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은 왜? - 두 위대한 철학자가 벌인 10분 동안의 논쟁
데이비드 에드먼즈 외 지음, 김태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1년 12월
구판절판


"모든 철학은 플라톤에 대한 주석에 지나지 않는다고 흔히들 말한다. 하지만 이 말에는 ‘비트겐슈타인 이전까지’라는 단서를 덧붙여야 한다."(비트겐슈타인의 제자 와스피 히잡)-36쪽

소크라테스의 대화편을 읽을 때 드는 느낌: 원 이런 시간 낭비가 있나! (비트겐슈타인)
-45쪽

러셀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평
"놀라울 정도로 눈치가 빠르기는 하지만 겉만 번지르르한 천박함밖엔 없다."
-54쪽

포퍼와 비트겐슈타인 모두에게 해당될 만한 한 가지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역사가 프리츠 슈테른이 쓴 게르손 블라이히뢰더의 슬픈 묘비명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프로이센 제국 아래서 부와 영향력, 모든 현세적 보상을 누린 그에게 "단 한 가지 주어지지 않은 것은 귀속감과 안정감, 사회 속에 받아들여졌다는 느낌뿐이었다. 동화되고 싶은 유혹의 본질은 아마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163쪽

포퍼의 중요한 학문적 업적 가운데 하나는 이론이 과학적이라면 반증될 수 있어야 한다는 통찰에 있었지만, 정작 그는 이 원칙이 자기 자신의 사상에 적용되는 것은 결코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열린 사회의 적들 중 한 사람이 쓴 열린 사회"로 개명되어야 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202쪽

1929년에 영국에 돌아온 비트겐슈타인은 2만 단어로 된 얇은 저서 "논리 철학 논고"를 박사 학위 논문으로 제출했다. 심사위원 중의 한 사람이었던 무어는 논문에 첨부한 의견서에 다음과 같이 썼다고 한다. "나의 개인적 견해로는 비트겐슈타인 씨의 논문은 천재의 작품입니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이 논문이 케임브리지 철학 박사 학위에 필요한 기준을 충족시키고 남음이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10년 뒤 무어가 은퇴했을 때 비트겐슈타인의 입장에 반대하는 교수들마저 그를 무어의 후임으로 임명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239쪽

"비판적으로 논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심각하고 긴급한 철학적 문제가 실제로 있다는 사실만이 전문적인 강단 철학의 존재를 정당화해준다."(포퍼)
-266쪽

"비트겐슈타인은 포퍼에게 유일한 적색 신호였다. 포퍼에 대한 충성심을 표현하는 데는 비트겐슈타인을 공격하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었다."(조셉 애거시) 포퍼는 언어에 대한 관심을 안경 닦기에 비유했따. 언어철학자들은 그것이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지한 철학자들은 안경 닦는 행동의 유일한 의미는 안경 쓰는 사람이 세상을 더 분명하게 보도록 해주는 데 있을 뿐임을 안다.-267쪽

모럴 사이언스 클럽에서 누군가가 아주 어리석은 발표를 했던 일이 생각난다. 비트겐슈타인은 발표가 끝나자 다음과 같이 소리질렀다. "이런 건 하지 못하게 중단시켜야 해. 형편없는 철학자는 슬럼가에서 월세 받아먹는 집주인과 같은 자들이야. 그런 사람들을 이 바닥에서 몰아내는 게 내 일이지." -모리스 오코너 드러리
-287쪽

"솔직히 말하면 나는 케임브리지에 갈 때 비트겐슈타인을 자극할 심산이었다. 그래서 그가 진정한 철학적 문제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방어하도록 만든 다음 이 문제를 놓고 그와 싸워보고 싶었다."(포퍼)
-287쪽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 대한 당시의 평.
"고전적인 학문적 미덕, 예리한 과학적 시선, 섬세한 논리, 과감한 철학적 도약"(정치학자이자 고전학자인 어니스트 바커. 선데이 타임스)

"시의 적절한 위대한 업적, 현대 사회학에서 가장 탁월하고 중요한 저작","포퍼는 인간의 선택과 의지가 가지는 중요성을 복원했다."(역사가 휴 트레버-로퍼)
-296쪽

