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와 전사 - 근대와 18세기, 그리고 탈근대의 우발적 마주침
고미숙 지음 / 휴머니스트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은 매우 잘 쓰고 잘 만들었으나 읽는 이의 부족함으로 인해 이 책은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이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해선 몇가지 조건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첫째, 우리나라의 조선시대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맥을 잡고 있어야 한다. 난 역사에 무지하다.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좋아한다고 하지만 내가 외면하고 있는 분야가 역사서이다. 역사는 알아야 한다. 하지만 쉽게 읽히지 않는 걸 어쩌랴. 둘째, 한문을 좀 알면 좋겠다는 생각. 한자와 한문 둘다를 의미한다. 몰라도 읽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제대로' 읽으려면 필요하단 생각이다. 한자 2급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으나 안쓰면 또 까먹는 것을. 쉬운 한자들 조차도 접하지 않으면 알쏭달쏭한 것이 지금 나의 상태이다. 셋째, 이 책을 읽기 전에 연암 박지원과 미셸 푸코의 1차 서적들을 접할 필요가 있다. 고미숙씨는 고전 리라이팅 작가라고 스스로를 칭한다. 고전을 리라이팅하기 위해서는 고전을 알아야 한다. 고전을 모른 채 리라이팅 된 작품을 읽는다면 그게 무슨 별 의미를 가질까 싶다. 나는 연암 박지원과 미셀 푸코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러므로 내가 이 책을 읽기 위해선 먼저 그들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된 뒤에 이 책을 접한다면 제대로 읽을 수 있겠다.

  "근대와 탈근대의 만남",  "연암과 푸코의 만남" 이라는 다소 잘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가 서로 만나 의외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근대 안에서 근대를 벗어나는 길은 없다.
  그것은 고향에 터를 잡고 살면서 고향을 버리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근대는 결코 스스로를 구원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는 근대를 아주 낯선 배치 속으로, 곧 '탈근대의 바다' 속으로 밀어넣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 탈근대의 시공간은 앞을 향해 있지 않다. 앞이면서 뒤이고, 끝이면서 동시에 시작이다.


  고미숙은 이 글을 쓴 계기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이 작업의 시작으로 푸코와 연암을 선택했다. 그녀는 국문학자다. 국문학자이지만 스스로 국문학 전공자 답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그녀는 경계를 넘나드는 사유를 하고 싶어 한다. 학문이라는 것은 결국 끝에 가서는 경계를 두지 않는다. 사학과 국문학과 철학이 모두 같은 선상에서 이루어진다. 이 책은 그녀의 경계없는 사유의 창조물이자 결과물이다.

  "푸코를 통해 근대성이 얼마나 견고한 요새로 둘러써야 있는지를 실감했고, 연암을 통해 그 요새를 돌파하는 것이 얼마나 유쾌한 질주인지를 배웠다. 푸코가 고고학적 탐사를 무기로 근대성의 지축을 뒤흔든 전사라면, 연암은 그 위를 사뿐히 날아올라 종횡으로 누비는 나비다. 진정 그들로 하여 '앎과 혁명'을 다시 구성하는 길 위에 설 수 있었다. 전사가 되거나 나비가 되거나 - 그들이 나에게 열어준 매혹적인 갈림길!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연암과 푸코, 두 사우에 대한 나의 '헌정앨범'이기도 하다."

  이 책은 속도, 인간, 성, 연애, 여성되기, 몸, 앎 등의 큼지막한 주제를 나누고, 각각의 장에서 연암과 푸코를 만나게 하며 근대의 장벽을 깨고, 사뿐히 날아앉는 작업을 시도한다. 참으로 신선하고 새로운 구성방식이다. 내공이 부족한 탓에 이 책을 통해 연암과 푸코가 어떻게 만났는지를 제대로 깨닫지 못했지만 그녀의 새로운 시도와 사고방식에 놀란 것은 사실. 그녀는 매 장마다 연암과 푸코의 1차 서적에서 따온 글귀를 하나씩 실어놓고는, 자신의 주변에서 직,간접 경험했던 물음 몇 가지를 던져놓는다. 그리고는 근대성을 향해, 근대성을 깨기 위한 작업에 들어가고, 마지막으로 출구에서 앞서 살펴본 텍스트로부터 도출할 수 있는 하나의 질문을 던져놓고 대답하며 마무리 짓고 있다.

