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반한 나머지 그의 또다른 작품 <붉은돼지>를 빌렸다. 그리고는 또 몇몇 반에 들어가 틀어줬다. 모험영화도 아니고 <센과 치히로...>보다 스토리 전개가 다소 느려서 그때만큼의 초롱초롱 눈 빤짝~ 하는 반응을 얻지는 못했지만 역시 아이들은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는 것은 사실로서 증명되었다.
예전에 대학시절 과사무실에서 조교 선배가 노트북에 씨디를 넣고 뭔가를 보며 막 웃고 있었는데 그게 이거였다. <붉은돼지>. 아니 뭐가 그렇게 재밌담. 사실 나는 아무리 웃긴 장면을 본다고 해도 그다지 웃지 않는다. 그냥 속으로 웃는 편. 살짝 미소가 감돌면 그건 웃긴거다. 나는 티비나 영화를 보면서 우하하하하 하고 웃는 스타일이 아니다. 어쩜 나의 감정을 겉으로 표현하는데에 익숙치 않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평소 나의 생활에 있어서 다른 면모를 보면 그렇지도 않은듯.
"낭만을 꿈꾸는 로맨티스트"
'붉은돼지' 를 '빨간돼지'라고 했더니 아이들이 뭐라한다. 흥 붉거나 빨갛거나 그게 그거지 뭐. 장면 속에서 돼지를 실제 빨갛지 않다. 하지만 그의 비행기는 빨갛다. 그리고 또 반공주의자들의 표현방식을 빌리자면 그의 머리 속도 빨갛다.

* 비록 돼지이지만 번드르 하게 차려입으니 폼 좀 난다. 꽤나 두텁고 낮게 깔린 목소리로 분위기를 휘어잡는다.
배경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1920년대. 전쟁에서 전우들을 모두 잃고 전쟁의 참혹함을 두 눈으로 본 비행사 포르코는 스스로 마법을 걸어 돼지가 되어버린다. 그리고는 이탈리아의 무인도에 홀로 살며 오래된 낡은 비행기를 몰며 하늘의 해적, 공적을 소탕하며 벌어먹고 산다. 하지만 그는 절대로 살상은 하지 않는다. 해적들을 소탕함에 있어서도 비행기를 격추시켜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날지 못할 정도로만 망가뜨려 안전하게 떨어뜨린다. 절대로 성능좋은 철갑탄을 사용하지 않는다. 자신은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며. 그 누구보다 인간적인 돼지 포르코.

* 포르코에게 당한 맘마유도단 을 비롯한 공적들. 무인도에서 기다리며 그가 나타나자 댐벼들고 있다. 귀엽다. 녀석들.

* 포르코와 커티스의 재대결. 비행기로 대결이 끝나지 않자 물 속에서 수중전을 벌인다. 주먹다짐. 마지막 한 타로 포르코가 간신히 승리를 거둔다.
그에게 당한 공적들이 한둘일리 없다. 그들이 뭉쳐 미국인 비행사 커티스를 고용한다. 뛰어난 비행술을 바탕으로 고장난 비행기를 몰고 정비소로 향하는 돼지를 격추하여 떨어뜨린다. 그러나 후에 포르코와의 재 대결에서 주먹다짐으로 그에게 진다. 이쁜 여자를 보면 사죽을 못쓰고 솔직히 고백하며 차이기도 한다. 본성이 나쁜 사람은 아니다. 미국 할리우드에서 영화배우로 성공하고, 대통령에 되겠노라 당당히 밝히는 그.
애니메이션이지만 굉장히 심각한 배경과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세계대전 이후의 참상, 전쟁의 잔혹함을 겪은 비행사의 이야기. 해적소탕으로 벌어먹고 살지만 절대 죽이지는 않는 그 누구보다 인간적인 돼지. "파시스트가 되느니 돼지가 되는게 낫다" 고 말하는 돼지. 그래서 그는 스스로 마법을 걸어 돼지가 되었던 것일까. 나중에 피오의 뽀뽀 때문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마법이 풀린다. 그러나 얼굴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도 아닌데 왜 뽀뽀로 마법이 풀리는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