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cm 예술
김점선 지음, 그림 / 마음산책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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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점선의 <10cm 예술>. 사실 뭔지 몰랐다. 김점선이 누군지도. 이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도. 난 어디선가 얼핏 '배꼽 밑 10cm'인가 하는 제목을 본 거 같아서 이게 그건가, 하고 집어들었는데, 아니었다. 흠. 성 관련된 책이 아니라 그림과 관련된 책이었다. 어쨌거나 일단 집어들었으니 보긴 봤는데, 으하핫, 너무나 재밌다. 웃기려고 작정하고 쓴 유머집도 아니고, 재미난 소설도 아닌데, 너무나 재밌다. 버스타고 목적지를 향해 가면서 한시간도 안되어 다 봤고, 그 사이 난 버스칸에서 혼자 피식피식 웃고 있었다. 난 책을 읽다 웃기는 대목이 나와도 그냥 속으로 흐흐 하고 웃는 스타일인데, 속에서 웃는걸 넘어서 더 웃긴건 입가에 미소로, 더 웃긴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키득키득 거리며 소심하게 웃는다. 그런데 어제 버스칸에서 그 수준까지 갔다는 말씀. 너무나 재밌고, 너무나 웃기고, 한편으로는 너무나 슬픈 이야기였다.

  <10cm 예술>은 김점선이라는 화가의 컴퓨터 그림과 글을 담은 책이다. 그녀는 그림을 너무나도 그려댄 나머지 오른쪽 팔에 무리가 왔고, 좀 쉬어야만 하는 상황에서, 아들이 알려준 컴퓨터 포토샵 프로그램과 그림판을 가지고, 그 사이를 못참고, 또 그림을 그려댄 것이다. 10cm라는건 컴퓨터 화면 상의 그림판 크기를 말하는 듯하다. 그러나 컴퓨터를 처음 다루면 어떠랴, 화가의 손은 역시 다르다. 그녀가 손을 댄 순간 그것은 하나의 작품이 되어 나왔다. 그냥 그림만 보면 사실 별다른 걸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녀가 직접 쓴 그녀의 삶의 이야기와 함께 하면, 그 그림들은 그녀 자신의 삶 자체였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어릴때부터 공부 잘했지만 내가 공부 잘하는지 몰랐고, 어느날 갑자기 그림을 그려야겠다 생각되어 다음날 미술학원 등록하고 그림을 그렸대는데, 그러고서 홍대 미대를 갔다. 그녀의 사고방식과 행동이 온갖 기행을 낳고 다닌듯 하고, 못생긴데다 꾸미지도 않고 노숙자처럼 하고 다니는 그녀의 행색은, 길거리에서 경찰관들에게 심문을 받을 정도였다. "분명히 마약한 놈같은데... 왜 없지?"

  어릴 때, 행복이 거적을 입고 변장한 채 사람의 집에 찾아오는 내용의 동화를 읽으며, 그녀는 교복을 벗으면 거적을 쓰고 다니리라 마음 먹었단다. 그리고 실천했다. 헝클어진 머리에 빗지도 않고 단추도 안채우고 구겨진 옷을 입고 길거리를 다녔다. 미친 사람처럼.

  도서관과 문화원에서 책을 읽다가는 아니 어떻게 읽은 책을 그냥 두고 나올 수가 있어, 그러면서 온갖 책을 다 훔쳤다는, 게다가 자신이 찜한 책을 넘어서, 친구가 이 책 괜찮네, 하면 또 그 책도 훔쳤다는, 이런 기행, 나아가 교수가 이 책 어디서 났니, 그랬더니, 훔쳤어요, 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그녀, 그런 그녀를 향해, 이거 빌려줘, 라고 말하는 교수, 아예 가지세요, 라고 마무리지으며 공범자가 생겼다고 좋아라한다.  

