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모 고등학교의 담임교사가 자신의 반 학생의 시험답안지를 대필하는 등의 행위로 성적을 조작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 교사는 검사의 아들인 해당 학생이 이 학교로 위장전입하는 것을 돕고, 자신의 반에 배정되도록 하여 체계적인 성적관리를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동료교사들에게 이 학생에 대한 불법과외를 하도록 제의했으며, 시험문제지를 불법유출한 혐의도 받고 있다.

해당 학교가 국공립학교인지 사립학교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적법한 절차를 통해 채용된 교사가 이와 같은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사건에 연루된 교사가 담임교사를 제외하고도 더 있다는 사실은 교사들의 도덕적 해이 문제가 비단 이 학교에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 있게 만든다. 그만큼 교사들의 도덕성에 문제점이 많다는 것인데 사실 교사채용시에 이 부분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는 불가능하다.

어느 한 사람의 인성은 시험을 통해 판별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채용된 교사들을 데려다 놓고 인성교육을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미 채용된 교사들은 그만한 도덕성쯤은 가지고 있다고 간주되기 때문이다. 이들을 따로 모아 도덕교육을 시킨다면 교사들도 자신을 의심한다며 반말할 터다. 그저 이런 사건이 터져도 "교사들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상태입니다"라는 아나운서의 말을 되풀이할 뿐이다.

해결책이 없다. 물론 이와 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좀더 꼼꼼하고 깐깐한 교육청의 감사를 실시한다면 사전에 예방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기 위한 조그마한 해결책은 될 수 있을지라도 교사의 도덕성을 회복시킬 만한 혹은 도덕적인 사람을 교사로 채용할 수 있는 해결책은 되지 않는다. 다만 외부의 감시와 감독은 비도덕적인 교사라고 할지라도 비도덕적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방지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도 감시, 감독이 성공적으로 수행될 경우에만 말이다.

현재로서는 각 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양심적인 다른 교사들의 감시와 고발을 통해 비도덕적인 교사를 걸러내는 것 밖에는 다른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이번 사건의 경우에도 한 양심적인 교사의 고발 조치로 인해 사건이 드러날 수 있었다.

덧붙이며 해당 학교에 근무하고 있던 한 기간제 교사의 답안 정정 요구 거부는 정교사를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될 만하다. 해당 기간제 교사는 이로인해 다음해에 재임용에서 탈락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비정규직 교사인 기간제교사를 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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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부터 생각해왔던 물음이고, 항상 결론을 내릴때마다 결론이 달라지는 물음이다. 전에는 독서는 취미일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독서는 기본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일을 하든간에 그 분야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독서는 필수다. 실전에서 몸으로 부딪혀 경험하는 직접경험을 제외하고는 독서는 간접경험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준다.

  가령 인도로 여행을 가고자 할 때 우리는 무턱대고 인도행 비행기를 타는 것 보다는 인도라는 나라의 문화와 역사, 사람들의 가치관, 지리적 배경 등을 미리 알고 가는 것이 좋다. 알고 가는 것과 모르고 가는 것은 커다란 차이가 있다. 앎은 실전에서 오는 충격을 다소 완화시켜주며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해준다.

  무의식적으로 뜨거운 물에 손을 담그는 것과 이 물은 뜨겁다 라고 인식한 후에 물에 손을 담근 후의 반응은 다르다. 똑같은 온도의 뜨거운 물이라 할지라도 이 물이 뜨겁다 라는 사실을 인식한 사람의 몸은 이미 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뜨거운 물에 손을 담근 사람은 깜짝 놀라고 당황한다.

  독서는 그런 역할을 한다. 미리 경험하는 체험을 함으로써 어떤 일을 수행해나감에 있어서 사전에 대비하는 자세를  길러준다. 그래서 나는 독서는 기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독서는 취미일 수도 있다. 취미란 내가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즐기는 활동이다. 한참 일하고 피곤한 상태로 집에 돌아왔는데 어떤 사람은 티비를 보고, 어떤 사람은 음악을 들으며, 어떤 사람은 책을 본다. 그럼 첫번째 사람에게 취미는 티비시청이고, 두번째 사람에게 취미는 음악감상이며, 세번째 사람에게 취미는 독서다.

