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조선 운동사 -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역사
한윤형 지음 / 텍스트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안티조선운동. 한국 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시민 운동 중 하나이다. 한윤형이 연표에서 짚었듯 1995년 강준만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이후 지금까지 활발하게 활동하는 진중권을 비롯 고종석, 김규항, 김정란, 홍세화 등 진보적 지식인들이 가세하며 널리 알려졌다. 논의가 시작되는 시점엔 중학생이었던 한윤형이 고등학생 시절, 조선일보 논술 대회에서 대상을 거부하면서 주목받았다. 대학에 들어간 뒤 안티조선운동의 주된 논의를 지켜보며 간간히 참여하기도 했던 그가, 지금 이 책을 낸 건 그다지 놀랄 만한 소식은 아니다. 

  한윤형은 <삼국지>의 저자 진수와 닮았다. 오늘날 우리가 읽고 있는 소설 <삼국지>의 저자는 나관중이지만, 역사적 기록으로서의 '삼국지'는 4세기경 촉의 장수인 진식의 아들 진수가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두 사람 모두 서술된 역사의 당대를 살아가던 사람으로서 자신이 보고 들은 바를 바탕으로 역사를 기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윤형 또한 두 진영 중 한 쪽에 몸담아 싸웠기에 '역사'를 서술함에 있어 객관성을 담보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는 이 책에서 어떤 주의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자신이 보고 경험한 '사실'을 바탕으로 서술하려고 애쓴 것 같다.  

  또한, 이 책은 나관중의 <삼국지>를 읽을 때 느꼈던 짜릿함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그 짜릿함은 물론 안티조선의 입장에서 조선일보를 까는 시원함은 아니지만, 여러 다른 논점들이 등장하고 논쟁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지적 쾌감에서 비롯된다. 그런 면에서 한윤형은 진수와 닮았지만 이 책은 나관중의 <삼국지>를 닮았다. 조자룡이 유비의 어린 아이를 구하기 위해 홀로 적진을 뚫으며 여러 장수들의 목을 베는 것과 같이 세세한 안티조선운동의 일화를 다루고 있다.

  이 책 어딘가에서 한윤형은, 재임 기간 중 조선일보에 대한 생각을 솔직히 피력하기도 했던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시점에 안티조선에 대한 논의가 사그라들었다고 지적한다. 개인적으로는 논쟁의 중심에 있던 진중권이나 강준만이 안티조선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지 않으면서 조용해지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자꾸 떠들고 논쟁을 키워야 여러 이야기가 오가는데 이미 말을 할 사람들은 한 마디씩 다 하고, 치고 받고 싸울만큼 싸워 담론을 지속적으로 끌고 가기가 어려웠던 점도 있다. 이후 불씨가 완전히 꺼지진 않고, 절독 운동 등으로 이어졌지만 이슈거리는 아니었다. 이것이 2008년 촛불 시위 현장에서, 미국소 수입이나 광우병 문제에 대해 정권이 바뀌었다고 자신들이 과거에 내놓은 의견과는 전혀 다르게 주장하며 촛불 시위자들을 매도하고 왜곡하던 조중동 절독 운동으로 부활하였다.

  다시, 그간의 논쟁과 시위 현장에서의 구호로 많은 사람들이 이제 조선일보가 왜 문제인가에 대해서는 인식을 하지만, 여전히 조선일보의 영향력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마치 삼성의 행태가 잘못된 건 알면서 삼성 소비를 그만두지 않는 것처럼. 삼성을 소비함으로써 삼성이 그대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면서 머리로는 삼성이 개선되기를 바라는 것, 조선일보를 계속 구독하고 지지함으로써 조선일보가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면서 머리로는 조선일보가 바뀌기를 바라는 것은 모두 불가능하다.

  "나는 이 운동이 한국 사회에 충분히 기여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게 안티조선 운동은 실패한 운동이다. 물론 안티조선 운동은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언론이 불편부당한 관점을 취하는 집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각인시켰다. 그들이 특정 정파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심지어는 그저 제 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한 보도를 할 뿐이라는 사실을 풍부한 사례를 통해 증명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볼 때, 안티조선 운동은 <조선일보>의 보도 행태로 대표되는 기존 매체의 저급한 편향성을 극복해야 했다. 그 점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이 운동이 실패했다고 감히 말하는 것이다."
 
