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고등학교의 선생님이 기말고사 출제범위를 학생들에게 알려주면서, 이런 말을 했다.

'지금까지 나눠줬던 프린트에서 거의 다 출제될거고, 그 외에서 출제되는 부분은 1/10이 넘지 않을거야. 만약에 넘으면 나 교사안해'

기말고사가 끝난 뒤, 학생들은 선생님에게 항의했다.

'에이 선생님! 30문제 중에 프린트에 있지 않은 문제가 4문제나 되는데요!'

'이런게 어딨어! 약속대로 교사 때려쳐요.' '물러나라! 물러나라!'

그리고는 교장선생님께 해당 선생님을 교단에서 물러나게 할 것을 촉구했다. 선생님은 미안하다고 했지만 학생들은 막무가내였다. 결국 선생님은 교단에서 떠났다.



지금의 상황을 빗대어 표현해봤다. 물론 교실안에서의 선생님의 발언과 국가차원에서의 대통령의 발언은 그 효과와 파장의 범위가 다르다. 하지만 위의 이야기에서 학생들이 선생님을 쫓아내는 형국과 지금의 '탄핵상황'의 모습은 너무나 흡사하다.



민주당 조순형 대표의 입에서 맴돌던 '탄핵'이라는 단어가 현실로 다가왔다. 무슨 일만 있으면 '탄핵을 해야되는데...' 라며 '탄핵'이라는 말을 밥먹듯이 하던 그가 '말보다는 행동' 이라는, 시민운동을 하는 이들이라면 어디선가 많이 들어봤을 법한 구호를 내세워 실제 행동에 나섰다. 그를 중심으로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가세하고, 이어 민주당, 한나라당 두 정당은 그들의 말에 따라 '거짓말쟁이' 대통령 노무현을 탄핵했다. 여당이라는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이를 막았다고는 하나, 숫적 열세를 보이고 있는 그들을, 민주당과 한나라당 두 세명의 의원이 둘러싸 끌고 나오면 그 뿐인 '허술한 방어'였다.



수많은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보이듯 우리 국민의 대략 70%는 대통령 탄핵에 반대했다. 그러나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국민'의 이름으로 대통령을 탄핵했다. 누구를 위한 탄핵인가? 대통령을 탄핵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국민의 입장에서 지금의 '탄핵'은 '이로움'보다는 '해로움'이 더 커 보인다. 텔레비젼에서 흘러나오는 시민들의 인터뷰를 보더라도 그들은 침체국면에서 헤어나오질 못하는 경제상황을 걱정하고, 탄핵가결이 되던 장면을 보면서 탄핵에 찬성한 국회의원들을 비난하는 목소리만을 낼 뿐, '아 참 잘됐다'라며 지금의 상황을 반기는 국민은 하나도 없었다.



순전히 경제적인 면에서만 보더라도 이렇듯 '탄핵'은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인데, '정당성' 차원에서 사태를 바라본다면 어떻겠는가? 대통령이 애초 '1/10 발언'을 한 것은, 최근의 '한겨레21'과의 단독 인터뷰에서도 밝혔듯이, 검찰 조사결과 한나라당과 민주당(대선 당시의 민주당)의 정치자금이 '700억 대 0'이라는 웃지못할 결과가 나온 상황에서, '대통령이 검찰에 압력을 가해 조사를 못하게하고 있다'는 여론이 나왔고, 이런 엉뚱한 반응에서 벗어나기 위해 '1/10 발언'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중간집계결과(지금의 상황이 아주 웃긴 것은 이 결과가 최종결과도 아니라는 것이다. 즉 정말 대선이후에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들이 받은 돈까지 포함한다고 하더라도-순수한 의미에서 이 자금은 빠져야하지만- 최종결과가 정말 1/10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약속했던 1/10이 넘었다고 하여, '10'이라는 수치의 자신들의 잘못은 바라보지 못하고, '1'의 잘못을 가지고 물고 늘어지는 꼴이란 개그콘서트 저리가라하는 코미디다. 우리 속담중에 여기에 딱 맞는 문장이 있다. '똥 묻은 개 겨 묻은 개 나무란다'

제 똥은 보지 못하고 남의 겨만 보고 계속 겨 털어내라고 왈왈 짖어댄다. '너희중에 죄없는 자 이 소녀에게 돌 던지라' 는 영화 '사마리아'의 포스터 문구처럼 노무현 대통령에게 뭐라하기 전에 자기자신부터 제대로 단속하라고 하고 싶다.



