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툭 떨구다 쏴 쏟아내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에 우와왕 지나가는 오토바이 소리에 유키구라모토의 피아노 콜렉션 음반을 올려놓고 오후를 보낸다. 이른 아침 핸드폰은 울려대고 일어나야 한다는 걸 알면서 부러 못들은 척 다시 눈을 감는다. 그리고 문자메세지가 온다. 확인하기 위해 열어둔 핸드폰 액정으로 작은 불빛이 어둠을 가른다. 그리고 잠결에 읽은 두 건의 메세지는 나를 행복으로 밀어넣는다. 이대로 느끼고 싶다. 세찬 빗소리와 작은 방안을 채우고 있는 어둠과 두 건의 메세지의 행복을, 느끼고 싶다.  기상시간이 어긋나기 시작하면 하루가 다 망가질 걸 알면서도 그러고 싶었다.  운동도 가지 아니하고, 밥도 먹지 아니하고, 행복을 간직한 채 잠에 빠졌다. 눈은 떴지만 여전히 난 빗소리에 취해있다. 많은 생각이 나를 스쳐간다.

  - 불현듯 행복은 찾아왔고, 나를 기쁘게 했으며, 삶의 의미를 새롭게 했고, 나에게 자극을 주었다. 이대로라면 더 이상 바랄 바가 없을 것 같았다. 어릴적 종이에 끄적이며 몇년도에는 뭘하고, 그 다음에는 뭘하고, 또 최종적으로는 뭘 하겠다는 그런 거대한 꿈 따위는 이제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여기를 직시하지 못한 채 거대한 야망만 꿈꿨던 나는 어느덧 현실과 적당히 타협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난 평범한 생활인으로 하루를 보내기를 거부한다.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무엇을 이루기 위해 하루를 살기보다 지금 여기를 즐기며 하루를 살고 싶다. 그럭저럭 나는 그렇게 살고 있는 듯 하다. 즐기다보면 어느덧 무언가가 되어있으리라.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지금의 나를 혹사시키고 싶진 않다. 현실에의 만족감은 삶을 나태하게 만들지만 또 한편에서는 나태함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나를 밀어낸다.

 - 나를 눌러오는 어떤 스트레스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또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친다. 하나의 개인이고 싶다. 하나의 인간이고 싶다. 누구의 자식, 누구의 아들이 아닌 하나의 개인이고 싶다. 하루 세끼 거를 정도의 못사는 집은 아니지만, 때마다 입을 옷이 없어 걱정하는 그런 집은 아니지만,  책사고 싶을 때 영화보고 싶을 때 책 못 사고 영화 못 보는 그런 집은 아니지만,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이 집은 나를 억눌러온다. 해가 갈수록 두 분의 이마엔 주름살이 하나씩 그어지고, '나는 장남'이라는 어릴적부터 벗어나고팠던 생각지도 않던 굴레가 나를 죄어온다. 모른 척 하기엔 내가 받은 것이 너무나 많고, 그것을 인식하기엔 나는 너무나 자유롭다.

  - 스물 여덟. 아무런 생각하지 않고, 아무런 고민없이 그저 오늘을 즐기고 싶다. 내가 원하고 내가 행복한 것을 따라 한걸음 한걸음 발을 옮기고 싶다. 무엇인가를 해야한다는, 그런 강박관념은, 가지지 않으련다. 나는 자유인이고 싶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좋아하는 공부를 하며,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함께하고 싶다.

  - 여전히 난 이상주의자인가. 삶의 현실로 돌아와보니 당장 종합시험과 논문과 남은 대학원 두 학기와 학자금 대출과 졸업 이후의 불안감과 적지 않은 나의 나이가 숨을 턱 멈추게 한다. 그러면, 또다른 한편에선 닥치면 다 하게 되어있어, 어떻게든 다 돼, 라고 나를 위로하거나 애써 현실을 외면하게 만든다. 그저 오늘을 즐기고픈 행복한 마음과 나보다 앞서 한 걸음 두 걸음 나아간 나의 친구들에게서 느껴지는 불안한 마음이 다툰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한다. 타협은 한번으로 족하다. 힘들 때마다 타협점을 찾다보면 결국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인이 될 것이다. 명절때마다 부모님께 어떤 선물을 드릴까, 애를 낳으면 어떻게 교육을 시킬까, 차는 언제사고, 내 집 마련은 언제할까, 아이가 크면 좀더 큰 집이 필요하지 않을까, 등등의 그런 숨막히는 고민들을 하고 싶지 않다. 그것이 현실이라고, 내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것이라고 누군가 지적해준다해도.  같이 가자. 오늘을 즐기며.   

 

 


댓글(7)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내이름은김삼순 2006-07-12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곳은 비가 오나요? 제가 있는곳은 어제 정말 많은 비를 뿌리고 오늘은 해가 쨍,,너무 덥답니다,,ㅠ 작은 일상에서 항상 행복을 느끼시길,,^^

전호인 2006-07-12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민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군여. 현실을 직시하실 필요가 있지 않을까여.
하지만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제약을 받는다면 살아가는 맛이 없겠져?
즐길 때 즐기고 일할 때 일하자!
여유있는 사람들의 행복한 고민이 아닐까 합니다.
고민한다고 해결된다면 누구나 고민할 것입니다.
털고 일어나는 것이 해결의 실마리일 듯 합니다.
ㅎㅎㅎ, 그냥 생각없이 주절거려 봤슴다.

Mephistopheles 2006-07-12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의 이번 페이퍼는 너무나 환몽적이고 자극적이라
많은 의심을 갖게 만듭니다.
뭘 드시고 쓴 페이퍼입니까..좀 나눠먹읍시다...!! =3=3=3=3=3

이리스 2006-07-13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농약같은 것은 먹지 말라고, 아프군!

마늘빵 2006-07-13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순님 / 오늘도 아침부터 오다말다 하네요. 운동 갈 땐 한방울 안떨어지다 돌아올 땐 쏴아아아.
전호인님 / ^^ 즐길 때 즐기고 일할 때 일하자, 에 동감입니다.
나침반님 / 아유. 무슨 책을 또 그렇게 지르셨어요. 나침반님이 부러워요. 그 두껍고 어려운 책들을 쉽게 우걱우걱 드시고. 제 나이를 적게 봤다면 너무 고마운걸요. 사람들이 제 나이보다 한두살 많게 봐서 그런 소리는 거의 못들어봤어요. 뭐 실제로 보시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행복하게 살아요.
메피스토님 / 하핫. 저 혼자 먹을거에요. =333
구두누나 / 요즘 과일을 많이 먹어서 그런가 -_-a

2006-07-13 17: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자림 2006-07-14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 가지 고민이 많으시군요. 우선 학위 따는 데 전력하시고 나중 일은 그 때 생각해 보심이 어떠하온지.. 사실 30대가 되면 거의 '돈'에 관심이 많이 가고 그만큼 재산도 조금씩 구축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