포퍼가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출판하기 위해 가장 먼저 접촉한 출판사는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부였다.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부는 출판을 거절했는데, 포퍼는 그것이 비트겐슈타인을 보호하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확신했다. 출판 거절의 사유를 밝히지 않는 게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부의 일반적 관행이었지만, 폰 하예크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의 경우 두 가지 이유가 문제되었다는 것을 개인적으로 알게 되었다. 폰 하예크는 이를 곰브리치에게 알렸고, 곰브리치는 다시 뉴질랜드에 있는 포퍼에게 전했다. 우선 책의 분량이 너무 많다는 게 한 가지 이유였고, 대학 출판부가 플라톤에 대해 그토록 불경한 책을 출판할 수는 없다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이 얘기를 들은 포퍼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플라톤’은 3W, 화이트헤드, 비트겐슈타인, 위즈덤을 에둘러 말한 완곡 어법이 아닐까."
-2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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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 철학자 피터 싱어가 쓴 동물운동가 헨리 스피라 평전 불온한 책 2
피터 싱어 지음, 김상우 옮김 / 오월의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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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일이 있다면, 행동에 나서야 한다. -헨리 스피라
-0쪽

헨리가 맥도날드에 제안한 내용
-납품업체용 기준을 마련하여 인도적인 관리와 도살의 규준을 책임질 것.
-공장형 사육에서 발생하는 최악의 감금 형태를 면하는 다른 방법을 탐구할 것.
-고기 없는 햄버거를 메뉴에 추가할 것.
-미국의 다른 기업들도 채택할 만큼 적절하고 대안적인 가축사육 방법을 평가하는 가축복지본부를 세울 것.
-344쪽

(싱어가 말하는) 영향을 끼치는 방법
1. 사람들이 오늘 무엇을 생각하며 내일은 어떻게 생각할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라. 무엇보다 현실감각을 꾸준히 유지하라.
2. 주제가 여론에 약한지, 겪는 고통이 큰지, 변화의 전망이 있는지에 따라 운동의 목표를 정하라.
3. 이룰 수 있는 목표를 잡아라. 한걸읆씩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켜라. 인식을 제고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4. 신뢰할 수 있는 정보와 자료를 확보하라. 추측은 결코 하지 마라. 매체나 대중을 절대 속이지 마라. 신뢰를 유지하며 문제를 과장하거나 자극하지 마라.
5. 세상을 성자와 악인으로 구분하지 마라.
6. 문제를 풀기 위해서 대화를 해보고 협력을 모색하라. 문제와 해결책을 함께 개진하라. 최선의 방법은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7. 목표가 여전히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대결을 불사하라. 합의한 대화 통로가 작동하지 않으면, 반대편을 수세로 몰기 위해서 대중의 인식 높이기 운동을 마련하라.
8. 관료주의를 피하라.
9. 법률 제정이나 소송으로 문제를 풀 수 있다고 가정하지 마라.
10. "효과가 있는가?" 자문하라.
-375~3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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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텐베르크의 귀환 - 출판문화의 re-르네상스를 위한 성찰
이용준.김원제.정세일 지음 / 이담북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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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는 서로 마주보고 현존하는 사람들 사이의 상호 행동이라는 한계를 넘어서는 것을 가능케 한다. 인간은 이제 정보를 또한 현장에 부재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남길 수 있게 된다. 그 이래로 사회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면서도 동시에 고독하게 혼자 있을 수 있는 것이 가능케 되었다."(볼츠)-63쪽

아이슬란드는 17쪽 이상으로 구성된 간행물을 도서로 인정하고 있고, 덴마크는 60쪽 이상, 그리고 아일랜드와 이탈리아 및 모나코는 100쪽 이상의 간행물을 도서로 인정하고 있다. (중략) (유네스코에 따르면) 도서란 "국내에서 출판되어 공중이 이용하는 최소한 49쪽 이상의 인쇄된 비정기간행물"로 정의되고 있다.-73쪽

도서는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을 지닌 대표적 공공재이다. 비경합성이란 한 사람이 그 재화를 소비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소비할 몫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으로, 출판물의 경우에도 한 사람이 소비한 후에 다른 사람이 소비하더라도 그 만족감이 줄어들지 않는다. 물론 인쇄 출판물의 경우 이전에 읽은 사람이 종이를 더럽히거나 구겨놓는 등 일부 훼손을 가할 수 있으나, 그로 인해 콘텐츠의 본질적인 가치가 닳지는 않는다. (중략)
비배제성이란 상품이 어떤 사람에게 제공되고 나면 다른 사람이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소비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일례로 책을 한 사람에게 팔면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어도 온전한 가치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책 내용을 무단으로 복제하여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행위는 저작권법으로 규제하고 있다.
-80쪽