이제 사건은 벌어졌고, 헌법재판소(이후 '헌재')의 판결만이 남아있다. 9명의 재판관이 모여 헌법에 비추어 심의를 하고 결정을 내리기까지 최대 180일이 소요될 것이라 한다. 물론 지금의 혼란한 정국을 수습하기 위해 헌재는 가급적 빠른 결론을 도출하겠지만, 시일이 얼마나 걸린다는 장담은 하지 못한다. 게다가 '헌재는 정치적 입장을 떠나 헌법을 토대로 다른 결론을 내릴 것으로 기대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에 따라 결론도 따라간다는 보장은 못한다. 헌재의 재판관들을 의심하는 바는 아니지만, 헌재의 9명의 재판관 중 열린우리당의 추천을 받거나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지명한 판관은 하나도 없다. 9명 중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명한 법관이 2명, 한나라당, 민주당이 추천한 법관이 2명, 대법원장이 지명한 법관이 3명이라 하니, 만약 법관들이 조금이라도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판결에 임한다면 결과는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다.



4.15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선거결과가 여론을 말할 것이다. '여론'이라는 거짓이름을 씌우고, 탄핵안을 가결한 그들의 '여론'이 과연 국민의 의견이었는지는 그때되면 알 게 되리라. 이제 남은 것은 우리의 선택이다.




p.s



텔레비젼을 통해 탄핵안 가결 장면을 보면서 눈물이 다 난다. 우리당 의원만 남은 아수라장이 된 국회에서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땅을 치며 울고 있는 정동영 의장과 동료 의원의 슬픔을 가슴으로 받아주던 김근태 의원. 그리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우리당 의원들을 보면서 참 비참함을 느낀다. '슬프다'는 표현은 부족하다. 마음같아서는 과거 한명회가 수양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려고 반역을 꿰하던 밤, 살생부에 적힌 순서대로 죽일 자들을 불러내어 단칼에 베어내듯, 한나라당 문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다 오는 순서대로 하나씩 치고 싶지만, 그것은 오직 마음뿐이다. 행동마저 그러하다면 저들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반전평화주의를주창하여 대한민국 법이 국민의 '의무'로써 규정하고 있는 병역의 의무조차도 받으려하지 않던 나다. 결국 그 의무를 지고 말았지만 여전히 내 마음은 같다. 반전평화주의를 외친다면 '군대'는 악이다. 잠시 이야기가 샜다.



맹자는 인간은 선하다 했고, 순자는 인간은 악하다 했던가. 성선설과 성악설로 요약되는 그들의 두 가지 입장에서 난 지금껏 성선설을 믿어왔지만, 지금 내 마음속에 저들에 대한 분노로 인한 인간의 악함이 느껴짐으로 '성악설'이 맞나 하는 생각이 다 들 정도다.



참으로 개탄스럽다. 아직 이 나라는 정치적 선진국이 되기엔 너무나 멀었다. 지금껏 겉으로 드러나는 외양만을 추구하고 정신을 무시한 탓이다. 그 시대에는 시대정신이란 것이 있고, 국가에는 국가정신이란 것이 있다. 그것은 과거 박정희 시절의 그런 '군국주의' 나 '독재주의' 와 같은 개념이 아니다. 이데올로기도 아니다. 한 사회가 또는 한 국가가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토대가 되는 개념이다. 우리나라는 그것을 무시해왔다. 그것이 지금의 사태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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