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반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2년 7월
구판절판


"배고픔의 경우에는 요구의 표시가 점진적으로 나타나며, 시간의 경우에 따라서 그 요구의 흐름을 인식할 수 있다."-24쪽

"전화는 전화를 하지 않는 연인의 악마 같은 손에 들어가면 고물 도구가 된다. 이야기는 전화를 거는 사람의 손에 놓여있다. 전화를 받아야 하는 사람은 그 이야기의 전개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다. 따라가기만 할 뿐이다. 전화가 걸려왔을 때 대답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전화는 나를 수동적인 역할로 묶어놓았다."-30쪽

"지하철에서 어떤 여자의 다리가 지금처럼 내 다리를 스쳤다면 나는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그러나 클로이의 경우 나는 의미가 자체 내에 담겨 있지 않고, 문맥에 의해서, 독자에 의해서 부여될 수 밖에 없는 행동을 이해하려고 했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35쪽

"구애하는 위치 때문에 나는 내 마음에 드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묻지 않고 그녀 마음에 드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묻게 되었다. 내가 보기에 내 타이가 어떤가? 하고 묻지 않고 그녀가 내 타이를 어떻게 볼까? 하고 묻게 되었다. 나는 사랑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상상하고 그 눈을 통하여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나는 누구인가? 가 아니라 나는 그녀에게 누구인가? 였다."-44쪽

"진정한 자아라는 것은 같이 있는 사람에 관계없이 안정된 동일성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을 전제한다."-45쪽

"구애란 연기의 한 형식으로, 자연스러운 행동에서 청중에 의하여 결정되는 행동으로 옮겨가게 된다. 배우가 관객의 기대를 어느 정도 파악해야 하듯이, 구애하는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이 무슨 말을 듣고 싶어할지 알아야 한다. 따라서 사랑받기 위한 거짓말을 결정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주장이 있다면, 그것은 구애하는 배우는 자신의 관객이 무엇에 감동을 받을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연기를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원래대로의 행동과 비교할 때 그것이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54쪽

"생각만큼 섹스와 대립하는 것은 없다. 섹스는 육체의 산물이다. 무분별하며, 디오니소스적이며, 직접적이며, 이성의 굴레로부터의 해방이며, 희열을 동반한 육체적 욕망의 해소이다. 이와 비교하면 생각은 병, 질서를 강제하려는 병적 충동, 흐름에 굴복하지 못하는 침울한 정신의 상징과 다름없어 보인다. 내가 섹스를 하는 동안에 생각을 했다는 것은 성적 교류의 근본 법칙을 어긴 것이며, 타락 전의 생각없는 영역조차 제대로 보존하지 못하는 죄를 저지른 것이다."-58쪽

"정신이 전통적으로 비난을 받아왔다면, 그 이유는 정신이 분석불가능한 것으로 여기지는 원인들에 대해서도 통제력을 포기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62쪽

"인간은 둘로 나누어져 행동을 하는 동시에 뒤로 물러서서 자신이 행동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분열로부터 반성이 나타난다. 그러나 보는 자와 보이는 자 사이의 분열을 다시 통합할 수 없다면, 어떤 활동에 참여하면서 자신이 그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수가 없다면, 그것은 자의식 과잉이라는 병이 된다."-63쪽

"사랑을 바라지만, 자신의 진정한 자아가 드러나면 상대가 실망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이 마르크스주의의 고전적인 사고방식이다."-76쪽

"당신이 지금 나를 사랑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내 전체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내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있다면, 언제 당신이 내 전체를 보게 될까 초조해하며 당신의 사랑에 익숙해져가는 것은 바보짓이다."-76쪽

"알베르 카뮈는 우리가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그 사람이 밖에서 보기에는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모두'아주 완전해 보이고, 주관적으로 자신을 보면 몹시 분산되어 있고 혼란스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81쪽

"가장 사랑하기 쉬운 사람은 우리가 얼굴이나 목소리에서 읽을 수 있는 것 외에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어쩌면 맞을지도 모르겠다."-90쪽

"차이를 농담으로 바꿀 수가 없다는 것은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표시이다. 유머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일어나는 짜증의 벽들을 따라서 늘어서 있었다. 농담 뒤에는 차이에 대한, 심지어 실망에 대한 경고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긴장이 완화된 차이였고, 따라서 상대를 학살할 필요 없이 벽을 넘어갈 수 있었다."-110쪽