매절계약이 일반적인 인세를 훨씬 초과하는 고액이라는 등의 증거가 없다면 이는 출판권설정계약 또는 저작권법에 의해 당사자 사이에 특별한 약정이 없는 한 3년간 존속하기 때문에 매절계약일로부터 3년이 경과하면 출판권은 소멸된다는 법원의 판례가 있다. -125쪽

(독일은) 서점 판매가 54%로 가장 높지만, 출판사들의 직접 판매하는 비중도 약 20%에 이른다. 그리고 독일에서 발행되는 책은 9만여 종에 달하고 있으며, 이 중 약 80% 정도가 신간인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프랑스는) 도서의 70% 이상이 소매점을 통해 유통되고 있으며, 특히 프랑스는 슈퍼마켓을 통한 도서 판매가 발달되어 있다. 프랑스인들이 구입하는 책 6권 가운데 1권은 슈퍼마켓에서 구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177쪽

영국은 2,500여 개의 출판사가 존재하며, 10여 개의 출판사가 영국 도서 시장의 2/3를 독점하고 있다. 도서 발행 종수는 13만여 종에 이르며, 도서 판매 유통 경로로는 대형체인서점이 가장 높은 점유율(36%)을 나타내나, 최근에 와서는 온라인 서점의 성장세도 두드러진다(16%).(한국콘텐츠진흥원 2010a) -177-178쪽

독일을 비롯해 프랑스, 네덜란드 등 많은 유럽 국가들이 종이책과 마찬가지로 전자책도 정가판매제도를 시행하고 있어 전자책과 종이책 간의 가격 차이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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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 -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새로운 명령
한윤형.최태섭.김정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4월
품절


자본주의는 청춘들에게 ‘꿈’을 꾸라고 강요하고, 그 ‘꿈’을 실현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노동을 거의 공짜로 착취한다. 꿈은 자본주의가 청춘에 깔아 놓은 가장 잔인한 덫이다. (엄기호)
-5쪽

"우리는 ‘굶어 죽지 않는다는 보장’이 ‘지겨워서 죽을 위험’과 교환되는 세계를 원하지 않는다."(라울 바네겜, "일상생활의 혁명")-7쪽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감수해야 한다."는 말이야말로, 사람들의 신음 소리를 틀어막고 모든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만드는 마법의 주문이었다. (최태섭)
-15쪽

‘열정’, ‘젊음’, ‘도전’과 같은 이 행사를 수식하는 단어들의 용법이 바로 그것이다. 이 단어들은 행사를 통해 얌전히 ‘길들여’진다. 열정은 넘치지 않아야 하고, 도전은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하며, 젊음은 무모하지 않아야 한다. 오늘날 열정의 대상으로 허락되는 것은 더 이상 세계나, 사회, 혹은 타인이 아니다. 오직 나 자신뿐이다. 그래서 심화되는 ‘자기 혹사’의 몸짓들은 ‘치열하게 살지만 타인에게는 관심이 없는’ 개인들을 양산한다.-25쪽

당신은 기업에게 나를 고용해 달라고 요구한다. 기업은 주판알을 튕겨 본 후, 당신을 고용하면 오히려 이윤이 줄어든다고 답한다. 당신은 기업의 ‘계산’을 넘어설 수 있는 무언가를 제시해야 한다. 그래서 당신이 자신이 ‘보통의 인간’이 아니라 ‘열정적인 인간’이라 주장한다. 당신은 당신이 기업에 임금의 세 배 이상의 이윤을 가져다줄 수 있는 예외적인 존재라고 말한다. 기업가는 스스로 ‘혁신적 기업가’로 진화하지 않는다. 노동자에게 ‘혁신적 노동자’가 될 것을 요구할 뿐이다.
"너는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너는 ‘해야만’ 하니까!"
-34쪽

성공과 실패로 나뉘는 ‘결과’의 힘은 강력하다. 평가는 ‘감시자’의 눈을 내재하게 만든다. 우리는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자발적으로 평가에 응하고, 그것에 목을 맨다. 비싼 돈을 들여 사교육을 받고, 삶의 속도와 방식을 조정하고, 생각하는 방식까지 기꺼이 바꾼다. -38쪽