 공부로 하는 독서와 취미로 하는 독서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공부로 하는 독서는 책의 모든 내용을 숙지하고 외우려는 자세로 덤벼들게 된다. 하지만 취미로 하는 독서는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읽는데 있어 부담감이 없다는 말이다. 그저 편안한 자세로 편안한 머리로 의식하지 않고 읽어나갈 수 있다. 이럴 때 독서는 취미가 된다.

 이제 자기소개서나 이력서에 취미를 언급할 때 난 독서를 포함시키겠다. 이전까지는 특기는 드럼연주요, 취미는 글쓰기 정도를 썼다. 하지만 글쓰기와 더불어 독서를 포함하겠다.

 결론. 독서는 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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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예인 X 파일 문건이 새어났다는 이야기는 들었으나 이 문건을 실제로 보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집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아는 어떤 아이로부터 문건을 보여주겠다는 연락이 왔고, 이 문서를 보게되었다. 이 안에 수록된 연예인 99명은 소송을 계획하고 있다는데 파장이 얼마나 커질지는 모르겠다. 이렇게 쉽게 볼 수 있는 것을 보면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으리라 생각되는데, 문서에 적혀있는 내용에 따라 연예인들의 희비가 갈리겠다 싶다. 이 사건과 관련해 몇 가지 생각을 해봤다.

 * 소문 혹은 사실, 문건의 신뢰도 

  연예인 X 파일 문건에 적힌 각각의 연예인들에 대한 내용은 매우 상세하다. 공인된 이미지와 연예인들간의 인간관계, 가족관계, 소속사와의 관계, 남녀관계에 이르기까지 모두 나열되어 있다. 신문이나 티비 연예프로그램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 내용도 있었지만 그 사생활의 속속사정은 이번에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주의 할 점은 이 문건이 내용은 자세하나 순전히 들리는 소문을 수집해서 집적해놓은 자료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문서를 보는 사람들은 '소문'을 '사실'로 믿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굳이 단지 '소문'의 나열이라고 해서 믿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너무 순진해보인다. 아니땐 굴뚝에 연기나랴 라는 속담도 있듯이 본인이 평소 잘 하고 문제가 없으면 소문도 나지 않게 마련이다. '소문'을 '사실'로까지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의심'은 해 볼 수 있다.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평가가 된 결과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고 쳐도 그 사람의 그동안의 언행이 만들어낸 이미지는 믿을 만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문'을 '사실'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면야 이 문건은 믿어도 좋을 듯 싶다.

  * 사생활

  - 생각 하나
 문건에 수록된 연예인들의 평가가 좋든 나쁘든 간에 이 문서는 한 개인으로서의 연예인의 사생활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고 이것이 만천하에 공개된 이상 이들의 사생활이 침해당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할 듯 하다. 따라서 이들이 소송을 준비하는 것도 이해될 만 하다. 연예인이라고 해서 사생활이 까발려져야 한다는 것에는 나도 동의하지 않는다. 이들의 사생활은 존중해줘야한다. 따라서 이들이 이런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 생각 둘
 내 사생활의 일부가 공개됐을 때 사생활에 문제가 없는 자와 문제가 많은 자의 반응은 확연히 다르게 된다. 문제가 없는 자는 공개된다고 굳이 꺼릴 것도 없을 터이고 오히려 자신이 문제가 없음을 드러내 이를 토대로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가 많은 자는 그 내용이 공개됐을 때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이 끝나는양 행동한다. 자신에 대한 주변의 평가는 나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들며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터전을 잃어버리게 되는 결과를 내놓기 때문이다. 본래부터 깨끗한 사람은 언제 무슨 일이 닥쳐도 두려워하거나 당황할 필요가 없다. 거리낄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매우 깨끗한 편이다.

