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 진정서 접수 이후 별다른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데, 내가 전화를 해서 어찌 돌아가는건지 알아봐야하는걸까. 하긴 이런 사건이 어디 한둘이 아니니 경찰도 접수만 하고 손놓고 있는 일이 다반사일게다. 신고를 한다고 하니 못하게 할 수는 없고, 일단 신고는 받되 큰 건이 아니면 마냥 기다리고 있는 식이 아닐까. 뭐를? 웬만큼 크게 노는 사기범이 아니고서는 수사 착수를 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지 않고서야 기존에 접수된 건수가 꽤나 있고, 내가 신고한지도 이렇게 오래(?) 됐는데 아직까지 잡히지 않을리가 없다.
내가 신고한 이후 벌써 당했다고 인터넷에 알린 사람만 여덟 명이다. 혼자 묵묵히 삭히고 있거나, 에이 새해 초부터 된통 당했다 하고 있을 분들까지 치면 이 녀석의 실적(?)이 꽤나 높다. 실력이 좋은건지 아니면 당하는 사람이 순진한건지 모르겠지만, 하루 건너 한 명 꼴로 접수되고 있는 판국이 예사롭지만은 않다. 11월말부터 시작해서 벌써 내가 알고 있는 것만 해도 30건은 되는 듯 하다. 그럼 두 달도 안되는 사이에 이 엄청난 사람들이 다 걸려들었다는 이야긴데 내가 이 녀석에게 상납한(?) 돈은 액수가 엄청 작은 편이다. 8만 8천원. 다른 분들은 보니 20-30만원씩이다.
계속 이 녀석에게 걸려드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기 위해 주무대인 모 사이트에 사기범 경고의 글을 올리고 있음에도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그래서 좀 더 구체적으로 그 녀석의 사기패턴을 세세히 묘사해서 더 이상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고 있는데, 주기적으로 글을 업댓하는 것도 힘들다. 이렇게 내가 이 짓 하고 있어도 나 이후로 같은 사이트에서 또 여러명이 걸렸다고 하니 이 사람들이 게시판을 제대로 보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렇다.
사기범의 패턴은 이렇다. 일단 표를 구한다고 게시글을 올린 이에게 문자를 보낸다. 표 두 장 있습니다. 그럼 표를 구하는 사람과 사기범 사이에 문자가 오간다. 어디서 거래할까요, 어떻게 거래할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다소 멀더라도 직접 만나는 것이 좋다. 얼굴 보고 전화번호 알고 표와 돈을 맞바꾸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지만, 사기범은 절대 만나지 않는다. 일단 나는 내가 먼저 내가 사는 지역을 밝혀선 안 된다. 내가 먼저 밝히게 되면 저는 지방인데요, 직거래는 안 될거 같아요, 라고 대꾸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먼저 사는 지역을 밝히도록 해야 한다.
어디 사세요? 네 저 대구에 삽니다. 미심쩍으면 거짓말로 선수친다. 아 저도 대구인데 직거래 가능할까요? 그러면 사기범은 아 제가 머 아파서 어쩌구 저쩌고 하면서 만나기를 회피하고 시간이 안 된다는 둥 하며 핑계를 대는데, 결국은 내가 먼저 사는 지역을 밝히나 그 녀석이 먼저 밝히나 만날 수 없다는 결론은 똑같으므로 내가 불리할 수밖에 없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하지만, 소기의 성과는 있는데, 녀석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 그때부터 의심의 강도를 높여야 한다.
일단 만나는 건 어려워졌고,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거래를 할 것인가, 가 둘 사이에 풀어야 할 가장 큰 문제인데, 전에 말했듯이 옥션 안전거래를 해야한다. 옥션 그냥 거래는 안 된단다. 나는 안해봤는데, 아는 동생 말로는 안전거래가 아닌 그냥거래는 확실히 안전성이 보장되는 않는다고. 어떻게 그런지는 나는 잘 모르겠고. 고로 일단 '옥션 안전거래'를 하도록 유도한다. 의심하는건 미안하지만 옥션 안전거래를 하도록 하자, 그게 가장 낫지 않겠나, 하는 식으로. 그런데 녀석이 또 다른 방법을 제시한다. 자기가 잘 아는 안전거래 사이트가 있는데 그곳에서 하자고. 편리하다고.