(기업의 면접용 채점표) 적응력과 협동심에 가장 큰 배점이 주어진 것을 보면 ‘인성을 채용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는다’는 기업들의 설명은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때의 ‘인성’은 직장 생활을 무난하게 하고 조직에 헌신하는 미덕을 뜻한다.
-43쪽

열정은 제도화되었다. 체제는 열정의 분출을 요구하는 다양한 장치들을 만들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열정을 ‘유사 도덕’으로 만들어 내는 일에 성공을 거두었다.
-46쪽

열정은 어느덧 착취의 언어가 되었다. 이 거친 황소의 체제 안에서 훌륭히 길들여졌다. ‘원하는 일을 자발적으로 하는 청년’들이 새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체 게바라의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런 가슴 속에는 이룰 수 없는 꿈을 가지자."는 말은 더 좋은 일자리를 얻을 날까지 충실하게 살라는 격언이 되었다. -47쪽

자부심 없는 사람이나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부르고 노조를 만든다.(이명박 당신 대선 후보, ‘서울 파이낸스 포럼 초청 강연’, 2007년 5월)
-48쪽

"이거 실화예요. 회사 분위기 안 좋고, 펀딩 안 되고, 뭐 그런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가방 하나 맨 애가 문을 열더니 사무실에 들어왔어요. 고개도 제대로 못 들고 ‘영화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돈 안 주셔도 괜찮습니다!’라고 외치더라고요. 근데 현실은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거든요. 사람들은 그런 일에 감동받지 않아요. 그 애를 쳐다보는 스태프들의 심경은, ‘저런 녀석들 때문에 내가 돈도 못 받고......;’ 였죠. 영화판에 애들은 자꾸 들어와요. 정작 끝까지 가는 사람은 잘 없는데, 계속 유입이 돼요."
-83쪽

소위 보수적인 조직들이 나름 ‘규모의 합리성’을 가지고 있어서 내부적으로는 ‘진보 단체’들보다 훨씬 진보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있다.
-118쪽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그냥 그 자체로 정당한 거지 다른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굳이 무엇을 ‘설명하고’, ‘설득하고’, ‘설득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121쪽

"‘신지식인’이라고 할 때의 ‘지식’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대상의 본질과 작동 원리로서의 진리의 파악이나 추구와는 무관한 무엇인가를 만들거나 성취해 내는 능력을 뜻하며, ‘신지식인’은 진리의 소유나 추구가 아니라 어떤 목적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거나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 더 정확히 말해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상품적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는 자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신지식인’을 대표하는 자는 플라톤이나 노자, 아인슈타인이나 푸코, 교수나 언론인이 아니라 빌 게이츠나 손정의, 주식투자가 솔로스나 수많은 벤처 기업가, 마이클 잭슨이나 만화가, 박찬호, 박세리 등이다."(박이문, ‘신지식인과 지식인’)
-173쪽

일찍이 한국 사회에서 노동이라는 단어는 이미 ‘금지어’였다. 노동은 인민이라는 단어처럼 사회주의적인 의미를 띤 단어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노동자는 근로자로 대체되었으며, 1886년 미국에서 벌어진 총파업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노동절(5월 1일) 역시 근로자의 날(3월 10일)로 바뀌어 불렸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사회학계에서도 ‘계급’이라는 용어는 맑스주의의 산물로 간주되어 탄압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중산층’이라는 말은 이것의 원어인 ‘middle-class’를 ‘중간 계급’으로 번역할 수 없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183쪽

세계화라는 단어는 globalization의 번역어가 아니다. 이 말은 김영삼 정부에서 만들어 낸 ‘조어’로, 정부의 공식 문건에도 ‘segehwa’라고 표기되었던 말이다.
-183쪽

노동자가 노동자로서 자본가와 노동 계약을 맺는 게 아니라, 자기 노동력에 대해 스스로 자본가나 투자가가 되어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간단하게 말해, 노동자가 자기 몸과 시간에 대한 ‘경영자’가 되어 상위의 경영자(진짜 경영자)와 노동 계약을 맺는, 이상한 방식으로 노동과 자본의 관계가 바뀌고 있다. (엄기호)
-185쪽

