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빈의 서양고전 껍질깨기
김태빈 지음 / 도서출판 해오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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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의 이름이 제목에 들어가는 경우는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저자의 이름 자체가 이미 상품성이 있거나 그렇지 않다면 저자가 자신의 저작물에 대해 자신감이 있거나. 이 책은 어디에 해당할까. 저자의 첫 책인듯 보이니 당연히 전자는 아니고 후자에 해당할 것이다. 책 제목에 왜 이름을 넣었는지는 알 수 없다. 출판 편집자와 저자에게 물어야 할 것. 결론내릴 순 없지만 후자로 추측해본다.

  표지는, '서양 고전 껍질 깨기'라는 제목을 너무 의식한듯 서양 작가들의 인물 스케치를 그려놓고, 노동자들이 머리 위에 올라타 머리를 깨는 형상을 하고 있다. 인물의 머리를 고전의 껍질에 비유하고, 이것을 깨는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 제목과 표지가 일치하기는 하지만, 표지 그림은 조금 섬뜩하다. 두 개골을 망치로 부수는 그림이라.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더 낫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제목도 그냥 정직하게 '서양 고전 수업'과 비슷하게 가면 어땠을까 싶다.  

  저자는 국어교육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 현대 소설을 공부했다.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문학과 논술을 가르치고,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이 책은 그가 학생들과 함께 한 수업의 결과물이라고 봐야겠다. 크게 네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나, 우리, 세상, 이상으로 점차 범위를 확대한다.

  각각의 장으로 들어가면 한 고전 작품에서 추출한 주제 제목을 달고, 해당 고전에 대해 간단히 해설한다. 이후 고전의 주인공과 가상 대화를 시도하면서 인물이 처한 상황과 상황에서의 행동 원인을 심리적으로 추측해보게 한다. 다음으로, 세 가지 질문을 차례대로 던져 작품과 작가에 대해 좀 더 깊이 알 수 있도록 했다. 교사의 역할이 끝나고 나면 학생들의 대표 독서록을 공개하고, 이에 대한 교사의 마지막 평가 내지 해설을 첨가한다. 관련 책 소개 코너는 책의 보너스다.  

  이 책 안에는 열두 개의 고전이 들어가 있고, 대부분 청소년 추천 도서로 많이 거론되는 서양의  고전 작품들이다. 이방인, 그리스인 조르바, 인형의 집, 오만과 편견, 햄릿, 노인과 바다, 걸리버 여행기, 오뒷세이아,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1984, 달과 6펜스, 인간의 조건. 마지막 '인간의 조건'은 한나 아렌트의 저작이 아닌 앙드레 말로의 작품.  

  서양 고전을 섭렵하지 않아서인지 언급된 작품 중 내가 완독한 것은, 걸리버 여행기와 1984 둘 뿐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선물 받았지만 아직 읽지 않았고, 오만과 편견은 영국 드라마와 영화로만 봤다. 햄릿은 일부 지문을 접해봤을 뿐이고, 노인과 바다는 고등학교 때 읽다 말았다. 오뒷세이아는 구입했으나 너무 두껍고 읽기 어려워 장식용으로 꽂혀 있으며, 인간의 조건은 아렌트의 작품 말고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 단행본은 고등학생들과의 고전 수업의 진행 방식을 따르고 있고, 그대로 활자로 구현한듯 하다. 불행히도 언급된 고전 작품들을 두루 접하지 않아 '읽음'을 전제로 한 이 수업에 집중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분명 해당 고전 작품을 이 책과 함께 읽거나 고전을 먼저 읽고 이 책을 접한다면 얻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흥미로운 세미나 방식이고, 그대로 다른 교사가 현장에서 적용해도 유용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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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인사이트 Economy Insight 2011.8
이코노미인사이트 편집부 엮음 / 한겨레신문사(잡지)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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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지다. 한겨레신문사에서 나오는 경제 잡지다. 한 10년 전쯤 한겨레21 주간지를 열심히 정기구독하여 보다가 시사IN 창간 때 일 년 간 그 매체를 정기구독하였다. 이후엔 간간히 한겨레21과 시사IN을 가판대에서 구입해 보다가 다시 한겨레21을 정기 구독하는 중이다. 광고지를 넘기다 <이코노미 인사이트>라는 이 잡지를 발견했고, 주제도 끌리고, 색다른 포지션을 취한 것 같아 구입하였다.  

  종이질은 주간지보다 훨씬 낫고, 분량도 조금 더 두껍지만, 주간지와 달리 이 경제 잡지의 가격은 무려 12,500원이다. 주간지가 3,000원인 걸 생각하면 무척 높은 가격이다. 어쩌면 이 잡지의 가격이 높은 게 아니라 주간지가 여태 3,000원인 걸 신기해 해야 할 지도. 한겨레신문사에서 내는 매체는 한겨레21과 씨네21이 있었지만, 씨네21은 별도 법인으로 독립했다고 들었고, 이제 빈 자리를 이코노미 인사이트가 메꿀 모양. 받아든 책이 16호이고, 월간지이므로 창간한 지 일년 반이 조금 안 되었다.  