  이 책에 나온 그녀 자신의 삶의 이야기는 온갖 기행으로 가득차있다. 아니 이런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싶다. 아무리 예술을 하는 사람이라지만, 어떻게 의도하지 않고 이런 생각과 이런 행동이 나올 수가 있지? 더욱더 가관인 것은 그녀의 남편이다. 책을 읽으며 이런 여자가 결혼이나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헉 결혼을 했다. 그래서 난 그녀보다 그녀의 남편이 더 궁금해졌다. 하긴 앞에서 아들이야기가 잠깐 나오니 결혼을 하긴 했겠지. 남편은 그녀의 선배다. 그의 기행은 그녀의 그것을 넘어선다. 신발을 안신고 등산용 양말을 신고 길을 걷질 않나, 록가수의 무대에서 기이한 춤을 추며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아무 것도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내며, 술을 먹고, 여자를 탐한다. 결혼은 했지만 일은 하지 않는다. 매일이 담배와 술이다. 도덕성이라곤 아예 기초가 없는 인간이라 했다. 그는 결국 폐암으로 죽었다.

  그녀의 선생님이 이렇게 이야기 했단다.

 "예술은 그런게 아니다. 집에서 탄 돈으로 물감 사서 기분 나는 대로 물감칠을 하면 그게 예술인줄 아느냐? 너희들이 정말 예술가가 되고 싶으면 결혼해라. 백마 탄 왕자가 아닌 아주 가난한 사람과, 얼음물에 손을 넣고 기저귀를 빨고, 시장에서 콩나물 값을 깎으며 사는 고난을 이겨내고 나서도 그림을 그려야지..... 지금처럼 살면 너희들은 기생충이다. 부모들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기생충이다."(P43)

 그래서 그녀는 그로부터 한달 뒤 가난한 사람과 결혼을 했던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실컷 웃었지만, 그녀의 남편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문입이 이그러지며 잠시나마 가슴이 저며오기도 했다. 세상 참 재밌게 사는 사람이다. 재미를 추구하고 그러진 않았을테지만, 그녀의 머리 속에 들어있는 가치관의 기본 토대가 참 궁금하다. 도통한 도사같다. 이렇게 자유로운 영혼이 있을까 싶다. 나는 항상 내 영혼의 자유로움을 꿈꿔왔지만 내 영혼은 자유롭지 못했다. 난 항상 사회의 형식과 규칙에 얽매여 살았고, 지극히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장남으로 살았고, 사회가 마련한 틀 안에서 평범하게 자라왔다. 하지만 나의 영혼은 자유롭길 바랬다. 그것은 머리 속에서 뿐이었다. 행동으로 실천할 용기를 가지지 못했고, 어떻게 실천해야할지도 몰랐다. 어쩌면 그런 것 조차도 고민하지 않은 채 생각이 곧 행동으로  표출되는 그 순간이 영혼이 자유로운 순간인지도 모른다. 아 정말 이렇게 순수하고 자유로운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김점선. 존경스러운 인물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언어로 생각하고 수학자는 숫자나 기호로 생각하지만 화가는 눈과 손으로 생각한다. 손을 통해서만 사고는 앞으로 나아간다. 손으로 그려보지 않으면 상식적인 단계에서 시각적인 사고가 멈춰버린다. 화가는 생각과 동시에 손을 움직여서 그려야만 한다. 손이 그린 것을 눈이 보면서 생각은 더 앞으로 나아간다. 손의 도움 없이 눈만으로 나아가는 세계에는 한계가 있다. 자꾸 손으로 그리다 보면 어느 순간 생각지도 못했던 어떤 세계에 자신이 도달해 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손으로 그리는 작업이 중요한 것이다." (글머리에 中)

  그녀는 자신의 눈과 자신의 손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세상을 보고 만진다. 그리고 내가 본 세상을 그린다. 그러다보면 그녀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것이 그녀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참 깨끗하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46년생이라는 그녀, 우리 아버지와 동갑이구나. 그렇다면 그녀의 아들은 나보다 나이가 더 많겠구나. 그녀는 그림으로써 뿐만 아니라, 글로서도 자신의 삶을 그렸고, 앞으로도 그릴 것이다. 글은 어쩌면 그녀가 세상을 보고 만지고 접하는 또 하나의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삶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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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06-01-22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일단 찜. ^^

마늘빵 2006-01-22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그냥 볼땐 별로 같아 보이는데 이 여자 글빨이 그림빨 못지 않습니다. 삶 자체도 한편의 그림이고. 후회하지 않을 거에요. 최근 2권이 나왔던데 그건 아직 못봤어요.
 