  '군자 필신기독야(君子 必愼其獨也 )'라는 말이 있다. 모름지기 군자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홀로 있을 때에도 언행을 조심한다는 말이다. 그야말로 도(道)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만히 할 수 있는 행동 같다. 나 조차도 홀로 있을 때조차 그런지에는 자신이 없다. 오래전에 마음에 새긴 이후 가끔씩 꺼내보며 자신을 단련시키고 하지만 사실 나는 '신독'을 행하고 있다고까지는 할 수 없을 듯 하다. 하지만 여전히 이 단어는 내 가슴속에 새겨져있다. 신독을 지키며 스스로가 자신을 꾸준히 단련시키고 가꾸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고 자신이 있다. 그렇지 못한 자들은 건드리면 '발악'한다.


 - 덧붙이는 생각
  내공이 약한 자는 본래 자신이 깨끗할지라도 근거없는 소문에 의한 공격에 심하게 반응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나도 그리 도통하지 않은 인간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찌르면 발악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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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석산의 한국의 민족주의를 말한다
탁석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4년 2월
절판


"민족주의가 '정치적'으로는 위력이 있는 반면 철학적으로는 그 내용이 빈곤하고 일관성마저 결여하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대다수의 다른 주의들(ISM)과는 달리 민족주의는 자신의 대사상가를 배출해내지 못했다." (베네딕트 앤더슨, '상상의 공동체' P24)-19쪽

"민족이란 "일정한 지역에서 장기간에 걸쳐 공동생활을 함으로써 언어, 풍습, 종교, 정치, 경제 등 각종 문화 내용을 공유하고 집단귀속감정에 따라 결합된 인간집단의 최대 단위로서의 문화 공동체를 가리키는 말"-20쪽

"민족은 가장 작은 민족의 성원들도 대부분의 자기동료들을 알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며 심지어 그들에 관한 이야기도 듣지 못하지만, 구성원 각자의 마음에 서로 친교(COMMUNION)의 이미지가 살아있기 때문에 상상된 것이다."
(베네딕트 앤더슨, '상상의 공동체' P25)
-20쪽

"서양에서는 국가와 민족이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NATION'은 국가이고 국민이며 민족이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절대왕정이 붕괴되면서 인민이 주인이 되는 국가를 건설하게 되었는데 이때 국가를 이루는 기본 단위는 민족이었기 때문입니다. 앞서 말이 나온 것처럼 이런 국가 건설은 서양에서는 보통 근대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근대민족국가'라는 용어가 생긴 것입니다."-27쪽

"모든 국가는 국민국가인 한, 국경이라는 제한된 경계선 속에서 철도 및 그 외의 교통망을 가지며, 통일된 화폐와 도량형을 가지며, 조세제도를 가지며, 단일한 시장과 경제제도를 가지며, 가능하면 식민지를 만들려고 한다. 어느 나라에도 동일하게 헌법과 의회, 중앙집권적인 정부, 경찰과 군대가 있고, 호적과 가족제도가 있고, 학교와 박물관이 있고, 국민사와 신화가 있고, 기념비와 국기와 국가가 있다."
(니사카와 나가오 '국민이라는 괴물' P65)
-31쪽

"민족의 핵심은 전 소속원들이 많은 것을 공유한다는 사실이며, 동시에 전 소속원들이 많은 것을 망각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에르스트 르낭의 말, 베네딕트 앤더슨 '상상의 공동체' P25)
-34쪽

"민족이란 개념이 근대에 만들어져 근대부터 한국 역사의 주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근대국가는 역사를 통해 사람들을 국민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67쪽

"왜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국어가 사라지면 민족의식도 사라진다고 주장하는가? 그 이유는 국가를 건설하려면 민족주의가 필요하기는 한데 민족주의는 내용이 없는 텅 빈 구호에 불과하므로 민족주의를 이루는 요소의 하나로 여기는 언어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해서라고 생각된다."-80쪽

