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 더 많이 사랑한다
최종길 지음 / 밝은세상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그제 어머니께서 쇼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오랫만의 장면이었다. 집안 경제사정이 어려워진 이후 어머니는 집에서 살림을 하시지 않고 일을 나가기 시작하셨다. 한참 몇년이 흘렀나 싶다. 그리고 지금은 잠깐 쉬시고 계시다. 어머니는 나 어릴적부터 책을 많이 보셨다.  특별히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으시지도 않았지만 책만은 꾸준히 읽으셨다. 책이라고 해봐야 소설이나 에세이가 전부이지만. 어린시절 내가 본 책은 어머니의 영향이 크다. <한명회> <동의보감> <상도> <태백산맥> 등 역사소설을 좋아하신다. 그것도 다 한권짜리도 아니고 긴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들을.

  그제 읽고 계셨던 책은 지금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로 이 책이다. <사랑한다, 더 많이 사랑한다> 어머니께서 보면서 눈물을 훔치시는 걸 보고서 무슨 책이야, 하고 물었고, 못보던 작가네, 하고 말했다. 작가가 아니라 하셨다. 실제 이야기인데 한 남편이 병든 아내를 간호하는 이야기라고 하셨다. 아 그렇구나. 그리고는 어제 어머니가 다 읽으신 뒤 나도 이어 읽기 시작했다. 읽으며 몇번이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정말 이런 사랑이 있을까 싶다. 요즘 같은 세상에. 소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그런 사연들. 눈물 쥐어짜는 슬픈 멜로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장면들. 그러나 실화였다.

   지은이. 최종길. 그는 천안의 도배쟁이였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입시에 낙방한 뒤 장판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한 여자를 만났고, 그 여자에게 채였고, 아파했으며, 두번째 여자를 만났고, 그녀의 배경과 모습이 자신과 많이 닮아있는 여자라는걸 느꼈다. 그리고 존경했다. 또 사랑했다.

  아내는 본래 몸이 좋지 않았다. 고혈압이 있었고, 그녀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는데, 어머니가 뇌출혈로 돌아가셨다 한다. 집안 내력이었는지 아내 역시 혈압 때문에 위험 고비를 몇번 넘기기도 했다. 임신을 하고 첫째 아이를 조산했고, 둘째 아이를 가졌을 때, 어머니는 반대했다. 몸 약한 며느리 고생하는거 못본다고. 남편도 반대했다. 허나 본인이 극구 낳겠다 하여 허락했고, 임산부의 몸에 본래 몸이 약한 그녀는 어느날 쓰러졌다. 뇌출혈이란다. 그리고는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장장 8개월에 걸쳐 집안의 모든 재산이 그녀의 병원비로 나가고, 빚까지 졌다. 하지만 최종길 씨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되든 안되든 단 1%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아내를 위해 모든 것을 해주고 싶었다. 정말 그런 사랑이 있을까 싶다. 식물인간이 되어 눈도 못뜬 채 누워있는 아내를 한 시도 쉬지 않고 간호했다. 그녀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사방팔방 다 뛰어다니며 돈을 구했다. 사람이 참 좋았는지 그의 주변엔 모두 착한 사람들 뿐인지라 그는 어렵게 어렵게 돈을 구할 수 있었다. 나의 어머니, 누이, 매형, 처남 누구 하나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아파트를 담보로 돈을 빌리고, 노후보장을 위해 들던 보험을 깨는 등 정말 그의 주변사람들은 그를 위해, 그의 아내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내주었다. 병원에서 다시 만난, 그녀. 처음 만난 여인이고 사랑했지만 나를 찼던 여인. 그녀의 아들은 백혈병으로 죽었다. 남편과 이혼하고 받은 위자료 중 일부를, 한 마디 말도 없이 그를 위해 내놓고 갔다.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준 그를 위해서 준거라며.

