에 베어내듯, 한나라당 문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다 오는 순서대로 하나씩 치고 싶지만, 그것은 오직 마음뿐이다. 행동마저 그러하다면 저들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반전평화주의를주창하여 대한민국 법이 국민의 '의무'로써 규정하고 있는 병역의 의무조차도 받으려하지 않던 나다. 결국 그 의무를 지고 말았지만 여전히 내 마음은 같다. 반전평화주의를 외친다면 '군대'는 악이다. 잠시 이야기가 샜다.



맹자는 인간은 선하다 했고, 순자는 인간은 악하다 했던가. 성선설과 성악설로 요약되는 그들의 두 가지 입장에서 난 지금껏 성선설을 믿어왔지만, 지금 내 마음속에 저들에 대한 분노로 인한 인간의 악함이 느껴짐으로 '성악설'이 맞나 하는 생각이 다 들 정도다.



참으로 개탄스럽다. 아직 이 나라는 정치적 선진국이 되기엔 너무나 멀었다. 지금껏 겉으로 드러나는 외양만을 추구하고 정신을 무시한 탓이다. 그 시대에는 시대정신이란 것이 있고, 국가에는 국가정신이란 것이 있다. 그것은 과거 박정희 시절의 그런 '군국주의' 나 '독재주의' 와 같은 개념이 아니다. 이데올로기도 아니다. 한 사회가 또는 한 국가가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토대가 되는 개념이다. 우리나라는 그것을 무시해왔다. 그것이 지금의 사태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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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면서 직업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은 스스로 삶에 대한 의지가 없거나 사회로부터 격리당한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들도 '실업자', '백수', '노숙자' 라는 등의 이름으로 불리우기는 하나 그것을 '직업'이라 할 수는 없고, 단지 그들을 지칭하는 단어일 뿐이다. 마치 우리가 부모님 중 남자를 '아빠'라 하고, 여자를 '엄마'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직업은 세상을 살아가는 자들에게 필수적이다. 가장 편한 직업은 뭐니뭐니해도 '학생'이다. '학생'이라는 이름하에 모든 것은 정당화된다. "학생이니까 공부해야하고, 돈을 벌어오지 않아도 좋다" 라거나 "학생이니까 뭐든 자유롭다. 하고픈 것을 마음껏 해라." 라는 식으로 학생이라는 직업은 어떤 행위든 정당화된다. 그래서 학생은 자신을 '학생'이라는 이름으로 오래토록 가둬놓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휴학하고, 어학연수가고, 여행을 가며 학생의 유통기한인 졸업식을 연기시킨다.

나도 지금은 학생이다. 하지만 나의 유통기한은 1년이다. 1년후면 나도 이제 '학생'을 버리고 다른 직업을 갖게 된다. 물론 '학생'을 연장하는 방법은 있다. '대학원'. 하지만 난 이제 안정적이고 독립된 생활을 하고픈 마음이 간절하고, 결국 '돈을 버는' 다른 직업을 택하기로 했다. 공부하고픈 생각도 있지만 어설프게 단지 공부하고 싶다는 욕구만으로 공부를 더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너무나 위험한 발상이다. 돈도 못벌고, 공부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 성과가 뚜렷하지 않다면 애초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다.

 나는 수많은 직업들을 생각해왔다. 기자, 피디, 교수, 출판인, 교사, 음악인, 성우 등등... 이 직업들 중 어떤 것을 택하겠다 라고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난 어떤 특정 직업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껏 해왔던, 어설프지만 문학과 철학과 영화, 음악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으면서, 글도 쓸 수 있는 그런 직업을 원한다. 거기에 가장 적합한 직업을 '나의 직업'으로 택할 것이다.

 때로는 그 적합한 직업이라는 것이 순위변동이 생기기도 한다. 피디와 기자가 가장 최근 1위와 2위 다툼을 치열하게 하고 있다. 물론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위치로 볼 때 피디가 조금 위에 있지만, 그것은 내 직업선택에 있어 고려사항이 아니다. 위에 말했듯 내가 가장 하고픈 일, 내가 지금껏 해왔던 일을 연장선상에서 할 수 있는 직업을 택하고 싶은 것이다.

 사회에 나가기 위해 남들처럼 특별한 준비를 하지 않은 것은 나의 소신이었다. 남들따라 똑같은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았고, 나만의 특별한 삶을 꿈꿨다. 애초 나에게 사회적 위치나 돈은 큰 관심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위로부터 이러한 조건들이 나를 옥좨어오는 것은 나를 힘들게 한다. 분명 부모님은 직접 말로하시지는 않지만 내가 잡지사 기자보다는 피디가 되기를 원하신다. 내가 선택한 직업 중에 그나마 사회적 위치나 돈으로 볼 때 가장 안정적인 직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감은 나에겐 너무나 부담스럽다. 그냥 나의 선택에 맡겨줬으면 좋겠는데... 날 그냥 내버려뒀으면 좋겠는데... 힘들다.

 난 나만의 삶을 살고 싶다. 그 누구로부터도 "왜 그런 삶을 사느냐"는 핀잔섞인 말을 듣고 싶지 않다. "어릴적부터 너는 공부도 잘 했고, 고등학교 때까지도 잘 했는데 왜 대학을 그거 밖에 못갔느냐? 왜 철학을 선택했느냐?" 는 주위의 시선에서 이제는 그만 벗어나고 싶다. 하지만 다시한번 내가 직업을 선택하는데 있어서까지 돈과 사회적 위치를 고려하지 않은 직업을 선택하게 된다면 그들은 또 나를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겠지...