"플라톤은 요소들이 서로 상응할 때에만 대상이 적절한 균형을 통해서 역동적 고요와 자기 완결성을 지닐 수 있다고 했는데, 바로 그것이 그녀에게는 빠져 있는 셈이었다. "아름다움과 탁월함을 구성하는 것은 언제나 치수와 비례라는 특질들"이라는 플라톤의 말이 맞다면, 클로이의 얼굴은 아름다움과 탁월함을 결여한 셈이었다."-113쪽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제대로 된 정체성을 소유할 능력을 상실한다. 사랑 안에서 자아가 지속적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다."-161쪽

"사랑의 경계에는 두 가지 해체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너무 많은 시선 밑에서 살아감으로 해서 생기는 해체이며, 또 하나는 너무 적은 시선을 받으며 살아감으로 해서 생기는 해체이다."-163쪽

"사랑이 거울처럼 우리의 모습을 되돌려주는 것이라면, 고독은 거울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다. 그러면 상상력은 우리의 얼굴에 있는 베인 상처나 점을 자기 마음대로 꾸며내게 된다. 거울의 폐해가 무엇이든, 적어도 우리에게 우리 자신에 대한 느낌을 되돌려준다는 점, 우리의 가없는 상상력에 대응할 수 있는 분명한 윤곽을 부여한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165쪽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철학자들은 정체성을 보장받는 다는 것이다.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어쩌면 그것은 사람의 경향을 둘러싸고 형성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다. 내가 누구냐 하는 것은 많은 부분 내가 무엇을 원하느냐로 구성된다."-189쪽

"나는 클로이를 사랑했고, '그리고 나서' 클로이는 떠난 것이 아니다. 내가 클로이를 사랑'했기 때문에' 클로이가 나를 떠난 것이다."-252쪽

"죽음이란 그 의미를 문자 그대로 따르는 행동이라서 나에게 상대가 그 비유를 읽어내는 것을 볼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러니였다."-259쪽

"자살의 쾌락은 유기체를 죽이는 끔찍한 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죽음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있었다. 따라서 나 자신을 죽이는 것은 죽게 되면 나의 소멸이라는 멜로드라마로부터 어떤 기쁨도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행동일 터였다."-2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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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14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늘 신문에 경제부총리 후보로 한덕수씨가 예상된다는 기사가 일면을 장식했다. 그리고는 다른 면에 이에 대한 또다른 기사가 올라왔다. 경제부총리를 뽑는 기준이 뭐냐고. 그 기자 曰 4명의 후보를 올려놓고는 청와대에서 이들을 언론에 흘려서 여론의 검증을 받게 한 뒤에 뒷탈이 없는 한덕수씨로 내정했다는 말이었다. 즉 다른 나머지 세 명은 '아들병역기피의혹' '외환위기책임' '구시대이미지'로 탈락이라는 것이다.

 근데 참 웃기는 사실은-난 한덕수씨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를 옹호할 의사도 없지만- 언제는 도덕성 때문에 안되고, 언제는 도덕성만 가지고 있어서 안된다는 것이다. 아니 그럼 언론의 뜻은 도대체 뭔지 궁금하다. 물론 뛰어난 도덕성과 뛰어난 능력을 동시에 갖춘 인물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둘 중 어느 한 가지를 우선시 해야 할 텐데, 얼마전에 사퇴한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그의 도덕성 때문에 사퇴했고, 그래서 도덕성을 기준으로 새로 임명하려고 하는데 이제는 왜 도덕성만 보느냐며 따지고 든다. 물론 한덕수씨가 능력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난 그를 모르니까. 내가 청와대라고 해도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할지 모를 판이다. 이리하면 저리가라 하고 저리하면 이리오라하고. 언론이 때리는대로 움직여줘야한다.

  지금까지의 내 요지는 언론의 때리기에 대한 비판이었고, 다음의 나의 발언들이 위의 나의 발언과 대립하지 않음을 말하고 싶다.

  난 한덕수씨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을 기용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저런 이유 때문이라면. 물론 그들이 누구고 어떤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는 난 모른다. 하지만 위와 같은 각각의 이유들 때문에 탈락시켰다면 온당한 처사라 생각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한덕수씨를 포함해서 네 명 다 괜찮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난 그들이 누군지는 모른다.  다만 위와 같은 이유로 탈락이라기에 그렇게 말하는 바다.

 나는 어떤 사람이 높은 위치에 올랐을 때는 그에 상당하는 기본적인 도덕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치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더욱 도덕적 기준은 중요시 되어야 한다. 플라톤의 <국가>를 본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철인정치를 내세우는데, 이때의 철인이란 哲人으로 결국 철학자를 가리킨다. 하지만 우리가 직업상의 관점에서 보는 철학자가 아니라 사고가 깊으며 넓고 도덕적으로 성인의 경지에 올랐으며 능력이 뛰어난 이를 말한다. 철인은 능력도 능력이짐나 대단한 도덕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플라톤의 철인정치는 지극히 이상적이라 하여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이상향은 우리가 완전하다고 생각하는데서 비롯되기 때문에 우리가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바라면 그것이 오르기 힘든 지경이라 할지라도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정치에 있어서 조금 더 유연성을 발휘하면 될 뿐이다.