  한윤형은 위와 같은 이유로 안티조선운동이 실패했다고 본다. 확실히, 안티조선운동 과정에서 진보적 지식인들이 논쟁에 쏟아부은 열정과 노력에 비해서 널리 확산되지 못했다는 점, 결과적으로 조선일보의 영향력이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에서 운동은 실패했다. 그러나 관심없던 많은 사람들이 조선일보와 이를 흉내내는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왜 문제인지를 인식하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절반만 성공했다. 그러나 나머지 절반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결과적으로 조선일보의 영향력을 낮추고, 소설쓰기를 그만두도록 하기 위해서는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 운동의 성공은 인식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아는 것에서 행동으로 나아가야 실질적으로 타격을 주고, 그들의 태도를 개선시킴으로써 성공할 수 있다. 안티조선운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책은, 약 15년간의 안티조선운동사를 정리함으로써 다시 한 번 운동의 결의를 다지고, 새로운 운동으로 잇기 위핸 동기가 될 것이다. 강준만과 진중권이 아니었다면 나는 '안티조선'이란 말도 몰랐을 것이고, 아무렇지 않게 10년 넘게 집에서 보던 조선일보를 계속 구독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 덕에 조선일보를 끊고, 한국일보를 보았고, 한국일보를 끊고 경향신문을 보았다. 두꺼운 지면과 문화 방면의 풍부한 읽을거리, 그리고 현금이나 자전거, 무료구독에 혹해 조선일보를 보게 되는 이들이 아직 많다. 그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 아직 대학생인 것으로 추정되는 한윤형은 그간 여러 유명 진보 논객들이 내는 책에 함께 이름을 올려 공저자가 되곤 했다. 그렇게 서서히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키보드 워리어 일지>와 <안티조선운동사>를 통해 강준만이나 진중권 못지 않은 놀라운 정리 능력과 글발, 논리력을 보여주었다. 아직 20대인 그가 그들의 나이쯤되었을 때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기대된다. 힘들고 어려운 길이다. 그가 지치지 않고 힘차게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1-02-07 15: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2-07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안티조선 운동사 -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역사
한윤형 지음 / 텍스트 / 2010년 12월
품절


방응모는 이광수를 비롯한 <동아일보>의 핵심 인력들을 스카우트했고, <동아일보> 사주 일가의 허점을 기사로 파고들어 발끈하는 <동아일보>와 함께 이전투구를 벌였다. 조선에 마땅한 기업이 없었던 탓에 일본 기업들의 광고를 받아야 했던 이들 두 신문사는 경쟁이 지나치다 못해 일본 광고주들에 대해 '기생 관광'을 향응으로 제공하는 지경이었다.
이러한 방응모의 공격적인 경영은 그가 자신의 자본으로 <조선일보>를 매입한 '사주'였기에 가능했다. 그리고 처음엥는 국민주 비슷한 형식으로 출발했던 '민족지' <동아일보>도 <조선일보>와 경쟁할 무렵에는 사주 중심의 경영 체제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 시기 두 신문의 경쟁으로부터 한국 언론은 사주 가문의 의지에 따라 상업성 경쟁을 벌이는 '족벌 상업 언론'의 형태를 원형으로 체득했다. -25쪽

박정희 정권이 만들어 낸 또 하나의 관행은 기자들의 정관계 입문이었다. 신문 기업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은 여전히 빈곤했다. 1969년 <동아일보>의 마산 주재 기자가 최저 새계비 이하의 급료를 받다가 일가족과 함께 자살한 사건이 일어날 정도였다. 기자들은 요령껏 촌지를 받거나 전직해야 했다. 박정희는 한때 날카로운 필봉을 휘두르는 것으로 이름을 떨치던 소장 언론인들을 총애해 그들을 중용했다. 정치인이 직접 언론에 관여하기도 했던 이승만 정권 시기 정파지에서도 볼 수 있듯, 한국 언론이 선진국드러럼 선수(정치인)와 심판(기자)의 분리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언론인을 정관계 인사로 '출세'시키는 것을 당근으로 제시하며 언론인을 통제하기 시작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점점 언론과 언론인은 독재 정권의 통제의 대상이 아닌 협력의 대상으로 변해 갔다. -33쪽

