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교육의 원조격인 독일이 공짜교육 종료선언을 했다. 물론 독일의 일부 주에 해당하는 말이지만 다른 주들까지 이를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독일은 초, 중, 고, 대학까지 모두 공짜다. 그 많은 교육비를 어디서 충당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독일은 돈없는 이들도 무료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교육의 낙원이었다. 그래서 우스게소리로 우리나라에서도 돈없는 이는 독일로 유학간단 말도 있지 않은가.

 실제로 나의 학교 선배이자 대학 강사신 어떤 나이지긋하신 분은 독일에서 10여년 공부만 하다 왔다. 선생님 말씀이 그곳은 공짜라서 부담감이 없고 대학이 편해 나오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다. 선생님과 같은 생각을 하는 분이 한두명은 아니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독일대학으로 유학가서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 독일이 무상교육 종료선언을 했으니 이제 돈없는 이들이 갈 곳은 없다. 독일에 있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곳곳의 유학생들 중 학비를 부담할 수 없는 자는 이제 고국으로 향하는 길 밖에는 없다.

 2006년부터 1년에 1000유로면 우리나라 돈으로 1340만원 정도라고 한다. 공짜교육 받다가 일년에 1340만원 내라고 하면 그 돈이 어디서 나오는가. 물가도 비싸서 생활비 대기도 바쁜데 저많은 돈을 학비로 내려면 유학생들은 돌아올 길 밖에 없다.

 이제 독일의 6개주를 시작으로 다른 곳들도 모두 그리 될 것이고, 유럽에서 무상교육이나 마찬가지로 싼 등록금을 내고 있는 다른 나라들까지도 모두 덩달아 독일의 뒤를 따를까봐 겁난다. 유럽의 대세가 이렇다면 유럽을 모델로 삼아 무상교육을 꿈꾸는 이들은 이제 따를 모델이 없어 새 길을 개척해야한다. 언제쯤 돈없는 이들도 돈있는 이들과 같은 교육을 받을 수 있을까 고대하던 이들은 고개를 떨굴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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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5-01-29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김진표 '교육부총리 내정자' 가 '교육부총리'가  되었다. 그런데 어째 불안하다. 교육이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들어선 듯 하다. 똑바로 가지 않고 자꾸만 옆길로  새려고 한다. 그런데 옆길로 샜다간 낭떨어지로 떨어지는데...

 전 경제부총리가 교육부총리가 된다. 난 이 말만 들었을 때부터 어째 불안했다. 그런데 그가 정말 교육부총리가 되고 나니까 더 불안하다. 그런데 또 그가 내세우는 정책의 기조라는 것을 보니 마음만 불안한게 아니라 몸도 불안하다.

 교육을 시장원리에 의해 실시한다. 교육에 시장원리를 도입해야한다. 이게 그의 주요 골자인데 이건 아니다. 교육에 시장원리를 도입하면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 '산업'이 된다. 그런데 저들도 그건 아나보다. '교육'을 '산업'화 시키겠단다. 학교를 노동시장의 연계를 강화시킨다고 한다. 취업률을 대학평가에 반영하고, 돈되는 이공계중심으로 집중투자를 한단다.
 
 맞춤형 인재양성이니 청년고용촉진이니, 노동시장 인프라 구축이니 하는 말들은 말은 그럴싸해보인다. 뭔가 있어 보이고 이걸 이루면 대단한 결과가 나올 것만 같다. 그런데 그게 다 기업이 원하는 인력을 키우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기업이 원하는 인력은 누구인가? 머리에 뭔가 지식이 찬 놈보다는 외국인 만나서 말빨 좀 통하고, 자꾸 업그레이드 되어 나오는 컴퓨터 기술에 제대로 적응된 놈을 말한다. 아 이런 나는 기계치인데다 영어의 a자도 모르니 천상 노숙자 신세다.

 물론 내가 그 인재유형에 속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를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내가 일부러 그런 유형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여기 이른 것이고, 내가 다른 부분에 노력하지 않고 걔들이 원하는 인재상이 되려고 노력했다면 나도 그럭저럭 그들을 따라갈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일.부.러. 그쪽으로 파고들지 않은 것은 그건 그저 부속품이고 중심이 되는 뼈대는 다른데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 이었다.

