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분 토론의 여파가 꽤나 크다. 이럴바에야 차라리 하지 말았어야 할 토론이었다는 생각이다. 아니 어쩌면 제대로(?) 마무리 된건지도. 이건 MBC에서 두시간 동안 <디워> 홍보해준거 밖에 안되는 꼴이지 않은가. <디워> 측에서는 영화에 대한 악평이든, 비평이든, 험담이든, 욕이든, 아니면 칭찬 일색이든, 호평이든 영화를 놓고 뭔가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해할 것. 그들은 일단 한국에서 1000만 관객을 끌어들이는 것이 목표이므로. 그래야 아 성공했다, 우리가 드디어 해냈다, 이런 결론이 도출될 것이므로. 이대로 쭉 간다면 1000만 가능할거 같은데. 모르겠다.
김조광수와 이송희일은 눈 앞에서 사라지고 진중권이 표적이 되었다. 표적이란 말이 좀 뭣하긴 하지만 마땅한 지금의 사태를 표현할 만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디빠 임을 자처하는 이들과 디워를 옹호하는 이들 중 상당수는 '진중권'이란 이름을 처음 들어본 듯 하다. 뭐하는 놈이야, 대학교수래, 대학교수가 왜 저따위야, 중앙대는 이제 발 아래 깔고 봅시다, 등등의 말이 나오고 있는데, 어젯밤에는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홈피가 다운됐다고. -_- 궁금해서 들어가봤는데 접속은 되는데 진중권 교수(교수라고 하니 어색하네) 홈피에는 연결이 안된다. 관리자측에서 일부러 빼놓았나보다. 마땅히 다른 블로그나 홈피를 운영하지 않는 사람이니 그가 소속된 곳에 몰려가서 욕하는 방법 밖에는 없었나보다.
진중권의 반응도 참 재밌다고 해야할지 뭐라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다. "아그들 왔냐? 떼거지로 몰려다니는 짓도 통할 사람에게 해야지 내 얼굴 봐라. 어디 통하게 생겼디? 모처럼 왔는데 어쩌냐? 엉아가 바빠서 놀아줄 시간이 없다. 열 받은 거 여기에 다 쏟아놓고 씩씩거리며 너그들끼리 놀다가거라. 그래도 분이 안풀리거든 그자리에서 쪼그려 뛰기를 해 봐. 잘자 내 꿈 꿔." 하하. 진중권 답다. 분명 토론 후에 자신에게 다가올 하늘을 가득찬 페르시아 화살을 염두에 두고 선수친거라고 볼 수 밖에. 뭐 딴에는 뭐 교수가 저러냐, 그러기도 하는데, 밑에 달린 댓글이 더 재밌다. 겸임교수랍니다. 그 밑에 아 그래서 그렇구나. -_-
완전 요새 포털 사이트 들어가서 댓글들 구경하고 있으면 코미디가 따로 없다. 진중권 입장에서 적절한 대응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디빠가 아닌 단순히 <디워>를 괜찮게 봤던 사람들이나 아니면 디워 논란에서 벗어나 있던 사람들에게까지 거부반응을 일으켜서 논란을 더 키워버린건 아닌가 싶기도. 이미 토론엔 익숙한 위인이니 100분 토론 나올 때부터 이같은 후속사태는 짐작했고, 스스로 감당하겠다고 마음먹고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신랄하게 까놓고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욕먹을거 먹고, 또 그에 대한 '적절한 대응' 역시 미리 다 진중권 머리 속에 계획된 시나리오로 준비되어있었을 것이다.
마음껏 독설을 퍼붓는 사람인지라 그와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상처가 되거나, 분노를 일으키는 효과는 가져오게 되고,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웃음과 쾌락을 선사하기도 한다. 아마 진중권은 지금의 디워 사태에 대해서 이것이 가장 적절한 대응 방식이라 생각했나보다. 생산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이 불가능하다 생각했고, 차라리 그럴 바에야 시원하게 독설을 퍼붓고 끝내자고 스스로 다짐했을지도 모르겠다. 제대로된 논의가 이루어질 환경과 그렇지 않은 환경을 구분하고, 그렇지 않은 환경 속에서는 자신도 마찬가지로 똑같이 대응해주자는 방식. 아마 이제 디워 논란이 서서히 식을 것이다. 더 이상 나올 말이 없으므로. 한쪽에서는 달려들어 물어뜯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대표로(?) 한 사람이 나와 같은 방식으로 대응해줬다. 더 이상의 말말말은 없을 듯 하다. 진중권이 또다른 말을 꺼내지 않는 이상.