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은 왜? - 두 위대한 철학자가 벌인 10분 동안의 논쟁
데이비드 에드먼즈 외 지음, 김태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1년 12월
구판절판


"모든 철학은 플라톤에 대한 주석에 지나지 않는다고 흔히들 말한다. 하지만 이 말에는 ‘비트겐슈타인 이전까지’라는 단서를 덧붙여야 한다."(비트겐슈타인의 제자 와스피 히잡)-36쪽

소크라테스의 대화편을 읽을 때 드는 느낌: 원 이런 시간 낭비가 있나! (비트겐슈타인)
-45쪽

러셀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평
"놀라울 정도로 눈치가 빠르기는 하지만 겉만 번지르르한 천박함밖엔 없다."
-54쪽

포퍼와 비트겐슈타인 모두에게 해당될 만한 한 가지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역사가 프리츠 슈테른이 쓴 게르손 블라이히뢰더의 슬픈 묘비명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프로이센 제국 아래서 부와 영향력, 모든 현세적 보상을 누린 그에게 "단 한 가지 주어지지 않은 것은 귀속감과 안정감, 사회 속에 받아들여졌다는 느낌뿐이었다. 동화되고 싶은 유혹의 본질은 아마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163쪽

포퍼의 중요한 학문적 업적 가운데 하나는 이론이 과학적이라면 반증될 수 있어야 한다는 통찰에 있었지만, 정작 그는 이 원칙이 자기 자신의 사상에 적용되는 것은 결코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열린 사회의 적들 중 한 사람이 쓴 열린 사회"로 개명되어야 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202쪽

1929년에 영국에 돌아온 비트겐슈타인은 2만 단어로 된 얇은 저서 "논리 철학 논고"를 박사 학위 논문으로 제출했다. 심사위원 중의 한 사람이었던 무어는 논문에 첨부한 의견서에 다음과 같이 썼다고 한다. "나의 개인적 견해로는 비트겐슈타인 씨의 논문은 천재의 작품입니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이 논문이 케임브리지 철학 박사 학위에 필요한 기준을 충족시키고 남음이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10년 뒤 무어가 은퇴했을 때 비트겐슈타인의 입장에 반대하는 교수들마저 그를 무어의 후임으로 임명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239쪽

"비판적으로 논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심각하고 긴급한 철학적 문제가 실제로 있다는 사실만이 전문적인 강단 철학의 존재를 정당화해준다."(포퍼)
-266쪽

"비트겐슈타인은 포퍼에게 유일한 적색 신호였다. 포퍼에 대한 충성심을 표현하는 데는 비트겐슈타인을 공격하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었다."(조셉 애거시) 포퍼는 언어에 대한 관심을 안경 닦기에 비유했따. 언어철학자들은 그것이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지한 철학자들은 안경 닦는 행동의 유일한 의미는 안경 쓰는 사람이 세상을 더 분명하게 보도록 해주는 데 있을 뿐임을 안다.-267쪽

모럴 사이언스 클럽에서 누군가가 아주 어리석은 발표를 했던 일이 생각난다. 비트겐슈타인은 발표가 끝나자 다음과 같이 소리질렀다. "이런 건 하지 못하게 중단시켜야 해. 형편없는 철학자는 슬럼가에서 월세 받아먹는 집주인과 같은 자들이야. 그런 사람들을 이 바닥에서 몰아내는 게 내 일이지." -모리스 오코너 드러리
-287쪽

"솔직히 말하면 나는 케임브리지에 갈 때 비트겐슈타인을 자극할 심산이었다. 그래서 그가 진정한 철학적 문제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방어하도록 만든 다음 이 문제를 놓고 그와 싸워보고 싶었다."(포퍼)
-287쪽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 대한 당시의 평.
"고전적인 학문적 미덕, 예리한 과학적 시선, 섬세한 논리, 과감한 철학적 도약"(정치학자이자 고전학자인 어니스트 바커. 선데이 타임스)

"시의 적절한 위대한 업적, 현대 사회학에서 가장 탁월하고 중요한 저작","포퍼는 인간의 선택과 의지가 가지는 중요성을 복원했다."(역사가 휴 트레버-로퍼)
-296쪽

포퍼가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출판하기 위해 가장 먼저 접촉한 출판사는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부였다.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부는 출판을 거절했는데, 포퍼는 그것이 비트겐슈타인을 보호하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확신했다. 출판 거절의 사유를 밝히지 않는 게 케임브리지 대학 출판부의 일반적 관행이었지만, 폰 하예크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의 경우 두 가지 이유가 문제되었다는 것을 개인적으로 알게 되었다. 폰 하예크는 이를 곰브리치에게 알렸고, 곰브리치는 다시 뉴질랜드에 있는 포퍼에게 전했다. 우선 책의 분량이 너무 많다는 게 한 가지 이유였고, 대학 출판부가 플라톤에 대해 그토록 불경한 책을 출판할 수는 없다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이 얘기를 들은 포퍼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플라톤’은 3W, 화이트헤드, 비트겐슈타인, 위즈덤을 에둘러 말한 완곡 어법이 아닐까."
-29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