"나는 지식권력이 정치권력을 썩지 않게 만드는 유일한 안전장치라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에겐 그런 지식권력이 존재한 적이 없다. 그간 지식권력은 정치권력에 기생하다가 정치권력이 몰락할 때엔 사납게 물어뜯는 하이에나 근성을 보여왔다. 지식권력의 그런 하이에나 근성을 바로잡지 않는 한 한국의 정치권력은 타락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반드시 정치권력 못지 않게 지식권력에서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강준만)-77쪽

<조선일보>식이라면 내가 누군가를 민족주의자라고 칭한다면 바로 그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뜻이다. 대개의 사람들이 사회주의자보다 민족주의자를 좋아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사회주의자라 부르지 않고 민족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은 그를 추켜세우는 말이라는 논리다. 그래서 김일성을 민족주의자라 부르는 사람은 친북 세력이라 봐야 한다는 논리다. 그래서 김일성을 민족주의자라 부르는 사람은 친북 세력이라 봐야 한단든 논리다. 그런데 나는 김일성의 사회주의 성향보다는 민족주의 성향이 더 질색이다. 그것 때문에 그가 주체사상을 만들고 부자 세습 같은 행위를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89쪽

현재 한국 사회에서 지식인은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지금의 지식인은 신문이 원하는 것, 허용한 것만을 써야 하는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언론 권력이 지식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식인은 자율성을 지닐 수가 없다.-122쪽

"프랑스에서는 '지식인'이란 말이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드레퓌스 사건 때부터였다. 극우 쇼비니즘, 반유태주의에 반대하고 드레퓌스 옹호파로 등장했던 세력이 바로 지식인들이었다. 그런데 한국에선 지식인들이 극우 세력의 진지를 구축해주고 있는 것이다! 진지를 구축해줄 뿐만 아니라 지원부대 노릇까지 톡톡히 담당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선 사상도 할 수 없는 일이 한국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희극이 아니다. 비극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비극이다. 그들은 일제의 미화에 앞장섰던 친일파 지식인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상이 일제에서 극우로 바뀌었을 뿐."(홍세화)-126-127쪽

나는 이 운동이 한국 사회에 충분히 기여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게 안티조선 운동은 실패한 운동이다. 물론 안티조선 운동은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언론이 불편부당한 관점을 취하는 집단이 아니라는 사실을 각인시켰다. 그들이 특정 정파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심지어는 그저 제 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한 보도를 할 뿐이라는 사실을 풍부한 사례를 통해 증명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볼 때, 안티조선 운동은 <조선일보>의 보도 행태로 대표되는 기존 매체의 저급한 편향성을 극복해야 했다. 그 점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이 운동이 실패했다고 감히 말하는 것이다.-464쪽

공론의 필요성을 느끼는 이들이 별도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우리는 이 '파편화된 취향의 부족'의 다발로서만 사회를 구성하고 지각하게 될 것이다. 신문이 매체의 중심이었던 시대에서조차 공론을 형성해 본 경험이 없는 한국 사회는 그런 지경에 굴러떨어질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468-469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스피 2011-02-07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정경 유착뿐만 아니라 정언 유착이 일어나던 시기군요.

마늘빵 2011-02-08 09:38   좋아요 0 | URL
음, 그렇죠. 이때부터 언론은 정치에 종속되었다는. 돈 좀 쥐어주면 뭐든 쓰는.
 
