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커홀릭 1 - 변호사 사만타, 가정부가 되다
소피 킨셀라 지음, 노은정 옮김 / 황금부엉이 / 2006년 4월
구판절판


나는 시계에 중독되지 않았다. 하지만 의존하고 있는 것은 명백하다. 당신도 시간을 6분 단위로 나눠 산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 내 근무 시간은 6분 단위로 계산해 의뢰처에 청구하게 되어 있다. 모두 다 전산화 된 타임시트로 처리되어 항목별로 정산된다. -23쪽

사실 나는 시스템에 가장 큰 결함이 있다고 본다. 더 명확해야 한다. 공중화장실이 그렇듯이 사람들은 안에 사람이 있으면 있다는 표시를 달고 살아야 한다고 본다. 임자 있음. 없음. 이러한 것들에는 애매모호함이 있어서는 안된다. 하여튼 나한테는 그런 표시가 없었다. 혹시나 표시를 달고 있었다고 해도 그건 잘못된 것이었다. 가이에게 빈번히 미소를 날리던 약간은 쑥스러운 기간이 몇 주가 흘렀다. 내가 그러면 그는 어색해하는 듯 보였고 나를 피하기 시작했다. 원인? 1) 나와 제이콥의 관계를 깨고 싶지 않아서. 혹은 2) 나와 제이콥 사이에서 삼각관계가 되기 싫어서. -36쪽

내가 다시는 남자한테 먼저 대시하나 봐라. 절대 안한다. 내 원래의 전략, 얌전하게 기다리다가 무시당하면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옮기고 또 기다리기를 백만 번 하는 편이 훨씬 낫다. 누가 신경이나 쓴대? 차라리 잘됐다. 진짜로. 왜냐면 나는 정말로 내 일에 집중해야 하니까. -2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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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와 전사 - 근대와 18세기, 그리고 탈근대의 우발적 마주침
고미숙 지음 / 휴머니스트 / 2006년 4월
구판절판


그 시간의 공간적 표상이 바로 시계다. 근대적 시간은 시계에 의해 지배된다. 시계는 시간을 잘게 쪼개서 공간적으로 위치시켜놓은 기계다. 처음엔 시간을 표시하기 위한 도구였던 시계가 곧바로 인간의 신체를 지배하는 존재로 전도된다. 시계를 신체에 새기는 것이야말로 문명적 신체가 되는 첫번째 코스다. -40쪽

결국 문명과 비문명 사이의 경계는 시간을 얼마나 잘개 쪼개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어떤 태도로 전유하는가에 달려 있는 셈이다. 즉, 시간-기계 란 하루를 분 단위로 잘게 쪼개서 잘 활용해야 한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시간이 곧 금 이라는 명제에 절대적으로 복종한다는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43쪽

사이성이 사라진다는 건 대상과 대상 간에 확연한 위계가 설정됨과 동시에 주인과 노예의 권력관계가 구성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관계 안에선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노예는 물론 주인조차도. 인간과 우주의 관계 또한 그러하다. 우주를 소유할 수 있되, 결코 그것과 함께, 혹은 그 속에서 공명의 춤을 출 수는 없는 것, 그것이 바로 근대인의 시공간이다. -58쪽

근대 이후의 역사서는 구체적인 궤적에서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민족의 기원과 유래를 설정하고 그 웅대한 자취를 기술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이때 역사란 신분과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경험과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하나의 국민으로 통합하는 프로젝트에 해당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지적인 충돌과 차이들을 지우고 '국민'이란 이름으로 하나의 역사를 공통의 기억으로 전유하게 하는 것이 필요했다. 역사서술에서 시작과 중간과 끝이 있는 사서적 통일성이 요청된 것도 그 때문이다. 연대기적으로 듬성듬성 나열되기보다 사건들 사이가 촘촘하게 이어지면서 주체와 동기들이 명료하게 부여되었다. 말하자면 하나의 완결되고 잘 짜여진 이야기로서의 역사가 요구되었던 것이다. 민족의 '대서사'로서의 역사, 이 대서사야말로 근대 민족담론에 피와 살을 입힌 장본인이었다. -68-69쪽

결국 근대 역사는 현재를 향해 달려오는 과거,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현재라는 단 하나의 평면만 존재하는 셈이다.
이 평면을 이끌어가는 척도가 바로 진보다. 미개와 진화, 야만과 문명의 차이는 결국 시간적 차이를 지칭하게 된다. '아직 이른' 좀더 늦은' 등의 언표들이 자연스럽게 쓰이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 그런 기준에 따르면, 역사가 진보한다는 건 앞의 시기가 뒤의 시기보다 열등한, 달리 말하면 앞으로 나아갈수록 더 성숙해지는 수직적 위계를 지닌다. -78쪽

