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 - 상 - Mr. Know 세계문학 15 Mr. Know 세계문학 15
움베르토 에코 지음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읽어보지는 않았어도 책 제목만큼은 못들어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추리소설이다. 그러나 이토록 무게감 있고 가벼이 보지 못할 추리소설도 따로 없을 것이다.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 소설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많고, 이 책을 산 사람이 많아도, 이 책을 본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영화 <장미의 이름>에서는 감독이 영화를 설명하며 그런 말을 했다. 사실 이 소설에 등장하지도 않는 부분(영화에만 있는)에 대해서 움베르트 에코에게 편지를 써서 그 부분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고 말 한 독자(?)도 있었다고 한다. 영화 <장미의 이름>은 봤어도, 소설 <장미의 이름>은 사놓고 보지 않은 것이다. 영화와 소설이 정확히 일치 하지 않으니 원작 소설을 보지 않은 채 영화만을 가지고 <장미의 이름>을 논하는 것은 위험하다.

  세계적인 지성 중의 한 사람으로 뽑히는 움베르트 에코. 그는 정말 천재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의 다재다능하다. 엄청난 지식을 소화해내고 많은 글을 생산해내는 다작가이지만, 글의 질적인 측면에서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글을 쓰는 작가는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오랜 세월에 걸쳐 한 권의 책을 내놓는 부류가 있고, 글쓰기를 글읽기 하듯 다작을 하는 부류가 있다. 아무래도 전자의 글은 좀더 깊이가 묻어나게 마련이고, 후자의 글은 깊이가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움베르트 에코는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절대 떨어지지 않는 솜씨를 보인다. 유럽의 유명 언론에 칼럼을 쓰는가 하면, <장미의 이름>과 같은 불후의 명작을 남기기도 하고, 본업인 기호학자로서의 이론가이기도 하며, 동시에 철학과 문학과 역사와 미학의 전문가이며 이 분야에서도 많은 글을 토해내고 있다. 중세철학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컴퓨터도 잘 다룬다. 더불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는 물론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라틴어, 그리스어, 러시아어까지 능숙하다. 뭐 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는 학자다. 그가 쓴 책은 우리나라에도 많이 번역되어 있다.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 <논문 작성법 강의> <미의 역사> <소크라테스 스트립쇼를 보다> <포스터 모던인가 새로운 중세인가> <철학의 위안> 등 일일히 언급하기도 힘들 정도다.

