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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에게도 문화가 있다
리 듀거킨 지음, 이한음 옮김 / 지호 / 2003년 6월
평점 :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관심은 사회생물학이나 유전자결정론, 진화심리학 등의 관련된 분야들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고, 그 와중에 접한 책이 <동물에게도 문화가 있다> 이다. 이 책의 제목 아래에는 소제목으로 '이기적 유전자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동물들의 진화' 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개념은, 동물과 인간의 행동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유전자결정론으로 이어진다. 사람이 물에 빠진 상황에서 그를 구하는 나의 '이타적' 행동 조차도 도킨스의 눈에는 이기적인 유전자에 의한 것이다. 도킨스는 모든 인간과 동물의 행동을 이러한 '이기적인 유전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이기적 유전자>에서 도킨스는 gene 말고 meme 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는데, 혹자는 이를 두고 도킨스가 한발짝 물러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혹자는 이기적 유전자론을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저걸 도킨스는 '밈'이라 부르는데, 이는 그리스어의 어근에 따르면 mimeme 이라 해야하지만, 유전자를 뜻하는 gene의 발음과 비슷하게 하기위해 meme이란 용어를 만들었다.
인간에게서 보이는 행동양식은 유전자에 의한 것이기도 하고, 어떤 것은 밈에 의한 것이기도 한데, 이 밈이란 것은 결국 우리가 문화라 부르는 것의 총칭이다. 하지만 이 밈 역시도 유전자와 같이 "엄밀한 의미에서 살아있는 구졸 간주해야"하며, "당신이 내 머리에 번식력이 있는 밈을 심어 놓는다는 것은 글자 그대로 당신이 내 뇌에 기생한다고 하는 것"이라 한다. 밈도 유전자와 같이 복제를 하며 자기 생존을 위해 목적의식을 가진 능동적 존재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의문이 하나 생긴다. 인간을 제외한 동물에게는 문화가 없을까?
루이빌 대학에서 연구중인 진화생물학자 리 두거킨은 <동물에게도 문화가 있다>라는 책을 통해서 유전자 결정론의 헛점을 찾아 동물들도 사회적 협동을 할 수 있으며, 모방 인자를 통해 문화적 전달이 진화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는 이전에 <동물들 사이의 협동이라는 책으로 과학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 책의 첫장에는 "문화는 단순한 것에서부터 복잡한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체에게 작용하는 강력한 힘이다." 라고 씌여있다. 도킨스가 주장하는 유전자뿐만 아니라 문화까지도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들에게 있어, 심지어 단세포에게까지도, 진화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두거킨은 이 두꺼운 책을 통해서 '거피'실험 과정에서 보고 관찰한 것들을 자주 인용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 '1장 문화적 동물'은 중요하다. '2장 이기적 유전자의 길게 뻗은 팔'에서는 문화를 두고 일종의 이기적 유전자로부터 비롯된, 여기에서 가지를 치고 뻗어나간 곁다리쯤으로 간주하는 과학자들의 의견에 대해서 반박하고 있다. 앞선 도킨스의 '밈'이라는 개념은 문화의 총칭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문화'의 개념이 아닌 유전자 개념으로부터 비롯된 즉, 유전자의 변형된 형태로서 바라볼 수 있는 개념이다. 즉, 도킨스의 '밈'은 '이기적 유전자의 길게 뻗은 팔'에 불과하다. 두거킨은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문화를 동떨어진 다른 것으로 바라봐야하고, 그것이 인간 뿐 아니라 동물에게도 있음을 말한다.
두거킨은 유전자가 진화에 미치는 영향력을 무시하진 않는다. 다만 그는 유전자 이외에 문화라는 것이 진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뿐 아니라 동물에게도. 그래서 그는 도킨스가 자신의 주장을 내세울 때와 같이 다양한 동물들의 예를 든다. 거피를 중심으로 하여, 제비, 기린, 세일핀몰리, 고래 등등. 두거킨은 유전자의 진화에 대한 영향력이 강할 때가 있고, 문화의 진화에 대한 영향력이 강할 때가 있다고 한다. '4장 문화의 의미'는 이를 밝히는데에 할애하고 있다. "행동생태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동물이 살아가는 환경이 자주 변하긴 하지만, 너무 자주 변하지는 않을 때에는 학습이 유전적 전달보다 더 선호된다고 말해왔다." 과학적 관점에서 정보습득의 경로는 유전부호, 개체학습, 문화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문화적 전달이 유전적 재생산보다 정보를 축적하는 더 나은 수단이 되는가를 묻고 대답한다.
실제로 동물들은 '모방'을 통해 동료의 행동을 따라하며 이것은 짝짓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두거킨은 이러한 동물들의 모방행위를 문화의 일종으로 본다. 두거킨의 문화개념은 우리 인간세계에 있어서의 문화개념과는 조금 다르다. 범위가 더 넓다고 해야할 것이다. 여러 실험을 통해서 그는 모방이 진화를 결정짓는 광경을 목격한 바에 대해 진술하고 있다.
인간은 왜 사람들은 지금과 같은 식으로 행동을 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왔으며, 지난 세기 인류학, 생물학, 심리학 등의 학문이 이에 대해 대답하려 노력했다. 두거킨은 인간 "행동의 특성을 이해하려면 문화적 진화의 과정을 철저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우리는 남의 행동에 맞춰 행동하도록, 대개 그들의 행동을 본뜨도록 진화해 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동물에게 있어 뇌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으며, 한 개체의 독특한 행위와 이를 따르는 다수의 개체들로 인해 표준유전이론은 극적으로 무너진다. 우리가 유전자의 통제를 받아왔다는 사실을 거부하진 않지만, 문화적 진화는 언젠가부터 유전적 진화 못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했고, 유전자에 의해 모든 행위가 결정된다는 유전자결정론은 진화의 한쪽면만을 바라 본 것이다. 인간을 비롯한 동물은 유전자뿐 아니라 문화의 영향을 통해 진화하며,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임이 두거킨의 실험과 이론을 통해 입증되었다. 아직 명확히 진화에 대한 연구가 종결된 것은 아니다. 꾸준히 연구는 아직도 진행중이며, 앞으로 새로운 다른 연구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 일단 그렇더라도 '동물에게도 문화가 있다'는 건 거부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