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툭 떨구다 쏴 쏟아내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에 우와왕 지나가는 오토바이 소리에 유키구라모토의 피아노 콜렉션 음반을 올려놓고 오후를 보낸다. 이른 아침 핸드폰은 울려대고 일어나야 한다는 걸 알면서 부러 못들은 척 다시 눈을 감는다. 그리고 문자메세지가 온다. 확인하기 위해 열어둔 핸드폰 액정으로 작은 불빛이 어둠을 가른다. 그리고 잠결에 읽은 두 건의 메세지는 나를 행복으로 밀어넣는다. 이대로 느끼고 싶다. 세찬 빗소리와 작은 방안을 채우고 있는 어둠과 두 건의 메세지의 행복을, 느끼고 싶다.  기상시간이 어긋나기 시작하면 하루가 다 망가질 걸 알면서도 그러고 싶었다.  운동도 가지 아니하고, 밥도 먹지 아니하고, 행복을 간직한 채 잠에 빠졌다. 눈은 떴지만 여전히 난 빗소리에 취해있다. 많은 생각이 나를 스쳐간다.

  - 불현듯 행복은 찾아왔고, 나를 기쁘게 했으며, 삶의 의미를 새롭게 했고, 나에게 자극을 주었다. 이대로라면 더 이상 바랄 바가 없을 것 같았다. 어릴적 종이에 끄적이며 몇년도에는 뭘하고, 그 다음에는 뭘하고, 또 최종적으로는 뭘 하겠다는 그런 거대한 꿈 따위는 이제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여기를 직시하지 못한 채 거대한 야망만 꿈꿨던 나는 어느덧 현실과 적당히 타협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난 평범한 생활인으로 하루를 보내기를 거부한다.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무엇을 이루기 위해 하루를 살기보다 지금 여기를 즐기며 하루를 살고 싶다. 그럭저럭 나는 그렇게 살고 있는 듯 하다. 즐기다보면 어느덧 무언가가 되어있으리라.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지금의 나를 혹사시키고 싶진 않다. 현실에의 만족감은 삶을 나태하게 만들지만 또 한편에서는 나태함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나를 밀어낸다.

 - 나를 눌러오는 어떤 스트레스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또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친다. 하나의 개인이고 싶다. 하나의 인간이고 싶다. 누구의 자식, 누구의 아들이 아닌 하나의 개인이고 싶다. 하루 세끼 거를 정도의 못사는 집은 아니지만, 때마다 입을 옷이 없어 걱정하는 그런 집은 아니지만,  책사고 싶을 때 영화보고 싶을 때 책 못 사고 영화 못 보는 그런 집은 아니지만,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이 집은 나를 억눌러온다. 해가 갈수록 두 분의 이마엔 주름살이 하나씩 그어지고, '나는 장남'이라는 어릴적부터 벗어나고팠던 생각지도 않던 굴레가 나를 죄어온다. 모른 척 하기엔 내가 받은 것이 너무나 많고, 그것을 인식하기엔 나는 너무나 자유롭다.

  - 스물 여덟. 아무런 생각하지 않고, 아무런 고민없이 그저 오늘을 즐기고 싶다. 내가 원하고 내가 행복한 것을 따라 한걸음 한걸음 발을 옮기고 싶다. 무엇인가를 해야한다는, 그런 강박관념은, 가지지 않으련다. 나는 자유인이고 싶다. 좋아하는 책을 읽고, 좋아하는 공부를 하며,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함께하고 싶다.

  - 여전히 난 이상주의자인가. 삶의 현실로 돌아와보니 당장 종합시험과 논문과 남은 대학원 두 학기와 학자금 대출과 졸업 이후의 불안감과 적지 않은 나의 나이가 숨을 턱 멈추게 한다. 그러면, 또다른 한편에선 닥치면 다 하게 되어있어, 어떻게든 다 돼, 라고 나를 위로하거나 애써 현실을 외면하게 만든다. 그저 오늘을 즐기고픈 행복한 마음과 나보다 앞서 한 걸음 두 걸음 나아간 나의 친구들에게서 느껴지는 불안한 마음이 다툰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한다. 타협은 한번으로 족하다. 힘들 때마다 타협점을 찾다보면 결국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인이 될 것이다. 명절때마다 부모님께 어떤 선물을 드릴까, 애를 낳으면 어떻게 교육을 시킬까, 차는 언제사고, 내 집 마련은 언제할까, 아이가 크면 좀더 큰 집이 필요하지 않을까, 등등의 그런 숨막히는 고민들을 하고 싶지 않다. 그것이 현실이라고, 내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것이라고 누군가 지적해준다해도.  같이 가자. 오늘을 즐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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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이름은김삼순 2006-07-12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곳은 비가 오나요? 제가 있는곳은 어제 정말 많은 비를 뿌리고 오늘은 해가 쨍,,너무 덥답니다,,ㅠ 작은 일상에서 항상 행복을 느끼시길,,^^