10cm 예술
김점선 지음, 그림 / 마음산책 / 2002년 7월
품절


대부분의 사람은 언어로 생각하고 수학자는 숫자나 기호로 생각하지만 화가는 눈과 손으로 생각한다. 손을 통해서만 사고는 앞으로 나아간다. 손으로 그려보지 않으면 상식적인 단계에서 시각적인 사고가 멈춰버린다. 화가는 생각과 동시에 손을 움직여서 그려야만 한다. 손이 그린 것을 눈이 보면서 생각은 더 앞으로 나아간다. 손의 도움 없이 눈만으로 나아가는 세계에는 한계가 있다. 자꾸 손으로 그리다 보면 어느 순간 생각지도 못했던 어떤 세계에 자신이 도달해 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손으로 그리는 작업이 중요한 것이다.(글머리에 中)-14쪽

누군가 나에게 나쁜 짓을 하자고 제안하면 나는 깜짝 놀란다. 얼마나 나를 믿었으면 하필 나를 공범자로 찍었을까. 그런 제의를 받으면 무섭기도 하지만 선택되었다는 기쁨과 나를 완벽하게 믿어주었다는 희열과 성취감에 취해서 내가 하는 행위가 옳은지 그른지 따지지도 않았다. 한편으로는 힘들게 나쁜 짓을 제안한 친구가 무안할까봐 주저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고 "좋다, 하자!" 하며 재빨리 대답했다. 그런 행동의 밑바닥에는 짙은 허무가 깔려 있었다. 좋은 일은 무의미하고 나쁜 일은 더 허무하고......-41쪽

누더기를 입은 거지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누더기가 아니라 거적을 두른 거지가 집으로 들어왔다. 집 안에 있던 사람은 당연히 그를 무시했다. 밥을 주기는커녕 웃어주지도 않고 물도 안 주고 나가라고 소리쳤다. 거지는 집 안을 둘러보다가 마당 한쪽에 토끼장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토끼에게로 다가갔다. 옆에 있던 풀을 토끼에게 주었다. 토끼는 풀을 먹으면서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토끼는 그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행복이다. (김점선의 어릴적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 中)-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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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 2006-01-21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이런 책도 있군요.
세상은 넓고 책은 많습니다 ^^;; (근데 벌써 2시이옵니다...)

마늘빵 2006-01-21 0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네 ^^ 맥주 한잔 하고 집에 와서 씻고 이러고 있으니 시간이 금방 가는군요. 리뷰는 내일 써야겠어요. 이 책 간단히 말하면, 정말 최곱니다. ㅋ
 
The Blue Day Book 누구에게나 우울한 날은 있다 블루 데이 북 The Blue Day Book 시리즈
브래들리 트레버 그리브 지음, 신현림 옮김 / 바다출판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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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동생 책꽂이에 꽂힌 몇권 안되는 책 중에 내가 볼만한게 있나 뒤적이다가 흠. 어디서 많이 들어본 제목이다 싶어 그냥 제목과 표지만 보고 끄집어 내왔는데, 헉 아니 이게 머여, 책은 책인데 책이 아니네?!

  광고 문구와 딱 맞는 책이다. 이쩜 이렇게 광고를 할 수가.

 "처음 읽을 때는 10분이면 충분한 책, 하지만 다시 읽을 때는 1시간쯤 더 걸리는 책"

 사실 10분도 안걸렸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5분만에 본거 같다. 왼쪽엔 짤막한 글과 오른쪽엔 마치 인간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동물들의 사진. 사진에 등장하는 원숭이나 고릴라, 강아지, 고양이, 펭귄, 곰 등의 동물들이 작정하고 인간의 모습을 할리는 없고, 사진사가 기다리고 있다가 동물들의 자연스런 행동 속에 캡쳐를 해냈을 것이다. 우울한 날 보면 위로가 될 것이다 라고 하여 제목을 '블루 데이 북'으로 지었나본다. 흠. 글쎄 내가 우울할 때 본게 아니라 이 책을 읽고서(?) 우울을 극복할 수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사람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동물들의 사진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살짝 띄울수는 있을 수도 있겠다.