나한테 사기친 녀석은 나 이후의 작업 대상들에게 그런 식으로 유도했다. 안전거래 사이트를 만들어놓고 - 실제로 안전하진 않다 녀석의 함정이다 - 그곳에서 거래를 하자고 한다. 표를 구하는 사람 역시 안전거래 사이트라고 써있고, 이런저런 조항들이 씌여있는 사이트니 믿고 거래를 흔쾌히 허락한다. 그러나 그곳은 사기 사이트였다. 사이트에 적힌 안전거래 계좌 역시 녀석의 또다른 대포 통장을 이용한 계좌에 불과하다. 피해자는 여지없이 말려들었다. 안전 거래 사이트라고 써있지만 실제로는 사기 사이트인 곳에서 거래를 한 것이고, 녀석의 계좌로 돈을 상납(?)한 꼴이 되었다.
이후 시나리오는 뻔하다. 확인했습니다, 보냈습니다, 까지의 문자가 피해자에게 도착하고 이후 깜깜무소식이다. 피해자는 다음날까지 물건을 기다리는 동안 사기범은 빠져나갈 시간을 벌 수 있다. 계좌에 돈이 들어갔고, 계좌에 있는 돈을 몽창 다 빼돌리고, 잠적한다. 그렇게 되면 피해자가 이미 피해 사실을 인지한 뒤에 은행에 가서 '지급정지'를 신청한다 한들 상황은 되돌릴 수 없게 된 이후다. 녀석의 통장에 돈이 없는 한 돈을 돌려 받을 길은 녀석을 잡은 뒤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길 뿐이다. '지급정지-환급신청'이 가능한 것도 녀석의 통장에 내 돈이 온전히 보관되어있고, 이후 은행이 녀석에게 전화를 해서 환급요청을 하고, 녀석이 이를 수락했을 때에만 가능하다. 그러니 꿈깨야한다.
피해자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조치는 경찰서로 향하는 길 뿐인데, 증거자료를 가지고 가서 진정서 또는 고소장을 접수한다. 고소장은 잘 안해준다. 상대가 대포통장을 사용하는지 아니면 사기당시의 실명 그대로를 쓰는 본인인지 알아봐야하기 때문에. 증거자료로는 핸드폰에 온 문자들 - 핸드폰을 제출할 순 없으므로 해당 텔레콤 지점에 가서 문자 내역을 뽑아야 한다. 그런데 문자 내역을 뽑는 것도 욕설이나 비방 등이 섞여 있을 때만 가능해서 뽑아내기 힘들다. 또 문자 도착 후 6일 내에만 가능하다. 핸드폰의 문자는 절대 지우지 않도록 한다. 추후 필요할 수 있으므로. - 과 송금 내역서, 그리고 내가 최초 게시판에 표를 구한다고 썼던 게시물 등이 되겠다. 동일 사기범의 경우 다른 이들이 당한 내역까지 문서로 뽑아 제출하면 더 좋다.
여기까지가 피해자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다. 그 이후는 경찰에게 달려있는데 경찰이 수사를 바로 하면 금방 잡히겠지만 신고만 접수하고 서류 쌓아놓고 있으면 녀석은 활개칠 것이다. 지금이 딱 그 꼴. 신고된 내역이 꽤 많음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지의 경찰은 아직까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아니 안 내고 있다? 나에게 수사권을 넘겨주면 벌써 잡았겠구만. 녀석이 사용하는 이름, 통장계좌, 핸드폰 번호만 해도 벌써 여러 개 알고 있다. 사기패턴도 알고 있고, 녀석이 유도하는, 녀석이 만든 '안전거래 사이트'라는 사기 사이트도 알고 있고, 메신저 이메일과 아이디, 사기칠 대상을 물색하는 주요 활동 장소까지 다 알고 있다. 그러니 잡히지 않는게 신기할 뿐이다.
- 인터넷 사기 주의보 1
- 인터넷 사기 주의보 2
Q : 이 글의 핵심은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