왜 도덕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진환.이수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외국 기사 내용을 삼성 떠받드는 기사로 입맛대로 바꿔 쓴 한국경제신문이 낸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구판절판


시장의 자유는 아름다움과 마찬가지로 보는 이의 견해에 따라 달라진다. 최대한의 이윤을 거두기 위해 필요하면 누구나 고용할 수 있는 공장주의 권리보다 아동의 일하지 않을 권리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의 눈에는, 아동 노동 금지가 노동 시장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생각하는 사람은, 시장이 아동 노동 금지라는 잘못된 정부 규제에 얽매여 자유롭지 못하다고 볼 것이다. -21쪽

시장이 얼마나 자유로운지를 객관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자유 시장이라는 것은 환상이라는 이야기이다. 자유 시장처럼 보이는 시장이 있다면 이는 단지 그 시장을 지탱하고 있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여러 규제를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 뿐이다.-22쪽

시장은 객관적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를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이다.-31쪽

부자 나라의 어떤 개인이 비슷한 일을 하는 가난한 나라의 개인보다 실질적으로 생산성이 월등히 높은 분야에서조차, 그 격차는 개인의 능력 차라기보다는 시스템의 차이에서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자 나라의 일부 개인이 가난한 나라의 동일 직종 종사자에 비해 생산성이 수백 배나 높을 수 있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머리가 더 좋다거나 교육을 더 잘 받았다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더 나은 기술, 더 나은 조직, 더 나은 제도와 물리적 인프라를 가진 경제 환경에서 살기에 그런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수세대에 축적된 집단적인 노력의 산물이다. -55쪽

경제가 발전하면 ‘사람’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물건’보다 상대적으로 비싸지게 마련이고, 그에 따라 선진국에서는 가사 노동자를 고용한다는 것이 극소수 부자들이나 누릴 수 있는 사치가 되고 말았다. 반면 개발도상국에서는 여전히 가사 노동자의 임금이 저렴한 탓에 소득 수준이 중하위권에 속하는 사람들도 가정부를 둘 수 있는 것이다.-60쪽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경제 제도는 사람들이 이기심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인정은 하되 인간의 다른 본성들을 모두 활용하고 사람들이 최선의 행동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제도일 것이다. -70쪽

경제 활동을 하는 데 이기심만이 유일한 동기가 아니라는 것을 체계적으로 보여 주는 증거도 수없이 많다. 물론 이기심이 가장 중요한 동기일지는 모르나 유일한 동기라 할 수는 없다. 정직성, 자존심, 이타심, 사랑, 연민, 신앙심, 의무감, 의리, 충성심, 공중도덕, 애국심 등은 모두 우리의 행동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74-75쪽

강력한 복지 시스템을 갖춘 국가들의 경우에는 설사 ‘부자에게 유리한 재분배’가 이루어졌다고 해도 이에 따른 성장의 혜택을 사회 전체로 확산시키는 것이 훨씬 쉽다. 세금과 소득 이전이라는 강력한 기제가 있기 때문이다. -195쪽

우리는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다.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라는 대전제를 부정하고 나면 시장과 정부의 역할에 대해 인간의 합리성을 전제로 하는 시장 실패 이론 같은 접근법과는 전혀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226쪽

사이먼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제한된 합리성을 극복하기 위해 규칙을 도입한다.-233쪽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게 목적이라면 교육 너머로 눈길을 돌려 제대로 된 제도와 조직을 건설하는 데 신경을 쓰는 것이 진정으로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는 길임을 깨달아야 한다. -250쪽

교육은 소중하다. 그러나 교육의 진정한 가치는 생산성을 높이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잠재력을 발휘하고 더 만족스럽고 독립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경제를 발전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교육을 확장하면 큰 실망을 겪게 될 것이다. 교육과 국민 생산성 사이의 연관성이 약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교육에 대한 과도한 열의는 가라앉힐 필요가 있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는 생산적인 기업과 그런 기업을 지원할 제도를 확립하는 데 더 신경 쓸 필요가 있다. -250-251쪽

기회의 균등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의 균등이 보장되어야 한다. -277쪽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최소한의 소득, 교육, 의료 혜택 등을 보장함으로써 최소한의 역량을 갖출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지 않으면 공정한 경쟁을 한다고 말할 수 없다.-28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1월
장바구니담기