  처음 볼 때 5분 정도 걸렸지만, 글쎄 1시간을 더 투자해서 보고픈 책은 아니다. 동생 책꽂이에 있었기에 기웃거리며 보게 된 것이지, 절대 내가 돈주고 살만한 책은 아니란 말씀. 비록 책값이 싸긴 하지만 그렇더라도 이 책을 구입하진 않을 것이다. 아무리 내가 우울하다 해도. 우울하면 음악을 듣거나 소설을 읽는게 더 낫지, 흠. 이걸 보고 우울함을 극복할 수 있을까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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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눈물 났다. 그렇게 완벽할 수는 없다. 그토록 감동적일 순 없다. 그토록 열정적일 순 없다. 최고의 콘서트 현장이었다. 내 자신이 콘서트 장에서 그토록 소리를 질러대고 팔을 흔들고 날뛴 적은 없었다. 그 어떤 콘서트장에서도. 하긴 내가 본 해외밴드의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껏 봤던 국내 인디밴드들의 공연, 98 자유 콘서트 이런 것들은 어제의 '꿈의 극장'과 함께 한 향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정말 신나게 놀았고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지하철로만 장장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오면서도 그때의 그 감동을 잊을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순간도. 아마도 난 한 동안 드림씨어터의 앨범을 죄다 꺼내놓고 차례대로 듣게 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이 순간도 5.1 채널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그들의 가장 최근 음반을 들으며 어제의 그 감동을 느끼고 있다.

  드림씨어터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이번 방문을 포함해 총 네 차례 다녀갔다. 2년에 한번씩. 2년을 계획하고 오는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의 첫 공연부터 시작해 2년마다 이들의 공연을 매번 찾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는 그 사이 8살이나 먹은 것이다. 공연 예매자의 평균연령은 29.2세. 정말 현장엔 많은 이들이 20대후반에서 30대중후반까지가 대부분이었던 듯 하다. 물론 예매자 중엔 10대도 있었지만, 그들은 어떻게 드릠씨어터를 알았을까. 흠. 나 고등학교땐 고작 메탈리카에 입문한 정도였는데, 그 나이에 드림씨어터를 듣고 있다면 록음악을 좀 들어본 놈들이다.

  드림씨어터는 록음악 매니아 뿐 아니라 클래식 매니아에게도 인기가 많다. 지금의 이 멤버들, 드러머 마이크 포트노이, 기타리스트 존 페트루치, 베이시스트 존 명은 버클리 음대 시절 함께 모여 밴드를 조직했다. 이어 키보드와 보컬을 영입했고, 키보드 파트를 제외하고는 그 멤버 그대로 20년을 함께 해왔다. 키보드도 나의 기억이 맞다면, 단 한차례 바뀌었다가, 또다시 이전 멤버인 조던 루디스가 다시 들어온 것으로 알고 있다. 정말 대단하다. 그들 개개인의 각각의 실력으로 놓고보나, 밴드 자체의 결합력, 조직력으로 보나,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밴드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다. 결성 20주년 이제 40살 전후의 나이를 먹은 이들, 지금으로부터 20년 뒤에도 이들이 지금과 같은 연주를 들려주었으면 좋겠다.