노마드의 여정에는 목적지가 없다. 아니, 여정 그 자체가 목적이라고 해야 맞다. 따라서 그는 여정마다에서 마주치는 온갖 대상들과의 능동적 접속을 시도한다. -84쪽

동양적 사유에서 악은 기본적으로 불선(不善), 곧 선이 결여되어 있는 상태를 뜻한다. "악이란 결코 본래적으로 선에 대항하는 것은 아니며 넘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것에 이름 붙인 것일 따름이다" -1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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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5-13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읽으셨군요.

마늘빵 2006-05-13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녀. 속독 했습니다. 음. 이거 지금 이 시점에서 제가 읽기엔 제가 부족한듯 합니다. 받은 책이니 서평은 써야겠고 해서 속독했습니다.

가넷 2006-05-13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볼려는데 제가 볼만한 책인지 모르겠네요..-_-;

마늘빵 2006-05-13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생각보다 쉽지 않군요. 어렵다기보다 정신이 없어요.

비로그인 2006-05-13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랑..전 이 책 리뷰써서 벌써 탱스투 2개 받았어요.

마늘빵 2006-05-13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방금 리뷰 올렸어요. 제겐 별 소득이 없었던 책입니다.

사마천 2006-05-13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집트의 술탄은 근대를 받아들이기 위해 오래된 오벨리스크를 주고 시계를 받았습니다. 지금 보면 우스은 거래지만 당시에는 상징하는 바가 컸습니다. 문장이 꽤 뛰어나군요. 한번 보아야겠네요.

마늘빵 2006-05-13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번째 두번째 장이 전 재밌었습니다. 나머지는 제가 시간에 쫓겨 읽었기 때문인지 그닥 눈에 들어오지 않더군요.
 
데블 - 악의 역사 1, 고대로부터 원시 기독교까지 악의 인격화
제프리 버튼 러셀 지음, 김영범 옮김 / 르네상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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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본질은 감정을 가진 존재,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를 잔인하고 폭력적으로 다루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고통이다. 악은 정신을 통해 즉각 파악되고, 감정에 의해 곧바로 감지되며, 고의로 가해진 고통으로 느껴진다. 악이 존재한다는 데 더 이상의 증거가 필요치 않다. -13쪽

악을 이해하려면 개인에게 행해진 어떤 사건을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경험해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닥친 악을 즉각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들, 친구나 이웃들에게 아니면 개인적인 친분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 행해진 악을 감정적으로나마 직접 경험한다. 악이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16-17쪽

전통적으로 '자연발생적 악'과 '도덕적 악'을 구분하기도 한다. 자연발생적 악이란 토네이도나 암과 같은 '신 또는 자연의 파괴적인 행위'를 말하고, 도덕적 악은 인간의 의지나 여타 지능을 가진 존재에 의해 발생하는 것을 일컫는다. 그러나 진지하게 신이라는 개념을 숙고해보면, 그러한 구분은 무의미해진다. 왜냐하면 신이란 다른 감정을 지닌 존재에 고난을 짊어지우는 감정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23쪽

"아브락사스는 신성하고도 저주스러운 말을 하는데 거기에는 삶과 죽음이 동시에 들어있다. 아브락사스는 진실과 거짓, 선과 악, 빛과 어둠을 같은 말과 같은 행동으로 낳는다. 그래서 아브락사스는 끔찍하다"
(융 <죽은 자를 위한 일곱 가지 설법> ) -34쪽

악은 왜, 어떻게 인격화되는가? 가장 기본적인 답은 이렇다. 즉, 악을 외부로부터 우리에게로 침입해 들어오는 고의적인 악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격화된다는 설명이다. -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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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럼 누가? - 철학 이야기 지식전람회 10
김주일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6년 3월
절판


아테네를 비롯한 고대 희랍의 나라들은 다신교 전통에 서 있었다.
...중략...
희랍에 단일한 신이 없었다고는 하나 나라를 수호하는 대표적인 신들은 있었다. 아테네라는 이름의 유래가 아테나 여신인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아테나 여신은 아테네에서 주로 섬기는 신이다.
...중략...
신화상으로도 포세이돈과 아테네 여신이 이 나라를 두고 쟁탈전을 벌였고, 올리브를 선물한 아테나 여신의 승리로 끝나 이 나라는 아테네라는 이름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60-61쪽

