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청춘들에게 ‘꿈’을 꾸라고 강요하고, 그 ‘꿈’을 실현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노동을 거의 공짜로 착취한다. 꿈은 자본주의가 청춘에 깔아 놓은 가장 잔인한 덫이다. (엄기호) -5쪽
"우리는 ‘굶어 죽지 않는다는 보장’이 ‘지겨워서 죽을 위험’과 교환되는 세계를 원하지 않는다."(라울 바네겜, "일상생활의 혁명")-7쪽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감수해야 한다."는 말이야말로, 사람들의 신음 소리를 틀어막고 모든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만드는 마법의 주문이었다. (최태섭) -15쪽
‘열정’, ‘젊음’, ‘도전’과 같은 이 행사를 수식하는 단어들의 용법이 바로 그것이다. 이 단어들은 행사를 통해 얌전히 ‘길들여’진다. 열정은 넘치지 않아야 하고, 도전은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하며, 젊음은 무모하지 않아야 한다. 오늘날 열정의 대상으로 허락되는 것은 더 이상 세계나, 사회, 혹은 타인이 아니다. 오직 나 자신뿐이다. 그래서 심화되는 ‘자기 혹사’의 몸짓들은 ‘치열하게 살지만 타인에게는 관심이 없는’ 개인들을 양산한다.-25쪽
당신은 기업에게 나를 고용해 달라고 요구한다. 기업은 주판알을 튕겨 본 후, 당신을 고용하면 오히려 이윤이 줄어든다고 답한다. 당신은 기업의 ‘계산’을 넘어설 수 있는 무언가를 제시해야 한다. 그래서 당신이 자신이 ‘보통의 인간’이 아니라 ‘열정적인 인간’이라 주장한다. 당신은 당신이 기업에 임금의 세 배 이상의 이윤을 가져다줄 수 있는 예외적인 존재라고 말한다. 기업가는 스스로 ‘혁신적 기업가’로 진화하지 않는다. 노동자에게 ‘혁신적 노동자’가 될 것을 요구할 뿐이다. "너는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너는 ‘해야만’ 하니까!" -34쪽
성공과 실패로 나뉘는 ‘결과’의 힘은 강력하다. 평가는 ‘감시자’의 눈을 내재하게 만든다. 우리는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자발적으로 평가에 응하고, 그것에 목을 맨다. 비싼 돈을 들여 사교육을 받고, 삶의 속도와 방식을 조정하고, 생각하는 방식까지 기꺼이 바꾼다. -38쪽
(기업의 면접용 채점표) 적응력과 협동심에 가장 큰 배점이 주어진 것을 보면 ‘인성을 채용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는다’는 기업들의 설명은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때의 ‘인성’은 직장 생활을 무난하게 하고 조직에 헌신하는 미덕을 뜻한다. -43쪽
열정은 제도화되었다. 체제는 열정의 분출을 요구하는 다양한 장치들을 만들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열정을 ‘유사 도덕’으로 만들어 내는 일에 성공을 거두었다. -46쪽
열정은 어느덧 착취의 언어가 되었다. 이 거친 황소의 체제 안에서 훌륭히 길들여졌다. ‘원하는 일을 자발적으로 하는 청년’들이 새 시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체 게바라의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런 가슴 속에는 이룰 수 없는 꿈을 가지자."는 말은 더 좋은 일자리를 얻을 날까지 충실하게 살라는 격언이 되었다. -47쪽
자부심 없는 사람이나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부르고 노조를 만든다.(이명박 당신 대선 후보, ‘서울 파이낸스 포럼 초청 강연’, 2007년 5월) -48쪽
"이거 실화예요. 회사 분위기 안 좋고, 펀딩 안 되고, 뭐 그런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가방 하나 맨 애가 문을 열더니 사무실에 들어왔어요. 고개도 제대로 못 들고 ‘영화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돈 안 주셔도 괜찮습니다!’라고 외치더라고요. 근데 현실은 드라마나 영화가 아니거든요. 사람들은 그런 일에 감동받지 않아요. 그 애를 쳐다보는 스태프들의 심경은, ‘저런 녀석들 때문에 내가 돈도 못 받고......;’ 였죠. 영화판에 애들은 자꾸 들어와요. 정작 끝까지 가는 사람은 잘 없는데, 계속 유입이 돼요." -83쪽