  공연은 인터파크에 공지한 바로는 3시간 30분이었으나, 흠. 2시간 30분 정도만 했다. 쉬는 시간을 빼면. 아마 공지를 잘못한 듯 하다. 3시간 30분을 공연한 적은 없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어제도 원래 2시간 정도를 하고 나서 끝이 났지만, 수많은 관중들의 앵콜을 외치는 소리. 다들 하나가 되어 입으로는 앵콜 앵콜, 주먹쥔 팔은 높이 흔들고, 한쪽 다리는 땅을 치며, 불꺼진 무대를 향해 그들을 부르고 있었다. 한참 시간을 끌더니, 아 이 형들 참 재밌어, 한 명 두 명 서서히 다시 나와 앵콜을 부른다. 으아~ 딥퍼플의 하이웨이 스타, 그리고 드림씨어터 최고의 명반이라고 불리우는 'IMAGES AND WORDS' 음반의 'Pull Me Under'. 관객들은 본 공연보다 더 열광한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밴드는 약간 침체 상태다. 아무리 취미 밴드라고 하고, 개인별 실력차가 많이 나긴 하지만, 뭔가 밴드를 하기 이한 동기부여가 안되고 있다. 어제 나와 함께 공연을 본 기타리스트와 나는 바로 이런 대곡들, 드림씨어터와 같은 곡을 하기를 바라지만, 밴드 내에서는 드림씨어터를 좋아하지 않는 멤버도 있으니. 난 맨날 쉬운 곡만 하는 우리밴드에 질렸다. 쉽고 재미없고 건조한 곡들. 재미없다. 실력향상을 위해서는 바로 이런 대곡들을 연습해야하는데, 또 실제 공연에서 이런 곡들 하면 관객들 다 뒤집어진다. 어제 기타리스트와 그런 이야기를 하며 저들의 위대함과 함께 우리 밴드의 미래를 논했다.

  마이크 포트노이의 현란하지만 딱딱 떨어지는 저 정교한 드러밍, 닮고 싶다 정말. 테크닉도 테크닉이지만 그는 정말이지 너무나 정교하다. 게다가 드럼을 가지고 논다. 원 베이스와 투 베이스로 세팅한 각각의 드럼 두대를 한 곡을 하면서도 옮겨다니며 자유롭게 연주하는 그, 또 그 위에서 온갖 묘기를 부린다. 한손으로 연주하고 한손으로는 누군가와 스틱을 주고 받기도 하고, 카운트를 세는 곳에서는 자신의 귀에 양 손을 갖다대었다 떼며 귀여운 포즈를 짓기도. 크크크. 복장은 또 얼마나 재밌던지. 완전히 무슨 레스링 챔피언 복장이다. 나이를 먹었어도 귀엽고 장난끼 있는 얼굴과 표정에, 그런 복장을 하고 나왔으니, 가서 볼을 한번 꽉 꼬집어주고 싶다. 그의 드럼 테크닉만큼이나 귀엽다.

  존 명. 언제나 묵묵히 베이스만 치는 이 검은 옷의 가냘픈 사나이. 어쩜 그렇게 나이를 안먹니. 10년전이나 지금이나 얼굴이 똑같다. 가까이 보면 다를지 모르지만. 그는 절대 헤어스타일이나 복장을 바꾸지 않는다. 언제나 똑같다. 긴 생머리에 검은 티, 검은 바지, 검은 구두. 어둠의 사나이.

  존 페트루치. 이 아저씨 참 멋있게 늙었다. 몸매가 완전히 운동선수다. 딱 벌어진 어깨, 탄탄한 가슴, 두꺼운 팔뚝, 스타일을 크게 변화시키지 않으면서도 꾸준히 관리하는게 느껴진다. 엄청난 기타 속주와 다양한 효과음, 아무도 따라 할 수 없다. 나중엔 12현 어쿠스틱기타와 6현 일렉기타가 함께 붙어있는 기타(맞나? 기타를 제대로 볼 줄 몰라서)를 가지고 나와서 묘기를 부리는데 허~ 입이 떡 벌어질 밖에.

  키보디스트 조던 루디스,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이 아저씨도 참 멋있다. 운동으로 단련된 몸매,  깔끔하게 다듬은 턱수염, 비록 머리칼은 하나도 없지만 너무나 잘 어울린다. 동양사람들은 대머리에 수염기르면 이상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서양사람들은 왜 그런 모습이 잘 어울리는지. 흠. 정말 멋있었다. 키보드를 안치는 동안엔 관객에게 팔을 저으며 따라하라고 하기도 하고, 시종일관 우리를 보고 이를 드러내며 웃는 모습이 너무나도 친근하게 느껴졌다.

