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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삶 ㅣ 그르니에 선집 4
장 그르니에 지음, 김용기 옮김 / 민음사 / 200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가 매일같이 눈을 뜨며 마주하는 일상의 모든 것들은 너무나 단조롭고 지극히 '일상적'이다. 매일마다 아침 출근길에 보게 되는 지하철, 콩나물 시루처럼 빡빡하게 꼼짝달싹 못하게 서서 각자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과 햇살 드리운 따땃한 시멘트 바닥에 누워 자도 자도 졸리다는 듯 새근새근 자고 있는 작고 귀여운 하얀 똥개녀석과 지각한다며 드넓은 4차선 도로 위를 빨간색은 보이지 않는다는 듯 무심코 질주하는 빳빳하게 다려진 하얀 교복입은 녀석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그다지 신기하게 보이지 않는 그저 어젯밤 읽다 잠든 책을 꺼내 조용히 무릎위에 올리고 까만 눈동자 굴려가며 한줄 한줄 내려와 책장 넘기는 내 모습과, 그 밖의 그 모든 것들이 다 일상적인 삶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겠지.
매일 아침 신문지상에 어제는 어디서 누가 어떻게 죽었으며, 지난 밤 로또 추점엔 세명이 당첨되어 얼마씩 나눠가졌다는 이야기, 다음 주에 한국영화 최초로 대형블록버스터가 개봉된다는 이야기, 그 영화의 감독이 해외 무슨 영화제에서 개발바닥 상을 받았다는 이야기, 저 멀리 이름 모를 나라에서는 내전이 한참 진행중인지라 요 며칠 폭탄테러가 심심찮게 발생했고 수천명이 사망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또 반대편 거대한 제국에서는 한 코미디언이 영화제 시상식에 나와 멋드러진 양복 입고 개다리 춤을 추었다는 이야기. 그것도 모두 우리에겐 지극히 일상적인 삶이다.
아무렇지 않은 듯 인식되지 않은 채 벌어지는 수많은 내 주변의 이야기들과 신문과 티비의 주목을 받으며 뉴스거리가 되면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 모으는 이야기들은 모두 각각 다른 차원에서 일상적이라 말할 수 있겠다. 옮긴이 김용기는 말한다. "우리가 이런 사소하고 대수롭지 않은 것들에 혹이라도 어떤 의미를, 아니 그 이전에 어떤 긴장 - 단순히 심미적인 것이든 혹은 더 나아가 존재론적인 것이든 - 이라도 부여하게 되는 일은 흔치 않을 것이다. 굳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하거니와 일상이란 워낙 긴장의 반대말이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그러나. 가끔씩. 가끔씩. 이렇게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들이 신기해보일 때가 있고, 내가 평소에 쓰고 있는 유일하게 알고 있는 언어인 한국어의 어떤 단어는 왜 이렇게 만들어졌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왜 똥을 똥이라 했을까. 애초 똥을 물이라 했다면 어땠을까. 등등의 남들이 보면 아주 이상하고 괴상망칙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할 만한 그런 것들.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 일상적인 일들에 의심을 갖기도, 의문을 갖기도 하게 되는 때가 있다.
장 그르니에. 그는 일상의 철학을 하는 철학자였다.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라는 그는 알제에서 철학교수를 했고, 수많은 철학서와 명상집 등등을 냈다고 한다. 여기 이 <일상적인 삶>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책은 그의 평상시의 주변의 사물에 대한, 주변의 일들에 대한 사색을 담아 옮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눈을 감고 잠시 다른 곳으로 떠나있어야 될 것만 같은 그런 글이다. 여행, 산책, 포도주, 담배, 비밀, 침묵, 독서, 수면, 고독, 향수, 정오, 자정의 12가지 테마를 가지고 그는 수페이지에 걸쳐서 사색을 펼쳐놓고 있다. 아주 일반적이고 너무나 일상적인 저것들에서 무슨 생각할 거리들을 찾아볼 수 있겠는가 싶지만 해당 장을 넘겨 글을 읽는 순간 아 하는 감탄사와 함께 내 주변의 것들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의 김용석과 같은 철학자이다. 김용석은 철학자이지만 철학이론을 가르치는 강단의 철학이 아닌 일상의 철학을 하는 이 이다. 고독, 불안, 사랑, 분노, 낭만, 향수, 시기, 질투 등등의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 속의 자연스러운 감정들에 대해 사색할 기회를 준다. 장 그르니에는 그와 같은 철학을 한다. 내가 꿈꾸는 철학자. 철학적 지식을 가르치는 철학자가 아닌 아침 이슬 머금은 발 밑에 깔릴만큼 작은 풀꽃을 보고 멍 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사색할 수 있는 그런 철학자. 장 그르니에는 그런 철학자이다. 그의 일상의 철학의 단편들을 보고 있자면, 읽고 있자면, 모든 문장들에 줄을 긋고 싶다. 너무나 많은 문장에 밑줄을 긋고 간직하고 싶다. 푹 빠져들고 싶다.
p.s
같은 말을 하더라도 어떤 언어를 가지고 어떻게 구성해나가느냐,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나의 느낌을 전달하는 또다른 묘미가 있다. 장 그르니에는 자신이 느낀 것을 표현하는데에도 자기만의 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의 글귀들은 마치 그가 프랑스인이지만 중국의 고대 사상가들의 이야기와 우리네 옛 선비들의 말씀과 그 표현법이 닿아있다. 여운이 있다고나 할까.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은 산책할 여가를 가진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공백을 창조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일상사 가운데 어떤 빈틈을, 나로선 도저히 이름 붙일 수 없는 우리의 순수한 사랑 같은 것에 도달할 수 있게 해줄 그 빈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결국 산책이란 우리가 찾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발견하게 해주는 수단이 아닐까?
(산책 中)
내가 담배를 피움으로써 세계가 내 속으로 흡입되며 그럴 때 나는 세상을 단지 보고 듣고 만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소유하게 된다. 나를 둘러싸고 있으나 결코 내 것이 아닌 이 견고한 세계를 담배를 태움으로써 내 것으로 전환시킨다. 왜냐하면 내가 그 견고한 세계를 연기로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것은 곧 그 사물을 통해 세상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담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