이쯤 되면, 뻔뻔해도 너무 뻔뻔하다고밖에는 할 말이 없다. 삼성 미리 연루자로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렸던 이들이라면, 대외적인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라도 물러나게 하는 게 자연스럽다.
그러나 삼성의 선택은 반대였다. 윤종용, 황창규 등 삼성을 대표하는 간판급 경영자들이 쫓겨났지만, 비리 연루자로 언론에 보도된 이들은 살아남았다. 심지어 구조본의 지시에 따라 고객 돈을 비자금으로 빼돌렸던 황태선 전 삼성화재 사장에게는 막대한 스톡옵션이 보장됐다.
이게 뜻하는 바는 분명하다. 차명계좌에 담긴 돈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회사에서 쫓겨나지 않는다는 점을 삼성 조직 안에 알리는 신호다. 그리고 이건희 일가를 위한 일을 하다 입은 상처는 더 높은 자리와 돈으로 보상한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회사의 위상을 높이는 일보다 이건희 일가를 보호하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101쪽

검사는 시시한 혐의로 사람을 잡아들인다. 그리고 검사와 친한 변호사가 사건을 맡도록 한다. 변호사는 두둑한 수임료를 챙긴다. 검사, 변호사와 친한 판사는 피의자를 풀어준다. 덕분에 한몫 챙긴 변호사는 술자리에서 판사, 검사에게 크게 한턱 대접한다. 그리고 얼마 뒤 검사는 다시 사람을 잡아들이고, 악순환은 반복된다. 이 사건을 수사하며, 법조 삼륜이 공모한 공갈극을 보는 듯했다. -120쪽

당시 한 음식점에서 이학수와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만났다. 이학수는 건강상의 이유로 날생선을 기피하므로, 화를 살짝 익혀서 먹는다. 그날도 그랬을 게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홍석현은 이학수가 자기보다 힘의 우위에 있다는 점을 선선히 인정하고 있다. 홍석현은 이건희의 매제이며 보광그룹 소유주지만, 이학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127쪽

삼성 공장 관할 관청 공무원을 매수해서 노조 설립 신고서를 아예 수리 자체가 되지 않도록 했다. 매수된 공무원은 신고서가 들어오면, 신고서 수리를 일단 미루고 바로 삼성에 알려줬다. 그러면 삼성은 재빨리 유령노조 설립 신고를 했다. 이런 작업은 구조본뿐 아니라 계열사 차원에서도 이루어졌다. 계열사마다 노조 담당이 있었고, 이들은 노동자들을 면밀하게 감시했다. 노동조합 설립 기미가 보이면, 관련 주동자를 사실상 납치해서 회유, 협박했다. 이런 식으로 한 명씩 각개격파하면, 결국 노조 설립 시도는 불발로 끝나곤 했다. -139쪽

삼성 구조본 인사팀에는 경찰대 출신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삼성은 경찰을 잘 활용했다. 예컨대 누군가에 대해 휴대폰 위치 추적을 해야 한다면, 구조본 인사팀과 연줄이 닿는 경찰에게 미리 청탁해 둔다. 경찰서장 명의로 통신회사에 공문을 보내면, 휴대폰 개설 명의자를 알아낼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하기 위해서다. 그 경찰은 청탁받은 조사에 관한 서류를 다른 정상적인 수사에 관한 서류 사이에 끼워서 경찰서장에게 결재를 받는다. 이렇게 경찰서장 도장이 찍힌 공문이 나오면, 이를 휴대폰 위치 추적에 이용하는 것이다. -140쪽

삼성은 직원에게 무한한 도덕성을 강요한다. 하지만 위로 올라가면,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 3만 원짜리 신용카드 전표가 문제가 돼 해직된 직원의 눈에, 10조 원대 회사 돈을 빼돌린 이건희 일가가 어떻게 비칠지 궁금하다. -166쪽