  기존의 경제 분야 정기간행물들은 거의 친기업적이고, 친정부적인 포지션을 취하는 바람에 기업과 정부의 광고지에 다름 아니었는데, 이 잡지는 전혀 다른 포지션을 취한다. 진보적 시사 주간지가 경제 분야 기사를 쓰는 관점에서 기사를 구성한다. 당연히 특색을 지닐 수밖에 없다. 여러 경제지들에서는 다루지 않는 주제를 다루고, 같은 주제를 다루더라도 바라보는 시각은 확연히 다르니, 나름 이 매체가 시장의 틈새를 잘 공략했다고 봐야겠다.  

  이 잡지는 여타 경제지들과 같이 광고를 대신한 기사를 싣지 않고, 윤리적 소비나 공정 무역, 대기업과 중소 기업의 관계 등 마땅히 경제 분야에서 다루어야 하나 시사 분야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에 대해 밀도 있는 기사를 담는다. 8월호의 주제도 '티셔츠는 알고 있다'이다. 부제는 '착한 기업의 나쁜 짓'. 10년이 지나도 '착한' 가격에 티셔츠를 공급하는 한 회사가 어떻게 상품 가격을 올리지 않을 수 있었는지 파고드는 기사다. 기사를 읽지 않아도 대충 예상할 수는 있다. 노동 착취가 그 이면에 있을 것.  

  혹시나 해서 구입해 본 잡지가 마음에 쏙 들었고, 다음 달 것도 나오면 구입해 볼 생각이다. 정기구독이 가능하다면 고려해보겠는데, 이상하게 정기구독 안내 문구를 찾아볼 수가 없다. 정기간행물이라면 모든 매체가 정기구독을 선호할 텐데 안내 문구도 없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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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1-08-03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일단 땡투누르고 구입들어갑니다 ^^;;

마늘빵 2011-08-03 20:45   좋아요 0 | URL
^^
 
김태빈의 서양고전 껍질깨기
김태빈 지음 / 도서출판 해오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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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반대는 구속이 아니라 관성이다. (앙리 베르그송)
-11쪽

멸시로 응수하여 극복되지 않는 운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카뮈)
-30쪽

모든 인류가 나의 행위를 본받도록 행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존재, 내가 바로 이런 존재가 아닌가(사르트르)
-31쪽

자유가 우리 삶에 가져올 두려움과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할 때 자유로운 삶은 가능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유로운 삶에 대한 기계적 욕망이 아니라 자발적 용기입니다. 사회적 성공이나 세속적 기준에 의해 평가되는 삶이 아니라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 되는 삶을 살겠다는 지극히 당연한 태도 말입니다. 자유는 ‘자기 이유’의 줄임말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삶을 선택하더라도 그 선택에 분명한 이유를 가질 때 우리는 진정 자유롭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반복하지만 그 이유는 다소 초라하고 거칠더라도 온전히 나의 것이어야 합니다.
-56쪽

싸워서 지는 것이 아예 싸우지 않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을 때도 있는 것이다. (조지 오웰)
-60쪽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 왔는데 하나는 사랑에 대한 열망이고, 둘은 지식에 대한 탐구이며, 셋은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연민이다. (버틀란트 러셀)
-87쪽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편견이고,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오만이다. (<오만과 편견>)
-109쪽

배타성을 없애 준다는 점에서 광기는 축복받아야 한다. (고흐)
-112쪽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그람시)
-138쪽

육체는 빵으로 살찌지만 정신은 기아와 고통으로 살찐다.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상징에 의해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어야만 비로소 지식인은 행동하고 결정할 수 있게 된다.(님 웨일즈)
-139쪽

당신은 민주주의를 위해 무엇을 했습니까?(스페인 바르셀로나 공화 진영 의용군 모집 포스터)
식량만 축냈습니다. (조지 오웰)
-150쪽

고향을 감미롭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허약한 사람이다. 모든 곳을 고향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상당한 힘을 갖춘 사람이다. 그러나 전세계를 낯설게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완벽한 인간이다. (고미숙)
-189쪽

진리의 가장 큰 적은 거짓이 아니라 확신이다. (니체)
-215쪽

악이란 비판적 사유의 부재다.(아렌트)
-243쪽

희망은 원래 있다고 할 수도 있고 없다고 할 수도 있다. 이는 마치 땅 위의 길과 같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걷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길이 되는 것이다. (루쉰)
-2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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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1-07-25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한권에 이 많은 구절이 나오는군요.