 위 세 명의 인물들의 탈락사유는 그다지 흠잡을 만한 이유는 아니라고 본다. 사실 병역문제에 있어서는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우리들인데 고위층 관료들의 자식들의 병역문제를 끌고가다보면 남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한다. 외환위기책임도 그에게만 지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구시대 이미지라는 단지 이미지상의 이유로 인재후보에서 탈락시킨다는 것도 도덕적 잣대에 비추어볼 만한 성격이 아니라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다른 도덕적인 흠이 있지 않는 한 각각의 이유로 후보에서 탈락시킨 것은 부당하다 생각하며 정부는 언론의 때리기에 왔다갔다 하지말고 소신껏 적임자를 찾아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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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주변 사람-꼭 친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알고 있던 사람 중 한 사람-이 죽었다. 그리고 소식을 듣고는 죽은 이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눈다. 어떤 친했던 이는 울기도 할테고, 그 죽음이 온전치 못한 것이라면 어떤 이는 분노를 할테고, 어떤 이는 아무렇지도 않을테고, 어떤 이는 관심밖의 이야기라 치부할지도 모른다.

 내게 주변인이 죽었다는 것이 사실로서 현실에 와닿은 것은 할아버지의 죽음이었고, 할머니의 죽음이었고, 그리고 동아리 후배놈의 죽음이었다. 할아버지의 죽음은 나이듦에 의한 자연스러운 수명의 다함에 의한 죽음이었기 때문에, 할머니의 죽음 역시 그러했기 때문에 흔히 말하듯 잘  가셨다 라는 생각을 했다. 할아버지의 경우 중풍으로 꽤 오래 앓아누워있긴 하셨지만. 그리고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기 얼마전 할아버지의 누워계신 모습을 직접 보기도 했지만. 어쨌든 두 분 다 온전히 가셨다.

 세번째의 죽음. 나의 동아리 후배의 죽음은 비정상적이었다. 그 놈은 나보다 젊으니 지금 팽팽하게 살아있는 나보다 늙어죽었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바고, 그렇다면 그 놈에게 무슨 지병이 있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놈은 지병은커녕 힘이 넘쳐서 공연장에 구경가서도 그냥 보는 축이 아니라 맨 앞에서 헤드뱅잉하고 이리저리 부딪히기도 하며 안경도 몇차례 깨먹고 온갖 '지랄'을 해대는 애였다. 이놈은 내게 드럼을 배우던 놈이었다. 그러던 애가 나보다 먼저 군대에 갔고 군대에 간지 100일이 채 안된 어느날 동아리 다른  후배에게 그놈의 죽음을 접했다. 자.살.

 이놈은 자살할 놈이 아니다. 그 밝은 아이가 자살이라니. 그런데 상황조차 미심쩍었다. 자살이라기엔. 해안경계부대로 야간에 다른 병사들과 함께 순찰을 나갔는데 다음 날 아침 바다에 떠있더라? 말이 안된다. 그런데 결국 그 아이는 자살로 판정났다. 아버지, 어머니 모두 부대앞에서 몇날 며칠을 시위하시고 장난도 아니었겠지. 그치만 나를 비롯한 우리 동아리 애들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진실규명을 위한 서명운동 정도가 고작. 자살 한 이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한창 인터넷 칼럼니스트 생활할 무렵이었고, 나는 그의 죽음의 부당성을 알리는 글을 써서 여기저기 보냈다. 그걸 본 아버지 왈. 그러지 마라. 국가에서 잡아간다. 아버지는 경찰이었고 보안요원이었다. 국가보안을 책임지는. 훗. 난 웃음이 나왔다. 그럼 아버지가 잡아가면 되겠네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분노가  솟았다. 그리고 말했다.

 만약 내가 그렇게 죽었는데 내 친구들, 내 선배, 내 후배들이 모두 조용히 있는다면 마음이 편하겠느냐고. 똑같이 생각을 해보라고. 그 부모님들이 진실규명하는데 죽음 놈의 선배, 후배라는 이들이 침묵하고 있으면 어떻겠느냐고. 그러면서 나는 속으로 울었다.