  보컬 제임스 라브리에. 혹자의 말로는, 내가 보기에도 그렇고, 드림씨어터에서 가장 떨어지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건 그가 못해서가 아니라 다른 멤버들이 너무나 지나치게 뛰어나기 때문. 하지만 어제는 절대로 다름 멤버들의 위대함에 밀리지 않았다. 정말 제대로된 앨범 그대로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5명의 드림씨어터 멤버 모두 훌륭했고 최고의 모습을 보여줬으며 매너도 좋았다. 앵콜하며, 이런저런 묘기하며, 관객을 향한 웃음과 마지막 인사까지 최고였다. 언제나 최고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실력, 결집, 묘기, 매너 모든 방면에서 최고임을 보여줬다. 만일 2년 뒤에 그들이 다시 온다면 난 또 그들을 찾아가리라. 그때 봐요 '꿈의 극장' 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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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마니아 2006-01-20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대단했나 보네? 공연도 갔다 오고 부럽구먼 ㅋ

마늘빵 2006-01-20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광의 도가니. 그보다 더 완벽할 순 없다! 아 아직도 흥분돼. 얘네 음반 죄다 꺼내놓고 듣고 있어. 아.

mannerist 2006-01-20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ㅜㅡ

시샘이 나서 쬐끔 딴지를 걸어보면... 키보디스트는 두 번 교체된게 맞을거유. 원 멤버 캐빈 무어-이양반이 계속 남아있는게 best라고 생각하지만...ㅜㅡ -가 가장 매니악한 앨범 "AWAKE"이후 견해 차이로 탈퇴하고 falling into infinity에서 아주 얌전한-_-데릭 셔니언으로 교체되었다가 지금의 아주 과격하고 공격적인 조던 루디스로 교체. 그러니깐 두 번이 맞을듯. 케빈 무어의 서정성을 잃은 건 쫌 아쉽지만 조던 루디스의 공격력 - METROPOLICE PT II 나 SIX DEGREES OF INNER TURBULANCE 에서 혀를 내두른 - 을 얻었으니 나름 괜찮은 선택인듯. ㅎㅎㅎ 좌우간 결론은 다시 부럽다는거 ㅜㅡ

마늘빵 2006-01-20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두번이군. 난 지금 키보디스트가 좋아. 존 페트루치에 버금가는 키보드 솔로. 오 대단했삼. 키보드를 가지고 기타 와우 이펙터 걸린 소리를 내는데 으 대단했지. 막 비비던데 그거 키보드 아닌거 가터. 두 대 놓고 했는데. 이 양반 아주 현란하고 공격적인 플레이를 하지. 드림씨어터의 초기 음반보다 난 뒤의 음반이 더 맘에 들더라고.

비로그인 2006-01-21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마디로 부럽습니다. 최근 저는 2004년 일본 공연 동영상을 보곤 하는데, 화질도 음질도 뭐라 탓할 부분이 없네요. 음향 기술, 라이브인데도 불구하고 소리는 앨범과도 같군요.
그래서 이번에 약간은 기대도 하고 있습니다만, 우리나라에 공연 실황을 제대로 표현할만한 음향 기술이 되는지도 의문이고, 그런 계약을 맺었는지도 의문이고..
아, 이번 공연엔 역시 Octavarium 앨범을 했겠지요? 그럼 Panic Attack도 있었을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부럽습니다. 기술이 부족하건 어쩌건 동영상이 좀 나왔으면 좋겠네요. 흑.

마늘빵 2006-01-21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루나래(?)님/ ^^ 부도칸 동영상 말씀하시는건가요? 아 전 그거 못봤어요. 그거 라이브 동영상이 상품으로 나왔나요? 훔. 머 프루나 이런데 가면 있다고 하는데, 음. 기왕 있으면 디비디로 사고파요. 내한공연은 흠. 녹음할 만한 사운드는 아니었어요. 스피커가 소리를 찢더라구요. 왼쪽 스피커 바로 앞에 있었는데 약간 거북. 이번 공연은 20주년 기념공연이라 85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앨범에 있는 곡들을 골라서 보여줬어요. 뒷배경 영상으로 년도 숫자와 앨범 표지가 번갈아 비춰지면서 한곡씩 뽑아서 보여줬죠. 담에 오면 또 갈거에요. 정말 최고였어요.
 