전호인 2006-07-12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민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군여. 현실을 직시하실 필요가 있지 않을까여.
하지만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제약을 받는다면 살아가는 맛이 없겠져?
즐길 때 즐기고 일할 때 일하자!
여유있는 사람들의 행복한 고민이 아닐까 합니다.
고민한다고 해결된다면 누구나 고민할 것입니다.
털고 일어나는 것이 해결의 실마리일 듯 합니다.
ㅎㅎㅎ, 그냥 생각없이 주절거려 봤슴다.

Mephistopheles 2006-07-12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의 이번 페이퍼는 너무나 환몽적이고 자극적이라
많은 의심을 갖게 만듭니다.
뭘 드시고 쓴 페이퍼입니까..좀 나눠먹읍시다...!! =3=3=3=3=3

이리스 2006-07-13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농약같은 것은 먹지 말라고, 아프군!

마늘빵 2006-07-13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순님 / 오늘도 아침부터 오다말다 하네요. 운동 갈 땐 한방울 안떨어지다 돌아올 땐 쏴아아아.
전호인님 / ^^ 즐길 때 즐기고 일할 때 일하자, 에 동감입니다.
나침반님 / 아유. 무슨 책을 또 그렇게 지르셨어요. 나침반님이 부러워요. 그 두껍고 어려운 책들을 쉽게 우걱우걱 드시고. 제 나이를 적게 봤다면 너무 고마운걸요. 사람들이 제 나이보다 한두살 많게 봐서 그런 소리는 거의 못들어봤어요. 뭐 실제로 보시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행복하게 살아요.
메피스토님 / 하핫. 저 혼자 먹을거에요. =333
구두누나 / 요즘 과일을 많이 먹어서 그런가 -_-a

2006-07-13 17: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자림 2006-07-14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 가지 고민이 많으시군요. 우선 학위 따는 데 전력하시고 나중 일은 그 때 생각해 보심이 어떠하온지.. 사실 30대가 되면 거의 '돈'에 관심이 많이 가고 그만큼 재산도 조금씩 구축된답니다.^^
 

* 지난 일요일에 공연을 마쳤기에 더 이상 볼 수 없습니다.
그가 다시 무대에 오를 날이 언제인지는 나도 알 수 없습니다.


   "내 사랑을 말하기엔 하룻밤은 너무 짧습니다."
   "오! 스무살 난 아내는 어쩌면 그렇게도 애절하게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요?" 
  아내를 혼자 버려둔 채 이렇게 당신들 앞에 끌려와야 했던 오늘밤은
  정말이지 내 평생에 지울 수 없는 악몽이 될 것입니다.
  아! 아내가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밤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강신일의 진술> 

 

  대단한 공연이었다. 연극의 묘미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모노드라마의 매력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좋았다. 참으로 좋았다. 이런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종로, 대학로 길거리에 지나다니다 보면 공연 포스터 참으로 많이 붙어있다. 하지만 어떤 것이 좋은 공연인지 아닌지 구별하기란 까막눈인 나는 모른다. 영화를 많이 보면서 영화에 대한 취향과 나름의 안목이 생겼지만, 연극을 본 것은 내 인생 스물 여덟 해에 있어 딱 네 번. 한번은 대학 2학년즈음이었나. 당시 수강했던 한 교과의 교수님께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고 오너라 했고, 처음 연극을 접했을 때, 더군다나 그것이 <고도를 기다리며>였다는 것이 내게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무엇이든 처음이 중요하다. 첫 경험이 어떤가에 따라서 지속적인 관심을 갖게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결정된다. 그런 점에서 연극의 첫경험은 매우 탁월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연극은 영화보다 비싸다는 이유로, 항상 돈에 쪼들려 살던 나는 언제나 영화를 택했다.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쉽게 선택할 수 있기에는 연극보다는 영화였다. 솔로 시절이 길었던 내가 더군다나 오봇하게 누군가와 함께 연극을 보러가기란 어려웠다. (연극은 연인끼리 봐야한다는 편견을 버려. 그래 맞다. -_- )