   <장미의 이름>은 그의 여자친구의 권유로 재미삼아 시작해 본 작품이다. 누구는 재미삼아 쓴 작품이 이 정도이니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라고. 본래 그는 이 이 작품의 제목을 <장미의 이름>으로 잡지 않았다. <수도원 살인 사건> <아드소의 수기> 와 같은 혹은 그와 비슷한 제목을 붙이려다 갑자기 떠오른 것이 <장미의 이름>이었다. 제목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그것이 주는 어떤 비밀스러움과 중세적인 분위기가 소설을 대표할 수 있다고 믿었던게다. 서양에서 '장미'는 여러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장미 전쟁>에서의 장미, <그대는 병든 장미> 에서의 장미, <장미는 장미이고 장미는 장미이다>에서의 장미, <장미 십자단>에서의 장미 등등. 후에 제목을 붙이고,  베르나르의 '속세의 능멸을 위하여'의 싯구절 '어디에 있느뇨'를 통해 이루어졌음을 에코는 밝힌 바 있다. 아벨라르는 '장미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통해, 언어가 ㅔ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존재했지만 사라진 것을 드러내는지 설명했다. 제목을 붙이고 나니 <장미의 이름>에서의 '장미'의 존재는 매우 알쏭달쏭한 하지만 한편으로 깊은 의미를 지닌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에코가 우연히 접하게 된 어떤 중세의 책자가 이 소설의 발단이었다. 그는 실제 기록된 사건을 토대로 하여 뼈대를 만들고 살을 붙여나갔다. 중세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은 당연히 중세를 배경으로 한 수도원 살인사건의 소설에 커다란 도움이 되었고, 라틴어 지식 등 그가 가진 다른 재능들도 이곳에 집적되었다. 그 누가 이런 소설을 쓸 수 있겠는가. 에코가 아니면 안된다. 이 소설 속에는 중세 수도원의 분위기와 역사, 그리고 아리스텔레스의 시학에 관한 내용 등 풍부한 지적경험이 녹아있다. 하나의 어려운 고대, 중세의 철학자의 1차 서적을 읽는 듯 어렵기도 하다. 무슨 소설이 이렇게 어려워서야. 앞부분의 그 역사와 배경에 대한 길고 긴, 지루하기까지 한 글은 출판사에서 잘라내자는 제의까지 했으나 에코는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장면이 없다면 소설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덕분에 독자는 900쪽에 달하는 두 권 짜리(한글판)의 지루하고 어려운 소설을 읽어야만 했다. 이 책을 내가 접한 것이 이번이 두번째. 처음 접했을 땐 도통 무슨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용 파악 조차 하기 힘들었다. 중세에 대한 지식도, 고대에 대한 지식도 가진 것이 없는 채로 이 지적고통과 지루함을 안겨주는 소설을 읽어나갈 수가 없었다. 다 읽긴 했다만 무슨 내용인지는 알 수 없는 그런 경험이었다. 지금은 다행히 '완전히' 라고는 못하지만 내용파악과 그 의미를 해독했다고 생각한다. 추리소설을 읽으며 이것을 '즐김'의 대상이 아닌 '해독'과 '이해' 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우습지만.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윌리엄 수도사. 그는 매우 근대적인 사람이다. 안경과 나침반을 사용하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 위에 사건을 조사하며, 이성을 사용한다. 하지만 수도원의 대부분의 수도사들은 그와 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믿음, 신, 구원 등 철저히 기독교적 교리에 의한 영적인 능력을 가지고 사건을 바라본다. 그 극단에 있는 이가 베네딕트 수도회의 베르나르 귀이다. 화려한 언변과 찍 소리 못할 카리스마로 순식간에 한 수도사와 여인을 악마와 마녀로 둔갑시키는 그에게 아무도 대적할 수 없다. 사건을 바라보는 또다른 인물 아드소. 아직 10대인 아드소는 윌리엄 수도사를 따라다니며 세상을 배운다. 이 소설은 이 어린 아드소가 어린 시절 윌리엄 수도사의 곁에서 겪었던 사건을, 윌리엄의 나이가 되어 과거를 회상하며 서술한 형식으로 구성되어있다.

  다양한 측면에서 이 책을 바라 볼 수 있다. 이성과 신앙, 과학과 종교, 중세 수도원의 역사와 갈등, 마녀재판, 금해야 할 것과 금지된 것들, 책의 가치, 도서관의 역할, 사랑, 지식, 기호와 텍스트, 사물의 본질, 앎과 지식 등등. 이 책을 제대로 읽고 사색하려면 각각의 주제를 가지고 매번 반복되는 독서를 해야 할 터이다. 너무나 많은 주제들이 집적되어 일일히 다 살피지 못하는, 수많은 지적체험으로,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뭔가 뿌듯하면서 머리가 가득찬 느낌과 동시에 아무 것도 알게 된 것이 없는 듯 벙찐 모습을 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의 매력이다. 두 권의 이 책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직도 그 때의 그 느낌이 묵직하게 나를 눌러온다.

 

 ***
 1. 신화학자 이윤기 씨는 이 책을 86년 처음 번역하고, 이후 여러차례 손을 보며 재차 번역을 하며 틀린 부분을 고쳤다. 또 이윤기 씨의 이 수고에는 철학자 강유원의 도움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이 텍스트를 공부하며 원전번역의 잘못을 지적한 책자를 만들어 출판사 측에 전달해줬고 이윤기 씨는 이를 바탕으로 번역을 시도하였다.

 2. <장미의 이름>을 통해 철학공부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도 재밌는 작업일 듯 하다. 기호와 텍스트의 측면에서 해석학을, 또 소설의 사건의 중심이 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또 소설의 배경이 된 중세 기독교와 철학을 신학을, 또 이성과 신앙, 과학과 종교의 관점에서 과학철학과 신학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밌을 듯 하다. 900장 짜리 두 권이라는 책이 주는 무게감은 이 소설 속에 들어있는 갖가지 지식의 양념이 주는 무게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닐 터이다. 다른 묵직한 책보다 이 두 권의 책을 바라봤을 때 느껴지는 무게감은 거기에서 비롯되는 것일게다.  