사랑한다, 더 많이 사랑한다
최종길 지음 / 밝은세상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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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제 어머니께서 쇼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오랫만의 장면이었다. 집안 경제사정이 어려워진 이후 어머니는 집에서 살림을 하시지 않고 일을 나가기 시작하셨다. 한참 몇년이 흘렀나 싶다. 그리고 지금은 잠깐 쉬시고 계시다. 어머니는 나 어릴적부터 책을 많이 보셨다.  특별히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으시지도 않았지만 책만은 꾸준히 읽으셨다. 책이라고 해봐야 소설이나 에세이가 전부이지만. 어린시절 내가 본 책은 어머니의 영향이 크다. <한명회> <동의보감> <상도> <태백산맥> 등 역사소설을 좋아하신다. 그것도 다 한권짜리도 아니고 긴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들을.

  그제 읽고 계셨던 책은 지금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로 이 책이다. <사랑한다, 더 많이 사랑한다> 어머니께서 보면서 눈물을 훔치시는 걸 보고서 무슨 책이야, 하고 물었고, 못보던 작가네, 하고 말했다. 작가가 아니라 하셨다. 실제 이야기인데 한 남편이 병든 아내를 간호하는 이야기라고 하셨다. 아 그렇구나. 그리고는 어제 어머니가 다 읽으신 뒤 나도 이어 읽기 시작했다. 읽으며 몇번이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정말 이런 사랑이 있을까 싶다. 요즘 같은 세상에. 소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사연들. 눈물 쥐어짜는 슬픈 멜로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장면들. 그러나 실화였다.

   지은이. 최종길. 그는 천안의 도배쟁이였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입시에 낙방한 뒤 장판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한 여자를 만났고, 그 여자에게 채였고, 아파했으며, 두번째 여자를 만났고, 그녀의 배경과 모습이 자신과 많이 닮아있는 여자라는걸 느꼈다. 그리고 존경했다. 또 사랑했다.

  아내는 본래 몸이 좋지 않았다. 고혈압이 있었고, 그녀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는데, 어머니가 뇌출혈로 돌아가셨다 한다. 집안 내력이었는지 아내 역시 혈압 때문에 위험 고비를 몇번 넘기기도 했다. 임신을 하고 첫째 아이를 조산했고, 둘째 아이를 가졌을 때, 어머니는 반대했다. 몸 약한 며느리 고생하는거 못본다고. 남편도 반대했다. 허나 본인이 극구 낳겠다 하여 허락했고, 임산부의 몸에 본래 몸이 약한 그녀는 어느날 쓰러졌다. 뇌출혈이란다. 그리고는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장장 8개월에 걸쳐 집안의 모든 재산이 그녀의 병원비로 나가고, 빚까지 졌다. 하지만 최종길 씨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되든 안되든 단 1%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아내를 위해 모든 것을 해주고 싶었다. 정말 그런 사랑이 있을까 싶다. 식물인간이 되어 눈도 못뜬 채 누워있는 아내를 한 시도 쉬지 않고 간호했다. 그녀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사방팔방 다 뛰어다니며 돈을 구했다. 사람이 참 좋았는지 그의 주변엔 모두 착한 사람들 뿐인지라 그는 어렵게 어렵게 돈을 구할 수 있었다. 나의 어머니, 누이, 매형, 처남 누구 하나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아파트를 담보로 돈을 빌리고, 노후보장을 위해 들던 보험을 깨는 등 정말 그의 주변사람들은 그를 위해, 그의 아내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내주었다. 병원에서 다시 만난, 그녀. 처음 만난 여인이고 사랑했지만 나를 찼던 여인. 그녀의 아들은 백혈병으로 죽었다. 남편과 이혼하고 받은 위자료 중 일부를, 한 마디 말도 없이 그를 위해 내놓고 갔다.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준 그를 위해서 준거라며.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또 훔치고, 몇번을 그랬는지 모른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까지. 그리고 다 덮은 뒤, 난 한동안 책 겉표지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대단한 사람이고 존경스러운 사람이고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다. 순식간의 나의 인생, 내 주변 사람들의 인생이, 그녀로 인해, 뒤집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로지 아내를 치료하기 위해, 아내를 조금이라도 낫게 하기 위해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 이것이 사랑이구나, 싶다. 정말 진심으로 사랑하면 그렇게 되는구나.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히 있는 사람이고, 행복할 자격 또한 충분히 있는 사람이다. 그도, 그의 아내도. 책의 마지막 장은 전자칩으로 식물인간을 살려놓은 대만 어떤 의사에게 찾아가는 것으로 끝났다. 하지만 책은 끝났으나 그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며 읽는 동안 티비를 통해 방영됐다는 그의 이야기를 모르는 나는 내심 기대했다. 해피엔딩이기를. 하지만, 해피엔딩은 나의 기대에 불과했다. 그는 또다시 유명한 의사를 찾아 처음에는 천안에서 서울로, 이제는 한국에서 대만으로 간다. 또 엄청난 비용이 들 것이다. 그리고 그의 아이도, 그의 어머니도, 그의 누나와 매형도, 모두 고생길에 오를 것이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다. 아내를 살려내겠다는 희망을.