"민족 형성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자신에 대한 지식일 것입니다. 즉 민족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기 민족에 대한 지식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 중략 ... 민족이 공동체를 이루려면 역사공동체, 문화공동체가 되어야 하는데 이것을 이룩하는 방법은 으외로 단순합니다. 즉 공동의 기억, 공동의 지식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97쪽

"구한말에는 민족 자주가 보수, 수구였고 일본이나 러시아 등 외국과 손잡고 개방해야한다는 개화파는 진보였던 반면에 지금 한국에서는 민족 자주는 진보, 미국과 친하게 지내자는 측은 보수로 분류된다는 것입니다. ... 중략 ... 즉 시대를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간다면 진보, 시대의 발전을 외면하면 보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보수와 수구를 구별할 수는 있으나 큰 차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수구가 무조건 옛것 혹은 지금의 것을 지킨다면 보수는 옛것중 가치가 있는 것을 지킨다고 할 수 있지만 시대의 발전이란 측면에서 본다면 큰 차이는 없습니다." -104쪽

"국민족 귀속감이 유발되는 가장 강력한 원인은 역사적으로 선행하는 정체와 그들이 동일화하는 것, 즉 국민 역사를 공유한 결과 기억의 공동체를 만들며 그들이 모두 공동의 긍지와 수치, 기쁨과 후회를 과거 사건에 대해 결부시키는 것이다."
(존 밀의 '공리주의')-105쪽

"대한제국이 근대국가가 되려면 이념적, 정치적 독립도 중요하지만 근대화의 내용을 갖추고 있어야 했다. 수도, 전기 그리고 전차라는 교통수단은 근대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근대화의 핵심 요소이다. 이런 필수 인프라를 외국인 손에 넘긴다는 것은 외국의 이권침탈이라고 말 할 수도 있으나 다른 면에서 보자면 대한제국이 근대화 과정에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는 구조의 문제이다."-110쪽

"민족이란 원래 실체가 없는 애매한 개념이라 그 기반이 허약하므로 국가 건설이라는 희망이 없어지면 그 효용이 이데올로기로 변하거나 모두가 기댈 수 있는 명분 내지 핑곗거리로 전락할 수가 있다." -115쪽

"역사에는 거리, 대립, 전망이 중요하다. 우리는 과거에서 우리 자신의 상황과 같은 것을 찾을 뿐 아니라, 그와 동시에 대립을, 완전히 다른 것을 찾는다. 서로 멀리 떨어진 양극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것을 파악하는 긴장감을 가질 때야말로 역사적 이해가 생겨난다."(호이징가 '역사학의 성립')-128쪽

"국가 대 국가가 아닌 민족 대 민족으로 구도를 바꾸는 것이다. 이때 민족은 선악과 옳고 그름의 성격을 띤다. 우리 민족은 역사적으로 침략을 받았을 뿐 한번도 남을 침략한 적이 없는 선한 민족이고, 일본은 본래 남을 침략하기 좋아하는 악한 민족이 된다. 도덕적 선의 문제로 전환됨으로써 우리는 명분과 윤리에서 일본을 앞선다고 생각하며 자위한다. 이것이 민족주의를 강화해왔다. 즉 우리 민족은 선하다는 의식이 강화된 것이다. 이에 반해 악역을 맡은 일본의 이미지도 강화된다. 일본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느끼는 좌절감과 시기심이 우리의 민족주의를 견고하게 했다"-157쪽

"임지현에 따르면, 근대 조선에서 민족이란 도덕적 심판의 준거이자 역사적 판단의 잣대였다. 민족주의는 한국인이 되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통과의례였다는 것이다. 더욱이, 식민지하에서 민족은 사실상 국가의 공백을 채워주는 실체이자 신화였고, 또 그 이데올로기인 민족주의는 역사가 한국인에게 부과한 도덕적 정언 명령이자 사회적 규범이었다. 이른바 민족주의란 공동체의 집단성을 규정하는 것을 넘어서 개개인의 삶 속에 체화된 이데올로기이자 종교였다는 것이다."
(윤건차, '한일 근대사상의 교착')
-165쪽