 나는 대학이란 무릇 학문을 하는 곳이라 생각했고, 학문을 하기 위해 '경제학'을 버리고 '철학'을 택한 것이다. 경제학이 학문이 아니라고 하면 수많은 경제학도들로부터 돌 맞을 테니 말을 조심해야겠다. 경제학도 학문은 학문이다. 하지만 머리를 키우는 학문이 아니라  돈을 키우는 학문이다. 난 돈을 좋아한다. 하지만 돈벼락 맞기 위해 노력하고 싶지는 않다. 운이 좋아 로또 당첨되면 입에 헤벌레하게 벌어지겠지만, 그건 순전히 기대치 않은 곳에서 행운이 터져 좋아하는 것일 뿐이고, 누구처럼 100억, 1000억 벌기 위해 그 분야만 파는 것은 싫어한다.

 만약 대학평가에 있어서 학과별 취업률을 공개하게 된다면, 제일 먼저 죽는 학과는 당연히 국문학과와 사학과와 철학과다. 흔히 문사철이라고 불리우는 세 학과는 인문학의 중심이자 버림받은 학문이요 점수안되는 애들이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실제로 일반 4년제 대학에서 인문학부가 없는 곳도 많으며, 있다 할지라도 수능점수표상에서 이들은 취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 돈도 안되는 학과고 공부하기 어려운 학과고 인기없는 학과인 셈이다.
 
 인문학을 키우자고까지는 말하지 않겠다. 죽이지만 말아라. 인문학 죽이면 언젠가 후회한다. 대학을 노동시장과 연계할거면 인문사회과학은 빼고 연계해라. 얘들은 노동시장과 연계하면 살아남질 못한다. 대학에서 배운게 책에 들은 내용뿐인데 이들이 무슨 실전능력이 있겠는가.

 아니면 정 이들까지 노동시장에 내보내고 싶으면 이들중에 원하는 사람들만 따로 대학에서 교육과정을 만들어줘라. 영어든 컴퓨터든 상관없다. 원하는 이들이 원하는 교육 받게 해라. 그런데! 학과공부의 커리큘럼에까지 시장원리를 도입하진 말아라.

 생각같아서는 인문사회과학에 돈 왕창 투자하라고 하고 싶지만 이건 당신들이 원하는 바가 아니니 그렇게까지는 못할거고, 그냥 죽이지만 말아라. 목숨만 살려달라는 얘기다. 돈되는 애들만 경쟁시켜서 돈 만들면 되지 왜 돈 안되는 애들까지 경쟁시켜서 죽이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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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며칠 계속해서 신문에 '교사이야기' 나오는 바람에 자칭 예비교사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다. 교사가 답안지를 대필해주고, 체계적인 내신관리를 해주질 않나, 동료교사의 자녀 성적을 관리해 명문 사립대에 합격시키질 않나, 자신의 자녀를 위장전입시켜 자기학교로 오게해서 시험지를 유출하질 않나. 참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또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는 얘기다. 그동안 말이 없어서 그랬지 다 예상할 수 있는 바이기 때문이다.

 오늘 신문에도 성북구의 A학교에서 교사가 자녀를 위장전입시켰다는 기사가 실렸다. 그래 위장전입이 그렇게 크게 문제가 될 건 아니다. 일반 학부모(교사 학부모가 아니라) 입장에서는 자기 자녀가 좀더 나은 교육환경에서 공부하길 바라는건 당연한 일이고, 상황이 여의치 못해 이사갈 수는 없어 희망학교 부근의 주소로 자녀만 옮겨놓을 수는 있는 일이다. 이는 충분히 이해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 학부모가 교사라면 문제가 된다.

 교사가 자신의 자녀를 재직중인 학교로 불러들이는 것은 확실히 문제가 된다. 동료 교사를 통해 성적조작이 가능하고, 동료 교사들의 협조(?)가 없더라도 자신의 과목만큼은 시험지를 유출할 수 있으며, 교무실에서 다른 교사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통해 대충 다른 과목의 시험유형이나 내용에 대해서도 정보를 얻을 수가 있다.

 물론 그 교사가 학부모 입장에서 자신의 자녀가 눈에 보이는 내 학교에 다닌다면 신경쓸 일이 없어 좋겠지만 순수한 의미에서 이렇다 하더라도 이는 남들로부터 오해 살 일을 한 것이다. 참외밭에서 신발끈 고쳐매지말고, 배나무에서는 갓도 고쳐쓰지말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순수한 학부모의 의도에서 그랬다 하더라도 이는 충분히 오해 살 짓이었다.