3. 나중에 여유가 된다면, 이 책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 그때는 내가 좀더 내 머리 속에 철학지식이 쌓여있기를, 그리고 이를 토대로 많은 철학적 고민들을 했길 기대한다. 미래의 나에게.

 

***
인상적인 몇 구절을 첨부한다.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이 없더라." (서문) (상권 p23) 

들판에 가을이 오면 꽃이 시들어 꽃대에서 사라져 버리듯이, 인간 또한 그렇게 사라져 버릴 터인즉, 인간의 외양만큼이나 덧없는 것이 또 어디 있겠느냐 (보에티우스) (상권 p37) 

진정한 앎이란, 알아야 하는 것, 알 수 있는 것만 알면 되는 것이 아니야. 알 수 있었던 것, 알아서는 안되는 것까지 알아야 하는 것이다. ('장미의 이름' 윌리엄 수도사) (상권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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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마니아 2006-07-12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호 이윤기 씨가 번역한 거였군

치유 2006-07-13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보니 다시 떨림이 있네요..참 두근 거리며 봤던 몇년전의 기억이예요..특히 장서관 살필때는..저도 다시 한번 읽어 봐야 겠어요..

이잘코군 2006-07-13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촬리 / 응 이윤기 씨 번역. 86년 초판때는 오류가 많았다는데 지금은 다 개선됐다지.
배꽃님 / ^^ 아 정말 어렵게 재밌게 읽은 책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집적되어있었어요. 철학적 주제들, 중세의 숭고하고 비밀스런 분위기, 아리스토텔레스, 책, 도서관 등등. 나중에 다시 보고 싶어요.

체다카 2006-08-25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윤기씨 유명세에 비하면 번역이 영 맘에 들지 않았어요. 이단논쟁 부분이나 주석 그리고 전체적인 번역문체상의 껄끄러움이 많이 느껴졌다고 할까요? 시간이 나면 꼭 영역판이라도 구해 읽고 싶은 책이랍니다. 구경 잘 하고 갑니다.
 

  툭툭 떨구다 쏴 쏟아내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에 우와왕 지나가는 오토바이 소리에 유키구라모토의 피아노 콜렉션 음반을 올려놓고 오후를 보낸다. 이른 아침 핸드폰은 울려대고 일어나야 한다는 걸 알면서 부러 못들은 척 다시 눈을 감는다. 그리고 문자메세지가 온다. 확인하기 위해 열어둔 핸드폰 액정으로 작은 불빛이 어둠을 가른다. 그리고 잠결에 읽은 두 건의 메세지는 나를 행복으로 밀어넣는다. 이대로 느끼고 싶다. 세찬 빗소리와 작은 방안을 채우고 있는 어둠과 두 건의 메세지의 행복을, 느끼고 싶다.  기상시간이 어긋나기 시작하면 하루가 다 망가질 걸 알면서도 그러고 싶었다.  운동도 가지 아니하고, 밥도 먹지 아니하고, 행복을 간직한 채 잠에 빠졌다. 눈은 떴지만 여전히 난 빗소리에 취해있다. 많은 생각이 나를 스쳐간다.

  - 불현듯 행복은 찾아왔고, 나를 기쁘게 했으며, 삶의 의미를 새롭게 했고, 나에게 자극을 주었다. 이대로라면 더 이상 바랄 바가 없을 것 같았다. 어릴적 종이에 끄적이며 몇년도에는 뭘하고, 그 다음에는 뭘하고, 또 최종적으로는 뭘 하겠다는 그런 거대한 꿈 따위는 이제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여기를 직시하지 못한 채 거대한 야망만 꿈꿨던 나는 어느덧 현실과 적당히 타협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난 평범한 생활인으로 하루를 보내기를 거부한다.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무엇을 이루기 위해 하루를 살기보다 지금 여기를 즐기며 하루를 살고 싶다. 그럭저럭 나는 그렇게 살고 있는 듯 하다. 즐기다보면 어느덧 무언가가 되어있으리라.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지금의 나를 혹사시키고 싶진 않다. 현실에의 만족감은 삶을 나태하게 만들지만 또 한편에서는 나태함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나를 밀어낸다.