 그리고 난 한 게 없다. 그놈의 부모님을 뵙지도 않았고, 시위에 동참하지도 않았고, 고작 언론에 글 쓴게 다였다. 그리고 세월이 한참 흘렀고 그는 잊혀졌다.

 

 

 어제 엄마, 동생과 택시를 타고 백화점을 가고 있었다. 짧은거리라 세명이 버스를 타나 택시를 타나 그게 그거라고 판단했던 것. 어쨌든 그건 중요한게 아니고. 택시안의 대화가 중요하다.

 동생이 자기 동기 하나가 군대에서 죽었댄다. 자살이고(군대에서 죽으면 죄다 자살이다) 국가유공자로 판정되었다는 이야기. 어머니는 국가유공자라도 된게 어디냐며 그러면 그애가 결혼을 했으면 그 가족들이 보상을 받을텐데 라고 말하며, 동생과 어머니의 대화는 결국 나는 모를 그 아이의 죽음의 대가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갔다.

 죽은 이를 놓고, 그것도 자기 동기라면서, 그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나 분노가 아니라 그 대가에 대한 이야기라니. 갑자기 싫어졌다. 동생이야 원래 싫어했으니 더 실망할 것도 없다치고, 엄마도 싫어졌다. 그게 가족을 꾸린 부모님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일까. 결국 돈. 전에도 엄마 친구의 남편이 돌아가셨는데 죽기 얼마전 보험을 들어놔서 집 한 채를 살 돈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 잘됐다 라는 말을 하셨다. 그때도 난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싫었다. 죽은 이를 놓고 돈이라니. 내가 죽어도 그럴까 라는 생각과 함께. 내가 죽으면 그러진 않을텐데 왜 남의 죽음에 대해선 그렇게 생각하는걸까.

 글쎄다. 내가 아직 딸린 가족이 없어서 그런지, 세상살아가는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참 싫다. 나의 죽음에 대해 그와 같은 이야기들이 나오지 않도록 나는 오래오래 살아야겠다는 교훈을 얻어야하는걸까? 훗... 웃음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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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5-03-14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읽으면서 밀리언달러베이비가 생각났어요. 가족에 대한 환상을 깨는 그 장면 보는 동안 마음속의 뭔가가 부서지는 것 같았어요.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 조선 과거시험의 마지막 관문
김태완 엮음 / 소나무 / 2004년 8월
구판절판


"다산 정약용이 과거의 폐단과 모순을 심각하게 느끼고, 추천을 통한 인재선발 방식을 대안으로 제시했을 때, 프랑스 계몽주의자들은 오히려 과거야말로 철인이 다스리는 이상국가의 인재선발 방식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이다."-12쪽

"세상에는 생기기 쉬운 폐단과 구제하기 어려운 폐단이 있습니다. 생기기 쉬운 폐단은 사물의 폐단이고, 구제하기 어려운 폐단은 정신의 폐단입니다. 구제하기 어려운 것이 먼저 나타나고, 생기기 쉬운 것은 뒤에 나타납니다. 정신의 폐단은 원인이고, 사물의 폐단은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나무가 병이 들면 좀이 쓸고 젓갈에 악취가 나면 구더기가 들끓는 것처럼, 술의 폐해가 어찌 정신의 폐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습니까?"(김구, 1488-1534, 성종 19-중종 29)-67쪽

"사회의 모순은 가난이 문제가 아니라, 분배의 불균형이 더 큰 문제이다. 빈부의 차이가 심할수록 사회는 불안정하고, 변화와 개혁을 부르짖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결국 정치적 안정을 이루는 길은 극심한 빈부차이와 같은 사회경제적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이다."(박광전, 1526-1597, 중종 21-선조 30)-223쪽

"문화란 예의와 절도의 결인데, 곧 '문리가 상세하고 분명하다'라고 할 때의 문화입니다. 공경함이란 '경건해서 안을 곧게 한다'는 뜻의 공경함입니다. 먼저 경건함으로써 안을 곧게 하고, 그 다음으로 문화로 바깥을 분명하게 드러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인재를 얻는 근본이 여기서 갖추어질 것입니다."(김효원, 1532-1590, 중종 27-선조 23)-242쪽

"당쟁이란 정치이념이나 정치적 지향점이 서로 다른 당파가 정치이념을 두고 투쟁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당쟁 그 자체는 정치의 후진성을 나타내는 현상이거나 사회분열을 초래하는 원인이라 할 수는 없다. 오히려 당파 사이의 당쟁이 없는 전제나 독재체제가 제도적 측면에서는 더 후진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조선시대의 붕당을 근대적 정당에 곧바로 연결시킬 수는 없다. 근대적 의미의 정당이 정치적 이상의 실현을 위해 같은 정견을 가진 사람끼리, 정치권력에 참여할 목적으로 결성한 정치 단체라는 점에서는 붕당과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정당은 국민 대다수의 의사를 반영하는 기구라는 점에서 대의 정치의 기반이 되는 조직이다.
이에 반해 붕당은 근본적으로 관료집단의 이해관계와 이념을 중심으로 결합된 조직이다."-250쪽

