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그런 곳. 대형병원에 딸려있는 장례식장은 10개 가량의 작은 방으로 구성되어 각기 다른 죽어간 고인의 명복을 빌고 있었다. 건물의 내부구조는 꼭 강촌이나 대성리에서 볼 수 있는 일렬로 쭉 늘어선 그런 집과 같았다. 또 개방된 모텔방 같은 느낌도. 같은 지붕 아래 다닥다닥 붙어있지만 옆방에 있는 다른 이들이 뭘하고 노는지, 그들이 누구인지, 상관하지 않는다. 10개의 방에 걸려있는 사진 속 주인공들은 다른 이유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고, 그들의 성별과 연령대를 비롯해 살아온 인생사도 확연히 다를 것이다.
어제, 내가 들렀던 방의 주인공은, 어머니의 이모의 남편분이었다. 이분은 아직 한국남성의 평균 수명에 못미친 연세로 세상을 뜨셨다. 육십다섯이라 했던가. 듣기로는 평소 술을 굉장히 좋아해서 매일같이 마셨다고 하는데 병명은 들었으나 기억나지 않는다. 머리 속이 간질간질하다. 본래 어머니의 이모분만 몸이 안좋으셔서 병원에 다니고 요양원에 다니고 하셨다. 이틀전 병원에 간김에 남편분도 살짝 안좋아서 검사를 받고는, 그곳에서 큰 병원으로 한번 가보라고 했다는데, 병원에 가는 길에 차안에서 갑자기 돌아가신거다. 아무 말씀도 못하시고.
나는 그 분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어릴 때에도. 내가 지금보다 훨씬 어린 시절 명절 때면 - 흔히 구분하는 방식에 따르면 - 친가에 들러 친척들의 얼굴을 보곤 했지만, 외가에 들른 적은 거의 없었다. 아버지는 외가에 무심했고, 가아끔 어머니를 따라 역곡이고 어디고 가서 낯선 사람들을 보며 인사했던 기억만 남아있다. 동생은 나보다 기회가 더 잦았고, 그래서 어제 그 자리가 나만큼 어색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보는 사람마다 누군지 기억하고 있었고, 그들의 관계를 어렴풋이나마 기억하고 있었다. 반면, 나는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알지 못했다.
얼굴을 알지 못하는, 만난 적도 없고, 그저 핏줄로만 연결된 고인의 죽음은, 내겐 그저 오랫만에 외가쪽 친척들이 만나는 자리였을 뿐이다. 나뿐 아니라 그곳에 모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오랫만에 서로의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짓고 안부를 묻고 할 말 없는 대화를 나눈다. 관계도 복잡해서 일일히 기억할 수 없다. 또다른 이모 할머니의 딸의 남편은 내게 어떻게 되는지, 돌아가신 분의 딸의 남편은 나와 어떤 관계인지 따지는건 머리 아프다. 그냥 다 똑같이 내 건너건너 핏줄의 남편으로 기억할 뿐.
어릴 때 가끔 가서 놀던 형아(어릴적 느낌 때문인지 이렇게 불러줘야만 할거 같은)는 이제 나와 같이 나이 들었다. 듣기로는 나보다 한 살 많다 했다. 어릴 땐 아주 가끔이었지만 같이 비행기며 자동차며 가지고 놀았던 사람과 나는 그간의 세월의 힘으로 서로에게 말조차 건넬 수 없는 어색한 처지가 되었다. 그 형아의 누나도 마찬가지. 하지만 대략 얼굴은 옛날 그 형태가 남아있다, 고 애써 어렴풋한 기억을 더듬어 끼워넣는다. 어머니와 이모들을 제외한 나머지 앉아있는 이들에게 그 자리는 침묵의 공간이었다. 7시쯤 도착해 빈소 뒷편으로 마련된 가족들이 쉬는 공간에서 육개장이며 떡이며 도라지며 오징어며 주워먹고는 10시쯤 되어 그곳을 나왔다.
장례식장은 영화만큼이나 슬프지 않았고, 숙연하지도 않았다. 칸칸이 일렬로 나열되어있는 병원 내부의 구조가 그러했고, 빠르게 각 방으로 옮겨지는 음식물들이 그러했고, 고인의 죽음보단 오랫만에 만난 친척들 간의 반가움이 더 컸기 때문이다. 건너편 방에서 나온 20대 초반의 청년 세 명은 가운데 마련된 공동의 휴게장소에서 장례식장 떠나가라 시끌벅적 떠들며 웃고 있었고, 심지어 한 청년은 일어나 자신이 말로 설명한 것을 몸으로 액션을 취하며 보여주기도 했다. 장례식장은 고인을 떠나보내는 장소보다는 평소 만날 수 없던 지인들이 모여앉아 담소를 나누고 반가움을 표하는 그런 장소가 되어버렸다. 고인은 그곳에서 소외되어있었다. 하지만, 이게 그리 나빠보이지는 않는다.
p.s. 어떤 대형병원은 12시가 되면 모두들 가도록 지시한다고 한다. 상주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을. 이건 아마도 병원의 편의를 먼저 생각한 발상에서 나온 거겠지만, 장례식장을 지키는 이들에겐 '어쩔 수 없는 고마움'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밤을 새며 그곳을 지키고 있는건 너무도 피곤한 일이고, 병원 측의 방침이 그렇다면 모른 척 받아들여 쉴 수 있는 핑계를 댈 수 있으니 그들에겐 고마운 일이다. 모든 것이 편의 위주로 돌아가는 것 같아 씁쓸하면서도 내일을 살아야 하는 남아있는 이들에겐 참 고마운(?) 시스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