 - 나를 눌러오는 어떤 스트레스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또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친다. 하나의 개인이고 싶다. 하나의 인간이고 싶다. 누구의 자식, 누구의 아들이 아닌 하나의 개인이고 싶다. 하루 세끼 거를 정도의 못사는 집은 아니지만, 때마다 입을 옷이 없어 걱정하는 그런 집은 아니지만,  책사고 싶을 때 영화보고 싶을 때 책 못 사고 영화 못 보는 그런 집은 아니지만,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이 집은 나를 억눌러온다. 해가 갈수록 두 분의 이마엔 주름살이 하나씩 그어지고, '나는 장남'이라는 어릴적부터 벗어나고팠던 생각지도 않던 굴레가 나를 죄어온다. 모른 척 하기엔 내가 받은 것이 너무나 많고, 그것을 인식하기엔 나는 너무나 자유롭다.

  - 스물 여덟. 아무런 생각하지 않고, 아무런 고민없이 그저 오늘을 즐기고 싶다. 내가 원하고 내가 행복한 것을 따라 한걸음 한걸음 발을 옮기고 싶다. 무엇인가를 해야한다는, 그런 강박관념은, 가지지 않으련다. 나는 자유인이고 싶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좋아하는 공부를 하며,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함께하고 싶다.

  - 여전히 난 이상주의자인가. 삶의 현실로 돌아와보니 당장 종합시험과 논문과 남은 대학원 두 학기와 학자금 대출과 졸업 이후의 불안감과 적지 않은 나의 나이가 숨을 턱 멈추게 한다. 그러면, 또다른 한편에선 닥치면 다 하게 되어있어, 어떻게든 다 돼, 라고 나를 위로하거나 애써 현실을 외면하게 만든다. 그저 오늘을 즐기고픈 행복한 마음과 나보다 앞서 한 걸음 두 걸음 나아간 나의 친구들에게서 느껴지는 불안한 마음이 다툰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한다. 타협은 한번으로 족하다. 힘들 때마다 타협점을 찾다보면 결국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인이 될 것이다. 명절때마다 부모님께 어떤 선물을 드릴까, 애를 낳으면 어떻게 교육을 시킬까, 차는 언제사고, 내 집 마련은 언제할까, 아이가 크면 좀더 큰 집이 필요하지 않을까, 등등의 그런 숨막히는 고민들을 하고 싶지 않다. 그것이 현실이라고, 내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것이라고 누군가 지적해준다해도.  같이 가자. 오늘을 즐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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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이름은김삼순 2006-07-12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곳은 비가 오나요? 제가 있는곳은 어제 정말 많은 비를 뿌리고 오늘은 해가 쨍,,너무 덥답니다,,ㅠ 작은 일상에서 항상 행복을 느끼시길,,^^

전호인 2006-07-12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민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군여. 현실을 직시하실 필요가 있지 않을까여.
하지만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제약을 받는다면 살아가는 맛이 없겠져?
즐길 때 즐기고 일할 때 일하자!
여유있는 사람들의 행복한 고민이 아닐까 합니다.
고민한다고 해결된다면 누구나 고민할 것입니다.
털고 일어나는 것이 해결의 실마리일 듯 합니다.
ㅎㅎㅎ, 그냥 생각없이 주절거려 봤슴다.

Mephistopheles 2006-07-12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의 이번 페이퍼는 너무나 환몽적이고 자극적이라
많은 의심을 갖게 만듭니다.
뭘 드시고 쓴 페이퍼입니까..좀 나눠먹읍시다...!! =3=3=3=3=3

이리스 2006-07-13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농약같은 것은 먹지 말라고, 아프군!