   흐르는 눈물을 훔치고, 또 훔치고, 몇번을 그랬는지 모른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까지. 그리고 다 덮은 뒤, 난 한동안 책 겉표지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대단한 사람이고 존경스러운 사람이고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다. 순식간의 나의 인생, 내 주변 사람들의 인생이, 그녀로 인해, 뒤집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로지 아내를 치료하기 위해, 아내를 조금이라도 낫게 하기 위해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 이것이 사랑이구나, 싶다. 정말 진심으로 사랑하면 그렇게 되는구나.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히 있는 사람이고, 행복할 자격 또한 충분히 있는 사람이다. 그도, 그의 아내도. 책의 마지막 장은 전자칩으로 식물인간을 살려놓은 대만 어떤 의사에게 찾아가는 것으로 끝났다. 하지만 책은 끝났으나 그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며 읽는 동안 티비를 통해 방영됐다는 그의 이야기를 모르는 나는 내심 기대했다. 해피엔딩이기를. 하지만, 해피엔딩은 나의 기대에 불과했다. 그는 또다시 유명한 의사를 찾아 처음에는 천안에서 서울로, 이제는 한국에서 대만으로 간다. 또 엄청난 비용이 들 것이다. 그리고 그의 아이도, 그의 어머니도, 그의 누나와 매형도, 모두 고생길에 오를 것이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다. 아내를 살려내겠다는 희망을.

  사실 인간의 감정만큼 쉽게 변질되는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결혼은 세상에서 가장 변하기 쉬운 것을 두고 영원을 약속하는 행위인 것이다. 사람의 감정에 유통기한을 표시하는 일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죽을 때까지'라는 유통기한을, 그래서 일단 한번 결혼하면 실제 내용물이 싱싱하든 변질됐든 무조건 죽을 때까지 함께 가야한다. 아는 사람들을 전부 불러놓고, 그들 앞에서 그렇게 약속했기 때문이다.(P36)

  때로는 나도 그게 사랑인지 연민인지 책임감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우리는 부부니까,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 하기로 약속했으니까, 좋든 싫든 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해버리면 그뿐이다. 결혼을 하는 순간 사랑은 일생을 같이한다는 약속이 되는 것이고, 일생을 같이한다는 건 진 날과 마른 날을 가리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P283)

  결혼식에서 주례사는 그렇게 말한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때까지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까? 네. 네. 남녀 모두 네 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안다. 그 자리에서 아니오 라는 대답은 있을 수 없다는 걸. 그리고 그 순간 진심이었으나 살아가면서 잊고 지낸다는 것. 그래서 때로 싸우고 심한 경우 이혼까지 간다는 것. 처음 너무나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그 끝은 아무도 보장하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까, 라는 질문에, 네, 라는 대답은 형식적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종길 씨는 그녀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죽을 때까지 함께 하겠다는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그녀 곁을 지키고 있다. 지금 이 순간 두 사람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어느 돈 많은 사람이 후원이라도 자처해서 도와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나는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녀가 아파서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있을 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자신없다. 하지만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죽을 때까지 함께 하는 사람이고 싶다...

 그는 이 책을 쓰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티비에 방영될 때도 그는 거절했었다. 자신의 아내와 가족을 팔아가며 돈을 받고 싶지는 않다고. 그는 마지막 자존심을 내어가며 티비촬영에 협조했고, 결국 그 이야기를 담은 책까지 냈나보다. 이 책 어디에도 그가 책을 낸 동기에 대한 언급은 없다. 하지만 그는 책을 내면서 힘들었을 것이다. 책으로 벌어들이는 인세가 얼마나 되겠느냐.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팔면서 아내를 위해, 병들어 누워있는 아내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그의 사랑에 축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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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1-19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침반님 어머니도 많이 편찮으셨군요. 지금은 괜찮으시죠? 아픈 사람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는 것만큼 더 좋은 치료약이 없는거 같아요. 지금도 세상 어느 구석에서 아픔을 겪으며 버둥치는 사람들이 있겠죠? 잘 보이지 않는 어느 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