"마사 너스봄은 '애국주의와 세계시민주의'라는 논문에서 국가적 시민권보다는 세계적 시민권을 시민 교육의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며 네 가지 주장을 제시했습니다. ... 중략 ... 첫째, 세계시민주의 교육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에 관해 더 많은 것을 배울 것이다. 둘째, 우리는 국제적 협력이 필요한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 셋째, 우리는 현실적인,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인지되지도 않았을, 세계의 다른 지역에 대한 도덕적 의무를 깨달아야 한다. 넷째, 우리가 옹호할 태세를 갖춘 차이에 기초해 수미일관된 논지를 펴야 한다는 등 네 가지입니다."
(마나 너스봄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 정리)-168쪽

"자본인 '공권력'이 없는 곳에서는 자기 자신을 유지하거나 증식시킬 수 없다." "부르주아적 세계정부가 자본의 가치증식을 보장하는 환경에서 자본이 세계 각 지역 주민들을 마음대로 착취하는 것이 바로 자본의 세계화인데, 지금과 같은 세계 경제의 혼란과 갈등과 빈부격차 속에서 각 국민국가는 자기 국가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경쟁하고 있기 때문에 국경이 사라지거나 국민국가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고, 세계 정부는 꿈속에서나 나타날 수 있을 뿐이다."
(김수해, '국민국가는 여전히 중요하다', 역사비평 2002 봄, 155)-172쪽

"국민에서 시민으로 전환함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하나는 국가의 백성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주체가 되는 국가를 건설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민족을 벗어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국민이 아니라 시민이 되어야 하며 시민은 민족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189쪽

"국민은 국가의 부속물이다. 의무만 있고 국가를 위해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불안해해야 하는 존재가 국민이다. 국민은 국가의 감시대상이며 통합과 계몽의 대상이다. 이런 국민은 개개인의 얼굴을 갖고 있지 않다. 개개인의 이름보다는 주민등록번호라는 고유번호가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데 더 유용하다.
시민은 자신의 재산과 자유를 위해 국가를 선택한다. 국가의 부속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국가를 결성하는 것이다. 시민의 재산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국가를 만든 것이기 때문에 국가가 그 소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국가 경영자를 바꾸든가 국가체제를 변혁하든가 아니면 국가가 아닌 국가연합을 택할 수 있다. ...중략... 이 땅에 태어났으므로 이 나라의 국민이 된다는 것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싫으면 이민을 가면 된다. 자신이 속한 국가를 변혁하든지 아니면 떠나면 된다. 이것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1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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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석산의 한국의 민족주의를 말한다
탁석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나는 탁석산을 좋아한다. 그가 처음 대중앞에 얼굴을 드러낸 것은 <한국의 정체성> <한국의 주체성>이라는 작은 책자를 통해서였다. 이 두 책들이 한꺼번에 인문학 베스트셀러로 달리면서 그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마침 이때 그는 우리학교 철학과에서 '분석철학'이라는 강의를 맡고 있었다. 굉장히 튀는 사람이었고, 재밌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말하는대로 글빨과 말빨이 탁월한 사람이었고, 이력도 특이하다.