이잘코군 2006-07-13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순님 / 오늘도 아침부터 오다말다 하네요. 운동 갈 땐 한방울 안떨어지다 돌아올 땐 쏴아아아.
전호인님 / ^^ 즐길 때 즐기고 일할 때 일하자, 에 동감입니다.
나침반님 / 아유. 무슨 책을 또 그렇게 지르셨어요. 나침반님이 부러워요. 그 두껍고 어려운 책들을 쉽게 우걱우걱 드시고. 제 나이를 적게 봤다면 너무 고마운걸요. 사람들이 제 나이보다 한두살 많게 봐서 그런 소리는 거의 못들어봤어요. 뭐 실제로 보시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행복하게 살아요.
메피스토님 / 하핫. 저 혼자 먹을거에요. =333
구두누나 / 요즘 과일을 많이 먹어서 그런가 -_-a

2006-07-13 17: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자림 2006-07-14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 가지 고민이 많으시군요. 우선 학위 따는 데 전력하시고 나중 일은 그 때 생각해 보심이 어떠하온지.. 사실 30대가 되면 거의 '돈'에 관심이 많이 가고 그만큼 재산도 조금씩 구축된답니다.^^
 
하얀 강 밤배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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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홍빛 이쁘장한 표지를 달고 있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하얀 강 밤배>. 1989년에 쓰여졌지만 우리나라 말로 번역이 된 것은 2005년이다. 그러니 매우 오래전에 쓰여진, 하지만 이곳에서는 얼마 나이를 먹지 않은 갓난 아기인 셈이다. 그녀의 많은 소설들 중 이 책은 가장 안팔렸다. <키친> <하드보일드 하드럭> <하치의 마지막 연인> <티티새> <도마뱀> 심지어는 가장 나중에 나온 <불륜과 남미>의 판매량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물론 그녀의 이름을 달고 나온 소설은 다른 책들에 비해 많이 팔리지만.

  외면 받은 작품 치고는 참 느낌이 괜찮았다. 그녀의 모든 소설들은 가볍게 말하자면, 다 거기서 거기인 내용에, 거기서 거기인 감성을 건드리고 있다. 그런데 불구하고 비슷비슷한 환경에 처한 등장인물들에 비슷비슷한 줄거리, 그리고 비슷비슷한 글의 구조와 느낌, 사실 '요시모토 바나나'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책들 중 어느 하나만을 집어 골라 봤다면 그만 봐도 좋을 법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손이 가는 것은, 내가 그녀의 소설을 모조리 읽어버릴테다, 라고 말한 것과는 별도로, 그 감성에 취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픈 구석을 바늘로 콕콕 찔러 괜찮다 싶으면 또 두 눈 젖게 만들고, 방 한 구석에 벽 보고 앉아 흑흑 울고 있으면, 아무 말 없이 뒤에서 살며시 안아주며 토닥여주는, 병 주고 약 주는 소설들. 하지만 앓던 병 나 자신 조차 모른 척 하며 살기보다 아파도 한번 더 찔러주고 건드려주며 마음 속 딱딱한 응어리 쪼개어주는 그 아픔이 싫지 않다.   한번 와락 눈물 쏟고 나면 상쾌해진단다. 다 털어놓아보렴. 울어도 괜찮아. 그것이 그녀의 소설에 자꾸만 손이 가는 이유일게다. 그런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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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강 밤배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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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다들 누가 옆에서 그냥 자주기를 바라는 존재인가봐. 여자도 있고, 외국인도 있어. 하기야 나, 그냥 적당히 잠들 때도 있지만. ...... 어쩌면 지친 사람들 옆에서 자면서, 잠든 사람의 숨결에 내 숨결을 맞추면서 그 사람의 마음 속 어둠을 빨아들이는 건지도 모르겠어. 자면 안돼 하고 생각하면서 그만 꾸벅꾸벅 졸다가 무서운 꿈을 꾸곤 하거든. 초현실적인 꿈. 침몰하느 배에 타고 있는 꿈, 모아놓은 동전을 잃어버리는 꿈, 창문으로 어둠이 들어와 숨이 막히는 꿈...... . 숨이 막혀서 놀라 잠이 깨지. 무서워, 그런 때는. 그런데 옆에서 자는 사람을 보면, 아아 지금, 이 사람의 마음의 풍경을 봤구나. 이렇게 외롭고 괴롭고 황량한 풍경이구나, 하고 생각하면...... 왠지 무서워져."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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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방 - 우리 시대 대표 작가 6인의 책과 서재 이야기
박래부 지음, 안희원 그림, 박신우 사진 / 서해문집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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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도는 좋았지만 기대한 만큼의 무엇을 보여주지 못했던 책"이라 감상을 이야기 하고 싶다. '작가의 방'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는 신선했다. 작가들의 오랜 노력 끝에 서점에서나 접했던 그들의 창작물이 아닌, 그들이 창작을 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는 방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은 독자들에게 꽤나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티비 오락 프로그램에서 탈랜드, 가수들의 방을 들여다본 적은 있어도, 소설가, 시인의 방을 들여다본 적은 없었다. 그것은 탈랜트나, 가수, 배우들은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도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인물이었던 반면, 소설가와 시인은 평소 책을 접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낯선이였기 때문이었을 터. 또 한가지 덧붙이자면 티비나 극장 상영관을 통해 '비디오'를 보여주는 배우와 탈랜트는 당연히 브라운관을 통해 엿보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활자를 통해 독자와 교류하는 소설가와 시인의 경우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브라운관 보다는 활자를 통해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싶다.  <작가의 방>은 그런 차원에서 매우 적절한 방법으로 작가에게 다가갔던 책이라 말하고 싶다.