희랍의 다신교와 기독교와 기독교의 일신교는 섬기는 신의 숫자에서만 차이가 나는 것이 아니라 섬김의 형태에서도 차이가 났다. 기독교는 유태인들의 민족 신앙인 유대교에서 유럽인의 보편 종교로 발달하는 과정에서 신의 존재를 증명해야만 할 필요가 생겼다. 전래의 문화 전통 속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신앙 체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신이 새삼스런 증명의 대상이 되었다. 게다가 천신 만고 끝에 로마의 국교가 되었지만 게르만 족의 대이동과 로마의 멸망으로 유럽의 주인이 바뀌면서 다시 기독교를 전혀 모르는 이민족에게 기독교의 신을 신앙의 대상으로 납득시켜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렇게 현실적인 이유말고도, 여럿이 아닌 단 하나의 신은 추상적이라 설득의 과정이 추가로 더 필요한 측면도 있다. 반면에 희랍의 다신교는 오랜 문화 전통이었고, 신의 수가 교리에 의해 정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의 이해 능력이 발전하면서 자연스레 신의 수가 불어났고 인간의 이해에 부응했기 때문에 신이 심각한 증명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62-63쪽

신화적인 세계관에 의하면 공동체의 누군가가 신을 모독하는 경건하지 못한 행위를 하면 그 공동체 전체가 몰살될 수 있다. 새로운 해석은 위험하고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었다. 해석은 불경이다. 전통의 방식만이 옳다고 믿는 경직된 상태, 그것이 당시 아테네 배심원들의 심정이었다. -80-81쪽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대화술이 아무 여과 장치 없이 젊은이들에게 공개될 경우, 경거망동하는 젊은이들이 기성의 권위에 도전하고 조롱하는 장난 도구로 대화술을 악용할 소지가 많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국가>에서 대화법을 배울 수 있는 나이를 30세 이상으로 제한하기도 한다. -100쪽

변함없는 악법을 운용하는 나라가 불안정한 좋은 법을 운용하는 나라보다 낫습니다. 절도를 갖춘 무지가 자유분방한 명민함보다 유익합니다. 지식이 있는 사람들보다는 한층 평범한 사람들이 나랏일을 더 훌륭하게 꾸려나갑니다.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법보다 더 현명해 보이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투키디데스 <펠레폰네소스 전쟁사> 3권 37장, 클레온의 말 中)-129쪽

dura lex, sed lex
(quod quidem perquam durum est, sed ita scripta est)
(그것이 나쁜 것이긴 하지만, 법에 그렇게 되어 있다)
(도미누스 울피아누스의 말, 3세기 로마법학자)-130쪽

악법도 법이기 때문에 일단 지켜야 하며, 악법이라는 것을 국민에게 널리 홍보하여 정당한 입법절차에 따라서 그 악법을 개정하여야 한다.
(오다카 도모오, <법철학>,1937년)-146쪽

흥미로운 것은 이 말(악법도 법이다)이 1980년대에 부쩍 많이 인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군국주의 시대와 군부 독재 시절에 똑같이 '악법도 법이다'가 강조되고 소크라테스가 오명을 뒤집어썼다는 것이 자못 의미심장하다. 하여간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이 말이 대중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일까? 1960년대 이후 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했다고 학교에서 배웠는데, 교과서에 명시적으로 없으니 어떻게 된 일인가? 아마 이것은 오다카의 책과 우리의 교과서에 적힌 내용이 그런 오해를 방조 내지는 조장했고, 이를 학교에서 수업하는 선생들이 적극적으로 '그렇다'고 연결지어 설명했으며, 언론이 이를 확대, 재생산했으리라고 보는 것이 적절한 해석이리라. -150-1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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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뱀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옥희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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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기다려. 지금 어느 나라 말을 사용하고 있는거지?"
알수가 없었던 것이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느 나라 말도 아니야. 당신과 나에게만 통하는 말로 이야기하고 있는 거야. 모든 사람들 사이에 그런 말이 있지. 사실은 그런거야. 당신과 그 어떤 사람, 당신과 부인, 당신과 전에 함께 있던 여자, 당신과 아버지, 당신과 친구, 그런 사람들끼리만 통하는 단 한 종류의 말이"
<신혼부부> 中 -13쪽