열정은 본래 대중의 것이었다. 오타쿠와 마니아들은 자발적으로 모였고, 자발적으로 배웠으며, 자발적으로 창작했다. ‘문화 산업’과 ‘벤처 기업’의 등장은 상황을 바꿔 놓았다. 취미가 일로, 일이 취미로 변했다. 열정이 산업의 내부로, 그리고 노동으로 유입됐다. 자본주의는 ‘열정’의 영역에서 새로운 시장과 노동력을 발견했다.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는 말은 이전보다 더한 성실함과 근면함을 요구했다. 열악한 조건도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혹여 불만이라도 토로하는 사람은, 이 일에 대한 열정이 부족한 것에 대하여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186쪽

복지 제도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는 이 나라에서 ‘자발적으로’ 일하는 이들이 등장했다는 사실은, ‘일도 많이 시키고, 돈도 안 주어도 되는’-착취에 최적화된-상황이 펼쳐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190쪽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을 노동자로 생각하지 않고 오직 소비자로 인식한다. (지그문트 바우만)
-2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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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생태계 살리기 - 자기기만과 무기력을 넘어
변정수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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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책의 미래는 어떻게 하면 잃어버린 독자를 다시 만들어 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답은 다 나와 있다. 다른 삶에 대한 경험의 폭과 깊이가 삶의 질을 고양시키는 결정적이거나 최소한 유력한 요인이라는 믿음, 그렇게 축적된 인문적 교양이 자신이 속한 일상적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존재를 존중받을 수 있는 결정적이거나 최소한 유력한 준거라는 믿음, 다름 아닌 책이 삶의 지혜를 구하는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고 자신의 처지에 대한 판단력을 기르는 데 가장 탁월한 매개라는 믿음을 복원하면 된다. 이 모든 것들이 ‘먹고살 만한’ 사람들이나 누릴 여유가 아니라, 모든 사회 구성원의 기본권이며 오히려 대다수가 그 최소한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조차 누릴 수 없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꿔나가기 위해서라면 더욱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자각이 우선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바로 이것이 ‘인문 정신’이다.-32-33쪽

책은 읽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읽을 만한 가치가 있어야만 굳이 세상에 존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책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는 그것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아무도 미리 알 수가 없다. 뻔하디 뻔한 얘기로 여겨지겠지만 이것이 출판산업을 붕괴로 치닫게 하는 가장 핵심적인 문제이다. -47쪽

책 한 권의 ‘원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순수하게 그 책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제작비’나 ‘편집비’ 따위가 아니라 실은 일종의 ‘보험료’이다. 애써 만들어낸 책이 결과적으로 팔리지 않았을 때 발생할 수밖에 없는 ‘매몰 비용’이 팔리는 책에 의해 벌충되지 않으면 출판 산업은 지속적인 재생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48쪽

인문서 분야에서도 간혹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나오지만, 그 판매량의 대부분이 ‘서가 장식용’이 아니라 ‘독서용’이라고 믿는 순진한 사람들도 거의 없는 것 같다. 분야를 불문하고 책들의 외양이 ‘읽기 편하게’보다는 ‘들고 다니거나 꽂아두기에 폼 나게’에 더 치중하는 것이야말로 소비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정직하게 대응한 결과일 것이다. -58쪽

(2008년 단행본 출판 시장의 전년도 대비 매출 30% 감소) 책이 일종의 생산재라는 교과적인 믿음과는 달리, 대중들에게 책이 선택가능한 소비재 가운데 하나로 기능하고 있음을 여실히 방증한다. 책은 더이상 ‘마음의 양식’이 아니라 언제든 다른 소비재로 대체될 수 있는 ‘즐길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즐길거리’라는 측면에서만 보자면 대체로 가장 경쟁력이 떨어지는 낡은 문화상품이라는 것도 어김없는 사실이다.
-137쪽

책이 소비재로 기능하는 한, 출판산업에 미래는 없다. ‘많이 팔리는 책’이 꼭 ‘좋은 책’은 아니겠지만 단순히 유익하고 재미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라고 해서 ‘좋은 책’일 수도 없다. 책이 생산재로 기능하는 선순환 구조를 염두에 둔다면, ‘다른 책을 읽도록 이끌어 주는 책’이 ‘좋은 책’이다. -138쪽