 고등학교 내내 책만 읽어 공부는 꼴지를 달리고, 재수 일년 동안 공부해 서울대 자연계열을 일년동안 다니고 때려치고, 군에 갔다가 제대 후에 한국외대 영문학과를 장학생으로 입학해 학부를 마치고,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해서 철학 박사를 받았다. 그냥 이력만을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그의 정신의 자유로움을 어느정도 느낄 수 있다. 어느 곳에도 구속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한국의 민족주의를 말한다>는 책은 그의 가장 최근작으로, 책 제목 앞에 <탁석산의>라는 문구를 붙인 것과 그의 얼굴을 책 전면에 드러낸 것은 이제 유명해질대로 유명해진 그의 이름을 빌려 책 판매에 도움을 얻자는 상업적 전략으로 보인다. 그때문인지 이 책은 인문서 치고는 대단히 많이 팔렸다. 그리 쉽지 않은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국에서 민족주의를 다루는 것은 어렵다. '민족' 혹은 '민족주의' 라는 말은 과잉 사용되고 있다. 대학가에서도 '민족'고대, '민족' XX과 라는 식의 학교이름이나 학과이름 앞에 '민족'이라는 말은 쉽게 달라붙고, 이는 수식되는 학교와 학과의 격을 높여주는 역할을 하기까지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학교 이름이나 학과 앞에 '민족'이라는 말을 붙일 하등의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저자 탁석산이 토론 형식을 빌려 어려운 주제를 대중에 다가가기 쉽게 쓰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토론형식의 책은 저자의 생각을 알 수 없어, 저자는 부득이 각 장마다 '강의'라는 꼭지를 만들어 각 장에 해당하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덧붙이고 있다. 토론 형식은 문제를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것이고, 뒤에 붙여진 저자의 생각인 '강의'는 이를 정리하는 역할을 한다.

 책은 크게 '민족주의란 무엇인가' '한국의 민족주의는 과잉인가' '한국의 민족주의는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일본은 한국에게 무엇인가' '한국 민족주의의 장래를 전망한다' 라는 다섯개의 구성으로 되어있다. 내용을 살펴보자.

 우리에게 민족이란 무엇인가? 민족은 문화공동체인가, 핏줄인가, 언어인가, 역사적 유산인가? 저자는 이 모든 것에 부정적인 대답을 내놓는다. 민족이란 우리가 생각하듯 한 핏줄인 단일민족도 아니며, 한국어만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민족이라 하지도 않으며, 역사적 공동의 유산을 지니고 있는 자들도 아니라고 한다. 민족은 근대 이후 우리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상상의 공동체'(베네딕트 앤더슨의 용어에 따르면)라고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것이 필요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며, 적당히 이용해먹을 필요는 있다고 한다.

 따라서 민족정신이란 공허한 것이며, 한국어가 사라지면 민족도 사라진다는 것 또한 잘못이라고 한다. 민족은 애초에 없는 것이기에 사라지고 말고 할 것이 없다. 그러면서 저자는 지수걸 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민족주의는 근거도 희박하고, 이제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고 있으므로 장례를 치를 때가 되었지만 민족주의 지지자들이 지닌 진정성은 존중되어야 하므로 겸손한 마음으로 이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겸손한 장례식'론을 끌어들인다.

 또한 민족주의는 사다리라고 하며, 사다리를 타고 지붕에 올라왔으며 이제 사다리는 필요없다고 말한다. 민족주의라는 사다리는 우리가 힘들게 한칸 한칸 쌓아올린 것이 사실이지만, 이는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어떤 것을 향해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이제 그 목표점에 거의 다 도달해있으며, 마지막 한 칸을 남겨두고 있다.

 "민족이란 원래 실체가 없는 애매한 개념이라 그 기반이 취약하므로 국가 건설이라는 희망이 없어지면 그 효용이 이데올로기로 변하거나 모두가 기댈 수 있는 명분 내지 핑곗거리로 전락할 수가 있다" 이는 민족이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그의 주장을 말해주고 있다.