소위 보수적인 조직들이 나름 ‘규모의 합리성’을 가지고 있어서 내부적으로는 ‘진보 단체’들보다 훨씬 진보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있다. -118쪽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그냥 그 자체로 정당한 거지 다른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굳이 무엇을 ‘설명하고’, ‘설득하고’, ‘설득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121쪽
"‘신지식인’이라고 할 때의 ‘지식’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대상의 본질과 작동 원리로서의 진리의 파악이나 추구와는 무관한 무엇인가를 만들거나 성취해 내는 능력을 뜻하며, ‘신지식인’은 진리의 소유나 추구가 아니라 어떤 목적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거나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 더 정확히 말해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상품적 가치를 창출해 낼 수 있는 자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신지식인’을 대표하는 자는 플라톤이나 노자, 아인슈타인이나 푸코, 교수나 언론인이 아니라 빌 게이츠나 손정의, 주식투자가 솔로스나 수많은 벤처 기업가, 마이클 잭슨이나 만화가, 박찬호, 박세리 등이다."(박이문, ‘신지식인과 지식인’) -173쪽
일찍이 한국 사회에서 노동이라는 단어는 이미 ‘금지어’였다. 노동은 인민이라는 단어처럼 사회주의적인 의미를 띤 단어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노동자는 근로자로 대체되었으며, 1886년 미국에서 벌어진 총파업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노동절(5월 1일) 역시 근로자의 날(3월 10일)로 바뀌어 불렸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사회학계에서도 ‘계급’이라는 용어는 맑스주의의 산물로 간주되어 탄압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중산층’이라는 말은 이것의 원어인 ‘middle-class’를 ‘중간 계급’으로 번역할 수 없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183쪽
세계화라는 단어는 globalization의 번역어가 아니다. 이 말은 김영삼 정부에서 만들어 낸 ‘조어’로, 정부의 공식 문건에도 ‘segehwa’라고 표기되었던 말이다. -183쪽
노동자가 노동자로서 자본가와 노동 계약을 맺는 게 아니라, 자기 노동력에 대해 스스로 자본가나 투자가가 되어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간단하게 말해, 노동자가 자기 몸과 시간에 대한 ‘경영자’가 되어 상위의 경영자(진짜 경영자)와 노동 계약을 맺는, 이상한 방식으로 노동과 자본의 관계가 바뀌고 있다. (엄기호) -185쪽
열정은 본래 대중의 것이었다. 오타쿠와 마니아들은 자발적으로 모였고, 자발적으로 배웠으며, 자발적으로 창작했다. ‘문화 산업’과 ‘벤처 기업’의 등장은 상황을 바꿔 놓았다. 취미가 일로, 일이 취미로 변했다. 열정이 산업의 내부로, 그리고 노동으로 유입됐다. 자본주의는 ‘열정’의 영역에서 새로운 시장과 노동력을 발견했다.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는 말은 이전보다 더한 성실함과 근면함을 요구했다. 열악한 조건도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감수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혹여 불만이라도 토로하는 사람은, 이 일에 대한 열정이 부족한 것에 대하여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186쪽
복지 제도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는 이 나라에서 ‘자발적으로’ 일하는 이들이 등장했다는 사실은, ‘일도 많이 시키고, 돈도 안 주어도 되는’-착취에 최적화된-상황이 펼쳐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190쪽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을 노동자로 생각하지 않고 오직 소비자로 인식한다. (지그문트 바우만) -2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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