  내 생에 경험한 몇 안되는 연극은 모두 감동을 선사해주었다. <강신일의 진술>은 처음 내가 연극을 접했던 <고도를 기다리며>와는 또다른 색다른 감동을 선사해준다. 난 이렇게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작품이 좋다. 책이든, 음악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연극이든, 어떤 형태로 전해지든 간에 뭔가를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은 언제나 환영이다. 하지만 생각거리를 던져준다고 하여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불친절하게 툭 던져놓고는 인사도 없이 가버리고, 어떤 것은 친절하게 메세지를 전달해주려 노력한다. 또 어떤 것은 나름의 줄거리를 가지고 진행하지만, 중간중간 대뇌피질에 찌릿찌릿 전기가 흐르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모두 좋다. <강신일의 진술>은 아무 것도 모른 채 봤기 때문에, 그저 이름과 제목과 포스만 알고 봤기에 더욱 좋았지 싶다. 함께 본 이가 내게 작품에 대한 아무런 언질도 하지 않은 것은, 그런 의도였다.

***

  연극은 매우 철학적이다. 또 매우 흥미롭다. 마치 소설을 한편을 읽은 것처럼. 또 스릴 넘친다. 찌릿한 지적 자극과 함께 짜릿한 섬뜩함을 느끼게도 해준다. 딱 내가 좋아하는 그런 작품이다. 적당히 지적이고, 적당히 흥미롭고, 적당히 짜릿한.

  환상과 실제. 철학에서 매우 흥미롭고 흔한 주제이면서 언제나 많은 생각거리를 선해주는 주제이다. 내가 어떻게 세계를 인식하는가, 사물을 인식하는가의 인식론적 문제. 많은 영화와 책에서 써먹히는 주제이면서 다루기 힘든 주제이기도 하다. 영화 <매트릭스>에서는 실제세계와 가상세계를 다루었고, 어떤 것이 실재하는 세계인가, 근본적인 차원에서 실재하는 세계와 상관없이, 우리는 어떤 세계를 실재세계라고 믿는다. 그리고 또 무엇을 원하는가, 를 다루었다.

  믿고 싶은 것과 믿어야 하는 것은 다르다. 믿고 싶은 것은 나의 희망이 가미된 환상이며, 믿어야 하는 것은 불행이 그곳에 있더라도 인정해야만 하는 현실이다. 환상은 무엇이고 실제는 무엇인가. <강신일의 진술>에서 주인공이  '환상과 실제'라는 책을 썼다고 했을 때, 이미 난 눈치챘다. 내 마음 속에서 아! 하는 탄성과 함께 머리 속에서 번개가 쳤다. 사랑하는 여인이 살아있다고 믿고 싶었다, 그녀와 함께 여행을 왔다고 믿고 싶었다, 그녀와 전화통화를 했다고, 처음 그때를 떠올리며 다정한 대화를 나누었다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여인이 죽었다. 그녀와 함께 여행을 오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녀와 전화통화를 하지도 않았다. 다정한 대화는 없었으며, 모든 것은 내가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했다. 믿고 싶었다 하지만 믿어야 했다. 인정해야 했다.

  어쩌면 환상 속에 살며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더 나은 삶인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매트릭스'에서 리얼세계로 나올 필요도 없고, 그것을 탐구한다는 것 자체도 무의미하다. 현실 속의 불행감보다 환상 속의 행복감이 낫다면, 깨지 않는 것도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좋은 방법일 터이다. 이건 아니야 어서 인정해 괴롭겠지만 눈을 떠, 라고 말리고 다그치고 윽박지르며 두들겨봐야 소용없다. 그 사람은 이미 행복한걸. 우리의 삶의 궁극적 목표는 행복이 아니던가. 행복하기 위해 돈을 모으고, 행복하기 위해 큰 집을 사고, 행복하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행복하기 위해 책을 보지 않던가. 단지 모두에게 행복에 대한 관심과 관점이 다를 뿐 모두가 행복을 추구하며 산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누구도 불행해지길 원하지 않는다. 만일 나는 불행해지길 원해 라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 또한 객관적인 불행의 조건을 통해 주관적인 행복을 획득하려는 것이다.  

  존재하는 실제와 존재하지 않는 환상은 결국 삶을 살아가는 주체의 문제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환상 속에 살며 현실을 사는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거나 객관적인 도덕규칙에 어긋나는 행위를 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행복감과 상관없이 피해자가 발생했다는 차원에서 어떤 제제를 가해야 할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 속에서 보여지는 '그'의 환상에 때로 가슴저리게 아프고, 욱신욱신 쿡쿡 통증이 오며, 공감하고픈 것이 나의 현실이다. 그의 행각(?)과 별도로 내가 그가 되어 그를 느끼고 싶었다. "오늘 밤 아내 곁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래. 그러고 싶었다. 세상에 없는 아내를 불러내고 싶었다. 두 사람을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 가슴 아픈 사랑의 이야기이며, 환상과 실제의 이야기이며, 섬뜩 놀래키는 추리물이기도 한 이 연극을 연출하고 열연한 박광정씨와 강신일씨에게 박수를. 두 분 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다.