  책을 즐겨 읽는 이라면, 또 그중에서 빌려보기보다 사보는 이라면, 집에 적어도 책 수십권쯤은 있을 터이고, 책이 쌓여감에 따라 나도 서재를 꾸려보고 싶다라는 생각은 한번쯤 들 터, 내가 꿈꾸는 서재는 백지에서 상상력의 발현을 통해 만들어지기 보다는 기존의 무엇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그려지기 마련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서재사진들. 아름답고 깔끔하지만 책을 찾아보기에는 불편한 서재도 있고, 지저분하고 정리가 안된 듯 하지만 푸근하고 인간미 넘치는 서재도 있다.

  <작가의 방>에서는 많은 시인과 소설가들 중에서 이문열, 김영하, 강은교, 공지영, 김용택, 신경숙 이렇게 여섯 사람만들 다루고 있다. 선택 기준은 따로 없는 듯 하고 이 책을 기획한 박래부씨의 마음이지 뭐. 그가 선택한 작가들은 모두 우리 문단을 대표할 만한 이들이고, 충분히 독자들이 그들의 서재를 궁금해 할 만한 작가들이다.

  책은 매우 이쁘게 만들어졌다. 그냥 책표지만 보더라도 가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내용은 둘째치고 서재를 그려낸 그림들이 아기자기하고 이쁘다. 한국일보 수석논설위원 박래부는 사진가와 일러스트레이터 한 명씩을 대동하고 작가의 집을 방문한다. 그는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메모하고, 사진가는 작가의 집 구석구석을 촬영하고, 일러스트레이터는 손바쁘게 서재를 중심으로 집안 곳곳을 그려낸다. 마치 수색영장 들고 용의자 집을 수색하는 경찰 같다.

  나만의 비밀 공간이 만천하에 공개된다는 것은, 일단 나에게 그런 제의가 왔다는 자체로서 기쁜 일이기도 하지만, 조심스럽고 꺼림칙하기도 하다. 작가의 방은 그 자체가 작업 공간이며, 그것은 나의 글쓰기의 노하우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문열씨는 의자에 앉아 책상다리를 하고 노트북에 글을 쓰고, 어두칙칙한 교수 연구동 구석에 박혀 글을 쓴다. 공지영씨는 고급스런 양털 침대에서 다리를 펴고 책을 보기도 하고 잠을 청하기도 한다. 이문열씨의 방은 대체로 예상했던 그런 과거 문인들의 냄새가 짙게 풍기는 그런 방이었고, 김영하씨의 방은 신세대(?) 작가다운 냄새가 풍기는 방이었고, 강은교씨의 방은 정리가 깔끔하게 잘 된, 하지만 책무덤이라 할 만큼 엄청난 책들에 둘러싸인 그런 방이었고, 공지영씨의 방은 고급스런 유럽의 귀족들의 방과 같은 느낌이었다. 공주방이라고나 할까. 김용택씨는 좁은 집구석에 책을 한가득 쌓고 쌓고 또 쌓아올려 방을 좁혀가고 있는 형국이었고, 신경숙씨는 역시 정리가 잘 되고 깔끔한 하지만 고요히 나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듯한 인상이었다. 작가들의 각자의 성격이 잘 묻어나는 서재였다.

