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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코레아니쿠스 - 미학자 진중권의 한국인 낯설게 읽기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현 한국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이를 토대로 한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은 많다. 강준만, 한홍구, 김동춘, 탁석산, 박노자, 홍세화 등등. 하지만 진중권은 다른 이들에 비해서 재미난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다. 같은 것을 보지만 다르게 표현한다. 진중권이 이 책을 통해서 드러낸 그가 바라본 한국사회는 우리가 살면서 흔히 접하는, 또 느끼는 것들이다. 그 중에는 우리가 이것만은 좀 고쳐졌으면 좋겠는데, 이런 면은 이렇다, 라고 스치듯 생각이 지나치는 경우들도 많다. 진중권은 이런 평범한 한국 사회의 일상생활에서 접하게 되는 것들을 소재로 삼아 한국인을 성찰한다. 크게 근대화, 전근대성, 미래주의 로 나누고, 각각에 들어맞는 한국 사회의 모습들을 담아낸다.
진중권은 이 책의 서문에서 '한국의 정체성'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했다. "'정체성'이라는 낱말은 다분히 이념적이어서, 한국인이 마땅히 수립하고 보존해야 할 어떤 가치 체계를 함축한다. 가치관이 다양해진 시대에, 과연 한국의 문화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어떤 양식 같은 게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정체성' 담론은 종종 특정인의 주관적 가치관을 사회의 객관적 규범으로 제시하는 형식을 취한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한국인이라면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싶지 않다."
'한국의 정체성'에 관해서라면 철학자 탁석산이 <한국의 정체성>이라는 책을 통해서 작업 한 바 있다. 그는 정체성과 주체성은 분명히 다르며, 정체성이라 할지라도 '한국'의 정체성과 '한국인'의 정체성은 구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의 정체성을 알기는 매우 어려운데, 한국인이 만든 작품을 통해서 분석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이때도 한국인 개인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한국이란 집단이 역사를 통해 공동으로 만들고 지금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째가 언어요, 둘째가 한국과 관련된 각 분야의 공통 속성을 찾는 것이다.
진중권이 <호모 코레아니쿠스>를 통해서 하는 한국인에 대한 작업은 탁석산이 내세우는 것만큼이나 거창하지는 않지만, 이 역시 한국사회와 한국인을 설명해줄 수 있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깊다고 하겠다. 그는 이 책이 정체성의 문제가 아니라 '하비투스'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서문에서 밝히는데, 하비투스란 "우리말로 흔히 '습속'이라 번역되는데, 거칠게 말하면 특정 사회 성원들의 사고방식, 감정구조, 행동양식의 총합이라 할 수 있다."
진중권이 살피고 있는 우리 사회는 생활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한국인의 습속이다. 지하철 문화, 식탁에서의 식사문화, 예절, 황우석 사건을 대하는 태도, 국가대표, 월드컵, 취미와 여가생활 등등 우리 생활의 일면을 재료로 삼아 이를 해석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단 이것을 근대화와 전근대성, 미래주의로 나누어 해당 범주안에 묶어놓아 단순히 일면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근대성과 전근대성을 살펴본다는 차원에서 의미있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진중권의 글은 매우 재밌다. 일단 우리의 모습이 담겨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친근하고, 글 자체가 어렵지 않으며, 그의 분석은 날카로우나 즐겁다. 때로는 그의 글은 심한 경우 '비꼬기'로 변질되는 경우도 있으나 적절한 선에서 마무리 지음으로써 읽는 이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다음과 같은 대목들로 진중권의 일상의 한국인에 대한 분석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 볼 수 있다. (참고로 비꼬기가 적나라하게 표출된 것으로 그의 저서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가 있다. 이 책은 읽는 내내 공감하면서도 불편했다.)
"수직적 위계를 위한 예법이 매우 복잡하게 발달된 한국 사회, 수평적 교제를 위한 예법에는 이렇게 구멍이 나 있다. 원래 전통 예법 자체가 신분제에 뿌리를 두고 있는 데다가, 근대화마저 군대를 모델로 하여 이루어지다 보니, 예법이 주로 수직적 위계를 세우는데에 소용된 것이다. 그 결과 개인과 개인의 평등한 교제를 규제하는 품위있고, 격조 있는 시민적 예법은 발달할 기회가 없었던 모양이다. 낯선 사람과 마주칠 때 한국인이 느끼는 어색함은 거기서 비롯된다."
"한마디로 한국인은 근거리 지각에 따르는 쾌, 불쾌에 그다지 민감하지 않다. 일단 내가 불쾌해야 남도 불쾌할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지 않겠는가. 자신이 불쾌하게 느끼지 않는 행동은 당연히 남에게도 별 생각 없이 하게 된다. 한마디로 이것은 '배려'의 문제이기 이전에 먼저 '감각'의 문제다. 이른바 에티켓의 전제가 되는 것은 바로 불쾌를 불쾌로 느끼는 미적 취미다."
진중권의 글을 통해 독자들은 한국인으로서의 자신과 주변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느끼고 행동하고 살았던 부분들이 이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생활 곳곳에서 떠올리게 될 것이다. 지금도 내 머리 속엔 그의 시각,후각,미각,촉각 등에 대한 지적이 맴돌고 있다. 쥐포를 구웠더니 난 구수했는데 내 동생은 대뜸 화난채로 나와서 창문을 활짝 열고는 들어간다. 어찌 볼 것인가. 내 동생의 근대화된 후각을. (다른 차원에서 보면 동일 냄새에 대한 개개인의 취향 문제로 들어갈 수도 있다)
진중권의 한국인의 하비투스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에는 동의하고, 웃음의 미학에는 즐거움을 느꼈으면서도, 한 가지 지적하고자 한다면, 그의 한국과 한국인의 습속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소 그가 독일에서 유학하던 시절에 그곳에서 접했던 것들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홍세화와 고종석이 프랑스를 기준으로 삼고 한국을 바라보듯, 진중권은 독일을 기준으로 삼아 한국을 바라본다. 도식화의 위험성을 감수하면서, 굳이 연결지어본다면, 옳은 독일의 모습으로 그른 한국의 모습을 바라본달까. 재밌게 읽으면서 불편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물론 진중권은 독일이 무조건 옳다는 것이 아니라 독일의 모습 중 옳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가지고 한국의 동일한 부분에 대해 지적했겠지만, 글 전체에서 풍겨지는 인상만큼은 지울 수 없다.
p.s. 이 책과 함께 탁석산의 <한국의 정체성>과 강준만의 <인간사색> <한국인코드>를 비교하며 읽는다면 한국인의 정체성이든 습속이든, 다양한 관점에서 한국과 한국인을 바라볼 수 있으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