***

하나. 5년만에 무대에 다시 올린 이 연극을 종료 하루 앞두고 본 것은 정말 잘 한 일이었다.
하나. <공공의 적>을 통해 강렬하게 다가왔던 그의 힘이 연극에서 또다른 더 큰 빛을 발했다.
하나. 박광정과 강신일을 다시 주목하게 된 작품이었다.
하나. 연극의 원작이 된 소설을 읽고 싶어졌다.
하나. 나중에 다시 무대에 올린다면 이 연극을 또 한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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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os678 2006-07-16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일지의 소설 <진술>을 토대로 만든 연극인가 봐요. 5~6년쯤 전에 정신없이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책도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의 진술로만 이루어져 있는 독특한 구성이랍니다. 연극이 끝났다니 아쉽네요.

마늘빵 2006-07-17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맞아요. 소설을 바탕으로 했어요. 소설도 보고 싶어요.
 
하얀 강 밤배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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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홍빛 이쁘장한 표지를 달고 있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하얀 강 밤배>. 1989년에 쓰여졌지만 우리나라 말로 번역이 된 것은 2005년이다. 그러니 매우 오래전에 쓰여진, 하지만 이곳에서는 얼마 나이를 먹지 않은 갓난 아기인 셈이다. 그녀의 많은 소설들 중 이 책은 가장 안팔렸다. <키친> <하드보일드 하드럭> <하치의 마지막 연인> <티티새> <도마뱀> 심지어는 가장 나중에 나온 <불륜과 남미>의 판매량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물론 그녀의 이름을 달고 나온 소설은 다른 책들에 비해 많이 팔리지만.

  외면 받은 작품 치고는 참 느낌이 괜찮았다. 그녀의 모든 소설들은 가볍게 말하자면, 다 거기서 거기인 내용에, 거기서 거기인 감성을 건드리고 있다. 그런데 불구하고 비슷비슷한 환경에 처한 등장인물들에 비슷비슷한 줄거리, 그리고 비슷비슷한 글의 구조와 느낌, 사실 '요시모토 바나나'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책들 중 어느 하나만을 집어 골라 봤다면 그만 봐도 좋을 법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손이 가는 것은, 내가 그녀의 소설을 모조리 읽어버릴테다, 라고 말한 것과는 별도로, 그 감성에 취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픈 구석을 바늘로 콕콕 찔러 괜찮다 싶으면 또 두 눈 젖게 만들고, 방 한 구석에 벽 보고 앉아 흑흑 울고 있으면, 아무 말 없이 뒤에서 살며시 안아주며 토닥여주는, 병 주고 약 주는 소설들. 하지만 앓던 병 나 자신 조차 모른 척 하며 살기보다 아파도 한번 더 찔러주고 건드려주며 마음 속 딱딱한 응어리 쪼개어주는 그 아픔이 싫지 않다.   한번 와락 눈물 쏟고 나면 상쾌해진단다. 다 털어놓아보렴. 울어도 괜찮아. 그것이 그녀의 소설에 자꾸만 손이 가는 이유일게다. 그런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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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강 밤배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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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다들 누가 옆에서 그냥 자주기를 바라는 존재인가봐. 여자도 있고, 외국인도 있어. 하기야 나, 그냥 적당히 잠들 때도 있지만. ...... 어쩌면 지친 사람들 옆에서 자면서, 잠든 사람의 숨결에 내 숨결을 맞추면서 그 사람의 마음 속 어둠을 빨아들이는 건지도 모르겠어. 자면 안돼 하고 생각하면서 그만 꾸벅꾸벅 졸다가 무서운 꿈을 꾸곤 하거든. 초현실적인 꿈. 침몰하느 배에 타고 있는 꿈, 모아놓은 동전을 잃어버리는 꿈, 창문으로 어둠이 들어와 숨이 막히는 꿈...... . 숨이 막혀서 놀라 잠이 깨지. 무서워, 그런 때는. 그런데 옆에서 자는 사람을 보면, 아아 지금, 이 사람의 마음의 풍경을 봤구나. 이렇게 외롭고 괴롭고 황량한 풍경이구나, 하고 생각하면...... 왠지 무서워져."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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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모른다. 그를. 클림트라는 이름과 그의 몇몇 작품을 본 적이 있다는 사실, 그것이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이다. 음악엔 관심 있지만 - 그것도 장르가 한정 되어 있지만 - 그림에 대해선 관심을 갖지 않고 살았다. 철학을 했어도 해석학, 분석철학, 형이상학, 윤리학, 정치철학에는 관심을 보였지만 미학을 들을 땐 거의 졸았다. 하긴 다른 수업에서도 졸았긴 마찬가지구나. 보통 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그림에 대한 관심을 기본으로 하고 있기에 생초짜인 내가 미학에 관심을 갖기는 환경상 어려웠다. 이것은 내가 처음 악기를 배우고자 할 때 피아노나 기타를 배우지 않고 드럼을 배운 것과 같은 이치이다. 피아노나 기타는 원래 어릴 때부터 해서 좀 치는 녀석들이 많다. 그래서 20살 먹고 남들보다 빠르게 뛰어난 실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잘 선택하지 않는 악기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고, 드럼이 간택(?) 되었던 것이다. 나의 선택은 적중해서 밴드 결성시 가장 희귀한 파트가 드러머였고, 나는 안되는 실력에도 초반부터 괜찮은 밴드를 잡아 그 생활을 시작했었다.