대법관에게 150만 원짜리 굴비 선물세트를 보낸 일도 있다. 당시 이학수는 내가 직접 전달하라고 했다. 그게 예의라는 게다. 그러나 나는 운전 기사를 대신 보냈다. 속으로는 ‘대법관이 설마 삼성이 보낸 굴비를 받겠느냐’라고 생각했었다. 나중에 기사에게 들으니, 굴비 잘 먹겠다고 감사 인사를 하면서 받았다고 한다. 물론, 굴비를 받은 대법관은 그게 대가성 있는 뇌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대법관에게 고작 150만 원짜리 뇌물을 보낼 리는 없으니 말이다. 그저 사교 활동의 일부라고 여기고 넘겼을 게다. 하지만, 이처럼 무딘 태도가 큰 비리로 이어진다. 작은 향응과 선물에 길들여지면, 결국 뇌물도 받게 돼 있다.-172-173쪽

삼성 돈을 받은 검사 명단에 포함돼 있던 이귀남(현 법무부 장관)도 당시 산행에 동행했다고 한다. 이귀남이 풀이 죽은 표정을 짓고 있자, 정상명은 "여기 있는 사람 중에 삼성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며 이귀남을 위로했다고 한다. 현직 검사장에게 들은 이야기다. 특검에서 조사받을 당시, 수사검사도 이런 내용을 내게 확인해 줬다. "위로하려고 한 말일 뿐"이라는 설명이 뒤따랐지만, 사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174-175쪽

삼성 법무실 시절, 김인주가 내게 이런 말을 자주 했다. "몇 천만 원 주는 걸 무얼 그리 겁내느냐"라고. "이삼천만 원 때문에 벌벌 떨지 말라"고도 했다.
실제로 그들은 공직자에게 뇌물을 뿌리는 일에 대해 죄책감이 없었다. 오히려 자랑스러워했다. 이건희, 이학수 등 조직 수뇌부가 자신을 신임하는 증거라는 것이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이런 비밀스런 업무를 담당했던 자들은 능력이 없어도 계속 중용했다. 잘못을 저질러도 어진간해서는 잘리지 않았다. 비리 공범을 함부로 자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175쪽

삼성에서 겪은 로비 문화를 떠올리면, 망국적인 입시경쟁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졸업생이 권력기관으로 많이 진출하는 학교에 자식을 입학시키려는 욕망이 이유다. 그래서 자기 자식이 권력자들과 학연으로 묶이기를 기대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인맥으로 자시들이 불공정한 혜택을 누리길 원하는 게다. 이런 욕망이 있는 한, 입시경쟁이 사라질 리는 없다. 그런데 입시경쟁은 거품을 물고 성토하면서, 불법 로비에는 관대한 이들을 종종 본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181쪽

중앙일보가 삼성으로부터 계열분리하겠다고 대국민 선언을 한 게 여러번이었다. 하지만 홍석현 회장에게는 대주주 지분을 살 돈이 없었다. 그래서 이건희 회장이 명의 신탁하는 방안을 택하기로 했다. 주주 명의자는 홍석현으로 하되 의결권은 이건희 회장이 행사한다는 내용으로 비밀 계약서를 썼다.-192쪽

‘e 삼성’에 문제가 생기자, 김인주가 초조해졌다. 걸핏하면 내 방에 와서, 내 뒷자리에서 서성였다. 방 안에서 왔다 갔다 하며, 그는 "이재용 돈이 들어갔는데, 손실이 나게 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말을 거듭했다. 결국, 그는 ‘e 삼성’ 관련 주식을 취득가액으로 사서 투자 원금을 회수하도록 했다. 그래서 삼성 계열사들이 ‘e 삼성’ 관련 주식을 사서 손해를 뒤집어썼다. -204쪽

이건희 집안 파티에 불렀을 때 거절하는 연예인은 거의 없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예외가 있는데, 가수 나훈아 씨다. 삼성 측에서 아무리 거액을 주겠다고 해도, 나훈아를 초청할 수는 없었다.
나훈아는 대략 이런 입장이었다고 한다. "나는 대중 예술가다. 따라서 내 공연을 보기 위해 표를 산 대중 앞에서만 공연하겠다. 내 노래를 듣고 싶음녀, 공연장 표를 끊어라." 한마디로 부잣집 애완견 노릇은 하기 싫다는 것이다. -228쪽