"이렇게 전차를 타고 계속 많은 것들을 보고 있어. 끝이 없는 직선처럼 언제부턴가 계속 이러고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를 거야. 그들은 전차라는 것을 아침에 정기권을 보이고 개찰구를 빠져나가 밤에 원래의 역에 돌아오기 위한 안정된 상자라고 생각하지. 그렇지 않아?"
여자는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하루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무섭고 불안정해지고 말아."
나는 말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실제로 그렇게 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야. 모든 건 마음의 문제지. 만일 인생을 전차라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돌아가야 할 집과 계속해야 할 일들을 전차라는 기능과 뒤섞지 않으면, 여기에 탄 사람들 거의 모두가 가방 속의 지갑에 들어 있는 돈만으로도 지금 곧 아주 먼 곳으로 갈 수도 있어."
<신혼부부> 中 -15쪽

"몸을 써서 밖을 향해 계속 표현하는 것보다도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밀어내지 않으면 갈증은 해소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어. 지금까지 나는 격렬하게 움직여서 간신히 자신을 지탱해 왔지만 다른 방법을 찾아보려고 생각했지."
<도마뱀> 中-33-34쪽

"또 만나줘요"
라고 말하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아무래도 아무래도 만지고 싶어서, 미칠 정도로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어서. 그녀의 손을 만질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하지요. 신이여.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생각으로 손을 잡았다. 자연스럽든 부자연스럽든 상관없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생각이 났다. 사실은 그랬다. 그럭저럭 서로 마음이 있는 두 사람이 있어 별 생각 없이 약속을 하고 밤이 되어 먹고 마시고,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오늘쯤 해도 된다고 서로가 암묵의 타협을 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저 만지고 싶어서, 키스를 하고 싶고 껴안고 싶어서,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고 싶어 견딜 수가 없어서 일방적으로든 아니든 눈물이 날 정도로 하고 싶어서, 지금 곧, 그 사람하고만, 그 사람이 아니면 싫다, 바로 그런 것이 사랑이었다. 생각이 났다.
"그래 또 만나"
<도마뱀> 中-34-35쪽

내 사랑은 네 사랑과 조금 달라.
예를 들면 네가 눈을 감았을 때 바로 그 순간에 우주의 중심이 너에게 집중하지.
그러면 네 모습은 한 없이 작아지고 뒤에 끝없이 펼쳐지는 풍경이 보이기 시작하지. 너를 중심으로 해서, 그것은 엄청난 가속으로 점점 퍼져가지. 내 과거의 모든 것, 내가 태어나기 전의 일, 내가 쓴 모든 글, 지금까지 내가 보아왔던 모든 경치, 별자리, 아련히 푸른 지구가 보이는 암흑의 우주 공간까지.
대단해 대단해 하고 나는 내심 미칠 듯이 기뻐하고, 그리고 네가 눈을 뜬 순간 그것은 전부 사라져버리지. 다시 한번 생각해 주었으면, 하고 나는 생각하지.
둘의 생각은 이처럼 전혀 다르지만 우리는 태고의 남녀야. 아담과 이브의 연정 모델이지. 사랑하는 사이인 남녀 중의 모든 여자에게는 그와 비슷한 종류의 여러가지 버릇이, 모든 남자에게는 응시의 순간이 있어. 상대방을 서로 따라하며 영원히 이어지는 나선이지.
DNA처럼, 이 대우주처럼.
그때 신기하게 그녀가 내 쪽을 보고 웃으며, 대답이라도 하듯이 이렇게 말했다.
"아 정말로 아름다웠어. 난 정말 평생 잊지 않을 거야"
<나선> 中-67-68쪽

아마도 심한 질투란 거의 모든 경우에 본인과 상대방과의 관계성이 아니라 단순히 에너지가 약하다는 걸 드러내는 것이리라.
<김치꿈> 中-85-86쪽

"아, 본래 이런 게 장례식이란 거로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생전에 무슨 일이 있었더라도 모든 걸 잊고 그곳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애도하고 애석해하며 진심으로 슬퍼하고 명복을 빌고 있다. 너무 아름다워 태어나서 꿋꿋이 살아가다가 죽어가는 인생이라는 것이 너무 멋있어 보인다. 바로 몇 시간 전에 죽은 사람도 그 사람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도 모두가 용서를 받은 상태다.
<오카와바타 기담> 中-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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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릿광대 2006-05-06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놓고 여태 안 읽었다는...^^; 읽어야하는데 다른 것들에 자꾸만 밀리고 밀려서 방학때나 읽어야겠내요.

마늘빵 2006-05-06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그렇게 밀리고 밀리다가 요번에 영화 <도마뱀> 때문에 생각나서 집어들었어요. 혹시 같은 내용인가 해서. 아니더라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