  박래부씨와 여섯명의 작가가 주고받는 입담들, 그리고 방안 곳곳의 사진, 귀엽게 그려낸 서재그림이 잘 어우러져 하나의 이쁜 책으로 만들어졌다. 기획의도도 좋았고, 작업 방식도, 책의 형태도 좋았다. 하지만 못내 아쉬운 것은, '작가의 방'이라고 했지만 '방'만 있고 '책'은 없는 듯한 느낌이다. 그들의 방만 살펴볼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집필 방식, 작가가 되기 전의 어린시절부터의 이야기, 그들이 읽어온 책들에 대한 이야기가 좀더 풍성하고 알차게 들어있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 나에게도 서재를 가지고 싶다는 꿈이 있다. 많다 할 순 없지만 내 좁은 방안 한쪽을 가득 메운 책꽂이는 이제 꽉 들어차 더이상 책을 받아들일 공간이 없다. 방바닥에서부터 책은 한권, 두권 쌓아올려지고 내 생활공간은 줄어들지만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 책과 함께 있어. 내가 바라는 나의 미래의 모습 중 하나는 책무덤에 갇혀 사는 것이다. 너무나도 책이 많아 발 디딜 틈이 없고 어떻게 분류를 해야할지 감히 엄두도 안나는, 퇴근 후 매일매일 진땀빼며 한달은 족히 정리를 해야만 하는 그런 책방을 가지고 싶다. 이문열씨의 서재 중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높이의 책장이 있었다. 아니 도대체 얼마나 책이 많으면 사다리를 탄단 말인가. 나도 그런 서재를 가지고 싶다. 내 서재를 꾸리고 군데 군데 사진을 찍으며 곁에 있는 이들과 함께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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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마니아 2006-07-04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샀군. 작가의 방이란 책에서 '방' 외에 '책'까지 요구하는 건 좀 무리지 않을까? 이 책의 컨셉 자체가 작가의 서재를 보여준다는 건데 그만으로 신선한 기획이라 보는데, 그 이상을 요구하는 건 좀 무리지 않을까 싶다. 다른 곳에서 작가의 생각, 철학 등에 대해선 접할 수 있으니 말이야 ^^

이잘코군 2006-07-05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작가의 방'이라 하면 '방'보다는 '작가'에게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이 사실이고, 독자들은 '방'보다 '작가'의 서재에 기대를 걸지 않을까 싶다. 책 제목이 내용을 속이거나 한 건 아니지만 독자들의 기대치에는 부응하지 못한 인상.

이잘코군 2006-07-06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밑천이 보여서. ㅋㅋ 음 저는 잘 꾸려놓고 나중에 공개하고 싶어요. 김용택 시인 서재는 서재라기보다 그냥 집구석이던데요? ^^ 하긴 그런게 더 정감있어 보이긴 해요.

씩씩하니 2006-07-06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서재 있는대.........그냥 알라딘.서재..헤~~~
자가의 방이 궁금하긴했는데 아 이런 책도 있었네요..요즘은 숙제(!!) 하느라 허덕이는 중이라 나중에 읽을까봐요...
나중에 정말 멋진 서재 구경시켜주세요~ 사다리 타고 있는 아프락사스님을 기대하며...

kleinsusun 2006-08-01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지영 서재 사진이 참 맘에 들었어요. 당장 서재는 아니더라도 그런 길다란 쇼파를 하나 사려구요.^^ 저도 빨리 멋진 서재를 갖고 싶어요.

marine 2006-09-25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신경숙씨 서재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나중에 따라 해 보고 싶어요
그리고 공지영씨 서재의 그 스툴도 멋있었구요
궁금한 게 있으면 일단 책부터 산다는 공지영씨 말이 어찌나 공감이 가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