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면서 직업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은 스스로 삶에 대한 의지가 없거나 사회로부터 격리당한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들도 '실업자', '백수', '노숙자' 라는 등의 이름으로 불리우기는 하나 그것을 '직업'이라 할 수는 없고, 단지 그들을 지칭하는 단어일 뿐이다. 마치 우리가 부모님 중 남자를 '아빠'라 하고, 여자를 '엄마'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직업은 세상을 살아가는 자들에게 필수적이다. 가장 편한 직업은 뭐니뭐니해도 '학생'이다. '학생'이라는 이름하에 모든 것은 정당화된다. "학생이니까 공부해야하고, 돈을 벌어오지 않아도 좋다" 라거나 "학생이니까 뭐든 자유롭다. 하고픈 것을 마음껏 해라." 라는 식으로 학생이라는 직업은 어떤 행위든 정당화된다. 그래서 학생은 자신을 '학생'이라는 이름으로 오래토록 가둬놓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휴학하고, 어학연수가고, 여행을 가며 학생의 유통기한인 졸업식을 연기시킨다.

나도 지금은 학생이다. 하지만 나의 유통기한은 1년이다. 1년후면 나도 이제 '학생'을 버리고 다른 직업을 갖게 된다. 물론 '학생'을 연장하는 방법은 있다. '대학원'. 하지만 난 이제 안정적이고 독립된 생활을 하고픈 마음이 간절하고, 결국 '돈을 버는' 다른 직업을 택하기로 했다. 공부하고픈 생각도 있지만 어설프게 단지 공부하고 싶다는 욕구만으로 공부를 더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너무나 위험한 발상이다. 돈도 못벌고, 공부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 성과가 뚜렷하지 않다면 애초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다.

 나는 수많은 직업들을 생각해왔다. 기자, 피디, 교수, 출판인, 교사, 음악인, 성우 등등... 이 직업들 중 어떤 것을 택하겠다 라고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난 어떤 특정 직업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껏 해왔던, 어설프지만 문학과 철학과 영화, 음악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으면서, 글도 쓸 수 있는 그런 직업을 원한다. 거기에 가장 적합한 직업을 '나의 직업'으로 택할 것이다.

 때로는 그 적합한 직업이라는 것이 순위변동이 생기기도 한다. 피디와 기자가 가장 최근 1위와 2위 다툼을 치열하게 하고 있다. 물론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위치로 볼 때 피디가 조금 위에 있지만, 그것은 내 직업선택에 있어 고려사항이 아니다. 위에 말했듯 내가 가장 하고픈 일, 내가 지금껏 해왔던 일을 연장선상에서 할 수 있는 직업을 택하고 싶은 것이다.

 사회에 나가기 위해 남들처럼 특별한 준비를 하지 않은 것은 나의 소신이었다. 남들따라 똑같은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았고, 나만의 특별한 삶을 꿈꿨다. 애초 나에게 사회적 위치나 돈은 큰 관심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위로부터 이러한 조건들이 나를 옥좨어오는 것은 나를 힘들게 한다. 분명 부모님은 직접 말로하시지는 않지만 내가 잡지사 기자보다는 피디가 되기를 원하신다. 내가 선택한 직업 중에 그나마 사회적 위치나 돈으로 볼 때 가장 안정적인 직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감은 나에겐 너무나 부담스럽다. 그냥 나의 선택에 맡겨줬으면 좋겠는데... 날 그냥 내버려뒀으면 좋겠는데... 힘들다.

 난 나만의 삶을 살고 싶다. 그 누구로부터도 "왜 그런 삶을 사느냐"는 핀잔섞인 말을 듣고 싶지 않다. "어릴적부터 너는 공부도 잘 했고, 고등학교 때까지도 잘 했는데 왜 대학을 그거 밖에 못갔느냐? 왜 철학을 선택했느냐?" 는 주위의 시선에서 이제는 그만 벗어나고 싶다. 하지만 다시한번 내가 직업을 선택하는데 있어서까지 돈과 사회적 위치를 고려하지 않은 직업을 선택하게 된다면 그들은 또 나를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겠지...

 "모범생이 언제나 공부만 잘하는 것은 아니며, 항상 당신들의 기대에 맞춰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모범생도 때로는 공부를 하고싶지 않을 때가 있으며, 그로부터 벗어나 다른 삶을 꿈꿀 수도, 당신들의 기대와 다른 삶을 살아갈 수도 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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