마늘빵 2011-07-26 08:57   좋아요 0 | URL
학생들 고전 토론 수업에 활용하면 좋을 책이에요. 위 문구는 거의 각 꼭지글 도입 문구라는...
 
라이브러리 앤 리브로 Library & Libro 2011.7
Library & Libro 편집부 엮음 / 도서관미디어연구소(잡지)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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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2주념 기념 설문 조사는 매우 흥미로웠다. 설문 참여자 명단에 속한 이들은 활동 영역이 달라서인지 여러 곳에 동시에 글을 올리시는 딱 한 분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겠다. 나름 수년간 책을 읽고 끄적인 북로거인데 아는 분이 달랑 한 분이라니, 내 활동 반경이 좁은 건지 그들이 파워북로거가 아닌지 그것은 알 수가 없다. 어떻게 보면 파워북로거라는 개념조차도 알라딘, 예스24, 교보, 리브로, 인터파크 등에 둥지를 틀었느냐, 아니면 포털 사이트에 둥지를 틀었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누군가에게는 파워북로거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듣보잡이다.  

  포털의 파워북로거들 70명을 대상으로 설문 메일을 보냈고, 그 중 50명이 답했다. 이들 중 58%는 서평지 문화가 자리 잡지 못하는 이유로 '서평의 질' 문제를 들었고, 파워북로거의 사회 문화적 의미를 묻는 문항에는 70%가 '정보 생산자 그룹이자 1인 서평 미디어'라고 대답했다. 개인적으로 첫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서평의 질 보다는 신문 서평이든 잡지 서평이든 서평을 읽는 이들이 소수이고, 기자의 글쓰기나 북로거들의 글쓰기나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 통계에서는 이런 의견조차도 '서평의 질'로 치환해버렸는데, 분명히 다르다. 서평의 질 보다는 서평의 방향성 문제라고나 할까.

  쭉쭉 빨거나 아니면 가혹하고 신랄하게 까는 문화가 없다. 좋은 부분에 대해서는 좋다고 쭉쭉 빨아주고, 아닌 부분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비판하는 문화, 빤다고 좋은 책도 아니고, 깐다고 나쁜 책도 아니라는 의식이 형성될 수 있는 문화가 없다. 빨면 무조건 좋은 책이 되고, 까면 무조건 안 좋은 책이 되기에 빠는 것도 까는 것도 조심스럽다. 내 딴에는 좋지만 아쉬워서 까는 건데, 별 셋을 줬다고-사실 별 셋은 무난한 건데-, 깠다고 열어봐서도 안 되는 책으로 간주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좋은 부분은 좋다고, 나쁜 부분은 나쁘다고, 아쉬운 건 아쉽다고 다 말하는 편인데, 글을 읽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게 보인다.  

  한 출판인이 신간 출간 이후의 미국과 유럽, 그리고 한국의 문화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다. 유럽과 미국은 책이 나오면 좋은 부분을 부각해주고 일정 기간이 지나서야 그 책의 안 좋은 점을 비판하거나 한다고. 그러나 한국은 책을 소개하는 신문 지면에서 기자들이 책을 소개하면서 이런 점은 아쉽다, 라고 꼭 쓴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한국 기자들이 책을 쭉쭉 빨아주고 있다고 여기는 분들도 있지만, 유럽이나 미국에 비하면 실상 까는 기사 쪽에 속한다는 것. 신문 기자는 사실상 서평이 아니라 책 소개를 해줘야 하고, 서평은 다른 이들이 써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기자가 책을 소개하면서 서평을 쓰려고 하기에 책 소개와 서평의 경계가 허물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50명의 파워북로거들은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서평이 구매에 미치는 영향 면에서 제각각의 답을 내놓았다. 거의 참고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전적으로 참고하는 사람도 있다. 그 수도 답만큼이나 제각각이다. 내 경우엔, 이런 책이 나왔구나 라는 안내를 받는 정도로만 참고를 하고, 그 책에 대한 정보는 신문 기사가 아니라 인터넷 서점에 올라온 출판사의 소개 글(보도자료)를 통해서 얻는다. 그리고, 올라온 서평 중에 내가 관심 갖는 북로거가 쓴 글이 있다면, 그 글을 찾아 훑는다. 그 다음에야 손가락이 구매 버튼을 클릭한다. 사람마다 구매 버튼까지 가는 경로가 다 다를 것.