  이 책은 어렵다. 내용이 어렵다기보다 읽어나가기가 어렵다. 천천히 한줄한줄 정성들여 읽어나가면 푸코와 연암을 만나고, 전사와 나비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고전 리라이팅이라고는 하지만 쉽게 부담없이 지하철 간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연암과 푸코의 1차 서적을 읽는 만큼이나 정성을 들여 읽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목적지에 도달 할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고미숙씨가 이 작업을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는 짐작이 간다. 엄청나게 많은 시간과 자기노력을 투자해서 얻어낸 사유물이고 결과물일  것이다. 독자가 그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그녀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시간과 노력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나는 아직 이에 적합치 않는 상태라는 것을 말해둔다. 내가 이 책을 읽기는 읽었으되 제대로 이해한 것은 아니다. 그저 한줄한줄 따라가며 문장이 의미하는 바가 뭔지는 알 수 있을지 몰라도 이 책 전체가 나타내고 있는 바는 깨닫지 못했다. 너무나 많은 자료를 토대로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읽는 내내 정신이 없었던 책이다. 나중에 다시 접하게 될지 어떨지는 장담하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 이내 서평이 마음에 걸린다.
   제대로 차근차근 읽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린다.
  시간을 갖고 제대로 다시 읽고 서평을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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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5-13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대로 생각하면 이 책을 통해서 연암,푸코에 입문하고 역사,한문 공부의 계기가 될수도 있죠.

마늘빵 2006-05-13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뽀뽀님 반대의 방식도 좋겠지만, 음. 그게 더 어려울 거 같아요. 이 책은 다 읽고나면 머리에 남는게 없을거란 생각이에요. 소설이라면 그래도 상관이 없겠는데, 뭔가 지적인 습득을 기대하고 봤던 책인데 남는게 없다면 이 두꺼운 책을 다 읽고 허무할 거 같아서요. 그래서 그냥 속독해버렸죠.

하늘바람 2006-05-13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그렇군요 전 아직 구경도 못해보아서 궁금할 따름이에요

비로그인 2006-05-13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기 어렵다니까 더 읽고 싶어지는군요.

마늘빵 2006-05-13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의 여유를 갖고 찬찬히 읽으면 읽혀요. 제가 빨리 읽으려고 해서 그런건지도 몰라요. 근데 읽고나면 아무것도 기억나는게 없을거 같은 불안감이 있긴 해요.

비로그인 2006-05-13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는데 도움될만한 서적은 없을까요?

마늘빵 2006-05-13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핫. 연암과 푸코의 1차 서적을 먼저 읽으면 좋을지도. 근데 그것도 쉬운 작업은 아니죠. 흠.

비로그인 2006-05-13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암건 그렇다 쳐도 푸코껀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가넷 2006-05-13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땅에 해딩하는 거죠.ㅎㅎㅎ;;

마늘빵 2006-05-13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를 찾아서님 / 음. 일단 푸코를 검색해보세요. 책이 몇 권 나올거에요. 뭘 먼저 읽으라고는 말씀을 못드리겠어요. 저도 푸코에 대해서는 <성의 역사> 1권가지고 수업을 듣긴 했습니다만 잘 모릅니다. <지식의 고고학> <성의 역사> 1,2,3권, <감시와 처벌> <광기의 역사> <담론의 역사> <임상의학의 탄생> 이 있죠.
야로님 / 네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에요. 고전 리라이팅이라는건 고전에 좀더 친숙하게 다가가게 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음. 제대로 즐기자면 고전을 두루 거친 독자가 읽는게 더 낫다는 생각입니다.

책방마니아 2006-06-05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이 게 아프락사스 자네가 말한 그 책이군. 서평 쓰기 무지 힘들었겠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