  영화 <클림트>를 보기 위해 오는 관객들은 두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나와 같은 부류. 즉 클림트가 어떤 인물인가를 영화를 통해 알기 위해 오는 사람들, 그리고 또 하나는 평소 클림트와 그의 그림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영화가 개봉되자 그것을 확인하고 어떤 식으로 삶을 그려냈는가를 보기 위해 오는 사람들. 그의 작품이 그려진 과정과 아름다움을 감상하기 위해 오는 부류도 넓은 범주의 후자에 속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영화는 나와 같은 부류에게도, 후자의 부류에게도 만족감을 주지 못하지 않을까 싶다. 그의 삶에 촛점을 맞춘 것도 아니고, 그의 작품 활동에 촛점을 맞춘 것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 놓여있는 듯한 인상이다. 양자 모두를 잡으려 했던걸까, 아니면 양자 모두 초월하여 스치고 지나가고 싶었던 것일까. 어쩌면 그의 삶에 있어서, 작품에 있어서, 특정한 시기를 잘라내 그 평면을 비춤으로써 클림트란 인물을 관찰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오히려 그의 삶도, 작품도 한 편의 짧은 영화로 보여주지 못하느니 더 낫겠다는 판단이었을지도.



   그가 미술사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어떤 성향과 파를 조성하고 있는지는 전혀 알 길이 없다. 1862년에서 1918년까지를 살아간 그가 죽은지 채 100년도 되지 않은 지금, 클림트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왜 지금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그를 새롭게 조명하기 위한 어떤 시도나 그를 기념할 만한 뭔가를 찾지 못하겠다. 난 그저 누군가가 그의 그림이 좋다고 하여 보게 된 것이고, 좋은지 나쁜지는 모르겠지만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 뭔가 조각조각 짜맞춘 듯 하면서 그것이 묘한 아름다움을 구성한다는 것 정도 밖에는 알지 못한다. 

  영화를 봄으로써 되려 그림에 대한 나의 무지와 그에 대한 의문으로 가득차버렸다. 하지만 영화는 그의 그림을 접했을 때의 그 느낌을 간직하고 있는 듯 했다. 순차적으로 뭔가를 보여주기 보다는 그의 삶의 중간중간을 잘라내어 하얀 도화지 위에 툭툭 던져놓고 멋대로 짜깁기 한 듯한 느낌이다. 영화를 봄으로써 그의 그림을 본 듯한 이 느낌. 그것으로 만족한다.

 * 함께 본 이의 덕분으로 영화 속의 또다른 인물 에곤 쉴레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다. 아마도 '그녀' 가 아니었다면 클림트 말고는 등장인물들을 그저 엑스트라 쯤으로 여기고 봤을 터.



* 이 사람. 에곤 쉴레. 손가락 제스쳐가 참 인상적이었다. 얼핏 본 어느 책에서 그가 클림트를 존경하며 따르고 교류했다는 글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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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6-07-07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 싶은데... 클림트 그림 마음에 드는데... 존 말코비치도 마음에 드는데... 끄응~

마늘빵 2006-07-07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나침반님 클림트 모르고 가면 그냥 막 던져주는 먹이 구경만 하고 그냥 오게 되는거 같아요. 제가 그랬어요. 따옴표까지 신경쓰실건 없는데. ㅎㅎㅎ 나침반님은 너무 눈치가 빠르셔.

프레이야 2006-07-07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림트 읽고 봐야겠어요.. 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