당시 이건희는 삼성 고위 임원,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으로 성공한 사람, 문화, 학술계 유명인사 등을 입주 자격으로 내세웠다. 이건희는 일종의 우생학적인 생각을 품고 있었던 듯하다. 뛰어난 사람들을 따로 골라내서, 그들이 대중과 섞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 말이다. 순수혈통을 고집하는 배타적인 인종주의를 떠올리게 하는 태도인데, 아마 이건희가 생각하기에 가장 우월한 인종은 삼성 고위 임원이었을 게다. -247-248쪽

자신이 법 위에 있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못 할 짓이 없어진다. 그날, 그(이재용)는 "비자금이나 차명계좌는 모든 기업이 공공연하게 갖고 있는 것인데, 왜 삼성에 대해서만 문제 삼는 것인지 이유를 모르겠다."며 짜증스러워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이재용이 범죄에 대한 의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253쪽

섭외, 즉 뇌물을 통한 불법 로비에 대해 이건희가 가진 관심은 대단했다. 그는 평소 "작은 돈으로 큰 결과가 오게 하는 것"이 로비라고 말했다. 로비에 관한 세부적인 사항까지 지시하곤 했다. 그는 종종 로비 대상자에게 ‘감동 서비스’를 하도록 주문했다. 결혼기념일, 아이들 생일 등을 꼼꼼하게 챙기고 ‘꽃과 와인’을 집에 보내서 ‘감동’을 주라는 것이다.
-256쪽

이재용으로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그룹에 민형사 사건이 많아지자, 법원행정처 출신으로 대법관 물망에 오를 만한 판사를 스카우트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법관 인사를 주무르는 법원행정처가 사법부를 장악하기 위한 핵심 열쇠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던 게다. 그런데 이런 지시가 제대로 이행이 안 됐다. 그러자 구조본 기획팀에서는 법원행정처 소속 일반 직원이라도 스카우트하자는 견해를 내기도 했다.
-258쪽

더 무서운 것은 국민들의 냉소다. 사법부가 공정성을 잃고 정권과 재벌의 시녀 노릇에 전념한다는 생각이 워낙 뿌리 깊은 까닭에, 신영철 사태에 대한 판사들의 집단 반발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이들이 많았다. "법원은 원래 그렇다. 어차피 한통속인 판사들이 왜 뒤늦게 호들갑이냐"라는 반응이다. 그러나 이런 반응은 위험하다. 썩은 현실을 직시하는 것과 현실 앞에서 체념하고 냉소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기 때문이다. 현실이 절망적이라는 게 희망을 포기할 이유는 될 수 없다. 체념과 냉소를 전염시키는 일 역시 부패의 공범이다. "다 그런 거지"라는 체념과 냉소 속에서 부패는 관행이 되고, 결국 거스를 수 없는 구조가 된다. 지금이 그런 상태다. "어차피 한통속이면서 왜 호들갑이냐"라는 냉소적인 반응을 지지할 수 없었던 이유다. -386쪽

진실로 인간성이 좋은 사람은, 욕을 먹지 않는 사람이 있다. 옳은 일을 하는 이들에게서는 칭찬을 듣고, 나쁜 짓을 하는 이들에게서는 욕을 먹는 사람이 대개는 옳은 길을 걷는 사람이다. 그리고 "인간성이 좋다"는 평가는 이런 이들에게 돌아가야 마땅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나쁜 짓을 하는 사람에게조차 칭찬 듣는 사람을 오히려 높이 치는 분위기가 짙다. 이런 사람들이 ‘의리’가 있다거나, ‘보스’기질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부류를 가리켜 ‘남자답다’거나 ‘통이 크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쩨쩨하지 않다’거나 ‘대범하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415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넷 2010-11-11 0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안 읽으셨던가요? 다시 읽으시는 거예요? 저는 아직 안 읽었네요... 사두고 안 읽은 책이 어찌나 많던지..-_-;;

마늘빵 2010-11-11 09:02   좋아요 0 | URL
아, 뒤늦게 읽었어요. 그땐 바로 못 읽고. ^^ 올해의 책으로 한 권만 뽑으라면 단연코 이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