 "모범생이 언제나 공부만 잘하는 것은 아니며, 항상 당신들의 기대에 맞춰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모범생도 때로는 공부를 하고싶지 않을 때가 있으며, 그로부터 벗어나 다른 삶을 꿈꿀 수도, 당신들의 기대와 다른 삶을 살아갈 수도 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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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은 좆도 없지만 그렇게 거만하고 오만하던 나에게도 열등감이란 것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나는 내가 시도한 분야에 있어서는 항상 어느정도의 '최고'가 되려고 노력했고, 완벽함은 아닐지라도 자아만족감을 채워 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열등감은 있었다. 소위 말하는 학벌 컴플렉스.

 초, 중, 고등학교를 거치며 난다 긴다 하는 애들 다 제치고 전교 1등도 해봤지만, 결국 고 2 때부터의 방황으로 애초 생각지도 않았던 숭실대로 왔고(물론 숭실대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이 학교도 좋다. 그치면 순위를 굳이 메기자면 소위 말하는 상위권 학교에 비해서는 인지도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나는 그동안 좋은 학교(소위 말하는 스카이대)에 가지 못했다는 학벌 컴플렉스와 그들에 대한 열등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예전엔 나에게 이런 면이 있는 줄 몰랐다. 아니면 애써 의식하지 않으려고 피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나뿐 아닌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이런 컴플렉스를 지니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참으로 아니러니하게도 학벌 컴플렉스에서 벗어나는 길은 '좋은 학벌'을 갖는 것이다. 좋은 학벌을 가진 사람들은 그보다 더 좋은 학벌이 존재하지 않기에 학벌 컴플렉스로부터 해방된다.

 위와 같은 아니러니를 범하지 않고서, 학벌 컴플렉스, 학벌 좋은 사람들에 대한 열등감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물론 가장 간단한 답은 스스로 지니고 있는 학벌에 대한 의식을 버리는 것이다. 컴플렉스 자체를 버리면 해소된다. 참 간단한 답이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것은 '어떻게?'라는 물음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모색중이다. '어떻게?'를 논하지 않고서 그 자체를 버리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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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내를 걸어다니며 나무와 나무 사이에 걸려있는 한 현수막을 보았다. 거기에는 이런 글귀가 씌여져있었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 되기를 거부한다."

 우리학교에서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창업동아리에 관한 설명회 같은 것을 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이 글귀를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사회는 이제 어느곳에서건 평범한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도 스스로가 평범해지기를 거부한다는 것을 느꼈다.

 사람들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것조차도 힘들다고 말을 한다. 소위 말하는 적당한 대학을 나와, 적당한 회사에 취직하고, 적당한 이성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오손도손 즐겁게 사는 삶이 그것일진대, 대부분은 사람들은 이 '평범한 삶'을 이루기 위해 굉장한 노력을 해야한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평범한  삶'이란 굉장히 멀리 떨어져있다.  

 하물며 '평범한 삶'도 이러할진대, 사람들은 스스로 평범함을 거부하고 비범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 보통이라는 선을 넘어서는 단계에 오르고 싶은 것이다. '평범하지 않은 삶'은 '평범'을 중간으로 하여, 그 아랫 단계와 윗 단계로 나눌 수 있을터이다. 물론 사람들이 평범함을 거부하는 것은 그 윗단계를 지칭하는 것. 이제 우리사회는 '보통사람'이 되고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게 되었다. 무엇이든간에 남보다 월등히 잘하는 부분이 있어야 하고, 아니면 잠재력이라도 갖고 있음을 보여줘야한다. 사회가 그런 사람들만을 원하니 각각의 사람들도 스스로가 평범해지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른 관점에서 평범한 삶을 거부한다. 약간은 삐딱하게 볼 수도 있겠지만 난 내가 사회가 원하는 그런 평범치 않은 조건들을 갖추며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히 뛰어나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좋은 집, 좋은 차, 이쁜 아내와 함께 오손도손 살아가는 삶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난 남들과 '똑같이 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들이 자신을 비범한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동기부여와의 차이다. 난 그저 '남들과 다르면' 된다.

 그래서 남들 다 하는 영어공부도 안했고, 자격증도 안땄고, 다들 보는 영화도 안봤고, 남들 다 보는 책도 안봤다. 난 같은 것을 거부한다.

 취직한다고 회사에서 원하는 조건, 토익 몇 점, 자격증 몇 개, 어학실력 등등의 이런 조건들, 나는 싹 무시했다. 물론 그랬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 이렇게 '필요'에 의해서 공부를 하고 있지만 말이다.

 티비에서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뜬' 책들, 누구다 다 읽는 처세술에 관한 책들 나는 하나도 안 읽었다. 물론 선정된 책들 중에,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중에, 나 스스로 판단하기에 '아 좋은 책이군', '내 취향에 맞는 책이군' 이라는 생각이 들어 읽게 된 책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서야 나는 그 책들을 거들떠도 안본다. 요즘 잘 나가는 책 중에 '아침형 인간', '퇴근후 3시간(이건 정확한 제목인지 모르겠다)'이라는 제목의 책들이 있는데, 난 이 책들 안 보고 안 살거다. 왜냐! 저런 류의 제목을 단 책들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을 뿐더러(대부분의 이런 유형의 제목을 단 책들은 내용이 없다) 남들다 몰려드는 책이기 때문이다. 물론 책을 보지도 않았지만 책의 내용에 비해 너무 과대평가받는 책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 두 사람 사서 읽다보니 10만명, 20만명 되는거고, 100만명까지 올라가는 것이다. 작품성이 있거나 내용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어 다들 사보는데 나만 안보잖아?'라는 식의 주변에 의한 보이지 않는 협박과 스스로의 불안감때문에 구입하게 되는 책들, 별 볼일 없다.

 난 이런 의미에서 평범한 사람이 되기를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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