한 사람의 독서 체험에서 중요한 것은 결코 ‘무슨 책’들을 읽었는가도 아니고, 무슨 무슨 책을 ‘얼마나 많이’ 읽었는가도 아니다. 다독은 무조건 권장해야 할 일임에 분명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독서 이력을 보여주기 위한 책 읽기란 공허하고 무의미한 시간 낭비일 뿐이다. 인생에서 가장 외부 세계의 지적, 정서적 자극에 민감한 성장기의 독서 체험이 이렇듯 ‘내면적 성장’과는 거리가 먼 ‘뽐내기를 통한 점수 따기’로 점철되어서는, ‘좋은 책’이 많이 팔리는 것이 아니라 단지 ‘많이 팔리는 책’이기 때문에 더 많이 팔리는 황폐한 출판 시장의 개선을 기대할 수 없다.-141쪽

출판 매체는 다른 매체들의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책을 읽어야 할 필요, 더 넓게는 매체를 통해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과 소통할 필요 자체가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책을 읽지 않는 대신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보고 인터넷 서핑을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유행 상품을 소비하고 인터넷 게임을 즐기며 일상을 영위한다. 그것이 ‘독자들의 변화하는 욕구’의 정체이다. -147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열 작업을 외주로 진행하는 데에는 또 그럴만한 까닭이 있을 터이다. 우선 상근 인력을 고용하기에는 작업량이 일정치 않거나 지속적인 작업량 유지가 불투명한 경우이다. 주먹구구 경영의 전형적 사례다. 살얼음판 같은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이해가 안 가는 바는 아니나, ‘발등에 떨어진 불 끄기’식의 출판으로는 점점 더 전망이 불확실해지는 악순환에 빠져들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니 그렇게 자신이 없다면 더 늦기 전에 출판을 접으라고 감히 조언하고 싶다.

정작 그보다 더 황당한 것은, 비용 면에서 유리하리라는 터무니 없는 착각이다. 상근 인력으로 고용했을 때 지급해야 할 임금보다 외주 작업비가 더 싸게 먹힌다면, 결과적으로 외주 작업자는 상근 편집자로 취업했을 때보다 더 많은 일을 해야 비슷한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일감이 끊이지 않는다는 요행이 덧붙지 않는다면 생계가 불안정해지는 부담까지 져야 한다. 고도의 정신적 집중을 요구하는 이 일의 특성을 이해하고 있다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발상이다. 언감생심 작업의 질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166쪽

아마도 매일 오후 정시 퇴근을 종용하고 휴일에는 쉬라고 입발린 소리를 늘어놓는 사장들과 중간 관리자들만 모르거나 혹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일 게다. 누가 보아도 무리한 작업 일정을 잡아 밤낮없이 매달리지 않으면 도저히 맞출 수 없는 마감을 강요하면서, 근로기준법이 정한 노동시간과 휴일을 지킨다는 선언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회사에서 일을 못 하게 하면 집에 일거리를 싸짊어지고 가서라도 일정은 맞추어야 하는 것을. 이거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이 아닌가.

게다가 이토록 단순한 이치를 내놓고 거스르기가 민망한 줄은 아는지 급기야 점점 더 고약한 방어 논리를 창안해내기에 이른다. 일정을 제대로 못 맞추는 것은 편집자의 무능이며, 무능하면 최소한 성실하기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때 성실이란 남들 쉴 때 쉬지 않고 죽도록 일한다는 의미이다.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은 성실한 것이 아니라 미련한 것이고, 설령 일부 편집자들이 무능한 것이 사실이라 해도 편집자를 무능하게 만드는 장본인은 미련함을 예찬하는 작자들이다.-187-188쪽

무리한 일정은 반드시 그 일정을 강행한 사람들을 배반한다는 ‘일정 배반의 법칙’(강무성 전 정신세계사 편집주간이 북에디터 게시판에 올린 글)이 편집자들의 폭넓은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대부분의 편집자들에게 ‘남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189쪽

모든 기호가 기호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의미’란 어차피 임의적인 것이다. 따라서 ‘의미’란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삶의 관계망 속에서 태어난 것이며, 그러한 한 ‘의미’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모든 행위는 그 자체로 ‘정치적’이다. 요컨대 모든 문화적 생산물은 그 존재 자체로서 정치적 맥락에 포섭되어 있다. 그 모든 맥락을 무시한 채 문화적 생산물을 가공한다는 것은 무책임한 일일뿐더러 실제로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다.
-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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