 또, 그는 우리의 민족주의가 과잉된 예로 일본을 들면서, 역사적으로 일본보다 중국으로 인한 우리의 피해가 더 컸음에도 우리가 중국에게는 관대하고, 일본에게만 과잉반응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한다. 우리는 일본을 국가 대 국가가 아닌 민족 대 민족 이라는 구도로 바라보고 있으며, "이때 민족은 선악과 옳고 그름의 성격을 띤다. 우리 민족은 역사적으로 침략을 받았을 뿐 한번도 남을 침략한 적이 없는 선한 민족이고, 일본은 본래 남을 침략하기 좋아하는 악한 민족이 된다. 도덕적 선의 문제로 전환됨으로써 우리는 명분과 윤리에서 일본을 앞선다고 생각하며 자위한다. 이것이 민족주의를 강화해왔다. 즉 우리 민족은 선하다는 의식이 강화된 것이다. 이에 반해 악역을 맡은 일본의 이미지도 강화된다. 일본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느끼는 좌절감과 시기심이 우리의 민족주의를 견고하게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일본을 하나의 보통  국가로 바라보자고 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민족주의의 사다리에서 이제 국민이 아닌 시민으로 전환하자고 하며, 국가의 소유물인 국민이 아닌 세계시민이 될 때에만 우리는 민족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국민은 국가의 부속물이다. 의무만 있고 국가를 위해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불안해해야 하는 존재가 국민이다. 국민은 국가의 감시대상이며 통합과 계몽의 대상이다." 라며, 반면 "시민은 자신의 재산과 자유를 위해 국가를 선택한다. 국가의 부속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국가를 결성하는 것이다. 시민의 재산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국가를 만든 것이기 때문에 국가가 그 소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국가 경영자를 바꾸든가 국가체제를 변혁하든가 아니면 국가가 아닌 국가연합을 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구한말 이래 민족주의는 이 땅에서 너무 많은 일을 했고, 우리는 이제 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야한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그는 이 책을 정리한다.

 그의 근거와 주장은 그를 통해 민족주의를 접하게 된 나로서는 더이상 뭐라 반박할 만한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 나의 내공이 너무 적은 탓에 그의 의견에 동의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가 고등학교 국사과목이 선택과목으로 된 점을 다행스럽게 여기는 점은 잘못이지 않나 싶다. 국사를 몰라도 된다는 말로 들리는데 이건 아니다. 오히려 국사과목의 우리중심적 사고방식을 객관적 사실관계로 바꾸어놓고 이를 학생들이 알도록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또한 그가 지적한대로 국어는 한국어로 바꾸어야하듯, 국사 또한 한국사로 바꾸어야한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이것이 한국사를 몰라도 된다는 말로 환원되지는 않는다. 주관을 객관으로 바꾸자는 것일 뿐 알아야 할 건 알아야 한다. 더불어 세계사도 동등한 관계에서 다루면 될 일이다. 국사를 알아야하는 것이 국가주의과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일은 아니라고 본다. 국사를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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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뭉치 2005-01-30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정체성', '한국의 주체성' 이 두권의 책이 나왔을 때부터 정체성, 주체성을 따져도 꼭 뭉쳐서 덩어리로 따지는구나 이런 거부감이 들어서 좋아하지 않는 분인데... 리뷰 읽고나니 이 책은 좀 읽어보고 싶군요. 권혁범 씨가 쓴 '국민으로부터의 탈퇴'와 비슷한 맥락이 보여서...

마늘빵 2005-01-30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탁선생님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은 만큼 싫어하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어쨌든 안티세력이 생긴다는건 또 그만큼 그 사람이 생산해내는 주장의 의미가 새롭다는 것이겠지요. 전 권혁범 씨의 그 책을 읽고 싶어지네요. 권혁범 교수도 예전부터 관심갖어왔던 분인데.

히피드림~ 2005-02-01 0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사놓고 바빠서(?) 아직 읽지도 못했네요. 서두에 학교얘기 하시길래 교수님인줄 알았네요.^^ 글도 잘 쓰시구요. 이 리뷰읽으니까 어서빨리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글구 서재 한번 둘러봤는데 정말 잘 꾸며 놓으셨네요.

마늘빵 2005-02-01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아무리 토론형식이지만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무거운 주제죠. 그래서 저도 한동안 사놓고 놔두고 있다가 읽었어요. 저도 님 서재 가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