  사실 인간의 감정만큼 쉽게 변질되는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결혼은 세상에서 가장 변하기 쉬운 것을 두고 영원을 약속하는 행위인 것이다. 사람의 감정에 유통기한을 표시하는 일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죽을 때까지'라는 유통기한을, 그래서 일단 한번 결혼하면 실제 내용물이 싱싱하든 변질됐든 무조건 죽을 때까지 함께 가야한다. 아는 사람들을 전부 불러놓고, 그들 앞에서 그렇게 약속했기 때문이다.(P36)

  때로는 나도 그게 사랑인지 연민인지 책임감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우리는 부부니까,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 하기로 약속했으니까, 좋든 싫든 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해버리면 그뿐이다. 결혼을 하는 순간 사랑은 일생을 같이한다는 약속이 되는 것이고, 일생을 같이한다는 건 진 날과 마른 날을 가리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P283)

  결혼식에서 주례사는 그렇게 말한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때까지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까? 네. 네. 남녀 모두 네 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안다. 그 자리에서 아니오 라는 대답은 있을 수 없다는 걸. 그리고 그 순간 진심이었으나 살아가면서 잊고 지낸다는 것. 그래서 때로 싸우고 심한 경우 이혼까지 간다는 것. 처음 너무나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그 끝은 아무도 보장하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까, 라는 질문에, 네, 라는 대답은 형식적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종길 씨는 그녀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죽을 때까지 함께 하겠다는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그녀 곁을 지키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두 사람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어느 돈 많은 사람이 후원이라도 자처해서 도와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나는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녀가 아파서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있을 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자신없다. 하지만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죽을 때까지 함께 하는 사람이고 싶다...

 그는 이 책을 쓰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티비에 방영될 때도 그는 거절했었다. 자신의 아내와 가족을 팔아가며 돈을 받고 싶지는 않다고. 그는 마지막 자존심을 내어가며 티비촬영에 협조했고, 결국 그 이야기를 담은 책까지 냈나보다. 이 책 어디에도 그가 책을 낸 동기에 대한 언급은 없다. 하지만 그는 책을 내면서 힘들었을 것이다. 책으로 벌어들이는 인세가 얼마나 되겠느냐.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팔면서 아내를 위해, 병들어 누워있는 아내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그의 사랑에 축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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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1-19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침반님 어머니도 많이 편찮으셨군요. 지금은 괜찮으시죠? 아픈 사람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는 것만큼 더 좋은 치료약이 없는거 같아요. 지금도 세상 어느 구석에서 아픔을 겪으며 버둥치는 사람들이 있겠죠? 잘 보이지 않는 어느 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