 교사는 스승과 동의어이다. 물론 의미는 조금 다르다. 교사는 교육을 하는 사람이라는 말이고, 스승은 제자라는 단어와 연관되어 생각해볼 때 피교육자의 입장에서 교사를 존중해쓰는 단어이다. 하지만 교사가 스승인 것은 확실하다. 단지 관점의 차이일 뿐.

 서양에서나 동양에서나 스승은 위대하다. 그 자신이 대단한 무엇을 이루지 않더라도 그는 미래의 재목들을 키워내는 사람이다. 그에게 많은 학생들이 가르침을 받고 사회로 나아가 활동하게 되는 것이다. 스승이 잘못된 생각을 하면 그 스승의 아래에서 배우는 학생 또한 잘못된 길을 가기 쉽다. 스승은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그 스스로가 군자가 될 필요까지는 없지만 적어도 최소한의 규칙은 지키면서 살아야한다.

 그런 점에서 교사의 자녀 위장전입사건은 대단한 범죄라고 볼 수는 없지만 윤리성을 상실했다는 면에서 교사라는 직업의 존중도를 심하게 깎아내린 셈이 되었다. 비록 일부 교사의 일이라 할지라도 일부 교사를 통해 전체 교사의 명예가 실추된 셈이다.

 교사가 교단에서 권위가 서지 않는다면 학생들을 볼 낯도 없고, 학생들이 그를 따르지도 않는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학생들은 일방적으로 따르는 관계는 아니지만, 학생들의 교사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 교사-학생간의 관계는 회복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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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새 세상이 왜 이런가 싶다. 교사들이 비도덕적 행위로 연일 신문에 오르내리는가 싶더니 진짜 의사가 이젠 석, 박사학위를 돈으로 사서 자기 병원에 걸어놓는다고 한다.

 사실 의사되기 어렵다. 로또 수능에서 아무리 운이 좋다하더라도 의사가 되기 위한 점수를 맞기는 힘든 일이며, 좋은 점수 받아서 몇년 동안 공부만 해대야된다. 그냥 일반 다른 대학생들과는 다르다. 물론 개중에는 노는 의사지망생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의사지망생들은 공부를 죽어라 해대면서 수업을 따라가기 바쁠터다. 그렇게 해서 인턴이네 뭐네 거쳐서 정식의사가 된다.

 그런데 그 어려운 과정 다 거쳐서 의사된 이들이 학위가 아쉬워 대학에 돈주고 수업도 안나가고 시험도 안보고, 그냥 돈으로, 학위를 산다고 한다. 석사도 사고, 박사고 사고... 대학은 그저 좋다고 돈먹고.

 의사는 생명을 다루는 자들이다. 이비인후과나 안과, 성형외과, 치과가 된다고 하더라도 이들은 비록 생명에 지장을 주지는 않더라도 사람의 몸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위험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의사는 윤리적이어야 한다. 비윤리적인 의사는 사람의 몸을 놓고 사기를 치거나 흥정하는 꼴이 된다. 의사는 당연히 윤리의식이 투철해야하고 의사윤리강령(이런게 있다는건 알겠는데 명칭이 이러한지는 모르겠다)에 따라서 행동해야한다.

 의사라는 직업이 사회의 상당한 지위층에 있다는 의미에서도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을 적용해 윤리성을 강조해도 좋겠지만, 이 점을 떠나더라도 의사는 인간의 몸을 다루기 때문에 좀더 조심해야하고 윤리적이어야 한다. 환자는 의사를 믿고 자신의 몸을 맡기는 것이다. 의사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환자는 자신의 몸을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맡길 필요는 없을 것이다. 환자의 의사에 대한 신뢰가 전제되어 있다면, 의사는 당연히 윤리성이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의사가 석사, 박사 학위를 제대로 된 과정을 거치지 않고 돈주고 사서 자신의 병원 벽에 액자에 끼워 전시(?)해 놓는다면 이는 명백한 사기다. 환자는 이를 보고 더욱 의사를 신뢰하려 들 터이다. 그런데 의사는 환자에게 사기를 치고 있다. 학벌컴플렉스가 있고 권위를 세우고 싶다면 정식절차를 밟아서 석사, 박사학위를 따내라. 환자로부터 신뢰를 잃고, 윤리성이 전제되지 않은 의사는 더이상 의사가 아니다. 그냥 기술자다.