  북로거들은 상당수가 책을 좋아해서 개인적으로 기록하는 차원에서 북로거 활동을 시작했고, 책을 사서 읽거나 빌려 읽는다. 그런데, '책은 주로 어떤 경로로 구하십니까'라는 설문에, '출판사에서 기증 받는다', '이벤트 서평에 응모한다'라는 대답에 무려 33%가 답변했는데, '주로'가 아니라 구하는 여러 경로를 복수응답하게 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합계가 50명이 나와야 하는데, 76명이 나온다. 그 아래 설문 독서량을 묻는 질문에서도 의문이 생긴다. 기준이 한 달인지, 일 년인지 알 수 없는데, 그냥 짐작으로 한 달이라고 생각하자니, 45권 이하라고 답한 사람은 뭔가 싶기도 하고. 한 달 기준으로 삼자면, 이 사람은 하루에 한두 권을 꼬박꼬박 읽는다는 건데. 기획 의도는 좋은데, 마무리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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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1-07-13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로' 출판사에서 책을 보내주다니 놀랍네요 오호.

마늘빵 2011-07-13 09:55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합계 숫자도 안 맞고, 복수 응답인거 같은데 통계처리하는 편집자가 실수한 듯 합니다. 질문도 '주로'라고 물으면 안 되고, '주로'라는 단어를 빼고 물었어야 하고. 설문지에 문제가 좀 많아 보여요.

saint236 2011-07-13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알라딘이 전부인데, 갑자기 주로 돈을 주고 책을 사는 제가 이상해 보이네요.

마늘빵 2011-07-13 17:59   좋아요 0 | URL
간간히 제안 받거나, 선물 받는 걸 제외하면 저도 거의 제 돈 주고 사서 보는 편이죠. 빌려서는 잘 못 읽는 성격이라.
 
불온한 인문학 - 인문학과 싸우는 인문학
최진석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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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 선사하는 최상의 선물은 당신들이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게 하는 것, 듣고 싶지 않은 것을 들려주는 것, 머리 싸매며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애써 고민하고 언어로 토해내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최진석)
-8쪽

인문학이 텍스트의 쾌락이자 종이 위의 전통으로 남아 있는 한, 이 세계는 영원히 변할 수 없다. 혁명은 인문학이 묵독의 자아도취를 벗어나 광장에서 올리는 함성이 될 때, 거리에 대한 관조를 중단하고 거리를 욕망할 때, 학문이라는 성에 칩거하지 않는 비학문이 될 때, 우리의 심장과 지성, 언어를 격발시키는 불온한 인문학이 될 때 점화되기 시작할 것이다.(최진석)
-8-9쪽

그것(새로운 인문학을 위한 제언)은 차라리 지금-여기의 현실을 작파하고 ‘다른’ 현실을, 우리의 감각과 지식, 상식의 기반을 뒤흔들어 우리를 ‘낯선’ 변경으로 던져 넣는 것이어야 한다. (정정훈, 최진석)
-17쪽

나는 온화함과 동일성의 논리로 우리를 포획하는 인문학의 이미지를 뒤흔드는, 그래서 인문학을 낯설게 하고, 그래서 인문학을 더욱 불편하게 만드는 인문학에 반하는 사유 활동, 즉 그 사유 활동을 ‘불온한 인문학’이라 명명하고자 한다. (정정훈)
-104쪽

통섭이란 관념만큼 횡단에서 거리가 먼 것은 없는 것 같다. 통섭은 횡단과 반대로 하나의 체계 안에 지식들을 ‘통합’하고 ‘포섭’하려는 제국주의적 전략이라고 해야 할 듯하다. 그것은 이른바 ‘학제적 연구’보다도 훨씬 낡은 관념이지만, 그것이 종종 학제적 연구 체계의 구성으로 오해된다는 사실은, 학제적 연구 또한 통섭처럼 통합과 포섭의 메커니즘을 내장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고 의심하게 된다. 이와 달리 횡단은 하나의 지식을 다른 지식과 통합하여 단일한 체계를 부여하려는 발상을 가로지르는 것이고, 이런저런 지식들을 근거짓는 것과 근거 지워지는 것, 근본적인 것과 부차적인 것, 일차적인 것과 이차적인 것의 위계적 지위를 부여하려는 발상 전체를 전복하는 것이며, 주어진 자리를 지키는 것과 반대로 거기서 이탈하여 엉뚱한 만남의 장소를 창안하는 것이다. (이진경)
-145-146쪽

추방된 자들의 (인)문학적 공동체를 위해 인문학자는 스스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사유의 기술을 연마하는 사람들의 공동체, 삶의 심층에 사유의 구멍을 뚫는 두더지들의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그 인문학자들의 공동체는 사유의 탈영토성을 무기로, 개별적으로 삶의 심층에서 탈출구를 찾고 있는 사람들의 구멍을 연결해야 한다. 그 통로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문제를 소통시키고, 기술을 소통시키고, 기술자들을 소통시켜야 한다. 그래서 지하 생활자들의 땅굴 네트워크, ‘지도에 없는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박정수)
-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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