"재능은 평상시라면 쓸 수 있지만, 비상시에는 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덕은 비상시에나 평상시에나 일관되게 쓸 수 있습니다. 그러니 과연 비상시에 쓸 수 없는 재능으로 비상사태를 만나서, 정도로 대응하거나 이치에 어긋나지 않게 할 수 있겠습니까?"(김의정, 1495-1548, 연산군 1- 명종 3)-266쪽

"원래 교육이란 글자에는 가르치고 길러서 선으로 이끌어간다는 뜻이 담겨 있다. <설문해자>에 따르면, 敎는 위에서 베푸는 것을 아래에서 본받는 것이고, 育은 자식을 길러서 착하게 만드는 것이라 했다. 위에서 베푸는 것이란 어른이 모범되는 것을 어린이에게 전달하는 것이고, 아래에서 본받는 것이란 어린이가 어른이 전해준 모범을 몸에 익히는 것이다."-319쪽

"교육은 국가가 필요한 인력을 공급하는 수단만이 아니다. 교육의 고유한 기능 가운데 하나는 어린이가 한 성인으로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균형 잡힌 세계관과 건전한 의식을 갖도록 이끌어가는 것이다."-3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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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32
장 자크 루소 지음, 박호성 옮김 / 책세상 / 2003년 9월
구판절판


"교육은 자연이나 인간 혹은 사물을 통해 이뤄진다. 우리의 능력과 신체 조직을 내적으로 성장시키는 것은 자연의 교육이다. 이러한 성장을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은 인간의 교육이다. 이러한 성장을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은 인간의 교육이다. 우리에게 자극을 주는 물체들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얻는 것은 사물의 교육이다." -24쪽

"자연의 길에서 머무르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을 살펴보자.
첫번째 원칙. 아이는 힘이 남아돌기는커녕 자연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하기에도 힘이 부족하다. 따라서 아이가 자연에게 받은 모든 힘을 사용하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그래도 아이는 그 힘을 남용할 줄 모른다.
두번째 원칙. 육체적으로 필요한 것 중 아이에게 부족한 것은 지성이든 힘이든 간에 보충해주어야 한다.
세번째 원칙. 아이를 도와줄 때는 실제로 필요한 일만 한정해서 도와주어야 하고, 환상이나 이유 없는 욕망에 동조해서는 안된다. 환상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므로, 환상을 품게 만들지만 않으면 아이가 고통을 전혀 겪지 않기 때문이다.
네번째 원칙. 아이의 언어와 표정을 주의 깊게 연구해야 한다. 일체의 감정을 속일 줄 모르는 나이의 아이가 지닌 욕망 가운데 자연으로부터 직접 오는 것과 억측으로부터 오는 것을 구분하기 위해서이다."-96쪽

"사회는 인간에 의해서, 인간은 사회에 의해서 연구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와 도덕을 분리하여 고찰하려 드는 사람들은 둘 중 어느 하나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124쪽

각주
(옮긴이주) 토인비는 문명을 정신적 관점에서 정의한다. 그에 의하면, 문명은 인류가 모든 것을 포용하는 단일한 가족 구성원으로서 협조하면서 서로 공존할 수 있는 사회 상태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이다.-143쪽

각주
슈펭글러나 토인비는 문명을 역사의 단위 혹은 인격체로 보았으며, 각 문명의 등장, 성장, 퇴락, 붕괴의 규칙적인 양상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전례로 볼 때 서구 문명은 전성기를 벗어나 가까운 장래에 멸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시드니 폴라드, <진보란 무엇인가>, 이종구 옮김(한마당, 1983), 199쪽.-143쪽

각주 -칸트
"나는 지식만이 인간의 명예를 구성할 수 있다고 믿으며 아무 것도 모르는 일반인들을 경멸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루소는 이런 나의 잘못을 고쳐주었다. 이 맹목적인 편견이 사라지면서, 나는 인간의 본성을 존경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이러한 관점이 인간의 권리를 수립하려는 모든 사람에게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면 나 자신이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더 무용했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145쪽

각주
또한 드라테에 의하면, 루소에게 있어서는 도덕이 정치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그 자체가 도덕적 문제에 대한 해결이다.-1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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