 사기치는 의사는 의사자격을 박탈해야한다. 간단한 눈속임으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의사에게는 좀더 강력한 윤리적 잣대가 적용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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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1-29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 손댈대가 한두군데여야죠 ㅠ.ㅠ

마늘빵 2005-01-29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배운 놈들이 더 하죠. 못 배운 사람들은 그렇게 할 거라도 없지.
 

 

 

 

 

 강철중이 돌아왔다. 그런데 강력계 꼴통 형사가 아니라 강력계 꼴통 검사로 업그레이드(?) 되어 돌아왔다. 여전히 그가 꼴통인건 사실이지만 예전과 같이 마냥 계획없는 꼴통이 아니라 너무나 정직하고 순수하고 정의감에 넘쳐서 '원칙'만을 고수하는 꼴통이다. 검사도 너무 원칙주의자면 주위 사람이 피곤하다.

 <공공의 적 2>를 보고난 감상은 전편만큼의 톡쏘는 듯한 유머감각은 없고 범죄단위는 더 커지고 대범해졌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적에게 분노를 느낄 수 있는 만큼은 아니었다. 죄목만으로 치자면야 정준호가 이성재보다 훨씬 심하지만, 이성재만큼의 악독한 면은 없었다는 말이다. 어쩌면 정준호라는 배우자체가 지금껏 너무나 순수하고 착하고 다정한 역할만을 해왔기에 그리고 그의 외모에서 풍겨지는 푸근함이 악독한 범죄자가 되기에는 부적합했는지도 모른다.

 오로지 감으로 믿고 기획수사를 하는 강철중 검사와 느낌으로 수사하는 그의 수사관들은 밤낮 할 것 없이 제대로 먹고 자지도 못하면서 수사를 강행한다. 이들에겐 오로지 나쁜 놈 때려잡는 것만이 다른 욕심을 대신하는 길이다. 그것도 '그냥 나쁜 놈'은 안된다. '공공의 적'을 잡아야한다. 겉으로는 사회 저명인사이면서 항상 웃고 다정한 사람이 속으로는 그만큼 독할 수가 없다. 아버지 살해 교사, 형 살해 교사, 청소부 살해, 거래자 폭행, 현직 검사 살인 미수, 검사 대신 수사관 살해 교사, 환치기 등 그의 범죄목록은 끝이 어디인지 안보인다. 순박한 검사 강철중은 오로지 그를 잡기 위해 목숨을 건다.

 영화 <공공의 적 2>의 또다른 매력은 <공공의 적 1>에서 나왔던 인물들이 고스란히 화면 속에 보인다는 것이다. 그의 상관이었던 형사반장은 부장검사로 태어났고, 1편에서 그를 졸졸 따라다녔던 두 양아치는 영화 마지막에 '그냥 나쁜놈'으로 다시 등장한다. 1편을 봤던 사람이라면 2편을 보면서 내가 아는 이들이 다시 나오는 재미 또한 느꼈을 것이다. 2편에서 부장검사로 태어난 강신일씨는 그의 본명을 따 영화 속에서도 김신일로 불리우며 전편보다 더 비중있는 역할을 한다.
 
 또 한가지 엄정화의 동생 엄태웅이 정준호의 수행비서로 나오는 것도 볼거리다. 그다지 대사도 별로 없는 역할이었지만 이 영화를 통해 톡톡히 관객에게 얼굴도장을 찍은 셈이다. 

 이 영화는 오늘날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고 있는 악독재벌과 정치권의 결탁을 보여주고, 부패에 찌든 검사와 함께 정의가 살아있는 검사를 함께 등장시킴으로써 아직 우리에겐 약자를 위한 '법'과 '정의'라는 것이 남아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은 힘겨운 현실을 살아가는 다수의 약자들에겐 힘이다. 이 영화가 짜릿한 쾌감을 전해주는 것은 바로 정의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다음달 사법고시를 볼 나의 친한 친구 재성이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그는 검사를 꿈꾸고 있다. 바로 강철중과 같은 정의사회를 구현하는 정의로운 검사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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